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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정성일.정우열의 영화편애
정성일.정우열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세상은 언젠가 영화가 될 것이다>를 주말에 읽었다.
하루를 공치지 않았다는 식의 수상한 안도감이 드는 구절이 많았다.
'홍상수는 왜 에릭 로메르가 아닌가'하는 제목의 글을 읽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참으로 적절한 비교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자신이 진실인 척했던 거짓과 대면해야' 하는
홍상수 영화 주인공들의 낭패한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에릭 로메르나 오즈 야스지로, 장률 등 아무래도 내가 평소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글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다.
'하여튼 살아가야 하는 삶, 그 슬픔에 관하여 -오즈 야스지로의 집'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 한편이 찌르르했다.
(아무리 소제목이라도 '슬픔에 관하여' 어쩌구는 뺐으면 좋으련만.)
- 오즈 야스지로가 영화를 설명하면서 했던 유명한 말,
혹은 하스미 시게히코가 오즈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설명했던 말,
"두부집에서 돈카쓰를 만들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는 말은
사실상 오즈가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영화를 설명하려 드는 시도에 대한
유언과도 같은 충고이다.
(...) 전통과 모던, 두 개의 일본, 전쟁 전과 전쟁 후, 하지만 '하여튼' 그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상한 슬픔이 감돈다.
(이 말의 방점은 '하여튼'이다. 이 표현은 매우 잔인하다.)
왜냐하면 두부집은 결국 사라져 가면서도 그 집은 살기 위해
돈카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427쪽)
자정 무렵부터 오늘 새벽, 어쩌다 손에 든 <삼성을 생각하다>를 내처 읽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세상은 어차피 그렇게 되어가기 마련인가?' 라는 의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청문회의 인간들도 그렇고, 지금 리뷰랍시고(페이퍼에서 바꿨다) 쓰다보니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제목들은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기는 했지만>. <꽁치의 맛> 등)
꽁치, 하니 생각난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아파트 초입의, 생선을 대신 구워주는 집이 문을 닫았다.
구울 때 연기가 많이 나는 고등어와 삼치와 이면수와 꽁치를 숯불에 구워
주문을 받으면 배달해 주는 가게였다.
몇 개월째인가,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생선 굽는 냄새도 별로 안 나고 손님이 너무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낭패한 두 중년남성의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청문회 때문에 오늘 아침 모 방송 프로그램이 결방되며
짜깁기한 무슨 스페셜을 보여주는데 트럭에 생선 숯불구이 기계를 싣고
아파트를 도는 생선구이 장수 부부가 나왔다.
하루 매상이 오십만 원을 넘으니 대박이라며 부부는 입이 찢어져라 활짝 웃었다.
<꽁치의 맛>은 오즈 야스지로의 마지막 작품이다.
인간들은 사실 서로에 대하여 그렇게 할 말이 없다.
나의 상처는 너의 상처고, 나의 후회는 바로 당신의 후회다.
오즈 야스지로는 그 비애를 일상 속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대수로울 것 없는 말 속에 녹여낸다.
우리 동네 생선가게 문짝에 붙어 있는,'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적힌 인사장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구운 꽁치도 언젠가 외면을 당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