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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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은 한계가 뚜렷했다. 계급과 위계(권력)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기원은 설명하였는지 모르지만 가부장제에 따른 성의 불평등까지 주목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가족 구조 안에서 아이는 돌봄의 대상이 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밥과 빨래를 해야 하는(가사 도우미를 쓴다면 그 여성이 존재하는 가정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은 애초부터 실패할 운명을 지닌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파이어스톤이 나아간 곳은 성적 해방의 길이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권리 동등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적 계급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 인공생식에 대한 주장은 현재로서도 놀라워 보이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성의 불평등은 인종 불평등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파이어스톤은 인종차별주의가 권력의 분배에 따른 불평등에서 기인했다고 이야기한다. 성별에 따른 계급이 존재하듯 인종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차별주의는 성차별주의가 확장된 것이다.


앞선 성적 해방을 제외하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아동기를 없애자'의 4장과 6장의 '사랑', 7장의 '로맨스 문화'였다. 


'아동기를 없애자'는 주장은 제목만 봤을 때는 와 닿지 않았었다. 페미니즘과 아동기를 없애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동기라는 명칭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그런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이렇게 근대에 들어서 생긴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의 구분은 억압을 만들어내는 기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했던 적이 많았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시기엔 뭘 해야 하고 이 시기엔 뭘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심지어 이것이 계급과 맞물리니 피곤해진다.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력과 연결되고 아이들은 또 그것에 맞춰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거기에 끼고 싶어도 낄 수 없는 아이들은 불평등한 세상과 목도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제도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유지하는 핵심 산물이다. 


여성은 남성이 원하는 모델로 정형화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공감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화장으로 얼굴을 덧칠하며 그도 안되면 성형까지 가는 것이 아닐까.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것이 자기 만족이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그런가요?"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까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나이가 들고 운동을 안 하니 옆구리에 살이 삐져 나오고 뱃살이 울룩불룩해지는 것을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게 된다. "살 좀 빼라!"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리는 것 같고 맨 얼굴로 나가는 게 자신이 없어진다.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데도 이런 구속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한심해진다. 이전에 나오미 울프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과 구속에서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엥겔스 관련 책과 스노우의 <두 문화>를 읽어보자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러지는 못하고 밑줄만 많이 긋고 내 생각을 책에 간단히 적는 것으로 이번에도 대신하는 것 같다. 

페미니즘 책은 읽어도 여전히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진다. 아무튼 파이어스톤의 핵심 저서를 초독이지만 읽어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이고 유물론적인 분석 방법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회주의 선두주자들을 능가했다. - P15

엥겔스는 때때로 역사적 변증법의 성적 하부구조 sexual substratum 어렴풋이 인식했으나 섹슈얼리티를 오직 경제적 여과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면서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평가할 수 없었다. 엥겔스는 본래의 노동분업은 자녀양육의 목적을 위하여 남녀 간에 존재했으며, 가족 안에서 남편은 소유자이며 아내는 생산수단이고 자녀는 노동이라는 것, 인간 종족의 생식 reproduction은 생산수단과 구별되는 중요한 경제체계라고 보았다. - P17

학교(전문화된 기술만을 위한)는 나이와 상관없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했다. 도제제도는 어른에게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열려 있었다. 14세기 이후, 부르주아지와 경험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이 상황은 서서히 진전하기 시작했다. 아동기라는 개념이 현대 가족의 부속물로 발달된 것이다. 아이들과 아동기를 묘사하는 용어들이 만들어졌고(예를 들어 불어로 ‘아기 lebebé‘), 그리고 특별히 아이들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children에 ‘성질‘, ‘상태‘, ‘성격‘을 나타내는 접미사 -ness을 붙인] childreness’는 17세기 내내 유행어가 되었다.(그 후로 그런 용어는 예술과 생활방식으로 확장되었다. - P117

아이들은 깨어있는매 순간 억압당한다. 아동기는 지옥이다. 그 결과는 불안한 사람, 따라서 공격적-방어적이고, 흔히 우리가 아이라고 부르는 몹시 불쾌한 작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성적 그리고 일반적인 심리적 억압에 의해 그들은 부끄러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악의적인 정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이러한 불쾌한 특성들은 결국 아이들을 나머지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강화한다. 그래서 그들의 양육, 특히 인격 형성의 가장 어려운 단계에서의 양육은 기꺼이 여성에게 양도되는데, 여성들은같은 이유에서 그러한 인격적 특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 그러므로 (과거에 아동이었고 여전히 억압받는 아동 여성인)혁명은 페미니스트 혁명가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한 어떤 기획에도 아동 억압을 포함시켜야만 한다. - P151

초기 시민권 운동은 너무 오랫동안 진실을 은폐해 왔다. 기존사회에 적응되고 속박되어 ‘검둥이 문제 Negro Problem‘에 관해 아주 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즉, 흑인들은 ‘유색인종이고 그들은 백(비유색)인들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것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우리도 사람이야.") 그 결과 백인들은 명백한 육체적·문화적·심리학적 차이점들을 가리기 위하여 친절하게도 그들의 시각을 걸러냈다. ‘검둥이nigger‘와 같은 단어들이 사라졌다. - P154

‘해방된‘ 여성들은 남성들이 따르고 모방할만한 ‘훌륭한 사내들‘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남성의 성적 패턴을 모방함으로써(여기저기에 추파를 던지고, 이상을 추구하고, 육체적 매력을 강조하는 등), 해방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포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아닌 질병을 스스로 주입했다.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멋‘이 천박하고 무의미하다는 것, 그 뒤에서 그들의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것, 그들이 나이 들고 퇴폐적이 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P209

여성은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성적 매력의 이미지이다. 여성에 대한 정형화는 확장된다. 그리고 에로티시즘은 이상성욕erotomania이 된다. 극한까지 자극되어 역사상 견줄 데 없는 광적인 것에 이르렀다. - P223

이 고도로 효과적인 선동 체계의 내적 모순 중 하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여성이 겪는 정형화 과정을 노출시킨다는것이다. 그 생각은 여성들에게 그들의 여성적 역할에 더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TV를 켠 남성 역시 최신형의 복부 보정, 가짜 속눈썹, 그리고 바닥 광택제("그녀는 합니까. 하지 않습니까?")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교차하는 성적 유희와 폭로는 어떤 남성이라도 여성을 혐오하도록 만드는 데 충분하다. 그가 이미 혐오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224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주의 혁명은 똑같은 이유로 실패해왔거나 앞으로도 실패할것이다. 현재의 사회주의하에서는 어떤 최초의 해방이라도 항상 억압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그 이유는 가족 구조가 심리적·경제적·정치적 억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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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24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동기를 없애자‘ 부분은 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런 환경이라서 모짜르트가 나올 수 있었겠구나 싶고
요즘 유,초등 아이들은 나이 별로 구별해서 놀게 한다는 친구의 말도 떠올랐고요.
저도 혼자서는 완독할 수 없었을거예요.ㅎㅎ 화가님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7-25 09:01   좋아요 2 | URL
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저 어렸을 때도 문제가 많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더 심해진 듯 합니다. 제도라는 것이 받는 사람에게 효과적이어도 끌고 갈까 말까 할텐데 그닥 그런 것 같지도 않아서 의미도 없어 보여요. 부모와 아이들만 죽어나는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미미님은 재독이시라서 더 의미있는 시간이셨을듯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7-25 0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외모에 마음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도 여성이 더하겠지요 자기 만족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 눈을 하나도 마음 쓰지 않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25 09:03   좋아요 1 | URL
누구를 위한 외모 지키기인지 모르겠어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운동과 적절한 식이 요법이 더 중요하겠죠.

다락방 2023-07-25 0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 많으셨고 완독 축하합니다. 저도 아동기를 없애자 는 제목만보고 당황했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파이어스톤은 여성 해방에 진심이었구나 싶어욬 정말 해결하고자해서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7-25 09:05   좋아요 1 | URL
네. 정작 파이어스톤 본인 해방은 이루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더군요. 초독이라 얻어간 것이 별로 없는 듯하지만 함께 읽기가 아니었다면 역시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7-25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독이라...😳
리뷰를 읽으며 흐름을 대충 잡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늘 모범생 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3-07-25 11:00   좋아요 2 | URL
7월도 얼마 안 남아서 지난 주말 남은 분량 다 읽었네요. 늘 읽고 나면 제가 얻은 게 부족한 듯하여 찜찜합니다만 거르거나 포기하지 않고 읽어내는 것에 자축합니다. 앞으로도 모범생 컨셉으로 쭉 가지 않을까 싶네요!^^ 나무님도 함께 해주셔서 늘 든든합니다^^

건수하 2023-07-26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댓글을 뒤늦게 답니다. 길게 후기 써주셔서 다시 한 번 정리하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제 후기 너무 짧네요). 파이어스톤이 워낙 이상적인 사회를 그렸으니 좌절도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15명 내외로 구성했다는 단체가 일종의 ‘가구‘였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궁금하더군요. Airless Spaces도 번역되면 좋겠는데.. 언젠가는 번역되겠지요? ^^ 더운 날 읽고 쓰느라 고생하셨어요. 남은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3-07-26 14:13   좋아요 1 | URL
저는 페미니즘 책 리뷰 쓸 때가 가장 어렵고 힘드네요. 리뷰 쓸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한답니다ㅜㅜ
파이어스톤의 주장은 지금 봐도 큰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많은 여성들의 노력으로 조금씩은 개선이 되고 있지만 그 이상향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겠죠!(더군다나 그 어린 나이에ㅠㅠ) 독서하기에는 오히려 덥고 추울 때가 더 좋은 듯 싶습니다. 남은 여름 수하님도 건강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