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순간이 연출하는 감정의 거짓을 경계한다

조직화된 군중의

얄팍한 흥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제

한가운데라는 것을 좀처럼 납득하지 않는다



동그랗게 진(陣)을 치고 싶어하는 '사람'의 습성을

비웃는다는 건 아니다

자네나 나나 사실은 한가운데라는 것에 굶주리고

몹시도 목이 말라 '광장'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눈망울에 비치는 경치는

원탁이라는 제목의

언더그라운드 연극에 불과하지 않은가



중심을 포위하라 입은 일체

원의 중앙을 향해 열지 마라

말이 보이거든

말의 정면에 자네의 물음을 두라

자네가 묻고 나는 대답하며 내가 묻고 자네는 대답하는

중심의 결락이야말로

원탁의 자동율로 변하리라

'광장'을 키우라 '광장'에는

문답의 조그만 소용돌이가 몇 개고 생겨나며

사랑과 방심이 산책하고

피로가 끄나풀처럼 가로지르기도 하지만

중상(中傷)이나 불평 또는 정략(政略)이 깃들이게 해선 안된다

명령과 복종 집단적인 도취에서

자네는 깨어나라



이구이성(異口異聲)의 '광장'의 활기를

죽여버리는 것이 외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원탁에서 일어난 자네가

별하늘 밑으로 떠나간다 한들

돌린 등으로 이야기하는 비겁한 시절이라고는 난 생각지 않는다

우리들은 다만 분노의 중심이

깊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 <일본 현대 대표 시선>  유정 편역,  창작과 비평사,  1997

 

 

페일레스님이 직접 번역하여 올려놓으신 일본 시인 이시가키 린의
'생활'이라는 시를 읽어나가다 보니  오래 전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어디 시인의 번역과  얼마나 다른가, 호기심에 책장을 펼쳤더니,
거의 똑같은 번역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도리어 몇몇 단어의 선택에선 젊음의 기백이 느껴진달까.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936541
(페일레스 님의 페이퍼)


이 책에 소개된 그녀의 시들 중 나는 '꽃'이 제일 좋았다.

이슥한 밤에, 문득 눈을 떴다.
내 방 한구석에서
송이 큰 국화들이 깨어나 있다
내일이면 벌써 쇠잔해질
이 만개한 아름다움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먼 여행길을 앞에 두고
아무래도 잠들 수 없는 꽃들이
모두들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모를 그 소란함으로
.
                         ('꽃' 전문)


까치발을 하고 책꽂이에서 어렵게 시집을 꺼낸 김에 시들을 몇 편 읽어보았다.
야마모토 타로오의 '광장'을 접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10년 전에 읽었을 때 이상하게 끌리기는 했지만 온전하게 좋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지금 읽어도 마찬가지.
우리나라의 몇몇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이 주었던 느낌이랄까.

그래도 괜찮아서, 님들도 한 번 읽어보시라 페이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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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9-0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살아온게 다르듯 느끼는게 다르긴 하군요...^^
로드무비님이 올리는 시들이라면 거개가 좋았습니다만, 저 시(광장)는 또 달리 좋군요...
마지막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예전의 일들이 겹쳐져 눈물이 나올것 같았어요.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는 이 마당에도 치기는 쉽게 다스려지지 않나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9-08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제맘대로 퍼가겠노라고 말씀드리는걸 잊었습니다...^^

로드무비 2006-09-0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그나마 치기가 없으면 사는 게 더 재미없지 않을까요?
제가 이 시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님도 좋아하시는 듯.
느낌으로 압니다.^^

페일레스 2006-09-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은 몰랐던 시인데, 매우 좋습니다. 앞으로도 틈틈이 일본 시나 하이쿠를 번역해서 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시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비자림 2006-09-0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 가옵나이당^^
좋은 하루 되시길!!

이리스 2006-09-0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나릅니다~

sandcat 2006-09-08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집도 살까요?
모르는 시인의 좋은 시만 꼭 집어서 소개해주는 로드무비 님, 고마워서 어쩐다지.

산사춘 2006-09-0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로드무비 2006-09-1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제가 감사하지요.^^

샌드캣님, <일본 근대 대표 시선>도 있어요.
두 권 다 사셔도 좋을 듯.^^

낡은구두님, 네.^^

비자림님, 님도 좋은 하루, 한 주 되시길요.^^

페일레스님, 기대할게요.
하이쿠 참 재밌어요.^^

mong 2006-09-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297097

2006-09-13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저 날은 페이퍼 한 개 올리지도 않았는데
들러주신 분이 많았네요.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벌써 10만에 다가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