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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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함께 할 존재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가장 깊게 나를 알아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그런 존재다. 모든 감정을 나누며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풍경을 마주했을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들을 생각한다. 말을 나눌 수 없는 대상도 있다. 애완동물, 아끼는 물건, 자주 찾는 공간, 꽃, 나무, 바다... 끝없이 확장된다.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듯이 말이다.

 

 아무 기대 없이 읽게 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은 그런 존재와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창한 일상이 아닌 작고 소소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충만함, 그리고 ‘나’라는 존재와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 품고 있는 영롱한 빛을 보여주었다. 영원한 여름으로 남은 그 여름이 떠올라서 숨을 고르는 순간도 있었지만 여름에만 만날 수 있는 바닷바람의 차갑고 달콤함 맛으로 나를 채우고 말았다. 주인공 마리가 표현한 이런 느낌처럼.

 

 얼음은 엷고도 달콤하게 사라진다. 그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나는 그걸 좋아했다, 그저 단순히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 자잘하고 하얀 안개 같던 것이 점차 덩어리가 되었다가 마지막에는 물이 된다. 모두 달콤하게 배로 들어간다. 그런 느낌. (100쪽)

 

 대학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한 마리는 단순하게 빙수가 좋아서 고향 바닷가 솔숲에 작은 빙수 가게를 차린다. 엄마 친구의 딸 하지메는 어린 시절 화재로 얼굴 오른쪽에 화상 흉터를 지녔다. 자신을 구해주고 평생을 한 집에서 살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지친 하지메와 함께 보낸 여름 이야기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흉터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하지메는 조용하고 가냘프다. 마리는 화려했던 관광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폐허처럼 변하는 고향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메에게 바다와 온천을 소개하며 과거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우리 인간은 매 순간 추억을 만들면서 시간 속을 헤엄쳐 가지만, 끝내는 깜깜하고 거대한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가.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어. 죽을 때까지 계속.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그런 한편으로 계속해서 잃어 갈 수밖에는. (79쪽)

 

 마리와 하지메의 일과는 단순하다. 네 가지 종류의 빙수를 팔고 쉬는 시간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드나무 아래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당당하고 능동적인 마리에 비해 조용하고 수동적인 하지메는 조금씩 친해진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재산을 둘러싸고 좋지 않은 일들을 경험한 하지메에게 마리는 과한 조언이나 위로가 아닌 바다와 자신의 감정과 일에 대해 말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주는 기쁨, 빙수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이 주는 즐거움, 그런 마리를 통해 하지메의 어두운 마음은 천천히 환해진다. 마리와 하지메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물들이고 있었다. 말이 아닌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고 현재의 일상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빙수 가게로 돈을 많이 벌지 않겠다는 마리의 다짐과 마리가 그린 이상한 생물 그림을 인형으로 만들겠다는 하지메의 계획이 그러했다.

 

 ‘모두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그만큼 너그러울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별빛이 이어지듯 그것은 커다란 빛이 되어, 맞설 길이 없을 만큼 거대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 보이리라. (151쪽)

 

 바다 수영을 할 수 없다는 건 하지메가 떠난다는 것이다. 하지메와 함께 보낸 여름이 끝나고 가게는 한산하다. 마리가 빙수 가게에서 빙수를 만들 때 하지메는 자신의 인형을 만들 것이다. 이제 다음 여름을 기대할 수 있다. 그건 하지메가 온다는 일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이 아니라 소중한 하루가 쌓여 미래의 디딤돌이 된다. 때로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보며 아파하면서 추억할 것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과 내일이 주는 감동을 아는 사람은 마리와 하지메처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조금은 쓸쓸하고 차가운 바다를 곁에 둔 겨울, 마리와 하지메를 만난 그 여름을 반짝이는 빛으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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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구매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자제를 이기는 건 언제나 충동이다. 세계문학에 대한 애정이 자라기 시작했을 때, 웅진의 이런 책들을 샀다. 아쉽게도 그 출판사에 대한 애정은 더 자라지 않았고 다른 출판사로 옮겨갔다. 애정의 이동은 같은 책, 다른 출판사로 이어졌고 펭귄클래식의 자리는 좁다. 이윤기 님의 『조르바를 춤추게하는 글쓰기』란 책은 정말 꽁꽁 숨었는지 찾을 수 없다. 적당히 숨은 책을 찾고 읽다 만 책을 펼치고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운명은 숱한 문양과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운명의 난점은 그 복잡함에 있다. 반면에 삶 자체는 그 단순함이 난점이다. (『말테의 수기』, 198쪽)

 

 

 

 

 귀한 문장, 알찬 문장, 마음으로 파고드는 문장으로 채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월든도 펼친다.

 

 내가 호수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인간의 윤리에도 적용된다. 그것은 평균의 법칙이다. 두 개의 직경이 이루는 법칙을 통해 우리는 은하계의 태양과 인간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상적인 행동들과 마음속의 구석진 만(灣) 그리고 그 만의 입구를 드나드는 삶의 물결들을 모두 합해 길이와 폭을 따라 선을 그리면 그 선들이 만나는 지점이 그의 성품이 나타내는 높이와 깊이임을 알게 되리라. 아마도 그의 성품이 나타내는 기슭의 지형이나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만 알아도 그의 깊은 속마음과 감춰진 참모습을 헤아리리라. (「겨울 호수」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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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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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죽고 누군가와 이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상은 평범한 게 아닌 게 되고 말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크게 안도하며 그것을 감싸안을 여유도 없이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깨달는다. 그것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인지하듯 어리석게 말이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된다.


 수도권의 대학병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퍼즐처럼 연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아픈 그를 돌보고 누군가는 그 아픈 이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돌보는 이를 사랑한다. 누군가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활한다. 소설은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러나 쉽게 잊고 지나칠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세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저마다의 사연은 때로 가슴 아프고 때로 감동적이며 때로 아프다. 소설이지만 일부러 확장시킨 이야기가 아닌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라서 더욱 그렇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날벼락을 맞은 듯 씽크홀에 빠진 환자, 위급 환자를 이송하는 닥터 헬기 기사, 병원 근처 빵집의 아르바이트 생, 병원의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요원, 환자를 이송하는 기사, 임상시험 담당자, 성 소수자의 이야기, 가족과 이별을 선택한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다. 누구 하나를 꼬집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와 연결된 누군가, 그 누군가와 연결된 다른 누군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정세랑의 이야기는 좀 특별하다. 정세랑은 혼자가 아닌 우리여야 한다고,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격정의 목소리가 아닌 그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이다. 소설 속 주요 배경인 병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곳이 학교든, 은행이든, 시장이든, 바닷가 어촌 마을이든 다르지 않다. 어디에나 사람들이 있고 삶이 있으니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며 간식을 나누던 환자들, 혈관을 찾느라 애쓰는 간호사, 검사를 할 때마다 도움을 준 조무사, 빠르고 정확하게 안내를 하던 접수 직원과 원무과 담당자, 청소를 마치고 빨리 퇴원하라고 웃으시던 청소 아주머니. 그들과 연결된 다른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정세랑의 소설에서 만난 이들 말이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그냥 우리 사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좋은 소설이다. 착한 소설의 장르가 있다면 이런 소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소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당신이 소설을 읽는 게 훨씬 더 좋으니까. 직접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마주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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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7-01-0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가 마음에 크게 남아서 댓글 남기네요.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뭉클합니다.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되셔요.

자목련 2017-01-03 11:50   좋아요 0 | URL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어요. 좋은 소설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처와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위로할 줄 아는 작가라고 할까요. 주제넘지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녀고양이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편안한 일상을 이어가시를 바라요.
 
2016 제16회 노작문학상 수상작품집
신동옥 외 지음 / 새봄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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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며 시를 읽는다. 무엇을 위한 시인지도 모른 채 시인이 무엇을 갈구하는지도 모른 채 읽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왜 시를 읽는 것일까. 인간에게 시란 어떤 의미인가. 문학이 길을 잃고 독자에게 외면 받은 시대에 살면서 여전히 시를 찾는 건 구원 아닌 구원을 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작(露雀) 홍사용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노작문학상의 2016년 수상작 신동옥의 시는 유려한 언어의 사유가 아니다. 삶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인간의 고통과 시인 스스로의 성찰을 담았다. 하여 낯선 언어지만 익숙한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저수지를 보면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살풍경한 저수지를 떠올린다. 그러다 점차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인간과 마주하는 것이다.
    

 죽은 것 산 것 몽땅 다 저 속에 있다 / 온몸에 뼈란 뼈는 / 죄 부셔져 / 불로 돌아가고 바람에 흩어져라 / 눈보라 치듯 휘돌다가 / 피리 소리를 내며 빨려든다 / 소용돌이친다저수지부분
 
 물은 생명을 키우는 젖줄이다. 한때는 풍요로운 단물이 가득했지만 어느 순간 수몰되거나 썩어버리는 것을 인간의 생과 닮았다. 버려진 저수지가 되고 만다. 결국엔 사그라지고 쇠락하는 검은 짐승을 애도하는 시는 순수한 문학의 정수, 시 본연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시적 아름다움에서 매몰되지 않으려는 시인의 자아를 볼 수 있다.
 
 시인의 번뇌와 고뇌를 반영한 퇴고의 첫 부분 아름다운 시를 얻는 밤에는 울음도 없이 흐느끼는 꿈을 꾸었다. 먼 곳에서 문장을 좇아 말을 달려온 이 하나, 인적이 드문 꿈의 빗장을 밀다가는 두드렸다에서는 다른 자아가 등장한다. 한 없이 유려해서 고래가 되는 꿈이 땅을 버리고 / 맨 처음 바다로 나아간 한 마리 고래가 되어서 / 내 남은 숨 모두 들이켜고도 / 차고 넘칠 퀴퀴한 추억에 익사하던 어느 먼 옛날 / 전생의 힘을 빌어서 끝장내지 못한 미련은 / 나도 모를 누구의 꿈결을 텀벙거리고 / 치달리고 달리까?저수지의 검은 짐승과 이어진 듯하다.
 
 신동옥의 시는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문이 너무 거대해서 손잡이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런 시를 보자. 우주백반여자는 백반처럼 늙었다로 시작해 여자는 백반처럼 늙었다로 끝난다. 삶이라는 투쟁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전체를 다 읽지 않더라도 그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비루한 삶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지는 건 좋을 수도 있지만 다른 세계로의 확장, 그러니까 다른 문을 열어두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신동옥의 시를 읽다 보면 이미지가 허상이 아닌 실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이 그렇다. 동화 속 마법을 연상시키는 운율은 현실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 뿌린다. 시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당신의 살인자마저 살해당하는 나라에서는 누구 노래를 끝마쳐야 하나요? / 나의 아름다운 동상들, 우리의 영혼은 짐승의 냄새를 경작하고 있습니다 / 파도가 끝나는 곳에 구름이 구름이 끝나는 곳에 바람이 일 듯 / 소금 호수를 걸어간 파리한 사나이 / 제 피의 농도를 가늠하며 피눈물을 한 방울씩 떨구네요
 
 몇 편의 시를 읽고 신동옥 시의 내부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외부에서 내부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외 추천우수작인 김근, 김성규, 김중일, 안상학, 오은, 정병근, 하재연, 허연 시인의 작품을 보면 저마다의 리듬이 느껴진다. 자신만의 고유한 방향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발견한다.
 
 절망과 고통으로 점철된 삶에 대한 단상을 단호한 시로 노래하는 김중일의 시는 편안하면서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아마도 시를 통해 우리네 슬픔을 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깊은 높이로 날아오는 새를 보면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새가 바로 우리이므로.
 
 ‘아주 작은 새가 있었다. / 먼지보다 작은 새였다. / 제 그림자로 세상을 고이 덮으려던 새였다./ 깊고 깊은 높이로 날아오른 새가 있었다. / 날 새도록 새는 날고 날았다 / (중략) 우리는 모르는 새 그 새의 그림자를 걸치고 살았다. / 날았다 우리도 날개사 다 녹도록 날았다. / 새와 함께 새파란 하늘이 되었다. / 결국 그 새는 세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 다다랐다. / 희생자의 무덤 위였다.’
 
 경쾌하면서도 쉽게 다가오는 일상의 풍경을 그린 오은, 시어의 반복으로 재미를 주면서도 자조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김근, 적막과 고독을 평범한 일기처럼 써 내려간 김성규, 기이하게도 물질에서 인간의 세계를 구축하는 하재연, 가장 보편적인 일상을 친근하게 들려주는 안상학,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생을 가만히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내려는 허연의 시는 문득 서러운 삶을 세상에 내 놓고 통곡해도 좋다는 허락 같다.
 
 시인에게 시란 무엇일까. 그들에게 삶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시 하나일 것이다. 안과 밖을 오가며 수많은 말을 고르는 삶의 고충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무딘 세상에 스스로 날카로운 창이 되기를 바란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시를 쓰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신동옥의 이런 시를 통해 새로운 세계의 시를 위한 각오를 응원할 뿐이다. 오랫동안 경계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멀리 퍼지기를 말이다.
 
 ‘속죄하는 마음에서 / 나는 오늘 여기 吉音에서 죽고 / 나는 드러누울 것이다./ 모든 동물이 꼭 제 몸뚱이만 한 무덤을 남기도 가듯이 / 우선 일생 나를 끌고 온 그림자를 / 발바닥에서 떼어 / 여기 吉音에 묻어두고 / 시작하겠다.’ 드러누운 밤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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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3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자목련님 지난 한 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목련 2017-01-02 07:4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저야말로 감사하지요. 올해 건강하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6-12-3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곧 시작할 정유년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연말, 희망 가득한 새해 되시길 바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자목련 2017-01-02 07:43   좋아요 1 | URL
언제나 다정한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활기차고 건강한 20167년 시작하세요^^
 
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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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출간되는 소설을 전부 읽기란 어렵다. 꾸준하게 문예지를 통해 읽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관심 있는 작가의 소설집을 기다리는 경우라면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소설이 반갑다. 그러니까 수상작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게 되는 경우도 그렇다.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거기 있나요』에서 나는 먼저 조해진의 「문주」를 읽었다.

 

 ‘내게 문주의 의미는 문기둥이었다. 대학 시절, 4년 가까이 나와 언어교환을 했던 한국인 유학생이 표준 한국어사전에 나와 있다면 알려준 의미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문기둥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붕을 떠받쳐주는 뿌리이자 건축물의 무게중심이 되는 문기둥은 내 삶 가장 먼 곳에 있는 유적지 같았다.’ (「문주」, 129쪽)

 

 자신의 이름을 통해 존재와 근원에 대해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까. 문주라는 한국 이름으로 독일에 입양된 나나는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다는 서영의 제안으로 한국에 온다. 서영의 집에서 머물며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나나는 철로에서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를 만날 수도 모른다고,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분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한 편의 흑백 다큐멘터리 같다. 나나로 살면서 문주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했을 나는 나나와 문주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긴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문주」, 131쪽)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들려주는 이야기인 천운영의 「반에 반의 반」은 유쾌하면서도 묘한 슬픔을 불러온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르고 하나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다. 할머니의 고단한 생애는 가족의 역사와 겹쳐지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선물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할머니를 시작으로 돌아가신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소설의 제목처럼 반에 반의 반이라도 알고 있는지 묻게 된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흥이 많은 냥반이었다는 걸. 흥이 나면 떡도 나오고 노래도 나오고, 노래가 나오면 어깨춤이 절로 따라 붙고. 손수건을 할랑할랑.’ (「반에 반의 반」​, 153쪽)

 

 한유주의 「그해 여름 우리는」자살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던 20대 청춘의 암울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자살하고 싶다는 이유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네 명의 청춘. 저마다의 일을 한다. 그들은 모두 죽고 싶었지만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는 눈부신 청춘, 청춘의 특권은 어디에도 없다. 무겁고 잔잔하다. 과거의 일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이 현재의 청춘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청춘의 일부라는 걸 알기에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할까.

 

 ‘그래도 우리가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미량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상대에게서 바닥을 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바닥이나 밑바닥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우리로서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바닥이나 밑바닥이 드러날까 두려워 서로서로 피상적이지 않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실은 무엇이 피상적이지 않은 질문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210쪽)

 

 ‘그해 여름 우리가 정말로 자살하고 싶었는지 지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 절반의 진심이었다. 다른 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으니 그들이 진심으로 자살을 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추측컨대 그들 역시 절반쯤 진심으로 자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해 여름 우리는」, 225쪽)

 

 과학 논문처럼 난해하게 다가온 수상작 박형서의「거기 있나요」, 접할 때마다 어렵게 느껴지는 김태용의 소설 「음악 이전의 밤」, 어린 시절 상처를 트라우마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어른의 이야기를 다소 복잡한 인물 소개와 전개로 시작되는 최은미의「눈으로 만든 사람」, 미술 블로그를 운영자와 출판사 편집자와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관계에 대해 그린 김금희의「새 보러 간다」, 가족의 기대를 받았던 삼촌의 인생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윤성희의 「스위치」는 겨울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스위치 같은 거야. 그렇게 이상한 놈이 되는 건. 버튼 하나로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그러니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해.’ (「스위치」, 123쪽)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한다는 소설 속 삼촌의 말처럼 우리가 잘 켜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문단이 흔들리는 요즘, 소설을 좋아하고 읽는 나는 누군가 그 답을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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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 리뷰 입니다~ 제가 알라딘 이면 , 상주고 싶을만큼 !^^ ㅎㅎㅎ

자목련 2016-12-28 15:11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이 주시는 상이라 더 기쁩니다^^

[그장소] 2016-12-28 16:27   좋아요 0 | URL
이히힛~ 말로만 반짝반짝 하는 상을 드려서..죄송하네요! 그치만 넘 좋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