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 코펜하겐 삼부작 제1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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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나쁜 냄새처럼 몸에 달라붙는다. 당신은 다른 아이들에게서 그것을 감지한다. 각각의 유년기는 특유의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냄새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서 남들보다 나쁜 냄새가 날까 봐 두려워한다. (...) 그렇게, 은밀하게, 당신은 어린 시절을 내면에 품고 사는 어른들도 관찰한다. - P47


소설을 읽으면서 한 챕터를 통째로 스크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인용한 이 단락의 문장 뿐 아니라 사실은 이 챕터 전체가 감동을 주었다. 코펜하겐 삼부작 1편 《어린 시절》 은 누구나 가지고 있던 어린 날을 떠올리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다.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내게도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토베 디틀레우센은 20세기 덴마크를 대표하는 작가다. 코펜하겐 삼부작은 자전 소설이라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는 책을 좋아했고 학업을 더 이어가고 싶었으나 고등 교육은 받을 수 없었다. 가난한 지역에서 자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소설의 이야기가 되었다.

덴마크 작가도 처음이었으나 덴마크 사회에 대한 이해도 부족함을 느꼈다. 당시 덴마크 사회주의에 대한 배경, 노동자 사회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나오는 모든 단체와 용어들이 처음이었다. 이로써 새로운 작가와 사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마지막 봄은 춥고 바람이 세게 분다. 먼지 같은 맛이 나고, 고통스러운 출발과 변화의 냄새가 난다. (...) 이 시기의 모든 순간이 내게 깊고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 P140


어린 시절은 잊어버리고 싶다고 해서 잊어버릴 수 없다. 토베는 어린 시절을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기도 하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 양가 감정을 나는 너무나 이해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철이 빨리 들어버린 나는 부모님이 있는 집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오니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었다. 이런 상황과 감정은 대부분 겪어본 일일 것 같다. 다만 토베는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모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목마름을 느꼈다. 사랑받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이는 없었던 것 같다. 홀로 헤쳐나가는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일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응원하는 마음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토베의 어린 시절을 통해 친구들과도 겉돌았던 나, 부모님을 원망했던 나, 외로웠던 나를 떠올렸다.


시가 없었다면, 시마저 없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그가 쓴 시를 가족은 비웃었고 편집자는 14살이 쓰기엔 성숙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자신이 쓴 시가 사랑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 생각한 마지막 희망이었으니 좌절을 느낄만하다.


작은 나비가 날아갔네
높이, 푸른빛 도는 하늘로
모든 상식과 도덕
또 의무를 거슬러

봄날의 매혹에 취해

떨리는 두 날개를 펼친
그것은 아름다운 세상까지 이어진
황금빛 햇살에게서 태어났지

그리고 막 활짝 벌어진
연분홍 사과꽃잎 속으로,
작은 나비는 날아가
사랑스런 신부를 찾아냈지

이제 사과꽃잎이 닫히고
거친 비행도 끝이 났네
아, 고마워, 작은 친구들아, 너희들이 내게
기쁘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


도서관 희망도서로 읽었으나 이 책은 구입해야겠다 하는 결심이 바로 섰다. 문장력과 묘사도 일품이고 목차 편집도 멋지다.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 궁금증을 일게 하는 편집이라 생각했다.




다음 2권은 청춘이다. 토베의 청춘은 더 불안정하리라 예상해본다. 누구나의 청춘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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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0-15 1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의 기억은 누구든 자유롭지 못한거 같아요. 싫든 좋든간에요 ㅋ 챕터를 다 스크랩하고 싶다니 명작인가봅니다 ^^

덴마크하면 안데르센 동화 아닌가요? ㅋ

거리의화가 2022-10-15 16:20   좋아요 2 | URL
덴마크 안데르센 동화가 있었네요^^ 어릴 때 세계일주가 버킷리스트에 있었는데 그 중 코펜하겐이 포함되었던게 기억납니다^^*
좋았던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성장 서사를 좋아하고 문장들이 제 맘에 쏙 들어서인듯 싶어요ㅎㅎㅎ

독서괭 2022-10-15 14: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소설이 있었어요?? 신간이군요? 화가님이 이리 극찬하시니 꼭 읽어보고 싶어요~!

거리의화가 2022-10-15 16:22   좋아요 3 | URL
저도 스콧님과 미미님이 올려주신 이야기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토베의 어린시절이 뭉클했거든요. 또 문장도 저는 좋았어요^^

미미 2022-10-15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잘 읽었습니다.^^* 저도 발췌해주신 문장들 좋았어요.
워낙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이 많기도 하죠?
짧은 문장, 간결한 표현, 단순한듯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들 때문에
원서를 사고 싶어지더라구요.ㅎㅎㅎ
어린 꼬마가 자유분방한 여성의 삶을 시로 쓰기도 했다는게
저는 너무 사랑스럽고 재밌고 또 슬펐습니다. 2권도 뭉클한곳이 여기저기!!

거리의화가 2022-10-15 16:26   좋아요 2 | URL
미미님 저 원서 샀습니다ㅎㅎㅎ 스콧님 페이퍼에서 본 핑크색 표지가 이쁘긴 했지만 지금 살 수는 없어서ㅠ 암튼 외서라 올려면 10월말이나 11월초나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ㅎㅎ
간결한 문체인데 마음을 흔드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어린 토베 안쓰럽기도 하고 이쁘고 그랬네요 2권도 기대됩니다 3권은 아픈 내용이 많을 것 같고^^

바람돌이 2022-10-15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목차는 해당 챕터 첫문장인거 같네요. 저도 이 책은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두었는데 조만간 받을거예요. 읽다가 화가님처럼 아 이런 책은 사야 돼 이럴수도 있겠네요. ^^

거리의화가 2022-10-15 22:2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각 챕터 문장의 도입 부분을 뽑아 놓았는데 글이 이어지듯 아닌듯 해서 신선했어요. 희망도서 신청하셨군요 3권이라 거부당할까봐 저는 조마조마했어요ㅎㅎㅎ

그레이스 2022-10-15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단락, 상징적이네요!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거리의화가 2022-10-15 22:26   좋아요 2 | URL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리뷰쓸 때 엄선하느라 고민이 되었네요^^ 직접 읽어보시면 더 좋으실것 같습니다.

희선 2022-10-17 0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똑같지 않다 해도 다른 사람이 어린 시절을 말하면 자기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은 비슷한 점도 있으셨군요 다음 이야기 기대되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17 08:32   좋아요 1 | URL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어서 공감할 부분이 많습니다.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어릴 때는 더 그렇잖아요. 그래서 토베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다음 권 읽을려고 가져왔어요~^^*

다락방 2022-10-17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리뷰를 읽고 나니 제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쁩니다. 음허허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얇던데, 늘 새삼스레 깨닫는 바지만, 책이 얇고 가볍다고 해서 그 내용 자체도 그러하다는 건 아니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후훗.

거리의화가 2022-10-17 12:4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책에 겉표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다락방님이 소설을 워낙 많이 읽어오신지라 이 책이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사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깝긴 합니다만ㅎㅎ 암튼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scott 2022-10-17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토베의 시를 이렇게 직접 적어 주셨다니 ㅎㅎ

지금 청춘 읽고 계시 겠죠.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암울한 청춘, 초록빛이 느껴집니다 ㅜ.ㅜ

거리의화가 2022-10-18 07:42   좋아요 1 | URL
저 시는 유독 와닿았어요ㅎㅎㅎ 토베가 재능이 많았는데도 주변에서 인정을 안해줘서 마음이 아팠어요^^
청춘 읽고 있는데 초록인데 먹빛이 가미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