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까지 나가 영화 한 편 보고 돌아오는 길에 1단지 앞의 할아버지 노점을 유심히 봤더니
오며가며 지나가는 버스 속에서 한달 전부터 점찍어 놓은 '스텐' 주전자가 그대로 있다.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후 산책 겸 그 노점을 찾았다.

깨끗하게 손질된 헌옷가지며 가방이며 전기다리미며 전자계산기며
한마디로 없는 것이 없는 할아버지의 노점은 '만물상'이라는 간판(손글씨로 쓴)을 내걸고 있다.

스텐주전자는 몇 년은 족히 쓴 것 같은 투박한 모양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웬만한 초강력세제로도 지울 수 없는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앉았다.
얼마냐 물으니 5천 원이라는 대답.
4천 원에 안 되느냐고 물으니 단칼에 거절이다.
당장 로맨스그레이 영화를 찍어도 될 정도로 준수한 외모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있는지 짬만 나면 거울을 들여다 보신다.
그 단호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에 매료되어 군말없이 5천 원 지폐를 내밀었다.

막걸리 심부름을 하는 소녀처럼 나는 자랑스레 주전자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지만, 딱 둥굴레차를 끓여 먹기 좋게 생긴 주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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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9-02-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침 주전자가 필요하던 참인데^^...쓸만한 거 있으면 하나 추천해 주세요~~
그리고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그만 로드무비님께 새해인사 타이밍을 놓쳤서 이제야 인사드리네요.*^^*
건강하시고 올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릴께요~~

로드무비 2009-02-07 02: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twoshot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쓸만한 주전자 눈에 불을 켜고 보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9-02-06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많은 차 중에서 하필 둥굴레차인 이유가 뭘까요? 주전자 생김새가 무지 궁금해지네요^^

로드무비 2009-02-10 23:06   좋아요 0 | URL
왠지, 그냥요.ㅎㅎ
모양이 넓적하고 둥글둥글해서 그렇겠지요.
아, 저도 꼭 보여드리고 싶네요.^^

2009-02-06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6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2-0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네요.
저희 집 주전자도 스텐 주전자인데 자그마치 2L 짜리랍니다.

로드무비 2009-02-07 02:39   좋아요 0 | URL
1리터가 사실 얼마 안되잖아요.
1.2리터 용량 정도로 보입니다.
hninn 님네 주전자도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BRINY 2009-02-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겼는지 저도 궁금해요.

로드무비 2009-02-10 23:06   좋아요 0 | URL
핸드폰으로 찍어 전송할까요?=3=3=3
(둥글넓적 투박하게 생겼습니다.)

balmas 2009-02-0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전자를 보고 싶어요. 주하도 ;;;

로드무비 2009-02-07 02:36   좋아요 0 | URL
저도 발마스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무해한모리군 2009-02-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스텐 곰솥에다 끓여먹습니다.. 냄비는 만능 ^^ 가끔 설겆이거리가 싾이면 후라이팬에 라면도 끓여먹고 ㅎㅎㅎ

로드무비 2009-02-07 15:32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그러고 보니 이 주전자가
곰솥을 닮았네요.
곰솥 미니어처예요.ㅎㅎ
주둥이가 커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이 정말 통쾌합니다.
후라이팬에 라면을 끓여 먹는다?
저는 코팅 벗겨질까봐 아까워서 못 그래봤는데요.^^

건우와 연우 2009-02-0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굴레와 함께 세월도 끓고 있겠지요, 아마도...
안녕하시지요?^^

로드무비 2009-02-08 00:23   좋아요 0 | URL
건우와 연우 님 반갑습니다.^^
이름 모를 약초를 늘 끓이고 있습니다.
그날 텔레비전 아침 프로에 소개된 걸로요.ㅎㅎ

2009-03-11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초롬너구리 2009-02-09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세요~~ 숭늉차도 구수해요~~ ^^ 근데, 티백이라... 티백이 아닌 끓어서 마셔보고 싶어요 (티백은 그리 좋지않다면서요?)

전 오미자차를 한번 여름에 먹고는 홀딱 반해서 몇주전에 사뒀어요. 근데 그건 쇠로 된데 넣으면 안된데요 (어렵군요 ㅜ.ㅜ).

로드무비 2009-02-10 11:32   좋아요 0 | URL
오미자차를 좋아하시는 새초롬너구리 님,
오미자는 유리주전자가 제격일 것 같아요.
색이 정말 예쁘게 우러나거든요.
티백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는데,
아무튼 전 동네 알뜰장터에서 산 생짜의 결명자며 보리차며
구기자며 오미자를 끓여 마십니다.^^



2009-02-09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0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ㅋㅋ 2009-10-2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ㅋㅋ
저희 집 주전자는 엄청나게 커요.로드무비님의 주전자 한번 보고 싶습니다.
로드무비님은 차를 굉장히 좋아하시가봐요?
저는 주스를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