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난데없이 '시래기'에 필이 꽂혔다.

일요일 오전에 즐겨보는 텔레비전 맛 프로그램이 있는데
시래기를 듬뿍 넣고 끓인 민물새우 매운탕이 나온 것.
민물새우와 시래기가 반반인 얼큰하고 걸쭉한 매운탕을 보고
입맛을 쪽쪽 다셨다.
'인생을 알면 국물맛을 안다'는 박중식 시인의 유명한 시구도 있는데.....

그 맛집에서 보물단지처럼 모셔놓고 애지중지하는 건 다름아닌
지난해 석 달 동안 햇볕과 바람에 말린 무청 시래기.
시래기를 한 뭉텅이 꺼내 가마솥에 푹푹 삶다가 열 시간이나 찬물에 담가놓고
헹궈주길 반복하는데, 그 시래기를 된장으로 무쳐 민물새우매운탕에 듬뿍 넣어준다는 것.

여성 진행자가 완성된 매운탕에서 시래기를 한 젓가락 집어 맛보더니
"예술이네요!" 하며 감탄하는데,  그 순간 전류가 찌르르 흘렀다.
살다살다 시래기에 이렇게 반하기는 처음!

가족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 아이의 학용품 등 살 게 있어
모처럼 대형마트에 들렀다.
삶아놓은 시래기는 한 뭉텅이 샀는데 민물새우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차 안에서 부랴부랴 결정한 저녁 메뉴가 민물고기 매운탕.
동네 초입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 수락산 계곡에
동생이 봐둔 매운탕집이 몇 개 있다는 것이다.

사설 수영장처럼 계곡의 물 웅덩이 주변으로 천막을 치고 평상을 펴서
손님을 받고 있는 식당들.
여름의 끝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차를 대는 동안 먼저 내려 식당 음식맛 염탐에 들어간 책장수님이
파전을 부치고 있는 주인장에게 물었다.

"이 집 메기매운탕 맛있어요?"

"글쎄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그 솔직하고 덤덤한 대답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차려내온 짠지며 파김치며 마늘쫑도 얼마나 맛나던지,  혹시나 뜨내기 손님 위주의
엉터리 식당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 한구석의 염려를 깨끗이 접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 곳이 집 가까이 있는데 모르고 여름을 나다니
안타깝다는 흰소리를 하며 매운탕을 기다렸다.

닭볶음탕이며 파전을 시켜놓고 먹다가, 꽤 깊은 계곡 물웅덩이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놀다가, 술도 한잔 먹고, 졸리면 낮잠도 자고, 화투도 치고,
그렇게 하루종일 노는 곳이란다.
둘러보니 정말 그렇다.

유원지 매점 수준의 허름한 식당 꼴과 달리, 맛은,
여름 휴가지에서 먹은 유명 맛집의 매운탕과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오매불망 고대하던 시래기도 듬뿍.

오늘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생각난 게 냉장고 속에 넣어둔 어제 사온 시래기.
넙적한 냄비에 된장과 멸치가루를 풀고 시래기국을 끓였다.
내 고향 부산에서는 '시락국'이라고도 한다.

어느 집구석 부럽지 않게 알뜰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시작한 하루였다.

 

 



 
**구글에서 업어온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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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9-0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후...침넘어갑니다. 저도 시래기 엄청 좋아한답니다^^..
민물생선 아니어도 지지면 정말 맛나요!! 들깨가루도 넣구요^^

건우와 연우 2006-09-0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맛나겠어요, 저 시래기. 물자박하게 넣고 들깨가루 넉넉하게 뿌리고 볶아도 맛있는데...^^

치유 2006-09-0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저도 밥 먹어야 겠어요..꿀꺽!@@

urblue 2006-09-04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도 그 프로 보고서, 저녁에 대하랑 꽃게랑 사다가 굽고 쪄서 엄청 잘 먹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보고도 떠올리는 게 다르네요. ^^

로드무비 2006-09-0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채썬 감자 휘감고 튀긴 왕새우도 먹고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늙으면 국물맛을 안다.=3=3=3

배꽃님, 아직 안 드셨어요?
아점이겠군요. 맛나게 드시길.^^

건우와 연우님, 아참, 들깨가루.
고등어 지져먹을 때 무청시래기 넣어도 맛있고.
언제 님 말씀처럼 자작하게 볶아서 먹어볼게요.^^

따우님, 시래기 넣은 음식 좋아하시죠?
다 알아요.^^

반딧불님, 금목걸이보다 잘 말린 시래기가 탐납니다.^^


클리오 2006-09-04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래기 된장국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문득, 전 매운탕을 안먹으니 그런 집에서의 닭백숙과 한가한 오후가 엄청 그리워지네요...

로드무비 2006-09-0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닭백숙과 한가한 오후, 라는 말에 울림이 있습니다. 클리오님!^^
(매운탕을 못 드시는군요. 저런!)

물만두 2006-09-0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래기에 묵은지 넣고 국끓이면 죽이죠^^

비자림 2006-09-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로드무비님, 중견주부신가 봐요. 시래기국 뚝딱 끓이시니.ㅎㅎ
아, 매운탕 먹고 싶어요. 밥 금방 먹고 왔는데 넘치는 이 식욕은 어찌 하누..쯧쯧

Mephistopheles 2006-09-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통해 시래기가 산삼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urblue 2006-09-0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도 국물맛 안다구요, 다만 만들지를 못할뿐. 어제도 살 통통하게 오른 꽃게를 쪄 먹으면서, 이걸 탕으로 끓이면 얼마나 맛있을까 했답니다. 그치만 꽃게탕을 제가 어찌 끓이겠어요. 흑흑.

sooninara 2006-09-0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에서 시누이가 사주는 민물새우 시래기 먹었었는데..
정말 맛나더군요.
전 시래기 맛나게 할 자신이 없어서 무조건 ..감자탕 해먹어요^^

반딧불,, 2006-09-04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블루님. 꽃게탕도 된장국 끓이듯이 끓이면 되는데 안타까워요..

로드무비 2006-09-0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호호~ 앞으로도 좀 갈챠드리세요.^^

수니나라님, 님의 감자탕은 정말 맛나 보이더군요.
전 민물새우탕이 있다는 것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블루님, 꽃게탕은 무 큼직하게 썰어넣고 마늘과 고춧가루만
풀어넣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된장 조금만 넣고.
꽃게 살 발라먹는 것 귀찮아서 안 끓입니다.
뭐 저도 할 말이 없는 처지네요.^^
그나저나 국물맛을 정말 아실까?( '')

메피스토님, 산삼으로 변한 시래기라니, 헤헤~~

비자림님, 어머 제가 너무 유능해 보였나요?
제 스스로 지은 별명이 '명색이 주부'랍니다.=3=3=3

물만두님, 맞아요.^^

하루(春) 2006-09-0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그거 봤는데요. 저는 중새우 또띠가 먹음직스러워보여서 사실 시래기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저희 엄마도 시래기 좋아하시는데...

하루(春) 2006-09-0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사진은 매운탕집에서 찍으신 거예요?

로드무비 2006-09-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참 출처를 안 밝혔네요.
아침부터 시래기 이미지 검색하느라.
구글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그리고 그 음식 왕새우 또띠가 아니었나요?
정말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전 국물 쪽! 술꾼답게.=3=3=3


sudan 2006-09-0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실런지 모르겠는데, 전 로드무비님때문에 국물 컴플렉스가 생길라 그래요. 아직 국물 좋을 줄 모르겠어서요. 전에는 국물맛을 알아야 인생을 아는거라고 말씀하시더니. -_-

로드무비 2006-09-05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dan 님, 와라락=3 반가워서.....
제가 요즘 총기가 바닥나 시구를 엉뚱하게 착각했지 뭐예요.
고쳐줬습니다.
어쩌면 저것도 예전에 제 마음대로 바꾼 건지도 몰라요. 히히~
아무렴 어떻습니까.
sudan님을 만나니 반갑기만 한걸요.^^
(전 어려서부터 국물 맛을 알았던 것 같은데.=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