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壯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

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

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

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

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知

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

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

사일 기지도 땡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大統領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

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신동엽 시인(1930~1969), <한국대표노동시집> 217쪽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에 놀러가는 풍경을 그려본다.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도 그렇고, 이 책에는 이상하게 평택이라는 지명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유난히 많다.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역사여서 그렇겠지.
문병란 시인의 '땅의 연가'를 읽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처음 읽는 시도 아닌데 말이다.
다음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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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2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로드무비님의 감성의 무게는 몇 근일까요...
반근만 신문지에 싸 주오.

로드무비 2006-05-2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반 근 떼드리면 아무것도 안 남아유.^^
님이야말로 보태서 뭐하시게?
안 그래도 넘치시는구만.=3=3=3

건우와 연우 2006-05-2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무렵 무척이나 좋아했던 시인이네요. 로드무비님덕분에 좋은시 많이 읽어요. 감사...

nada 2006-05-2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거 헹궈서 육수라도...

가끔 옛날 시의 모던함에 놀라요. 근데 왜 학교 땐 그걸 모르는 걸까요.

waits 2006-05-2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는 이상하게 평택이라는 지명을 떠올리게 하는 시들이 유난히 많다.'
도처에 황새울이 있다는 어느 시인의 기고가 생각나네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소극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금 함께 안 하면 너희들도 저렇게 된다"라는 저열한 설득(?)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어느 노동운동하시는 분의 말이 떠오릅니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가난하더라도 함께 평화롭기 위해서,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이미 불가능해진 세상인지도...

바람돌이 2006-05-2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저 시를 읽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아직은 앳된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때 저 시가 참 충격적이었어요. 아 시를 이렇게도 쓰는구나... 이렇게 손에 잡힐 듯 아름다운 풍경도 있구나...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듯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소망은 아직도 이리도 멀다니...

2006-05-24 0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5-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맑아지면 님, 마이리스트에 간단한 인사 남겼어요.
이해합니다. 그런 마음.^^
(약속 꼭 지키세요!)

바람돌이님, 신동엽 시인 전집에도 저 시가 실렸던가요?
어떤 시는 몇 년 만에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사람처럼.^^

나어릴때님, 하는 일도 없으면서, 시 하나 올리면서
평택, 평택,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그래요.
모든 시가 그런 쪽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네요.
사실 전 자신의 이익을 좀더 지키려고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는 정규직들도 문제가 크다고 생각해요.
먹고살기 힘든 거야 모두 마찬가지라지만 최소한의 정의를 외면하면
결국 철퇴를 맞는 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고통을 겪는 인간을 바라보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우정, 진심은 전달이 되겠지요.

꽃양배추님, 저도 그 모던함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오래 전 지하련(임화의 아내로 유명)의 짧은 소설을 읽는데
소름이 쫙 끼치는 거예요.
이런 감수성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견뎠)을까?
아무튼......

건우와 연우님, 시 한 편 옮기며 저도 모처럼 시를
온전히 즐기는 기분이 듭니다.^^

2006-05-24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5-2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처럼 팬많은 분이 계속 평택, 평택, 해주시면 좋지요...^^;;
정규직의 비정규직 투쟁 연대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말씀을 하신 분은 공공연맹 분이셨는데... 실제로 연대투쟁을 제안하기 어려울 만큼, 정규직 노동자들도 직무관련한 난관과 갈등(?, 팀 단위 성과급 같은 미끼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국가와 자본의 노동자 분리정책은 노동자 집단 전체를 짓밟고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떠들기라도 하면 한 번, 두 번, 세 번 들은 사람들의 마음도 더불어 움직이리라는 희망으로...^^;;;;

2006-05-25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5-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저 팬 하나도 안 많은데.ㅎㅎ
노동시는 당분간 계속 올릴 거예요.
단 두세 명에게라도 소개하고 싶은 시가 더러 있어서요.
저도 옮겨 적으며 한 번 더 즐기고.

무슨 이야기든 깊이 들어가면 저 무지 버벅거립니다.
정색을 하고 심중의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아직 붙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어릴때님은 제게 좋은 모범을 보이시는 것 같아요.^^

2006-05-25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5-28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올려주세요. ^^ (좋아서 헤벌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