1장 서론

도구성과 추상성, 폭력과 경쟁을 축으로 인간이 극도로 대상화되는 현대의 남성주의적 문명을 극복할 대안은 여성들이 이제까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형태로 수행하여온 역할과 체험과 지각을, "보이고 들리는" 형태로 살리는 데서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P24

성 역할 분업과 출산력 및 여성의 자결권에 대한 통제는 이념적 차원에서 언어·종교·예술·놀이 그리고 교육을 통해 존속되고 정당화되어왔다. 부족 사회에서 발견되는 여성 오염의 신화, 농경사회에 나타나는 남녀 유별과 남존여비 사상, 그리고 현대 사회의모성의 미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극단적 대비와 낭만적 사랑내지 성관계에 대한 집착은 모두 이념적 통제 기제에 속한다. - P31

현 사회과학의 과제는 실제로 과학적‘ 설명의 틀에 집착하여 행동을 구성하는 의미의 맥락을 무시해온실증주의 과학과 인간주의적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일상 생활의의미 속에 매몰되어 구조적 차원을 간과해온 해석주의자들의 한계를어떻게 넘어서는지에 있다. 경험과학의 과도한 확장 over-extension 이나 역사해석학주의의 과도한 확장은 모두 비판되어야 하며 이 두 영역을 연결하고 있는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연구가 현 비판사회과학의주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Habermas, 1974:10~12). - P36

푸코에 따르면 해석을 누가 내리는가에 대한 다툼이 곧 권력다툼인 것이며, 기존의 토론 구조 자체에 도전하여 대안적 해석 체계를 제시하는 작업을 통해 혁명은 이루어진다. 특히 권력 현상에 있어
‘서의 지배의 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저항의 힘으로, 종종 헤게모니를 강화시키는 권력 과정은 동시에 저항의 실천을 포함해왔으며 지배적 해석 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생각처럼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그는 보고 있다. - P37

사회 운동의 경험이 짧고 특히 시민혁명의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고 있는 사회 운동이 엘리트주의와 획일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급격한 변동 과정에서 이미 다원화되기 시작한 사회 구성을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운동 양식을 고집한다면 사회 운동이 사회에 뿌리내리기 힘들 것임은 또한 자명하다. 다원주의가 갖는 나태함의 위험 못지않게 획일주의가 갖는 경직 · 고립화의위험은 경계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회 운동은 (1) 정치와 권력에 대한 좀더 새로운 이해와 (2) 우리가 형성해온집단 행위적 특성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없이는 참여의 폭을 넓혀가기 힘들 것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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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은 200년 동안 여덟 차례의 동방 원정으로 이어졌다. 십자군을 주도한 것은 물론 셀주크튀르크가 점령한 성지를 회복하고 교세를 확장하고자 한 교회였다. 그리고 중세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열정과 신앙심이 십자군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에는 당시 이탈리아 상업도시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유럽 봉건 기사들의 영토 지배욕 등 좀 더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승승장구하던 비잔티움제국의 국력이 쇠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제국의 동쪽과 남쪽에 버티고 있던 사산조 페르시아(226
~651) 및 이슬람과의 전쟁 때문이다. 특히 7세기 중반부터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한 이슬람 제국과의 전쟁으로 비잔티움제국은 영토는 물론이고 국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11세기 중엽 노르만이 남부 이탈리아를 장악하면서 베네치아와 비잔티움제국은 노르만족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8
베네치아와 비잔티움 양국 모두 그들의 경제활동의 토대인 지중해를 지키려면 서로 협력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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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룸은 다른 도시들과 달랐다. 궁전 지구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 저택에 사는 사람도 있고 오 - P248

두막에 사는 사람도 있는 등 부자와 빈자가 나란히 살았고, 4개의 성문이름도 문의 방향 혹은 그곳에서 살았거나 죽은 사람이 아닌, 판매하는상품을 따라 지어졌다. 서쪽 성문은 양과 염소, 동쪽 성문은 곡식, 남쪽성문은 소와 수레, 북쪽 성문은 말인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국의 수도는 여전히 시장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러나 그 외의 면에서는 카라코룸도 여느 시대의 제국 수도와 다를 바없었다. 몽골인, 중국인, 튀르크인, 헝가리인, 알라니인, 루테니아인,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아랍인 그리고 다수의 다른 종족으로 이루어진주민들이 도시의 좁은 길목에서 어깨를 부딪히고, 선술집에서 합석을 하며, 제국의 방대한 지배 범위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만 해도 그랬다. - P249

몽골의 부상으로 유럽은 본의 아니게 "세계는 그들의 조상이 보았을 법한 것보다 무한정으로 더 크고 더 다양하며 덜 순종적이었다. 세계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무력으로 쉽게 정복당하지 않을 사람들로 가득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깨달음은 유럽에 특별히 중요한 세 가지 진전을 가져왔다. 첫째, 유럽의 상상력이 구속에서 해방된 것이고, … - P273

두 번째 진전은 유럽이 유목민 국가인 몽골의 부상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몽골의 힘과아시아의 많은 지역에 걸쳐진 그들 지배력의 광대함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시야를 넓히도록 자극해 그들이 동쪽의 인도와 서쪽의 대서양 너머를바라보게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종국에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변화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 P274

티무르의 거대 제국은 교역 도시들, 특히 실크로드의 허브였던 히바, 부하라, 발흐(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자리한 마을/역자), 델리와 물탄(파키스탄 펀자브주의 도시/역자) 같은 남아시아의 요지들, 그리고 근동의 도시들인 바스라, 바그다드, 알레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심축은 마샤드, 헤라트, 그리고 티무르가 시간, 관심, 돈을 특히 아낌없이 투자한 사마르칸트였다. 그러나 이 도시들이 가진 명백한 중요성과 장려함에도 불구하고 티무르 제국은 그가 살아 있을 때에도, 사후에도 계속 유목민의 특성을 띠었다. 제국의 유목성은 부족 중심의 구조와 전통, 정례적으로 개최된 쿠릴타이와 이주, 천막과 말 위의 삶을 선호했던 티무르의 생활 방식, 군대의 편성과 구조, 그가 총애한 아내 비비 하눔과 다른 여인들이 의사결정과 부족 문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힘을 계속 보유했던 점, 자유 무역을 중시한 점, 티무르의 총독들이 이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촉진하 - P309

여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여타 종교들이 확산될 수 있게 한 점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라시아의 시장들을 통해서 막대한 부가 유통되고, 중국에서부터 북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부유해진 것도 티무르 제국의 개방성이 가져온 결과였다. - P310

존슨 박사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두 견해 중 어느 것도 그가 왜 "nomad"를 사전에 등재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는 사하라를 본 적이 없고, 엠티쿼터(루발할리)나고비 사막을 걸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사막desart(desert)을, "황무지, 황야, 황폐한 고장,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사전에 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P345

방랑자wanderer는 "방랑을 직업으로 하는 상인과 같은 사람이면서, 그와 동시에 토지나 일터로는 쓸모없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nomad와 nomadic nolition("의지 없음")과 nomancy (이름 점, 즉 "이름자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기술) 사이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존슨 박사는 이동 방목을 뜻하는 transhumance도 그의 고향 마을에서 행해진 일이었는데도 사전에 포함시키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지어 migration도 싣지 않았다." - P346

베이컨이 생각의 신세계가 발견되기를 갈망했다면, 빙켈만은유럽이 과거를 모방함으로써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거인들의 어깨 위에올라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을 법한 것도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진보에대한 의식이었다. 빙켈만과 그의 동료들은 예술의 역사를 물질문화 속에서 골라낸 길로 제시했다. 그들은 18세기 말의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며,
유럽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한 매혹적인 운동, 즉 유럽 르네상스에 대한개념을 회고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목민도 포함된 유럽 동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끼친 영향과 자극은 교묘히 가려버렸다. - P350

"… 우리 문화에서는 정식 동의를 받지 않고는 문화가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동의는 언제나 교섭으로 결정된다. 교섭이라고 해서 반드시 직접 대화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교섭에는 종종 의식을 통한영적 소통도 포함된다."

쿡은 영국의 해군 장교였다. 뱅크스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 특히 자국민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지식의 범위를 세계적 규모로 넓히는 일에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은 유복한 과학자였다. 두 사람 모두 식자였으며, 문화적 세련미와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총을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륙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않았다. 그 만남의 영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무지는,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한 베이컨의 욕망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 P356

1803년에 루이지애나를 매입함으로써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의 일부인 미시시피 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거래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 땅은 프랑스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땅은 여전히 원주민 부족들의 터전이었고, 그 부족들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들 중 하나였던 라코타 수족도포함되어 있었다. - P376

루이지애나를 매입하고 30년 후에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인디언 이주법 Indian Removal Act에 서명했다. 그에 따라 정부와 정착민들은, 그 땅은 이제 루이지애나 매입 조건에 따라 미국 "소유가 되었음을근거로, 원주민들을 그들의 조상 땅에서 제거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 땅을 잃는 데에 대한 대가로 원주민들이 받은 것은 미국 정부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서부로 분류해놓은 곳이었다. 원주민들의 대다수는 이조치에 반대했다. 그들 중의 일부는 심지어 그 사건을 미국 대법원까지끌고 가 법률에 입각한 변론을 펴기도 했다. 대법원도 원주민 부족들은주권 국가이고, 그러므로 미국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잭슨 대통령의 법은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통령도 법원의 판결을 따를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판결은 집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수의 다른 사람들도 대통령의 본을 따랐다. 그결과 자주권이나 정당한 법적 권리의 어느 것도 원주민들이 부추김을 받고, 감언이설에 속으며,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그들의 삶이나 생계를 전적으로 무시당한 채 조상 땅에서 쫓겨나 더 먼 서쪽으로 이주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 P377

유목민 부족과 비유목민 부족을 망라해 명백한 운명의 완수로 희생된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뿐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잘 알고 보호해준 세계,
그들이 숭배한 동물들과 신들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사라진 것이 미국 대평원을 누비고 다닌 막대한 들소 무리였다. - P387

제국의 재무 관리에게 지시한 시대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19세기가되면서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정주가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시대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제국과 연합들을 멸망시킨 행위, 러시아 남부국경과 중국의 만리장성 서쪽, 그리고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확대하고있던 아프리카에서 유목민을 정복한 행위가 진보로 간주되었다. 유목민은 일정한 거처가 없는 방랑자, 떠돌이, 수렵인, 채취인, 고귀한 야만인이었고…………그들 모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는 모두 유목민들이 살아남았거나 자연계를 존중했는지의 여부가 아닌, 그들이 지닌 금전적 부와 물리적 힘으로 문화와 문명의 가치를 매긴 데에서 나온견해였다. 문명과 문화는 친구, 가족, 부족의 모임 때 함께 나눌 이야기나기억을 후대에 남겨서가 아니라, 웅대한 기념물을 증거로 남겼기 때문에소중했다. - P389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가능한최선의 세계는 우리 모두가 유목민이고 우리 모두가 정착민인 세계, 우리 모두가 이동할 수 있고, 우리 모두가 한동안은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세계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파리둔이, 그나 그의 자식들은 성취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고, 어쩌면 산의 목초지와 도시의 성벽 사이에위치한 그곳에서는 그것이 모종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헤로도토스라면 파리둔의 해법을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야말로 "인류의 모든 관습 중에서………… 선택한 최고의 관습에 기반을 둔 세계를 상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파리둔의 해법은 다양한 생각유목민의 생각의 또다른 종류였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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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하는 우리의 "다른 반쪽을 재평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우리에게 공헌한 바를 밝히는 작업은 모두 우리 정착민들이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며, 우리가 협력에서 얻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가볍게, 그리고 보다 자유롭게 살아갔다는 점에서, 환경에 순응하고 행동할때 기민함과 유연함을 발휘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연계와 지속적으로 균형을 맞춰갔다는 점에서삶의 또다른 방식, 인류의
"다른" 반쪽이 먼 과거의 비옥한 정원에서 하나의 단일 집단으로 사냥하며 살았던 시대 이후로 줄곧 유지해온 삶의 방식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 P23

지표 투과 레이더로 탐사한 결과, (테베) 유적지에는 170여 개의 돌기둥들이 있었다. 현재는 그 유적지가 수백 년 동안 사용되다가 버려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 기념물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곳을 계속 사용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긴 쓰레기와 파편들에 기둥들이덮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훗날 그곳에 다른 주요 정착지가 세워지지않아서, 채석되어 잘라진 기둥들을 재사용하려는 사람이 없었으리라는점도 유적이 남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 P38

괴베클리 테페가 지어질 당시 에덴을 벗어난 강의 동쪽, 그러니까 그곳의 주변 경관은 오늘날보다 비옥했다. 야생풀, 밀, 보리가 자라는 초원을상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참나무, 그리고 이제는 그 지역에서 집약적으로 재배되는 아몬드 나무와 피스타치오 나무들의 관목숲에 흐름이끊기기도 한 그 초원은 가젤과 오록스의 터전이었고, 이주하는 거위들,
식용 가능한 다른 많은 새와 동물들, 그리고 유적지에서 나온 뼈의 퇴적물로 드러났듯 인간을 위협한 일부 동물들의 서식지였다. 슈미트 교수도한 차례 이상 말했듯이 그곳은 "낙원과도 같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이풍요로움은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멀리까지 방랑할 필요를 없게 만들었다. 배회할 필요 없이 성역을 개발하면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인간들이 살고 죽은 곳이었다. 정착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양식을 가져다주었다. - P40

우리는 멸종을 우리 시대에우리가 야기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지구상의 대형 짐승들 중 절반 정도를 차지했던 거대한 검치호랑이와 우람한 땅늘보는 괴베클리 테페에동물 조각 기둥이 세워질 무렵에 이미 사냥으로 멸종된 상태였다. 그곳의 성역도 어쩌면 돌에 새긴 일종의 회한문悔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농업은 인류에게 거대한 도약이 아니었을 소지가있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거둔 성공으로 식량 공급이 대폭 줄어든 수렵채집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 필사적인 위기관리였을지도 모른다. - P55

문자가 발명되고, 산처럼 거대한 지구라트가 처음 지어지며, 최초로 원통인장이 사용되고,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측정(초와 분)할 때에 사용하는60진법 숫자 체계, 각angle, 지리 좌표가 창안된 곳이 우루크였다. 또한 우루크에는 자연계가 제압되고, 하천이 통제되어 땅을 경작할 수 있게 되며, 삼림이 베어지고, 야생동물과 야생인간들이 길들여지거나 살해되거나 추방되던, 기원전 2500년 이전에 우루크를 다스렸던 길가메시라는 역사상의 왕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가메시가 느꼈을 비통함도 어느정도는, 그와 그의 백성들이 세계를 바꾸고 있고, 그리하여 이제는 아무것도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데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길가메시 왕과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도시와정착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연계와의 접촉의 상실이 조화를 이루기가 매 - P71

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 P72

유목민과 정착민, 옥토에 사는 사람들과 황무지에 사는 사람들의 투쟁, "최초의 형제 살해"를 범한 오시리스와 세트, 그리고 카인과 아벨의투쟁 사이에는 두드러진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세트와 카인에 대한 평가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카인은 추방된 반면, 세트는 수천 년간 이집트인들의 숭배를 받은 것이다. 이는 이집트인들의 숭배가, 그 투쟁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만 이해했던 로마와 기독교 시대보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며 미묘한 반응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그보다 1,000년앞선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강력한 왕 길가메시와 그를 억제할 야생의 인간 엔키두가 모두 필요하다고 인식했듯이, 초기 이집트인들도 비정착민들의 창의력과 땅의 경작자들이 가져온 질서와 다양성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경작자와 목축인, 정착민과 유목민. 이집트인들이 직면했던 중요하고 영속적인 도전은 이 둘 간의 균형을 어떻게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 P92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낙원을 뜻하는 파이리 다에자pairi-daeza, 아버지와 아들이 오래 전에 심은무화과와 포도 나무들 사이에서 오디세우스의 길고도 험난했던 여정은막을 내린다. 유목민의 스텝 세계 쪽을 돌아보는 대신에 인도유럽인의신념과 관습이 지중해 세계로 흡수되는 정착적 미래, 유목민과 정주민이조화와 결합을 통해서 우리가 고대 그리스 문화와 현대 서구 세계의 토대라고 알고 있는 세계를 고대하면서. - P105

페르세폴리스는 제국 문화의 다양성을 돌로 찬양한 곳이었고, 그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이나 수사와 같은 제국 도시들은 온전하게 남겨두고 페르세폴리스만 확실하게 파괴한 이유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세폴리스의 기단에 깃든 신성함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러니 그것의 중요성 역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동방 원정에 나서기 전 올림포스 산의 낮은 경사면에 페르세폴리스와 흡사하게조성된 기단의 성소에서 제우스 신에게 희생 제의를 올렸다. 그 시대에는가장 웅변적이고 설득력 있게 취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상징이었고,
그랬던 만큼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한 것은 아케메네스왕조와 그들의 낡은 세계질서에 사망 선고를 내린 행위였다. - P117

유목민, 즉 바르바로이barbaroi(이어족異 혹은 야만족)에는 도시 밖에서 충일하지 않은 삶을 사는 "열등한 종족"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자연은 접근하기 어렵고 극한의 경관과 기후를 가진 외딴곳이었다. 그들에게는 읽고 쓰는 능력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플라톤의 견해로는 도시 성벽 내 사람들이 거둔 위대한 두 성과, 즉 예술과 산업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때와 우리 시대에도 일어난 일이듯이, 그러한 성과가 정신에는 만족감을 주었을지언정, 그 진보를 이루기위해 치른 대가에는 예전의 순수했던 생활 방식, 자연계의 아름다움 속에서 살았던 삶을 희생시킨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꺼림칙한 우려가 항상함께했다. 19세기 초에 윌리엄 블레이크와 20세기에 브루스 채트윈이 그랬듯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성벽 너머의 잃어버린 황야, 아르카디아,
보다 순수하고 무구했던 먼 옛날 우리의 상태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지않을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 P124

흉노와 서쪽에 있는 그들의 짝 스키타이인은,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이 말하는동과서의 세계를 연결하면 혜택이 생긴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스텝 민족은 사치품 교역을 이끌어간 초기의 견인차였다. 성벽 내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국민 위주로 유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주의 필요성 때문에 부득불 말 타기의 명수가 되고 수레와 전차를 발명했던 스텝 민족은방대한 거리를 횡단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들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알고 있었고, 낯선 것에도 편안해했다. 또한 생소한 관습을 용인할 줄 알았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이 볼 때 - P152

그리스인, 로마인, 중국인, 그리고 심지어 페르시아인은 자연계를 외면하고 성벽 너머에 사는 사람들, 하늘에 버림받은 종족이었다. 신이 그들을 벌하기 위해서 채찍(아틸라)을 보낸 이유도, 동쪽에서 다가오는 로마인들에 대해서 우려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쯤에는 "우리의 사치품과 우리 여인네들이 지불한 대가에 대한 대플리니우스의 탄식도 무의미해 보였다. 실크로드 무역은 제국으로서는 사소한 문제였기때문이다. - P153

유적 속에서 골라낸 길, 다시 말해서 역사의 고속도로는 우리로 하여금 기원전 1만 년의현저한 업적 모두가 정착민들의 성취라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괴베클리테페의 건설자들로부터 로마 제국의 종말을 재촉한 훈족에 이르기까지, 유목민, 이주자, 그리고 이동하며 살았던 그 밖의 종족들 역시 최초의 석조기념물을 세운 것에서부터 말을 길들이고, 그 말과 연결해 수레 및 전 - P168

차를 만든 것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진보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우리는알고 있다. - P169

아랍인 무슬림 세력의 극적인 확대는 기존의 세계질서를 바꾸었다. 할리드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지 1세기가조금 지난 700년대 중엽에는, 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의 일부 지역과발칸 반도의 오지로 규모가 축소된 반면, 아랍의 지배권은 인더스 강에서부터 대서양까지 뻗어나가 이전의 어느 제국보다 커졌다. 하지만 이 신생 제국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제국의 크기가 아니라 그 제국이 이동하는습성을 신속한 정복으로 이끌어간 사막인, 유목민이 쟁취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핵심 측근과 장군들의 대다수는 도시 정착민이었지만, 아랍인의85퍼센트와 8세기 무슬림들은 대부분 이동하는 삶을 살거나 유목민의전통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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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25주년 기록을 보면서 가입 이후 경과한 기간과 활동 시간은 다를 수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재 활동을 시작하면서 짧은 기간 내 많은 책을 사들이고 읽고 써왔다. 알라딘의 긍정적 효과는 역시 '서재'와 '북플'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서재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만큼이나 읽고 쓸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다른 분들의 기록 글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도 책 읽는 분들이 많은 것인지(아이가 있는 학부모들이 많아 관련 책을 사시는 분들이 많은듯) 앞으로도 상위권에 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들어 소설을 많이 읽었더니 좋아하는 분야에 소설(한국소설 2위, 영미소설 5위)이 급부상했고 이동 시간이 늘어나면서 전자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이 작년과 다른 점이다. 



4월 중순 무렵부터 일이 바빠져 몸과 마음이 피로하여 읽고 쓰는 페이스를 잃어서 요즘은 스스로가 영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럼에도 상반기에 내가 무얼 읽었고 인상적인 책은 무엇이었는지 정리는 해야겠기에 결산을 해 보려고 한다.


분야로는 당연히 '역사'가 압도적이지만 근래 들어서는 '소설'을 꽤나 읽었던 것 같다. 이 중 얇은 책 시리즈는 하나로 묶어서 총 58권 읽었다. 그래도 초반에 많이 읽어뒀기에 가능한 숫자가 아닌가 싶다. 


이 중 기억에 남는 책들을 몇 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1945년 해방 직후사>는 해방 직후 1945년 한국 정치와 사회를 살펴봄으로써 현대 한국의 원형을 추적한다. 해방 후 조선은 탈식민, 탈제국, 탈계급 등 무수히 많은 과제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식민지 하의 근대를 과거와 제대로 된 결별을 하지 못한 상태에 제국의 탄압과 수탈, 교묘한 정책으로 계급 간의 갈등은 더 심화되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알려진 통념과 다른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8월 10일부터 15일 사이에 총독부가 종전 대책 수립을 위해 여운형과만 교섭을 한 게 아니고 여운형과 한민당계가 교섭을 진행했으며 해방 후 여운형과 한민당, 총독부 간에 건준의 방향성을 둘러싼 협의와 교섭이 긴밀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주한미군사령관 하지와 초반에 개인 정치고문으로 일했던 윌리엄스 소령이 미군정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면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의 공식 통역인 이묘묵, 조선총독부의 공식 영어 통역관 오다 야스마, 사상 전담 검사인 나가사키 유조 등은 여운형과 건준, 인공을 친일정권이자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했으며 한민당은 친미적이고 좋은 교육을 받은 민주주의자 애국자로 둔갑시켰다. 그러면서 미군정 하의 권력을 꿰차고 승승장구했다. 이와 비롯해 기존에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 알려진 한국 현대 통사와 근래에 나온 <애국의 계보학> 같은 책과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기존에 알려졌던 이희승, 김두봉 등의 국문학자들 말고 새롭게 김수경이라는 인물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김수경이라는 사람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살았는지, 그가 언어학자로서 어떤 성과물을 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가족사는 근현대 한국인이라면 풍문으로 들어보았을 법하다. 그래도 그는 철학을 전공하고 도쿄제대 문학부 대학원에 진학할 정도로 엘리트 지식인이었으며 북으로 넘어간 이후에는 현대 조선어(북한어)의 기틀을 마련한 학자였기에 그 끝이 그나마 나았던 게 아닌가 싶다. 김수경이 지향한 조선어학은 당시 세계적으로 트렌드였던 규범화, 구조화에 기반한 국제주의의 성격을 띠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물론 이후 김일성 유일체제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에 맞춰서 조선어도 변화의 흐름을 맞을 수 밖에 없었지만. 책의 배치가 단연코 눈에 띄는 부분은 개인사와 조선어의 역사를 교차하여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어의 역사가 문법 설명이 많아서 어려울 수 있는데 문법 이론에 관한 부분이 지루한 독자들을 위해 출판사 및 편집자가 이런 배치를 결정했을 것 같은데 현명했다 보인다.



<근대 용어의 탄생>은 근대 문명의 키워드가 된 ‘말’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business, constitution, democracy, president, project, revolution, university 등. 현대에도 사용되고 있는 이 말들의 기원이 되는 단어는 무엇이고, 이후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의미로 변화되었는지를 들여다본다. 지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게 읽었고 무엇보다 잘 읽히는 책이었다. 대부분의 말은 어원과 현재 쓰고 있는 의미가 달라진 경우가 많아서 어원과 현재의 의미가 같은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근대 용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어의 의미와 달라져 오류처럼 혼선을 주게 된 말들도 있다. 라틴어나 그리스 원어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또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기까지 과정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의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번역된 말이 아예 우리말처럼 현대에 굳어져 버린 말들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서양사정>, <평생공부가이드>, <개념어 해석> 등과 함께 읽어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은 청일전쟁을 좁은 시점이 아니라 확장해서 들여다볼 수 있게 도움을 준 책이었다. 청일전쟁의 장소가 주로 한반도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선인들의 피해와 목소리가 담긴 책은 드물었던 것 같다. 기존에 재야 사학사들을 중심으로 동학농민전쟁에 대해서는 중점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관련 책들이 나온 바 있으나 오히려 청일전쟁에 대해서는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한 단편적인 서술들만 지배적이어서 아쉬움이 많았다. 현대 중국과 일본 학자들이 청일전쟁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저자는 이런 기존 연구나 사료들을 바탕으로 최신 트렌드까지 확인하여 청일전쟁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잡아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전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고 개전 후 청과 일본이 전쟁에서 보인 모습이 각각 어떠했는지, 그 과정에서 일본 언론의 역할이 어떠했는지 주목하게 한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청일전쟁이 과연 진실에 가까운가 생각하면 회의적이라 느껴진다. 비록 많은 시간이 흘러 사료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런 책들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해지는 고마운 책이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중세와 근대의 산업 혁명 이전까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문명사에는 관심이 있지만 경제가 너무 재미 없어서 이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동안 미루고 읽지 못하고 있었다. 펀딩을 했으니 망정이지 안 했으면 아마 읽는 시기가 훨씬 뒤로 미뤄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막상 읽어 보니 거시적 흐름을 다루면서도 언급되는 내용은 실제 사례에 기반한 미시사적 내용이 많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재미로만 따지면 1권이 일상적 공간에서 다루는 소비물들이라 흥미로웠다. 2권은 유럽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흐름을 통해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론이 발표되기 이전 유럽은 정기시를 비롯한 시장, 신용 대출, 이자, 스톡 등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가 태동하여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3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도하는 지역별로 거시적인 경제사를 다룬다. 북부 이탈리아인 베네치아, 피렌체에서 안트베르펜, 제노바, 암스테르담 등 중북부 유럽으로 세계 경제 흐름이 바뀌어가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현대 중국의 탄생>은 청 제국부터 지금의 시진핑 시기까지 아주 넓은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시작이 16세기부터인 이유는 현대 중국의 기원을 청 제국부터 바라보기 때문이다. 최근의 범위까지 역사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근현대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입문서 떼고 전문적으로 들어갈 때 이만한 책이 없다 생각한다. 특히 과거의 민족주의나 반식민주의, 반제국주의적 흐름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도 아니고 신중국사적 흐름도 아닌 중립 지향적 기술이 돋보였다. 구체적으로는 19세기 중국이 쇠퇴했던 까닭을 비롯하여 20세기 혁명의 물결을 지나 현대의 중국이 발전해올 때까지 압축적인 역사를 확인해볼 수 있다. 아무래도 바로 옆에 있는 국가인데다가 최근 들어 북한과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정세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근현대 중국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필수라고 여겨진다. 최근에 <마오주의>를 읽었는데 이 책을 미리 읽어둔 덕분에 비교적 더 친숙하게 읽을 수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는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트에 들어 있는 책 중 가장 좋았던 책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랑한 이야기도 쓸 수 있다고?' 그래서인지 신선하고 놀라웠다. 앞서 읽은 '가난한 사람들'은 초기작인데도 불구하고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감성과 날카로운 시선 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면 백야는 결이 정말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물론 배경은 음울한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만). 주인공이 하는 행동 중 유일하게 나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산책을 하며 주변에 시선을 주는 것 정도? 주인공은 현실가라기보다는 이상가나 몽상가 쪽에 더 가까웠다. 소설을 보는 이유는 나와는 다른 캐릭터를 보는 묘미에 있는 것 같다. 뻬쩨르부르그의 골목의 구석구석을 누빈다는 느낌으로 읽고 있다가 주인공이 한 여인에 눈길을 준 뒤로는 그 마음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읽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성공률이 극히 희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꼽아 보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우리가 충분히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고 상황도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닌 우리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평범해서 진부함이 떨어질까봐 우려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 제도,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현대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주제를 교묘하게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된 체제를 강요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음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로 구성원 간에 갈등이 깊어져가고 있다. 물론 이를 깨부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으므로 희망적이라 할 수는 있는데 그나마 문학이 가진 힘이라면 조금씩 틀을 깨려는 노력이 아닐까. 보편화된 평범함이 아닌 다양한 색깔을 지닌 평범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김기태 작가가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들을 써서 내주기를 독자로서 바란다.  




시리즈 중 상반기에 끝내지 못한 책들은 '도스토옙스키 전집'과 '세계철학사'인데 하반기 안에는 꼭 읽는 것으로 해야겠다. 사실 작년 말 집안의 묵은 책들을 털어내자는 계획이었는데 이는 역시 과도한 계획이었던 것 같다. 일부 책을 정리했음에도 구입한 책들로 책장이 채워지고 있어서(그나마도 책장을 또 하나 더 샀음) 이제는 그냥 끌리는 대로 읽는 것이 답인가 싶기도 하다. 모쪼록 하반기에는 덜 바빠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면 하지만 함부로 예단할 수 없겠지. 

참! 영어와 중국어 책을 계속 읽어나가고 있는 것이(영어는 함달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크다)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중국어는 자주 나오는 일상 속 단어들이 들릴 정도가 되었으나 여전히 읽는 것은 답보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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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7-04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슨 상반기 책 목록이 일케 웅장합니까!!! 화가님 스케일 짱짱 🤪

거리의화가 2024-07-08 13:53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아무래도 역사책 위주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하반기에는 좀 더 열심히 읽어보는 것으로. 쟝 님도 응원합니다!

단발머리 2024-07-04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세 권짜리인가봐요. 전 ‘읽고 싶어요‘만 표시해두었는데, 거리의화가님이 흥미롭다고 하시니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네요.
너무 멋진 상반기 목록이에요!! 거기에 영어와 중국어까지~~ 거리의화가님만 하루에 48시간인 건가요?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4-07-08 13:59   좋아요 0 | URL
네 단발머리 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중세 이후 근대까지 경제사에서 빠짐없이 거론되는 책이라서 도움이 되실 겁니다.
영어, 중국어는 이동 시간에 조금씩 하고 있어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늘텐데 그러기는 체력이 안되고 이렇게라도 해야 현상유지다 싶어 조금이라도 하자 생각하며 자족을 하고 있습니다!ㅎㅎ 저는 집을 팽개친 나이롱 주부라 가능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07-05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멋진 기록이네요!! 바빠서 많이 못 읽으셨다 해도 목록이 충실한 것 같아요^^ 열린책들 세트 완독 축하드립니다 ㅎㅎ 저 세트 예쁘고 좋았어요. 함달달도 파이팅~!

거리의화가 2024-07-08 14:00   좋아요 0 | URL
괭 님 감사합니다. 저런 기획 세트 알차고 좋은 것 같아요. 얇아서 부담 없어서 한 권을 하루에 읽는 것이 가능해 좋더군요. 함달달 반 정도 읽었는데 이번 책은 아직 감이 안 오네요ㅠㅠ 뒷부분으로 가면 좀 더 재밌으려나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