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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여우 - 좋은아이책 ㅣ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김경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1년 10월
평점 :
어제 나는 세일을 시작한 인근 백화점의 식품 매장에서 허브그린 소금을 한 통 살까 말까
망설이다 사지 않고 그냥 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책 먹는 여우>를 읽고 있자니
그것을 매대에 그냥 놓고 온 것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
더러 출간된 지 아주 오래 된 헌책을 사서 읽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보통 소금 가지고는 부족하다.
책벌레와 쥐오줌으로 얼룩진 퀘퀘한 책에는 허브그린 소금이 딱일 것 같다.
눅눅한 책장을 햇볕에 바싹 말린 후 김이나 다시마 튀각처럼 찹쌀풀을 발라 다시 말려
한 장씩 튀겨 먹는 건 어떨까?
요주의 인물로 도서관에서도 쫓겨나고, 먹을 책이 떨어져 급기야 털모자를 눌러쓰고
길모퉁이 서점을 턴 여우는 감옥에서 빛나리 교도관을 만난다.
지금에야 슬그머니 고백하는 사실이지만 내 인생에도 빛나리 교도관이 한 명 있을 뻔했다.
나는 여우와는 달리 책보다 영화 필름이 맛있어서 한때 어느 영화사의 담벽 밑을 서성였다.
지금은 영화계의 거물급 인사가 된 나의 빛나리 아저씨는 생선초밥 한 접시를 시켜주고
영화표를 두 장 주며 개봉중인 영화 광고문안을 써보라고 주문했다.
내가 써서 보낸 영화 광고문안이 신문광고에 실렸을 때는 천하를 얻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전당포를 들락거리며 살림을 하나하나 내다팔고 읽은 책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어치우던 여우.
전과자가 되어 불행한 삶을 마감하나 했더니......
인생에서 키다리 아저씨, 아니 빛나리 아저씨는 언제 어떤 복장과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도둑같이, 새 신랑같이 임할지도 모르니 등불을 들고 준비하라,는 교훈까지!
빛나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죄와벌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여우를 질투하며 책장을 덮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책도 영화필름도 똑같이 맛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1년 정도를 버틸 양식은 비축해 두었으니 여우를 부러워하지 않으련다.
그저 어제 저녁 허브그린 소금을 사오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