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죽고 누군가와 이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상은 평범한 게 아닌 게 되고 말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크게 안도하며 그것을 감싸안을 여유도 없이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깨달는다. 그것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인지하듯 어리석게 말이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된다.


 수도권의 대학병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퍼즐처럼 연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아픈 그를 돌보고 누군가는 그 아픈 이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돌보는 이를 사랑한다. 누군가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활한다. 소설은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러나 쉽게 잊고 지나칠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세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저마다의 사연은 때로 가슴 아프고 때로 감동적이며 때로 아프다. 소설이지만 일부러 확장시킨 이야기가 아닌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라서 더욱 그렇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날벼락을 맞은 듯 씽크홀에 빠진 환자, 위급 환자를 이송하는 닥터 헬기 기사, 병원 근처 빵집의 아르바이트 생, 병원의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요원, 환자를 이송하는 기사, 임상시험 담당자, 성 소수자의 이야기, 가족과 이별을 선택한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다. 누구 하나를 꼬집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와 연결된 누군가, 그 누군가와 연결된 다른 누군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정세랑의 이야기는 좀 특별하다. 정세랑은 혼자가 아닌 우리여야 한다고,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격정의 목소리가 아닌 그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이다. 소설 속 주요 배경인 병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그곳이 학교든, 은행이든, 시장이든, 바닷가 어촌 마을이든 다르지 않다. 어디에나 사람들이 있고 삶이 있으니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며 간식을 나누던 환자들, 혈관을 찾느라 애쓰는 간호사, 검사를 할 때마다 도움을 준 조무사, 빠르고 정확하게 안내를 하던 접수 직원과 원무과 담당자, 청소를 마치고 빨리 퇴원하라고 웃으시던 청소 아주머니. 그들과 연결된 다른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정세랑의 소설에서 만난 이들 말이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그냥 우리 사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좋은 소설이다. 착한 소설의 장르가 있다면 이런 소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소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당신이 소설을 읽는 게 훨씬 더 좋으니까. 직접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마주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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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7-01-0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가 마음에 크게 남아서 댓글 남기네요.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뭉클합니다.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되셔요.

자목련 2017-01-03 11:50   좋아요 0 | URL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어요. 좋은 소설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처와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위로할 줄 아는 작가라고 할까요. 주제넘지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녀고양이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편안한 일상을 이어가시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