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초라함을 깨닫고 의기소침해지는 순간 인생의 광휘는 사라진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영화 <원스 Once>.
어느 날 부잣집 파출부 일자리를 얻게 된 걸 기뻐하는 여주인공.
낡은 모직 재킷과 질끈 맨 목도리, 꽃무늬 통치마.
음반 기획사와의 면접을 앞두고 양복 한 벌이 필요한 남자에게
자신이 애용하는 헌옷가게로 데려가는 그녀.
악기점 주인의 양해 아래 점심시간에 잠시 빌려 치는 피아노 앞에서
그녀의 얼굴은 놀라우리만큼 덤덤하다.
세속에 찌들려서가 아니라,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인 자의 평화와 무심.
남자는 감추려 하지만, 뭔가 좀 억울한, 짜증난 얼굴이다.
낮에는 고장난 청소기 수리 기사, 거리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발치, 10센트 동전 몇 개가 전부인 기타 케이스를 들고 튀는 놈이 없나.
입만 열면 과장이요 엄살인 사람들도 있지만(나 같은!)
인생, 그 치사함과 막막함과 두려움에 대해 입도 떼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더욱 사정없이 늙는 일밖에는 남은 게 없을 것 같은 조그만 수리점 주인인 남자의 아버지와,
딸의 어린 딸을 키우는 그 할머니의 둥글고 순한 얼굴이 참 좋았다.
그들도 젊어 한때는 청바지나 판타롱을 질질 끌며 애인의 팔짱을 끼고
아일랜드와 체코의 최고 번화가를 누볐을 것이다.
"또라이 같은 놈들이 녹음실을 쓰고 있다"고 걸려온 전화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녹음기사가, 녹음실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자세를 바로잡고, 읽던 신문에서 눈을 뗀다.
가슴이 벅차다.
오디션에서 어느 거대 기획사 사장의 O.K 사인을 받았다고 한들
그렇게 짜릿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아들이 틀어주는 음악을 듣고 아버지의 얼굴에 번지는 흥분과 미소라니!
뭘 좀 기대해도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 생각한다.
수첩에서 몇 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진솔한 가사와 심정적인 멜로디도 근사했지만,
더블린의 낡고 허름한 골목과 집들, 빈 술병이 줄을 선 좁아터진 집구석의,
돌아가며 한 사람씩 주절주절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파티,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희미하게 간직한 듯한 얼굴들이 좋았다.
조금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소박한 화음이
그들의 음악에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