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 7개의 도시
발레리 한센 지음, 류형식 옮김 / 소와당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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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조금씩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기나 한서를 통해 중국 한나라 시기와 교류한 다양한 나라들(대표적으로 흉노)의 이름을 눈으로 익혔다. 수-당과 경쟁했던 돌궐의 역사도 보았다. 몽골의 역사는 안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청을 제외하면 비교적 익숙한 것 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초원길로 잘 알려진 실크로드의 범위에 있던 7개의 대표 도시의 역사를 다룬다. 내부에서 바라본 역사이기 때문에 미시사를 다룬다고 할 수 있겠다. 미시사는 이야기들 자체가 흥밋거리가 되는 경우이므로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길을 걸으며 산책하듯 도시를 누빈다는 생각으로 저자인 가이드의 시선에 따라 도시를 탐방하면 되겠다.

실크로드의 "로드(길)"는 "길"이 아니라 사실은 이동의 범위였고, 거대한 사막과 산맥을 가로지르는 이정표 없는 발자취들이었다. "실크(비단)"는 "로드(길)" 못지 않은 오해를 담고 있다. 비단은 실크로드의 여러 무역 상품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P21).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1877년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 남작이 "실크로드"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그는 1868년부터 1872년까지 중국에서 석탄 매장지와 항구를 조사했던 유명한 지리학자였고, 5권짜리 지도책을 썼다. 거기서 처음으로 실크로드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P22).

실크로드의 "실크"와 "로드", "실크로드"라는 명칭에 대한 정의와 기원은 다음과 같다. 리히트호펜이 만들어낸 실크로드라는 용어는 점점 퍼져나가다 중앙아시아 탐험 관련 책이 번역되어 출간된(The Silk Road, 1936) 이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산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생각보다 실크로드라는 용어를 사용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실크로드의 역사책이 유물을 기반으로 설명한 것이 많은데 이 책은 고문서를 바탕으로 했다. 7개의 도시는 니아/누란, 쿠차, 투르판, 사마르칸트, 장안, 돈황, 호탄이며 역사의 범위는 2~3세기에서 11세기 초까지 다룬다. 11세기 초로 범위가 설정된 이유는 발굴된 고문서들의 하한 연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2~3세기 중국과 서양의 문화가 처음 만나기 시작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실크로드 유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니아, 쿠차, 투르판, 돈황, 호탄은 중국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 장안은 옛 당나라의 수도로 중국 중부 섬서성에 있던 곳이다. 무역은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 간의 광범위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로 중앙아시아를 거쳐갔다. 이 때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나 비단을 직조하는 기술이 중국에서 서쪽으로 전해지고, 유리를 만드는 기술이 중국으로 전해졌다.

니아와 누란은 간다라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그들은 카로슈티 문자와 목판에 글을 새기는 기술을 현지인들에게 전했고 불교를 전파했다.
오아시스인 쿠차의 주민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들이었는데 쿠마라지바(344-413)는 산스크리트어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최초로 번역하여 중국에 불교가 널리 확산되는데 도움을 주었다. 쿠마라지바가 얼마나 유명한지 대표적인 유적지인 키질 석굴에는 그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상을 만날 수가 있다.
투르판은 중국 지역과 이란 지역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했던 도시다. 오늘날에도 화려한 국제도시의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한다. 투르판과 관련해서는 현장 법사의 서역 원정기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제자 혜립에 의해 그의 여정기가 마치 무용담처럼 전해지는데 사실로 다 믿기는 어려우나 이런 목숨을 건 여정들이 많았겠구나 생각해보게 된다. 투르판 주민들은 5~6세기 다른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동전을 사용하는 동안 은화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서쪽의 이란과 많은 교역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투르판은 매우 건조하여 상대적으로 유적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한다(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상인인 소그드인이 주로 활동하던 도시였다. 그들은 이란계 민족으로 실크로드 무역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 문헌상으로는 그들의 특성이 야비하고 남을 잘 속이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는데(아이가 성장해서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고 손에 들어온 돈은 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 그들은 무역에 능하여 이익을 좋아한다.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역시 이는 상행위를 그만큼 잘했다는 방증일 것 같다. 소그드인은 소그드어라는 중세이란어를 사용했고 국제적인 교류가 있었던 당나라 시기에는 그쪽으로 많이 이주하기도 했다.
장안은 10개 왕조의 수도였다. 그 중 7개의 왕조는 통치 기간이 짧아 금방 왔다 사라졌지만 3개의 왕조는 통일된 왕조인 전한, 수, 당이었다. 장안은 정치의 중심일 뿐 아니라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고 서역으로 떠나기 위한 출발지이기도 했다. 도시는 109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으며 엄격한 시간에 따라 통행이 이루어졌다. 시장 중 동시(東市)는 국산품, 서시(西市)는 수입품에 특화되어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자신의 종교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 당시 장안에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6곳,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교회 1곳이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는 당나라 건축물이라고는 두 개의 전탑인 대안탑과 소안탑 뿐이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돈황은 기원후 천년 동안 중요 군사 주둔지이자 불교 순례지, 무역 거점도시의 역할을 했다. 저자 왈 실크로드 유적지 한 곳만 가야 한다면 무조건 돈황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바위 절벽을 파내어 만든 석굴들이 500여 동이 있고 거기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또 도서관인 장경동 석굴도 만날 수 있다. 석굴 자료는 8세기 중반 이전은 중원에서 온 텍스트이고 이후는 돈황 인근에서 생산된 텍스트인데 이 때 학생들이 필사한 자료들이 많이 기록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짐작하겠지만 돈황은 현존하는 실크로드 자료들이 가장 많이 배출된 곳이다. 하지만 이 많은 유적과 유물을 발견한 사람의 행위는 협잡꾼이자 도굴꾼과 다를 바가 없어 마음이 찜찜했다. 아쉽게도 돈황의 석굴이 많은 관광객들의 유입으로 최근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관광객도 적당히 받는다고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기후 변화가 더해져 그 훼손도가 가속화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호탄은 1006년 이전까지는 불교 왕국이었다가 이슬람이 정복하면서 완전히 성격이 바뀐 도시이다. 호탄 주민들은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며 자국어인 호탄어를 사용하지 않고 위구르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순례객들이 많아서 방문객들은 이곳을 "성지"라고 부른다.

실크로드는 인류 역사상 교통량이 가장 적었던 길이다. 일정 시기에 운송된 물량, 교통 빈도, 혹은 여행객의 수를 의미 있는 기준으로 본다면 연구할 가치가 별로 없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역사를 바꾸었다. 대체로 실크로드의 일부 혹은 전체를 힘겹게 건넸던 사람들이 외래종의 씨앗을 심듯이 자신의 문화의 씨앗을 먼 지역으로 옮겨와 심었기 때문이다. ... 여러 갈래 길의 네트워크는 지구상 가장 유명한 문화의 혈맥이었다.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종교, 예술, 언어, 신기술이 교환되었기 때문이다(P403).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러나 한때 다양한 문화를 포용했던 한 세계의 유물을 보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다(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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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의 제국 산책자 에쎄 시리즈 1
롤랑 바르트 지음, 김주환.한은경 옮김, 정화열 해설 / 산책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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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텍스트는 이미지를 '주해'하지 않으며, 이미지가 텍스트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각각이 일종의 시각적 불확실성의 시초이며, 선에서 깨달음이라 일컫는 의미의 상실과도 비슷하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서로 엇갈리면서 몸, 얼굴, 글쓰기라는 기표를 확실하게 순환시키고 교환하며 그 안에서 기호의 퇴각을 읽으려 한다.


얼마 전 오디오 매거진을 듣다가 알게 된 책이다. 소개하기를 얇은 에세이로 여행지에서 읽기에 적합하다 하는게 아닌가. 반신반의하며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해놓고는 잊고 있다가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고 '앗!' 했다. 요즘은 이렇게 도서관에 책을 신청해놓고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제는 도서관에 신청할 때도 무엇 때문에 신청했는지 책 이름과 함께 기록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저자는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로 '현대 비평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라지만 나는 철학자들과는 거리가 먼데다 심지어 현대 철학자는 더욱 잘 모르기 때문에 저자에 대한 정보는 없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은 바르트가 일본 문화를 경험하고 엮은 글을 모은 에세이이다. 모를 때에는 무턱대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겠지, 에세이는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를 때 더 신선할지도 몰라 주문을 외우면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바르트의 글을 읽고 해석하기에는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글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드러나는 문장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좋았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문장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그 나름대로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지식이나 주체를 동요하게 만드는 강력한 지진과도 같다. 그것은 말의 텅 빈 상태를 만들어낸다. 말의 텅 빈 상태에서 나의 글쓰기가 이루어진다. - P13~14

나는 글을 쓰면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책을 읽는 행위와는 별개로 쓰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하는 중 불현듯 수면 아래 잠자던 생각이 튀어오르기도 한다. 깨달음이 주체를 움직이는 강력한 지진 같다는 말에 동감했다. 그리고 그럴 때 말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도 인식하지 못한 채 사회에 대해 논의한다고 떠드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은 늑대의 목구멍 속에 편안하게 들어앉아 늑대를 죽이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상력에 기반을 두어 탈선적인 문법을 연습한다면 적어도 우리말의 이데올로기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유리한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 P18

언어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어는 서양에서 가져온 근대의 번역어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근대어의 기원에 대한 책을 최근 읽는 중이어서 이 문장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대부분이 외부에서 가져온 것들인데 과연 제대로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곱씹게 되었다.

일본 문화에 대해서 여러 편의 글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알 듯 말 듯 모호한 표현들이 '적당히 넘어가자.'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어쨌든 변명같지만.

그 중 기억나는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텅 빈 중심, (반듯한) 공간, 공손한 인사(절), 하이쿠, 가부키다.

하이쿠, 가부키는 일본 문화 예술에 지금도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하이쿠는 과도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가벼우면서도 단순하고 평범해져도 되기에 오히려 대중들에게 계속 호응을 받으며 양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의미로부터의 면제'다. 무언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의 강박으로부터의 탈피다.
가부키는 일본 여행을 갔을 때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일본극예술 하면 가부키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가부키는 오늘날에도 흰 얼굴로 대표되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미지로 덧씌어져 내면이 드러나보이지 않는다. (반듯한) 공간이란 대표적으로 일본 정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정갈해서 뭐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느낌의 정원이다. 과거 일본식 모래 정원을 보았을 때 관리하시는 분이 주변에 있어 모래를 항상 모양대로 관리하는 것을 보았다. 한국의 정원과 여러 모로 다른 형식이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지금 말하는 도시에는 중요한 역설이 있다. 이 도시는 중심부가 있지만 그 중심부는 텅 비어 있다. 이 도시 전체는 금지된 중립의 공간을 빙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나뭇잎 뒤에 숨겨져 해자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천황이 사는 곳이다. 매일 총알처럼 빠르게 정력적으로 달리는 택시들도 이 원형의 공간은 피해가며,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한 형태인 낮은 용마루 장식은 신성한 '무'를 숨기고 있다. - P46~47

'텅빈 중심'이란 말 그대로 중심은 중립을 지향하는 듯(?)처럼 보이는 천황이 사는 곳이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공간은 다른 공기와 구조로 돌아가는 도쿄를 말하는 것이다. 천황은 일본의 근대 이후 상징성을 지닌 존재가 되어 중요한 정치적, 군사적 순간마다 '나는 관련 없어요.' 하지만 과연 그 어떤 의제들에서도 그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라는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나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인사는 진정 어느 누구에게도 인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굴욕이나 허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두 개인의 제국 간의 사려 깊고 겸손하며 신중한 의사소통의 기호가 아니다. 중단되거나 얽매이지도 깊이가 있지도 않은 형태들의 그물망의 특질일 뿐이다. 누가 누구에게 인사하는가?라는 질문만이 인사를 정당화해서 인사를 절로, 절로 만든다. 이로써 의미보다 의미의 그림이 영광스러워진다. 또한 이 질문은 우리에게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 자세에 신중성을 부여하는데, 이 자세는 모든 기의가 놀랄 정도로 텅 비어있는 몸짓이다. - P89

지금까지 만나본 일본인들은 모두 인사를 지나칠 정도로 한다는 느낌이었다. 인사를 잘하는 게 무슨 문제가 되냐 친절하면 좋은 것 아니냐 할 수 있는데 나로서는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던 것이다. 과도한 몸짓 같아서 이것이 그저 형식이 아닌가 할 때가 많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몸에 밴 습관처럼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르트의 말에 의하면 인사를 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은 자유로워지는 것인가보다 생각하니 그제야 수긍이 갔다.


나는 바르트가 일본을 경험하면서 적은 글들 중 아래의 글이 결국 바르트가 말하고 싶어하는 메시지와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었고 나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이 도시를 횡단하는 것은 일본의 제일 꼭대기에서부터 저 밑바닥까지를 여행하는 것이며 또한 일본의 얼굴에 대한 글쓰기를 그 지형학에 포개놓는 일이기도 하다. 각 구역의 이름은 저마다의 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원시부족만큼이나 개성적인 인구를 가진 마을과 밀림지방 같은 대도시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기표로서의 이름은 한낱 기념품이라기보다 생생한 회상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곳의 소리는 역사의 소리다. -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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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20 2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면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는데 동의해요. 헝크러져 생각이 정리되지 않다가도 글을 쓰다보면 그 생각이 정리가 되어지는 신기한 경험요. ㅎㅎ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화가님 말은 절대공감이 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8-21 09:19   좋아요 0 | URL
바르트의 말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한 1/3쯤 이해한 느낌?
글쓰기가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주 써야 제 널려진 생각들도 정리될 기회가 늘겠죠^^

그레이스 2023-08-21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르트 읽으셨어요? 와~

거리의화가 2023-08-21 21:42   좋아요 1 | URL
읽기만요^^; 본문에도 적어놓았지만 이해는...ㅎㅎ 책의 내용은 얇은데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더 읽어보는 것으로 해야할 것 같네요.

건수하 2023-09-14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래시> 때문에 오디오 매거진 다시 듣다가 이 책 가볍게 읽힌다 하셔서 찾아봤더니 화가님 리뷰가 딱 있네요.
이해는 어렵다 하시니 그럼 다시 잊어버려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9-14 11:26   좋아요 0 | URL
정희진 선생님이어서 쉬운 게 아니셨을까 싶은 생각도ㅎㅎㅎ 일본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이런 비평 에세이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 서양 학술용어 번역과 근대어의 탄생
야마모토 다카미쓰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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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술용어나 학문 분야에 해당하는 말의 기원을 엿본다. ‘백학연환‘을 통해 학술의 전체상을 파악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문을 대하는 방법 등 실용적인 지침까지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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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43호 - 2023.여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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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핵심 주제는 ‘인권’이다. 배경은 지난 3월 6일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국내 재단을 통한 배상인 ’제3자 변제‘ 방안의 발표다. 윤석열 정부의 용단(!)에 미일은 환영했지만, 국내 사정은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계는 반대 성명을 쏟아냈지만 정부의 태도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이슈 뿐 아니라 한미일 동맹의 움직임은 이미 강화되고 있고 중국이나 북한, 소련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 그 배경에는 물론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가장 크지만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의 외교 분위기를 보면 마치 냉전의 회귀 같은 분위기다(실제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지금의 한미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굴욕 외교라는 오명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체결이었고 그 역사는 지금도 재현중이라는 게 뼈아프다.

<특집> 코너에서는 과거 인권의 역사를 다시 확인한다. 과거 연합국의 전범재판을 통해 바라본 인권과 냉전기 재일조선인들의 인권, 196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의 인권, 국제엠네스티 인권운동과 한국의 초국가적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을 다루었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 1960년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여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 국제적 노동 표준과 현실간의 괴리 탓으로 국제엠네스티를 통한 인권운동이 제대로 된 동력을 얻지 못한 사실이 인상깊었다.

경영관리 기술원조를 제공하고 인력개발을 강조하는 동시에, 노동자 인권 표준을 함께 설파하겠다는 ILO의 통합 개발모델 전략은 1960년대 한국의 여러 주체들이 ILO를 각기 달리 전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지반을 제공하였다. 정부는 경제성장과 근대화 전략을 성취하기 위해 경영기술과 인력양성을 위한 제정지원을 제공받았지만 국제적 노동 표준에 대해서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저지해 나갔다. 생산성본부를 비롯하여 자본 측은 기술 원조를 통해 경영관리 기법을 도입하고 기술인력 양성에 주력하였을 뿐이다.- P98

이어서 볼 수 있는 주제는 <기획> 코너로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다. 인권은 예전과 비에 달라졌는가. 객관적인 지표는 그럴지 몰라도 결코 그렇게만은 볼 수 없는 사각지대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능력주의의 외부와 틈새‘ 칼럼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능력주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테크네‘와 ’메티스‘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테크네와 메티스의 개념구분은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이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체계에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크네라고 한다면 일종의 암묵지처럼 도제적으로 숙련되는 능력을 메티스라고 할 수 있다. 테크네는 보편적이고 기술적인 지식, 측정가능한 지식을 의미하고, 메티스는 맥락적이고 유동적이며 실질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테크네가 측정되고 양화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메티스는 도제식 교육 등을 통해 숙련되어가는 맥락적 능력이다. - P273

간단하게 말하면 테크네는 양으로 측정가능한 지식을 의미하고 메티스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지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사람들은 능력주의의 경쟁 영역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능력주의의 외부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와 시장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결국 틈새다. 그 예로 시각장애인들의 점복업 공동체를 든다. 이들은 조합의 방식으로 능력을 훈련하고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경제적 활동을 이어간다고 한다. 시각 장애인들이 글을 단순히 읽기 어렵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들의 구술 능력으로 얼마든지 직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메티스에 기반한 능력을 부정하는 문제는 비단 장애인과 비정상인 집단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제식 관계에서 다양한 숙련성을 기르는 집단적 역량과 배움의 가치를 부정하고, 시험과 공식 자격 중심적인 방식으로만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 P287

지금의 잘못된 역사의 반복은 역사를 통한 반성은 없고 정치와 경제에 모든 이슈를 밀어두는 탓이 크다고 본다. 어제 보고 들은 광복절 기념사를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식민지배와 전쟁 수행에 직결되어 기업이 개인에게 가한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그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 배상은 냉전 시기에 체제 경쟁을 빌미로 봉인되었으며, 그 도장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었다. 탈냉전과 민주화의 시대가 되었다고 바로 봉인이 풀린건 아니었다. 냉전 시기에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피해 당사자들이 지난 30여년간 뼈와 피를 갈아넣어 소송을 진행한 결과 겨우 봉인이 뜯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이번 한국 정부는 다시 봉인하여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탈냉전대 신냉전, 인권 대 지역안보의 충돌이다. - P15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첫째, 식민지배와 전쟁의 피해 당사자들과 지원모임이 생을 바쳐 얻어낸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인권회복의 권리를 이제 시민이 연대로써 지켜내야 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 미래 인권과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권리를 공유한 시민들이 힘을 합쳐 그 실현을 요구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 물론 피해자 당사자, 그대리인과 협의하여 동의하에 적절한 연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법적 권리가소멸되었다고 진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틀에 얽매이지 않는 광범위한 연대도 모색해야 한다. 약자의 최고무기는 연대이다.
둘째, 식민지배와 전쟁의 폭력, 반인권 범죄를 한국과 아시아, 세계에 널리 알리자, 강제동원 피해 문제의 해결은 다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죄, 둘, 사죄의 증거로서 배상, 셋, 다음 세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 앞의 두가지는 이번 정권 아래에서는 바라기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교육 그리고 선전을 강화하여 장기적으로 사죄와 배상을 끌어내야 한다. 매년 3월 1일, 또는 8월 15일에 탈식민 탈냉전 포럼을 개최하고 한국, 세계 여러 나라의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자를 초청하여 그 경험담을 듣고 이를 전 세계에 중계하자. 아시아, 나아가 세계 청년들이 모여 전 세계로 ‘차별 철폐, 폭력 근절, 인권 존중’을 발신하자.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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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6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만큼 능력주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환호하는 나라도 드문 것 같아요. 능력이 다르면 당연히 다르게 대우받아야 하고 불평등한 것이 오히려 평등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심지어 그 능력이라는 것이 결국 대부분은 시험성적(수능, 취직시험, 승진시험 등등)을 말하는 것이니 사실은 능력주의라는 것인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이라는 단 한가지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지극히 불평등한 잣대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지 참 암담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8-16 16:33   좋아요 1 | URL
한국사회가 능력주의에 대한 신봉에 가까운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차별당하고 배제되는 사람은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절망감이 들어요. 말씀하신대로 평가에 대한 기준이 그저 수치로, 시험으로 재단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이고 다른데 하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그것이 어찌 평가될 수 있겠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 소돔과 고모라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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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뤼스 씨와 쥐피앵의 시선은, 적어도 일시적이긴 했지만 뭔가에 이르고자 하는 목적이 없다는 점에서 아름다웠다. 이런 아름다움의 발현을 나는 남작과 쥐피앵을 통해 처음 목격했다. 이들 두 사람의 눈에 떠오른 것은 취리히의 하늘이 아니라, 내가 아직 그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어느 동방 도시의 하늘이었다. 샤를뤼스 씨와 조끼 재봉사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요소가 무엇이었든 그들 사이에는 협정이 체결된 듯 보였고, 그 불필요한 시선은 이미 정해진 결혼에 앞서 베풀어지는 축제처럼 의례적인 서곡에 불과했다. 보다 자연에 가까워진 두사람은 그리고 이런 다양한 비교는, 우리가 몇 분 동안 살펴보면 동일한 인간이 연이어 인간, 인간-새, 인간-곤충 등으로 보여 그 자체로도 더욱 자연스러웠다. ―마치 한 쌍의 새처럼 보였는데, 수컷이 먼저 다가가려고 하면 암컷인 쥐피앵은 이런 술책에 어떤 신호로도 응답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은채 자신의 새로운 친구를 무심히 응시했으며, 수컷이 먼저 수작을 부린 이상 자기는 깃털을 쓰다듬는 정도로 만족하는 게보다 자극적이며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한 듯보였다. - P2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8권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죄악의 도시로 등장하며 레반트 지역에 실재했던 곳으로 여겨 지는 곳이다. 물론 샤를뤼스 같은 부류의 남자들은 삶의 가능성과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다른 부류의 남성, 즉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또 그 결과 그를 사랑할 수 없는 남성)의 사랑을 추구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난초꽃이 벌에게 수작을 부리듯, 쥐피앵이 샤를뤼스 씨의 주위를 맴도는 모습을 목격한 화자처럼 '소돔과 고모라'는 특히 동성애로 의인화되고 하느님은 이들을 벌하라 지시하여 두 도시가 망했다고 한다(구체적으로는 ⌜창세기⌟ 18~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려는 하느님께 롯이 간청하자 하느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롯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하느님은 도시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자 천사들이 롯과 가족들에게 도망치라고 말하면서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명하나,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다).
샤를뤼스와 쥐피앵의 만남을 보며 화자는 남성이 남성을 열망하고 쫓는 행위에 대해서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한다. 알베르틴과 앙드레는 그 반대편에 서 있지만 같은 결에 있다. 화자는 이렇게 동성애에 대해서 특이함, 기이함으로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나라면 물론 내 딸들을 이런 곳에 오지 못하도록 할 걸세. 어쨌든 여자아이들이 예쁘기는 한가? 나는 저 아이들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겠네. 저런, 저걸 보게나." 하고 그는 서로를 껴안고 천천히 왈츠를 추는 앙드레와 알베르틴을 가리키면서 덧붙였다. "코안경을 잊어버리고 와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저 아이들은 틀림없이 쾌락의 절절에 있을 걸세. 여자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젖가슴을 통해 쾌락을 맛본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네. 저 아이들의 젖가슴이 완전히 붙어 있는 걸 보게나." 실제로 앙드레와 알베르틴 사이에서 젖가슴의 접촉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앙드레가 알베르틴에게 한마디 했고, 그러자 알베르틴은 조금 전 내가 들었던 그 날카롭고도 뜻깊은 웃음을 터뜨렸다. 알베르틴은 그 웃음소리를 통해 은밀하고도 관능적인 전율을 앙드레에게 가리키고 확인하려 하는 듯했다. 그것은 미지의 축제에서 처음이나 마지막에 울리는 화음과도 같았다. - P345

악덕은(언어의 편의상 이렇게들 말하는), 마치 정령의 존재를 모르는 인간에게서 그 인간이 모르는 정령이 눈에 띄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악덕은 우리를 동반하고 있다. 선함이나 교활함, 명성과 사교적 친분 관계는 그 자체로서는 드러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을 감춘 채 지니고 있다. 오디세우스도 처음 순간에는 아테나 여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 P35~36

스완은 병색이 완연해진 모습을 보인다. 그런 스완의 모습을 보고 화자는 충격을 받았다. 아픔과 고통을 마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를 감내하기엔 아직 그의 연륜이 깊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화자는 발베크로 두 번째 방문했다. 그 방문은 첫 번째 방문 이후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고 고통이 찾아든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화자의 감정에 연민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할머니를 뵈었을 때 모습이 스쳤지만 그 때는 이미 눈을 뜨시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슬픔이 밀려들었다. 우리를 보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후회가 덜할까 싶기도 했지만 인생사는 알 수가 없지 않나. 결국 이런 고통은 추억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의 부재는 화자에게 앞으로도 순간 순간 아픔처럼 다가올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 찾아올 지 알기 어려우며 그 감정을 제어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게다가 화자는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기억에서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의 감정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낀다. 부재는 상실이며 그리움이기도 하다. 죽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그저 기억으로 대체되어 자리할 뿐이다.

스완은 예언자의 나이에 도달했다. 물론 병의 영향 때문이긴 했지만 마치 얼음덩어리가 녹으면 모서리 전체가 떨어져 나가듯 얼굴 윤곽 전체가 사라진, 상당히 변한 모습이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그가 얼마나 변했는지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P169

적어도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알베르틴에 대한 감정이라는 이 두 요소는, 그날 저녁과 그 후에도 오랫동안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날 전화에서 들은 마지막 말로부터 나는 알베르틴의 삶이 내게서 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물론 물리적 거리는 아니지만) 내가 그 삶을 손안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힘든 탐색을 해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삶은 야전 요새처럼, 또 보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우리가 나중에 관습적으로 ‘위장된 요새‘라고 부르게 된 그런 종류의 것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 P240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까 두려워 망자의 실제 모습만을 찬미하며, 당시 이미 우리의 모습이었으나 다른 것에 섞여 있던 모습을 배제하고, 오로지 망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물려받으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우리가 보통 듣는 그렇게 모호하고 거짓 의미에서가 아니라) 죽음은 헛되지 않으며, 망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망자는 산자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유는 진정한 실재란 정신작용의 대상이기 때문에 정신을 통해서만 표출되며, 우리는 나날의 삶이 감추는 것을 사유에 의해 재창조할 때에야 진정으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망자에 대한 이런 그리움의 의식에서, 우리는 망자가 생전에 좋아했던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싶어 한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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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8-16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7권 보셨군요 7권을 보기 전에 시할머님이 돌아가셔서 책을 볼 때는 시할머님 생각이 더 났겠습니다 자신이든 상대든 살았을 때 잘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해도 잘 안 되기도 하는 거네요


희선

2023-08-1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8-16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연휴에 진짜 책 많이 읽으신 듯^^

거리의화가 2023-08-16 16:34   좋아요 0 | URL
책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바람도 종종 쏘이고 그랬답니다.

그레이스 2023-08-18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권까지 이르니 이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잘 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정말 아이러니 하죠.
이왕 늦은김에 나중에 1권부터 몰아서 쓰렵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3-08-18 09:55   좋아요 1 | URL
저도 생각은 비슷한데(글 잘쓴다는 부분은 특히!) 그레이스님은 프루스트가 심어놓은 곳곳의 은유들을 찾아내실 정도로 제반 지식이 있으셔서 더 잘 읽어내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몰아서 쓰는 리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ㅎㅎㅎ 저도 어서 줄거리 안 까먹으려면 8권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