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무량 스님의 <왜 사는가>라는 제목의 수행기를 읽었다.
부산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였다.
도로가 너무 꽉 막혀 동생네 책꽂이에서 이 책이라도 들고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며 감지덕지 읽어내려 갔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구절이 나온다.
--숭산 스님은 행동(수행)을 함께 하는 것을 두고 감자를 씻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감자를 씻을 때 한 번에 하나씩 씻지 않고 감자들을 전부 물이 가득 찬 통 속에 넣고 저으면
서로 부딪치면서 표면에 묻어 있던 흙이 씻겨진다는 것이다.
(무량 스님 수행기 <왜 사는가> 1권 153쪽)
얼마 전 읽고 알라딘 서재 페이퍼에 인용했던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아닌가.
(이해를 돕기 위해 페이퍼 다시 긁어옴.)
며칠 전에 나온 정호승의 시집 <포옹>을 읽었다.
너무 유창하고 시 한 편 한 편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시인의 진정성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예를 들어 '감자를 씻으며'라는 시는 이런 내용이다.
"감자의 몸끼리 서로 아프게 부딪히면서 흙이 씻겨 나간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도
흙 묻은 감자가 서로 부딪히면서
서로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과 같다"(부분 인용, 46쪽)
아직도 저런 시를 쓸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하면서 숭산 스님의 말씀을 듣고 좋아서 시로 썼다고 밝혔을까?
그게 만약 아니라면 시를 읽으면서 공허하기 짝이 없다고 느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