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2주 전인가 3주 전, 금요일 밤에 길을 나섰다.
"겨울바다를 보러 가자"고 아이를 꾀었지만,
최종목적은 '겨울바다'가 아니라 대포항의 '회'와 강구의 '대게'였다.
회와 대게 여행이라니,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호사도 필요하다.

먹다남은 찌개에 물을 부어 새로 끓인 찌개처럼 만드느라,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식탁뿐 아니라, 가물에 콩 나듯 들어오는 일감도, 알량한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다행히 남편은 나의 그 모든 뻔한 수작을 모른체 눈감아 주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 다시 신발을 벗고 들어와 한강의 책과 음반을 챙겼다.

서너 시간을 달려 새벽 두 시에 바닷가에 도착,
혹시 문을 연 횟집이 없을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그곳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새벽에 바닷가에서 먹는 회와 매운탕과 술은 기가 막혔다.

다음날 아침(이라 해봤자 정오 경) 눈을 뜨자마자 예쁜이 아줌마 노천횟집에 가서 
또 회를 시켜 먹었다.
따로 시켜야 하는 오천 원짜리 매운탕에 웬일로 우럭이 한 마리 통째 들어 있어 행복했다.
우노윤호를 닮은 금발의 청년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매운탕 냄비, 빈그릇을 챙기려고
비닐 포장을 걷자 짙고 푸른 초록인지 진회색인지 울렁울렁한 바다가 다가왔다.
다가왔지만, 솔직히 바다는 뒷전이었다.

7번국도를 따라 차를 달리며 한강의 노래를 들었다.
연필조차 손에 들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도 어떤 멜로디가 찾아왔다고 한다.
깊은 산골 점방, 노파의 외상장부처럼 그렇게 이 작가는 멜로디를
자신의 공책에 떠듬떠듬 옮긴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침내 입을 열었을까.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은 것같은, 소설가 한강의 바람을 닮은 목소리.
그 목소리가 자신이 작곡한 어떤 노래에는 참 잘 어울리고
어떤 노래에는 좀 엉뚱하고 생뚱맞다 싶기도 했지만.
이 작가의 골수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듯.

이 책은 흥얼거리다, 귀기울이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그리고 (추신) 검은 바닷가 그 피리소리,
네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그 중 두 번째는 임방울의 '쑥대머리'나 들국화의 '행진', 메르세데스 소사의 '인생이여, 고마워요'
자신이 한때 혹은 오래 귀기울였던 음악들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놓고 있는데
오래 전 메모지에 또박또박 적었던 나의 음악다방 신청곡과 여러 곡이 겹쳐 참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이 리뷰도 먹다남은  찌개에 물 부어서 끓인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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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1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7-02-2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먹다 남은 찌개에 물 부어 끓인 게 더 진하고 맛있다구요.^^
삼탕까지는 괜찮아요.>.<

로드무비 2007-02-21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하하, 김지원 채원 자매가 어머니 최정희 씨가 끓인 삼탕사탕 찌개를
질색했다는 글을 언젠가 재밌게 읽었는데.
명절 뒤끝의 잡탕찌개가 전 또 그렇게 싫었거든요.
이젠 없어서 못 먹습니다.^^
(namu 님도 찌개 물 부어서 재탕 삼탕 끓이세요? 못 믿겠어라.=3=3)

주저리주저리 수다장이 님, 애인과 함께 저를 모시고, 불끈=3
꼭 그런 날이 오기를!^^

oldhand 2007-02-2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1월에 정동진과 울진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대게'를 먹으러 간거지요. 아, 진짜 맛있었어요. 아울러 7번 국도의 경치도 마음에 잘 담아 왔습니다.

하루(春) 2007-02-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X5
마지막 줄... 정말 요점정리 잘하셨어요. 사고 싶군요.

nada 2007-02-2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인네는 무슨 재주가 그리 많답니까. 항상 가만가만, 평온해 보여서 좀 정이 안 가요. 리뷰, 전혀 먹다 남은 찌개 같지 않아요~

로드무비 2007-02-2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 님, 하하, 좀 그렇죠?
그런데 글을 읽어보면 그 평온해 보이는 모습 뒤에
많은 것을 겪고 있더라고요.
남 모르는 방황과 고독도 멸치국물처럼 우려서
글이나 노래로 풀어내다니, 정말 놀랐어요.^,.~

하루 님, 하x5가 뭡니까요?
그리고, 지가 또 요점정리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습지요.=3=3
(사시는 것 찬성!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또 모르지요. '')

올드핸드 님, 하하, 반가워라.
울진 후포항에도 잠시 들렀는데
대게가 좀 신통치 않더라고요.
다음엔 주문진과 태백에서도 노닐고 싶어요.
콩주가 냠냠짭짭 대게살을 잘도 받아 먹었겠군요.^^

진달래 2007-02-2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가만 따스해지는 글인데요... ^^
아무튼 맛은 새로 끓인 찌개처럼 산뜻합니다. ^^

치니 2007-02-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가 노래도 잘 하나보네요. 어찌된게 한가지 재주가 출중한 사람들이 다른 재주도 가진 경우가 주변에 허다한거 같아요, 무재주 상팔자라나 뭐라나, 헤헷.

에로이카 2007-02-2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이 드디어 판을 냈군요... 옛날 '검은 사슴'을 보고 먹었던 충격 때문에 가리왕산 하얀 자작나무숲, 태백 그 동네 일대를 갔던 적이 있었어요... 폐광 전이었는데... 그 소설과 계속 겹쳐서 참 마음이 무거웠던 걸로 기억하네요.

맛있고, 즐거운 나들이길이셨겠어요... 부럽습니다. ^^

로드무비 2007-02-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우와, 소설 정말 많이 읽으셨군요.
천지간에 이어, 작품 속 지명 따라 여행까지......
이번 여행길에 태백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어요.
행선지를 좀 바꿔볼까 하다가 다시 강구 쪽으로......
대게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었답니다.
가리왕산 하얀 자작나무숲이라니, 텔레비전 디지털미술관에서
언제 그림이나 사진으로 본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가보고 싶네요.
2년 만의 먹자판 나들이였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언제 님도 꼭!^^

치니 님, 노래라기보다 허밍 같기도 하고......묘한 분위기였어요.
재주 많은 사람 보면 별로 안 부러우시죠?(그럴 것 같아요.)
전 부럽습니다.=3=3=3

카페인 님, 페이퍼로 올릴까 리뷰로 올릴까 잠시 망설였는데,
그리 말씀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2007-02-23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3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니앤 2007-04-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신간소식이네요_ 2개월이 지났지만: - )
저는 어제 바다가 너무 고파서(?) 춘장대 해수욕장 다녀왔어요
갯벌이 무한대~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