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무량 스님의 <왜 사는가>라는 제목의 수행기를 읽었다.
부산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였다.
도로가 너무 꽉 막혀 동생네 책꽂이에서 이 책이라도 들고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며 감지덕지 읽어내려 갔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구절이 나온다.

--숭산 스님은 행동(수행)을 함께 하는 것을 두고 감자를 씻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감자를 씻을 때 한 번에 하나씩 씻지 않고 감자들을 전부 물이 가득 찬 통 속에 넣고 저으면
서로 부딪치면서 표면에 묻어 있던 흙이 씻겨진다는 것이다
.
(무량 스님 수행기 <왜 사는가> 1권 153쪽)

얼마 전 읽고 알라딘 서재 페이퍼에 인용했던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아닌가.
(이해를 돕기 위해 페이퍼 다시 긁어옴.)

며칠 전에 나온 정호승의 시집 <포옹>을 읽었다.
너무 유창하고 시 한 편 한 편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시인의 진정성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예를 들어 '감자를 씻으며'라는 시는 이런 내용이다.

"감자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흙이 씻겨 나간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도
흙 묻은 감자가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과 같다
"(부분 인용, 46쪽)

아직도 저런 시를 쓸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하면서 숭산 스님의 말씀을 듣고 좋아서 시로 썼다고 밝혔을까?
그게 만약 아니라면 시를 읽으면서 공허하기 짝이 없다고 느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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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7-10-2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런 걸 찾아내시는 로드무비님은 분명 신끼가 있는거에요.

로드무비 2007-10-29 18:45   좋아요 0 | URL
치니 님, '신끼'는 저랑 거리가 멀고.ㅎㅎ
조금은 신기하죠?
그런데 독서를 통하여 이상하게 여러 부분들이 섞여
실체를 드러내는 구석은 있어요.

비로그인 2007-10-2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누가 먼저일까라고 가리는 것이 참 힘들죠...
단순히 '출판일'을 가지고 가리자니, '출판은 늦게 했어도 생각은 먼저' 했을수도 있고,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자니 확인할 길이 없고..
게다가 말이죠, 60억 인구라는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보니, 이 세상에 -
적어도 같은 나라에 나와 비슷한 심지어 아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난 다음부터는 '누가 먼저일까'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의미 없다고
예전에 느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로드님이 의도하는 대로 '누군가 누군가의 글을 자기 것인양 쓴 것이라면'
응당 질책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말입니다. ^^
과연 어느쪽일까요.

로드무비 2007-10-2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 님, 아이고, 저도 그 생각은 했어요.
시인도 감자를 씻으며 그런 생각을 했을 수 있겠다.
그런데 페이퍼를 쓸 때는 사실 시인을 막 의심했거든요.ㅎㅎ
시시비비 같은 것 가릴 생각은 전 없고요.
그냥 얼마 전 읽은 시와 스님의 법문이 겹치니 신기해서 페이퍼 올렸다고
가볍게 생각해 주세요.(책 좀 읽은 것 자랑 겸해서.=3=3=3)



2007-10-30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30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瑚璉 2007-10-30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인 시마모토 가즈히코 씨는 자신의 만화 호에로펜 4권에서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더군요.

"지상에는 우주에서부터 무수한 아이디어 파가 내려오고 있는데 예민하거나, 파장이 맞는 사람들이 이걸 캐치해서 작품으로 만든다."

웬지 설득력있는 설명이다 싶었습니다(^^).

로드무비 2007-10-30 10:11   좋아요 0 | URL
호련 님, '호에로펜'과 작가 이름 메모합니다.
저도 감자를 이때꺼정 대여섯 관은 족히 껍질을 벗겼을 텐데
맛있게 만들어 먹을 욕심만 앞섰을 뿐 아무런 느낌이 없었거든요.
설득력 있는 말이고요.
그런데, 호련 님도 그 예민하거나 파장이 맞는 사람들에 속하십니까?^^

瑚璉 2007-10-30 10:30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 (예단은 위험하지만) 가즈히코 씨의 만화는 로드무비 님 취향과는 5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보여요. 허무개그에 가깝거든요(예: 사사건건 대립하는 기성 만화가 두 명이 만화신인왕 선발대회에서 대치하게 된다. 각자 대리인을 한 명씩 두고 지도해주던 수준에서 - 구체적 시나리오 지시 - 그림의 직접 수정 - 아예 대신 그려주기의 단계로 에스컬레이팅되다가 결국 한 명은 본인이 직접 신인인 양 응모하여 1등이 된다는... 쿨럭)

2) 아마 이 양반 만화은 거의 다 절판되었을 겁니다요(쿨럭).

로드무비 2007-10-30 10:3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알라딘은 품절이더라고요.;;
그림을 보고 제 취향은 아니다 싶었지만 인용해 주신 부분이 마음에 와닿아서.
저 그리고 삐리리 재규어 이런 만화도 좋아합니다.
허무개그도 잘만 해주면......
호련 님 잘 지내시죠?
두 번씩이나 와주시고, 반갑고 고맙습니다.^^

에로이카 2007-10-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끔 가다 이런 상황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이 표절이든 아님 우연의 일치든 일종의 희열 같은 것을 느끼는데요.. 어떨 때는 그게 내가 해야할 어떤 일에 대한 중복적 암시가 아닐까 하는 공상도 하고 그런답니다.

로드무비 2007-10-30 10:04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 님, 집구석에 처박혀 살아가는 저에게 주는 메시지일까요?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섞여 사랑하고 구체적인 일을 하며 살라는?
고흐의 그림 중에서도 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것도 이것과 뭔 연관이 있을랑가요?^^
('희열'이라는 단어와 '중복적 암시'라는 단어에 깔깔깔~~)

2007-10-30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4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에 2007-11-0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를 씻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이 들던데... '니들 참 못생겼구나', '그래도 제각각이네', '미안하다 얘들아'...

로드무비 2007-11-04 12:20   좋아요 0 | URL
누에 님도 생각이 많으시군요.ㅋㅋ
전 이 감자가 타박타박한 감자일지, 물기가 많은 감자일지
맛있을지 맛없을지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답니다.^^

하늘바람 2007-11-0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를 씻으며 저런 시를 생ㄱ가하시는 님이 더 대단해요

로드무비 2007-11-04 12:18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 아기가 참 예쁘네요.
그런데 감자를 씻으며 저런 시를 생각한 건 아니고,
책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요.^^

2007-11-02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8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