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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존 버닝햄 엮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어느 님의 리뷰를 보고 그 당장 보관함에 집어넣었다가 공돈이 생겨 산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노년에 관한 각계각층 유명인사들의 에세이라니 슬슬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나로선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근사한 구절들은 xx님의 리뷰 속에 나와있는 게 거의 전부였던 것.
내가 좋아하는 그림동화 작가 존 버닝햄이 엮고 컷 50여 개를 직접 그렸대서, 혹 이 책에 실린 노년에 대한 에세이들이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더라도 컷 구경만으로도 본전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그것도 틀려먹었다. 마스타로 뽑은 것 같은 흐릿한 컷들. 오자도 많고 여성잡지 부록 정도로 적당한 편집이요, 내용이다.
허리가 좀 아프고 오늘 내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 '늙었다니! 나는 내가 늙은 줄 도통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글이 억지로만 여겨진다. '내가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단 말인가!' 하는 탄식으로 시작하는 글도 짜증스럽게 여겨지긴 마찬가지.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식의 글도 몇 편 되었으니, 뭘 그렇게 사람은 늙어서까지 애를 쓰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다니! 내가 오늘 뭔가 잘못 먹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다행히 마음에 쏙 드는 짧은 글이 하나 있었으니, 짜잔~~
친애하는 버닝햄 씨, 어리석은 삶을 오래도 살아온 지금, 나는 남은 시간도 어리석게, 어리석게 지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위에서 실수로 '어리석게'라는 말을 두 번 썼습니다. 고쳐 쓰지 않겠습니다. 어찌됐든 거기서도 무슨 의미가 또 생기겠지요. --아이보 커틀러
'노년에 이르니 삶을 가리고 있던 막이 싹 걷어진 느낌' 이라고 여성작가 도리스 레싱이 말했다는데 그게 정말일까? 늙으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긴다는 그녀의 말에 희미한 희망을 걸어볼 뿐이다. 사람을 보면 장점만 보이고 무조건 예뻐보인다니, 듣기좋은 말이로되 별로 호감이 가진 않는다만......
("엄마, 책 그만 읽고 운동해야지! 그래야 많이 안 늙지." 꽤 두꺼운 이 책을 잡고 두세 시간을 침대에서 뒹굴거렸더니 마이 도러가 하는 말이다. 허리가 아프다고 내가 늙은 모양이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걱정이 된 모양. 고사리같은 손으로 허리를 몇 번 두들겨주는데 그 손이 꽤 맵짜다. 찌뿌둥한 중에 그 사실이 또 흐뭇.)
아이보 커틀러의 편지 전문. 글씨체도 무지 마음에 든다. (클릭하면 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