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를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읽을 책으로 급히 가방에 쓸어넣은 게 공지영의 이 책과
<애욕전선 이상없다>라는  웃기는 제목의 메가쇼킹 만화책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가볍게 읽겠다는 그런 심리였겠지.

가볍게 읽겠다 생각하고 망설이다 인심쓰듯 산 이 책에서
선글래스를 벗어버린 작가를 만났다.
아주 오래 전,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주인공인 세 여배우들과
야외 로케이션 현장에서 선글래스를 끼고 앉아 미모든 뭐든 하나도 꿀리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텔레비전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보고
왠지 그녀를 경원하게 되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자신이 인상깊게 읽은 시나 어떤 구절을 왼쪽 페이지에 소개하고 나서
한 편 한 편 자신의 글을 실은 이 책의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마야코프스키와 네루다와 호세 곤잘로스 하우스와 이백과 문태준 등의 시와 글이
J에게로 시작하는 서간문 형식의 글들과 잘 어울렸다.
겉만 번지르르한 구절들이 아니라, 이 작가가 마음으로 만난 글들이었다.
 
우체국 창구에서
나는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까마귀처럼 영락해서
구두도 운명도 닳아 떨어졌다.
매연은 하늘에 자욱하고
오늘도 아직 일자리는 찾지 못했다.
                            --하기가와 사쿠타로 詩

언젠가 황인숙 씨의 산문집을 읽고 <미스 론리하트>  등 책을 7,8권 소개받았는데,
이 책에서도 산도르 마라이니 하기가와 사쿠타로니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좋은 작가들과 책을 무더기로 소개받았다.

그동안의 삶은 "한 신에서 다음 신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무대의상을 벗어버렸다"는 작가.
"어떻게 살겠다고 다시는 결심하고 싶어지지 않게" 되기까지 그간의 마음의 여정이 잡히는 듯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어영부영 넘겼던, 혹은 얼렁뚱땅 넘어갔던 모욕과 상처들이
뜬금없이 불시에 들이닥친다.
이 책을 읽는 중 스르르 두어 개의 꼬인 실이 풀어졌다.

오늘 아침처럼 어느 날은 신문지에 손을 베이기도 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레져 2006-05-3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뭐랄까, 이 리뷰도 로드무비님 노트 한 페이지로 쑥 들어가버린 느낌...
촉촉하고,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한가한 오후의 맑은 국화차 같은 느낌...

반딧불,, 2006-05-3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향기 듬뿍입니다.
잔잔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그 솜씨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듯 합니다..

치니 2006-05-3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공지영 책이 안 땡기는데, 그 괜히 밑에는 뭔가가 있을거라 스스로 짐작도 하면서 이 책을 보관함에 넣기를 미루고 있어요. 그런데 이거 보니까 그냥 넣어지네요.
^-^

nada 2006-05-3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방울은 전혀 혼자 같지 않거든? 흥!
..했더랬어요. 괜히 미워했던 학급 친구와 화해시키는 듯한 리뷰네요. 너무 좋아요.

sudan 2006-06-0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그래도 전 공지영 소설이 싫어요.

sudan 2006-06-0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런 코멘트는 왜 달았을까요. -_-
지울까 했지만 어차피 메일로 간건 보실테니까 그냥 둘께요. 헤헤.

건우와 연우 2006-06-0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보다는 로드무비님의 리뷰에 추천입니다. 저도 공지영에 대해선 읽으면서도
왠지 개운찮은 것이 있었는데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로드무비 2006-06-0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단숨에 읽었습니다.
담백하게 쓴 글들이라 와 닿던데요?

수단님, 뭘 잘못 눌러서 메일로는 안 와요.ㅎㅎ
몇 달 됐는데.
싫은 건 싫은 거죠, 뭐.
그런데 <수도원 기행>보다 이 책이 더 좋더군요.

꽃양배추님, 제목이 너무 감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ㅎㅎ
어느 詩句더군요.
'미워 했던 학급친구'라는 표현이 절묘합니다.

치니님, 그러니까요. 좀 이상한 심리가 있었는데.
어색하게 헤어졌다 순한 얼굴로 다시 만난 듯합니다요.^-^

반딧불님, 책 속의 구체적인 얘기들을 꺼내지 않으면서
뭔가 가볍게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게 님께는 먹힌 듯하여 기쁘옵니다.^^

플레져님, 이왕이면 국화주라고 해주시옵소서.ㅎㅎ
국화차는 플레져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