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에 일을 좀 해주고 몇 푼 받을 돈이 있어 메일을 보냈는데
담당자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몇 달째)
약속을 두세 번 어기더니, 그예 용기(본격적으로 약속을 어길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사실, 내가 그래봐서 잘 안다...
'메일로만 채근하는 게 찌질하고 좀 우스운가?'
그래서 오늘은 담담하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이름을 밝히니 화들짝 놀라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또 그럴 수 없이 정중한 어조로 결제를 미룬다.
그 정중한 어조가 되려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도 약속을 어기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가서 사무실을 급습해
머리채를 확, 잡으리라!
(이번 주 영화 <아저씨>와 <악마를...>을 몰아서 보았다. 예상 외로 좋았다!)
며칠 전 <육조단경>을 읽는 중 혜능 대사는
'24세에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치셨다'(40쪽)고 하여
그 구절이 무엇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몇 페이지 뒤 각주에 얌전히 소개돼 있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 마땅히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42쪽)
나는 몇 년 전 수첩 앞머리에 <금강경>의 저 구절을 한자로 빼뚤빼뚤 옮겨놓고
이렇게 적어 넣었다.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