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와 쓰레받기'는 전북도청 미화노동자들이 오늘 어디메선가 연다는
일일주점 이름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며 배가 고파 빵과 우유를 사들고 출근하다가 걸려 시말서를 쓰고
해고된 사람도 있다는데, 솔직히 원인은 눈엣가시인 그의 노조활동이겠지.
아무튼 '빗자루와 쓰레받기'라는 일일주점 이름을 보니 갑자기 먼 옛날,
명동의 어느 호프집에서 열린 일일주점에서 맹활약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페이퍼로 적고 싶다는 충동이......
마침 그 페이퍼를 퍼오신 님이 올려놓으신 또 한 개의 페이퍼에는
양심수 후원회 회장님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예순에 이르도록 지금껏 독신인 그는
오래전 명동 호프집 일일주점 행사의 주최자나 진배없었다.
장기수가족 후원회.
매달 약간의 후원금을 내고 큰 행사가 있다고 하면 머리수를 채우러 참석하는 정도의
활동이랄 것 없는 활동을 몇 년째 하고 있었는데, 내게도 몇 장의 티켓이 배분되었다.
티켓이든 뭐든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게 영 자신없고 싫었지만
여차할 경우 내가 소화하지 뭐, 생각하며 받아왔다.(강제적인 건 절대 아니었다)
1만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 섞어서 2십만 원 분량.
그런데 전부 다 팔았다.
놀라운 건 내게 티켓을 사간 사람들 중 내 남동생만 빼고 그 일일주점에 모두
참석했다는 것이다.
일일주점 티켓은 주최하는 단체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혹은 파는 사람의 얼굴을 봐서 사게 된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 티켓을 사고 그 행사에 참석한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이 그러하리라.
명동의 한 호프집을 몽땅 빌린 그 일일주점에서 나는 서빙하랴, 밀려드는 내 손님들 맞으랴
하루종일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날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면 말 다 했지 뭐.
행사의 주인공인 장기수 선생님들도 맥주를 드시며 무척 즐거워 하셨다.
그 무렵 우연찮게 나랑 <애정만세>를 보고 엄청나게 우는 바람에 내가 다시 보게 된
시인 지망생도 그의 절친한 친구인 함 모 시인과 함께 왔고,
그와 담뱃불을 던지며 싸우다 내 손등에 화상을 입힌 박 모 시인도 왔고,
유학 가기 사나흘 전 난데없이 사무실 앞으로 찾아와
고정희 시인의 유고 시집을 주고 간 교회 친구도 찾아왔고,
약혼식을 마친 내 절친한 친구는 화사한 모습으로 약혼자와 함께 일일주점에 들렀다.
(내 페이퍼에 등장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참석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솔직한 말인데, 찾는 사람 수로나 매상으로나 회원들 중 최고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코 평수가 좀 커지더라.)
'나는 무능하고 오죽잖은 인간'이라고 생각, 짝사랑만 하며 시들시들 풀이 죽어 살던 내게는
정말 경천동지할 만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열 시 넘어서 행사가 끝나고, 나를 기다려주던 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간 술집에서
나는 크게 취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살다보면 믿을 수 없는 그런 날도 있더라니!
그나저나 그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갑자기 쓸쓸해져서 술 한잔 생각이 슬그머니 나는 저녁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 일일주점이 부디 성황리에 마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