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중요한 것은 ‘첫 대화‘를 무사히 마치는 일이다.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서로의 거리를 때에 따라서는 몇 년씩이나 당겨주는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꼬마들에게 던지는 첫마디는 반드시 대답을 구하는, 그리고 대답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얘, 너 이름이 뭐냐?"라는 첫마디를 던진다면 그들로서는 우선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는 불쾌감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뱅글뱅글 돌아가기만 할 뿐 결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 P33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싹처럼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동트는 새아침 태양보다 빛나게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여기서 ‘주먹 쥐고‘라는 것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추궁을 받았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준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끈질긴심문이었다.
내가 겪은 최대의 곤혹은 이번의 전 수사과정과 판결에 일관되고 있는 이러한 억지와 견강부회였다. 이러한 사례를 나는 법리해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 그 자체의 가공할 일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특정한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복재(伏在)하고 있는 것이다. - P51

강렬한 힘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이다. 개인의 생명이든 집단의생명이든 스스로를 지키고 지탱하는 힘은 자신의 내부에, 여러 가지의 형태로, 곳곳에 있으며 때때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 P55

불모의 영토마다 자리 잡고 있는 과거라는 이름의 숲은 실상없이 목마른 것입니다. 그늘도, 샘물도, 기대앉을 따뜻한 바위도없습니다. 머물 수 있는 곳이 못 됩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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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총서 기초연구시리즈 16
박훈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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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접근할 때 대중서를 통한 입문을 하고 이후 사건의 배경과 주변 환경을 확인하기 위해서 학술서를 읽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통해서 사무라이가 사화가 되어가는 과정과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확산되었는지, 나아가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어떻게 메이지 유신과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문제 의식은 근대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근대가 동아시아가 도달해야 할 역사의 종착 단계로 상정해 놓는 것에 문제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기준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도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기준과 잣대로 바라보는 것을 가능한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내용과 성격은 어떤 것인가.

- 유교적 소양을 갖춘 사대부들이 군주와 함께 자신들을 천하공치의 담당자로 자부하여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거나 발언한다. 이들을 공정히 등용하는 제도가 과거제이며, 이들이 정치발언을 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은 상서, 강학이다. 

- 군신 관계는 기본적으로 군신의합으로 신하는 군주에 맹목적인 충성이 아닌 의의 실현을 위해 군주를 적극 보좌 계도하고 견제한다. 

- 사대부들은 정치 주장을 펼 주요 수단으로 간언, 상서, 학교에서의 강학을 이용한다. 상서를 통한 정치 주장에는 학문적 실력이 중요하므로 공론의 반영이라는 자기 정당화를 통해 정치적 파괴력을 가졌다. 이 공론정치는 여론정치로서의 성격이 강했고 상서는 그것을 반영했던 것이다.

- 사대부는 생득적 지위가 아니라 배워서 습득에 따라 주어지는 지위이니만큼 학문을 매개로 관계, 네트워크, 조직을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 학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복수의 정치세력(당파)이 지속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붕당정치다. 그들 간의 정치 투쟁이 당쟁이다. 

- 붕당정치는 보다 많은 수의 사회구성원을 정치에 참가시키고, 정치의제를 상호 견제와 경쟁 속에 공개화시킨다는 점에서 정치 과정의 공공적 성격을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복수당파의 평화적 공존을 만들지 못한 탓에 이 경쟁은 과열되어 당쟁으로 발전했고 집권 후 폭력적 보복이라는 악습으로 이어졌다. 

- 사대부적 정치문화가 치열한 권력투쟁, 대외위기 등을 만났을 때, 사의 급속한 확산이 이루어진다. 

-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이상은 군주친정이며 기형적 권력구조에 맞춰 사대부적 정치문화를 회복하려는 권력투쟁에서 군주친정이 중요 명분이 되었다.

- 군주친정을 위해서 군주가 현군이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군주는 학문 연마가 강조된다. 


막말 유학을 배우고 학습의 장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갖게 된 일반 사무라이들은 정치문제에 대한 발언과 정치투쟁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사무라이의 사화(士化)가 진행된 것이다.

이를 미토번, 에치젠번, 구마모토번, 사쓰마번 사례에 의거하여 막말 정치사를 검토하고 있다. 


1부는 사무라이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학적 네트워크'를 번교, 사숙, 학습회 등을 통해 살피고, 이것이 정치화되어 '학당'으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부는 일반 사무라이들이 토의와 회의, 상서 봉서라는 방식을 통해 정치활동에 뛰어드는 양상을 보여주고, 정치 감각이 확산되어 가는 와중에 그들 사이에 정치 투쟁이 일반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사대부적 정치문화의 등장인 것이다.

3부는 군주가 친정을 함으로써 강한 신분제에 예속되어 있던 권력 구도를 상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다양한 신분의 명칭과 인물들이 등장하고, 한문을 비롯한 문어체 문장들로 어려울 수 있으므로 입문서가 아니다. 하지만 일본 근세 이후의 역사적 지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배경적 지식을 전달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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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2-27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독특한 시각이네요. 솔직히 잘 공감이 안가는데 특히 사대부들의 정치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교적 명분론이죠. 이게 극한까지 가는게 예송논쟁이고요.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그런 정도까지 갔을지도 의문이고, 3부의 군주의 친정에 대해서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사회를 군주의 친정이라고 할 수 있나 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책을 안 읽고 드는 생각이긴 하지만 좀 무리가 있는 연결이 아닌가 싶어서요. ^^;;

거리의화가 2022-02-27 08:43   좋아요 0 | URL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사무라이 사회에서 사대부적 정치문화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18세기 말 이후에 사무라이 관련 사료를 찾아보면(˝학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 유학의 영향이 두드러진 것이었다면서 신분제 사회 속에서 수백년 간 전쟁이 없었던 배경 속에 유학이 파고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물론 학교가 증가하면서 학적 네트워크가 생기고 학당 간에 갈등이 생기기는 했지만 조선의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학적 네트워크는 조선의 학파보다는 덜 배타적이면서 서로 은연 중에 스며드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죠. 학파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학적 네트워크라는 말을 쓴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쿠가와 시대 중기 이후에 번주는 일반 정사에 잘 개입하지 않고 다른 다이묘들과 교제를 하거나 의례적인 활동이 주로 하는 일이었는데 18세기 말부터는 달라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치 참여를 원한 일반 사무라이들이 번주의 정치개입을 촉구했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무라이들에게 권력 확보 실현을 위한 한 방편이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 같습니다.
첨언하자면 일본의 유학에 대한 열망과 요구가 조선이나 명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분명 일본의 정치사회 및 사무라이와 조선, 명의 정치사회 및 사대부 사이에는 여전히 급 차이가 있었다고. 일본 사회는 막부 말기까지 어쨌든 막번체제였고 지배층도 사무라이로의 정체성을 유지했으니까요. 문을 학습한다고 해서 무를 경시한 것은 아닐겁니다. 무는 여전히 그들에게 중요했습니다. 또 유학이 내면화한 것까지는 아니고 경세학의 용도로서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어쨌든 사대부적 정치문화는 신흥세력이었고 도전자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후기 유학이 확산되면서 군주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중하급 무사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해지자 군주친정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화되었다. 가로합의체제하에서는 번 내 몇 개의 최고가문들이 번정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 가신이 이에 끼어들여지는 적었다. 그러나 이들이 일단 정치에 뛰어들게 되자 가로합의체제는 큰 벽이 되었다. 이 벽을 허물 유일한 방법은 군주의 정치적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군주의정치적 활성화, 군주친정이 필요했다. - P305

번주친정은 번 권력기구, 일반 번사 대중, 나아가 일부 영민에까지 번주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켰고, 그에 따라 번주에게 의거하지 않고서는 번의 정치력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워졌던 것이다. - P332

미토번은 막말기에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취임하고부터 전국의 주목을 받는 정국의 중심적인 번으로 변모하게 된다. 나리아키와 후기미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미토번사들은 외침의 위기를 강조하고 그를막기 위한 대개혁[尊王壤夷論]을 막부에 집요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막부와 미토번은 막말기에 항상적인 갈등 관계에 빠지게 된다. 미토번은 자신들이 막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대개혁만이 막부를 살리는 길이라는 논리를 폈지만 결과적으로 미토번의 막부 비판은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막부의 종말로 이어졌다. - P341

덴포기(天保期)의 나리아키는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유지하여 번의 분열을 회피하는 데 진력했다. 때로는 후지타파의 과격한 공격으로부터 집정 등 문벌파를 변호하여 후지타파의 급진적 주장과 대립했다. 이와 같은 나리아키의 온건한 태도는 후지타파의 불만을 샀지만, 나리아키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권력기반이 취약했던 나리아키에게는 서로 친인척의 끈으로 묶여 있어 굳건한 결속을 과시하고 있던 문벌파를 적으로 돌려서는 자신의 권력 유지가 어렵고, 번 내 갈등도 심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치가로서 나리아키는 이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에 불만을 느낀 도코를 비롯한 후지타파의 압력에 대해 나리아키는 항상 그들을 위무하고 견제하여 과격화를 경계했던 것이다. - P358

1844년의 실각 이후 나리아키는 문벌파, 특히그가 총애했던 유키 도라쥬의 배신에 적개심을 불태워, 그 이전에 보여 주었던 균형 잡힌 번 내 세력 안배 조치와는 달리, 문벌파와 삼연지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 노선을 취했다. 나리아키의 이러한 태도는 문벌파로 하여금 어린 신번주 요시아쓰 주위에 집결케 해, 미토번은 전 번주와 현 번주의 부자간 권력투쟁이라는 양상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일시적인 정쟁에 그치지 않고, 자칫하면 장기적인 당쟁으로 비화할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가장 경계했던 것이 도코였다. 그는 ‘갑진국난’을 교훈으로 삼아 나리아키에게 문벌파 삼연지 신번주 요시아쓰와 융화할 것을 촉구하고, 번 내 과격파에 대해서도 삼연지와 번 정부 유사에 대한 맹목적 비판을 자제하도록 호소했다. 그러나 나리아키는 도코의 간언과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미토번은 막말 정치사상 가장 처절한 내란으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 P370

요시노부는 조정을 개국론으로 전환시키려는 에치젠번의 입장과는 정반대로, 조정의 쇄국양이 방침에 영합하여 정권 반환의여론을 억누르고 막부에의 정권 위임을 재확인받으려고 했다. 이에 요시나가는 정사총재직 사임과 귀번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사임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막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요시나가는 3월 21일 조정과 막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교토를 떠나버렸다. 번주의 무단귀번(無斷歸藩)에 번사들은 크게 동요했다. - P382

에치젠번의 거번상락 구상은 두 가지 요점에 집중되어있었다. 첫째,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일단 교토의 치안을 확보한 후각국 공사를 불러들여 쇼군·관백을 비롯 조막· 제 웅번(諸雄藩)의 열석하에 대회의를 개최하여 당면한 내외의 분규하는 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고 했다.
둘째, 현재의 막부독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의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거번상락의 주된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P400

거번상락이 좌절하게 된 것은 그 계획의 급진성에 대한 요시나가의 경계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번 내의 붕당적립 관계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었고, 군주인 요시나가가 그중 한쪽을강하게 편드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당파 대립을 굳이 붕당적 대립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 당파 간의 대립을 낳은 주요 배경 가운데 학문적 요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기때문이다. 나카네 유키에는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의 문하로 에치젠번 내 히라타학(平田學)의 일인자였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요시나가도 분큐기에는 히라타학에 심취하고 있었다. 한편 요코이 쇼난은 주자학자였고, 혼다 히다 마쓰다이라 슈메 등은 모두 요시다 도코의 문하로 야마자키파이며 주자학을 신봉하고 있었다. 이런 학문적 배경의 차이가 붕당적 대립 관계를 더욱 심화시켰던 요인 중의 하나였던 것은 아닐까. - P412

도쿠가와 시기의 봉건 · 군현론은 표면적으로는 봉건제의 일본 사회를 찬미하면서도 실상은 봉건과 군현제를 상당 부분 절충시킨 것이었으며, 봉건과 군현이 대립물로 인식된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막말유신기의 군현제 실시론이 결국 봉건제에 군현지의(郡縣之意)를 깃들게 하는 것(寓郡縣之意於封建之中)으로부터 군현제에 봉건지의(封建之意)를 깃들게 하는 것(寓封建之意於郡縣之中)으로의 전환이었다면, 도쿠가와 시기의 봉건 · 군현론은 이것과 근본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P429

막말기의 도막파와 좌막파의 대립에서, 정권의 소재[막부를 유지할 것인가, 왕정복고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다퉜으나 정체에 관해서는 봉건제 유지가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고 할수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봉건제는 700여 년간 장구하게 이어져 왔고, 또 에도시대 내내 봉건제에 대한 호의적 담론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그 지속에 대해 새삼 문제의식을 갖지않았다는 점, 둘째는 일부가 장래 군현제 도입을 생각했더라도, 그것이중국에서처럼 단순히 중앙집권-지방분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다이묘가와 사무라이 신분 자체의 해체와 관련 있는 문제이므로 도막파, 좌막파를 막론하고 치열한 정쟁 속에서 대다수 사무라이의 호응을 얻기힘든 이 노선을 취기는 어려웠으리라는 가능성이다. - P435

왕정복고 직후에는 ‘봉건의 제에 군현의 의를 우하게’ 하는 국가 구상이 지배적이었다면 판적봉환을 거치면서 ‘군현의 제에 봉건의 의를 우하게 하는’ 것으로 서서히 변화해 갔다. - P443

군현제 실시는 애초에는 신분제 폐지와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으로 경계되었지만, 세상은 ‘조진의 악폐’에 대한 우려를 뒤로 하고 소라이가 경계했던 ‘입신출세’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고, 군현제는 ‘입신출세’의 제도로 수용되어 갔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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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정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재정과 국방 문제라는 국내외의위기가 감지되었을 때, 그 해결책으로서 일본인들이 주창한 주요한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언로통개(言路洞開)였다. 즉 정부는 사회적 지위나 권력의 고하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있는 자의 정치적 의견 표명을허용, 권장하고, 이에 기반을 둔 정치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언로통개의 주장은 19세기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해, 점점 어떤 정치세력도 그 정당성만은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갔다.
언로통개가 정당성을 갖게 되자 그것은 상서, 회의라는 형태로 정치현장에서 실현되었다. 상서의 활성화로 번 정부는 여론의 동향에 주의하기 시작하고, 관계된 몇몇 역인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던 관습은 수정되어, 정책을 둘러싼 토론이 행해지는 ‘회의‘가 정책 결정의 기구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 P186

‘토의정치‘의 형성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미디어나 토의 공간의 존재가 불가결하다. 이 시기 ‘토의정치‘의 형성을 뒷받침하는 미디어로서는 봉서(封書), 상서 등을 들 수 있겠고, 토의 공간으로서는 정부 내 회의, 어전회의 같은 회의 공간이나 번교, 사숙, 향교 등학교 기관, 그리고 종교 기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이 봉서, 상서 등의 미디어와 사숙, 향교, 사·사(社·祠)라는 토의실행 · 여론 형성의 장(場)이다. - P221

미토번 남상운동은 앞서 살펴본 구마모토번과 사쓰마번의 경우와비교할 때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었다는 점, 죠카마치의 번교, 사숙뿐아니라 지방의 향교가 큰 기반이 되었다는 점, 따라서 번사 이외의 상층 민중이 학적 네트워크‘에 포섭되고 정치화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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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에는 설 연휴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빨리 흘러간 것 같다.

오늘은 올해 처음으로 연차를 내고 쉬었다.

요리는 전혀 못해서 청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한다.

주중에는 이마저도 하기 어려워서 주말이나 쉬는 날을 이용하기에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만...

빨래 돌리고 널고 청소기 돌리고 등등 뭐 하다보면 시간을 은근 잡아먹는다. 

오늘도 그랬는데 낮에는 책을 여유롭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 달은 직장인들의 보너스인 연말정산이 나오기에 기분이 좋다. 토해내지만 않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돌려받는 금액이 좀 되었다.



#2

2월의 마지막 주문을 끝냈다. 굵직한 책들이 많아서 당분간 책을 안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막상 또 3월이 되면 주섬주섬 담겠지.

장바구니에 꾹 담겨져 있던 책들을 털어내고 받아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근데 그만큼 읽어야 할텐데-_-;







#3

오늘은 신문을 보다 찜한 책들이 많다.


1) 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대의 최신작 소설로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이를 피해 칠레로 간 한 가족이 그곳에서 정착하면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긴 여정을 그렸다. 주인공은 빅토르 페이인데 실존인물로 피란길에 파블로 네루다와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이는 또 칠레 정치 격랑에 휩쓸리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기대가 된다.


2) 일상적 국민주의


얼마 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으로 인한 반중 이슈로 떠들썩했다. 자국민 중심 정책과 외국인 혐오 정서가 강해지면서 이것이 민족주의와 국민주의적 모습으로 강화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 일상화되면서 너무 당연시되어간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극우파들에게 그런 모습들이 보였지만 이제는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스며드는 모습이다.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국민주의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3) 낯선 삼일운동


얼마 후면 삼일절인데 그에 맞춰 역비에서 신간이 나왔다. 저자는 그동안 삼일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이 대부분 엘리트에 치중되어 있어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삼일운동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야말로 민중들의 일화를 세세히 다룬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민중 속으로 들어간 삼일운동을 다룬다고 보면 되겠다. 제목부터 커버까지 눈길을 사로잡는다.



4) 한 세대 안에 기후위기 끝내기


환경운동가인 저자 폴 호컨의 최신작으로 전작에 대해 워낙 호평들이 많았기에 이번 책도 기대가 된다. 제목이 구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분야별로 축적된 기후 변화 지식을 통합적으로 조망하여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되살리기(Regeneration) 방법을 내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과 건강 회복을 위한 실천 방법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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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25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연차내시고 맘껏 쉬기
신간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책값에 놀라고 택배 지연 될까봐 조마 조마 😊
낯선 삼일운동 👆찜^^

거리의화가 2022-02-26 07:54   좋아요 2 | URL
ㅎㅎ 책값 좀 썼네요^^; 이렇게 20만원에 육박하게 산 적은 오랜만입니다. 열심히 읽는수밖에요. 스콧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mini74 2022-02-26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말정산 돌려받음 은근히 기분좋죠. 책들이 다 넘 좋아보입니다. 저도 찜 해둔 책도 있고. 화가님 편한 주말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2-02-26 20:12   좋아요 1 | URL
비싼 값을 치뤘으나 값어치를 하는 책 같아요. 책 배송기사가 무겁다고 욕할듯^^; 날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텁텁하지만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다락방 2022-02-26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 사셨군요! 저도 다음 지름에는 우크라이나 넣을 예정이에요. 오늘 서점에 가서 시사주간지 살펴봤거든요. 우크라이나에 대해 다룬게 있다면 사려고 했는데 보이질 않더라고요. 아마도 다음주쯤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사가 주간지에 실리지 않을까 싶어요. 시사인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성괴물 너무나 기대되죠? 진짜 이 책 재미있을 거예요. 3월에도 함께 읽어요,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2-02-26 20:11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우크라이나 역사 꼭 읽어봐야겠다는 절박감이 생겼거든요.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그 기원을 꼭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 우크라이나 다룬 잡지들은 많이 없을 거에요. 오히려 외국 뉴스들에서는 메인으로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CNN, NYT, BBC news.
그리고 저... 여성주의 책 읽고 있는데 계속 리뷰쓰는 게 어려워서 못하고 있네요. 어쨌든 계속 읽으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은 드는데 뭔가 말로 표현이 잘 안되서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다음달부터는 하다 못해 100자평이라도 써보려고 해보려구요. 이끌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달에도 열심히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