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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43호 - 2023.여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6월
평점 :
이번 호의 핵심 주제는 ‘인권’이다. 배경은 지난 3월 6일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국내 재단을 통한 배상인 ’제3자 변제‘ 방안의 발표다. 윤석열 정부의 용단(!)에 미일은 환영했지만, 국내 사정은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계는 반대 성명을 쏟아냈지만 정부의 태도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이슈 뿐 아니라 한미일 동맹의 움직임은 이미 강화되고 있고 중국이나 북한, 소련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 그 배경에는 물론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가장 크지만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의 외교 분위기를 보면 마치 냉전의 회귀 같은 분위기다(실제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지금의 한미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굴욕 외교라는 오명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체결이었고 그 역사는 지금도 재현중이라는 게 뼈아프다.
<특집> 코너에서는 과거 인권의 역사를 다시 확인한다. 과거 연합국의 전범재판을 통해 바라본 인권과 냉전기 재일조선인들의 인권, 196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의 인권, 국제엠네스티 인권운동과 한국의 초국가적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을 다루었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 1960년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여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 국제적 노동 표준과 현실간의 괴리 탓으로 국제엠네스티를 통한 인권운동이 제대로 된 동력을 얻지 못한 사실이 인상깊었다.
경영관리 기술원조를 제공하고 인력개발을 강조하는 동시에, 노동자 인권 표준을 함께 설파하겠다는 ILO의 통합 개발모델 전략은 1960년대 한국의 여러 주체들이 ILO를 각기 달리 전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지반을 제공하였다. 정부는 경제성장과 근대화 전략을 성취하기 위해 경영기술과 인력양성을 위한 제정지원을 제공받았지만 국제적 노동 표준에 대해서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저지해 나갔다. 생산성본부를 비롯하여 자본 측은 기술 원조를 통해 경영관리 기법을 도입하고 기술인력 양성에 주력하였을 뿐이다.- P98
이어서 볼 수 있는 주제는 <기획> 코너로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다. 인권은 예전과 비에 달라졌는가. 객관적인 지표는 그럴지 몰라도 결코 그렇게만은 볼 수 없는 사각지대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능력주의의 외부와 틈새‘ 칼럼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능력주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테크네‘와 ’메티스‘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테크네와 메티스의 개념구분은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이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체계에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크네라고 한다면 일종의 암묵지처럼 도제적으로 숙련되는 능력을 메티스라고 할 수 있다. 테크네는 보편적이고 기술적인 지식, 측정가능한 지식을 의미하고, 메티스는 맥락적이고 유동적이며 실질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테크네가 측정되고 양화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메티스는 도제식 교육 등을 통해 숙련되어가는 맥락적 능력이다. - P273
간단하게 말하면 테크네는 양으로 측정가능한 지식을 의미하고 메티스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지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사람들은 능력주의의 경쟁 영역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능력주의의 외부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와 시장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결국 틈새다. 그 예로 시각장애인들의 점복업 공동체를 든다. 이들은 조합의 방식으로 능력을 훈련하고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경제적 활동을 이어간다고 한다. 시각 장애인들이 글을 단순히 읽기 어렵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들의 구술 능력으로 얼마든지 직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메티스에 기반한 능력을 부정하는 문제는 비단 장애인과 비정상인 집단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제식 관계에서 다양한 숙련성을 기르는 집단적 역량과 배움의 가치를 부정하고, 시험과 공식 자격 중심적인 방식으로만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 P287
지금의 잘못된 역사의 반복은 역사를 통한 반성은 없고 정치와 경제에 모든 이슈를 밀어두는 탓이 크다고 본다. 어제 보고 들은 광복절 기념사를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식민지배와 전쟁 수행에 직결되어 기업이 개인에게 가한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그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 배상은 냉전 시기에 체제 경쟁을 빌미로 봉인되었으며, 그 도장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었다. 탈냉전과 민주화의 시대가 되었다고 바로 봉인이 풀린건 아니었다. 냉전 시기에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피해 당사자들이 지난 30여년간 뼈와 피를 갈아넣어 소송을 진행한 결과 겨우 봉인이 뜯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이번 한국 정부는 다시 봉인하여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탈냉전대 신냉전, 인권 대 지역안보의 충돌이다. - P15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첫째, 식민지배와 전쟁의 피해 당사자들과 지원모임이 생을 바쳐 얻어낸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인권회복의 권리를 이제 시민이 연대로써 지켜내야 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 미래 인권과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권리를 공유한 시민들이 힘을 합쳐 그 실현을 요구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 물론 피해자 당사자, 그대리인과 협의하여 동의하에 적절한 연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법적 권리가소멸되었다고 진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틀에 얽매이지 않는 광범위한 연대도 모색해야 한다. 약자의 최고무기는 연대이다. 둘째, 식민지배와 전쟁의 폭력, 반인권 범죄를 한국과 아시아, 세계에 널리 알리자, 강제동원 피해 문제의 해결은 다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죄, 둘, 사죄의 증거로서 배상, 셋, 다음 세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 앞의 두가지는 이번 정권 아래에서는 바라기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교육 그리고 선전을 강화하여 장기적으로 사죄와 배상을 끌어내야 한다. 매년 3월 1일, 또는 8월 15일에 탈식민 탈냉전 포럼을 개최하고 한국, 세계 여러 나라의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자를 초청하여 그 경험담을 듣고 이를 전 세계에 중계하자. 아시아, 나아가 세계 청년들이 모여 전 세계로 ‘차별 철폐, 폭력 근절, 인권 존중’을 발신하자.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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