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나요 -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박형서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이 크지만 출간되는 소설을 전부 읽기란 어렵다. 꾸준하게 문예지를 통해 읽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관심 있는 작가의 소설집을 기다리는 경우라면 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소설이 반갑다. 그러니까 수상작이 아닌 다른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게 되는 경우도 그렇다. 2016 제10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거기 있나요』에서 나는 먼저 조해진의 「문주」를 읽었다.

 

 ‘내게 문주의 의미는 문기둥이었다. 대학 시절, 4년 가까이 나와 언어교환을 했던 한국인 유학생이 표준 한국어사전에 나와 있다면 알려준 의미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문기둥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붕을 떠받쳐주는 뿌리이자 건축물의 무게중심이 되는 문기둥은 내 삶 가장 먼 곳에 있는 유적지 같았다.’ (「문주」, 129쪽)

 

 자신의 이름을 통해 존재와 근원에 대해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까. 문주라는 한국 이름으로 독일에 입양된 나나는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다는 서영의 제안으로 한국에 온다. 서영의 집에서 머물며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나나는 철로에서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를 만날 수도 모른다고,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분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한 편의 흑백 다큐멘터리 같다. 나나로 살면서 문주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했을 나는 나나와 문주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긴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문주」, 131쪽)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들려주는 이야기인 천운영의 「반에 반의 반」은 유쾌하면서도 묘한 슬픔을 불러온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르고 하나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도 다르다. 할머니의 고단한 생애는 가족의 역사와 겹쳐지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선물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할머니를 시작으로 돌아가신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소설의 제목처럼 반에 반의 반이라도 알고 있는지 묻게 된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 흥이 많은 냥반이었다는 걸. 흥이 나면 떡도 나오고 노래도 나오고, 노래가 나오면 어깨춤이 절로 따라 붙고. 손수건을 할랑할랑.’ (「반에 반의 반」​, 153쪽)

 

 한유주의 「그해 여름 우리는」자살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던 20대 청춘의 암울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자살하고 싶다는 이유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네 명의 청춘. 저마다의 일을 한다. 그들은 모두 죽고 싶었지만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는 눈부신 청춘, 청춘의 특권은 어디에도 없다. 무겁고 잔잔하다. 과거의 일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이 현재의 청춘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청춘의 일부라는 걸 알기에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 무엇을 꿈꾸며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할까.

 

 ‘그래도 우리가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미량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상대에게서 바닥을 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바닥이나 밑바닥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우리로서는 알지 못했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바닥이나 밑바닥이 드러날까 두려워 서로서로 피상적이지 않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실은 무엇이 피상적이지 않은 질문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210쪽)

 

 ‘그해 여름 우리가 정말로 자살하고 싶었는지 지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 절반의 진심이었다. 다른 세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으니 그들이 진심으로 자살을 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추측컨대 그들 역시 절반쯤 진심으로 자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해 여름 우리는」, 225쪽)

 

 과학 논문처럼 난해하게 다가온 수상작 박형서의「거기 있나요」, 접할 때마다 어렵게 느껴지는 김태용의 소설 「음악 이전의 밤」, 어린 시절 상처를 트라우마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어른의 이야기를 다소 복잡한 인물 소개와 전개로 시작되는 최은미의「눈으로 만든 사람」, 미술 블로그를 운영자와 출판사 편집자와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관계에 대해 그린 김금희의「새 보러 간다」, 가족의 기대를 받았던 삼촌의 인생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윤성희의 「스위치」는 겨울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스위치 같은 거야. 그렇게 이상한 놈이 되는 건. 버튼 하나로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그러니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해.’ (「스위치」, 123쪽)

 

 스위치를 잘 켜고 있어야 한다는 소설 속 삼촌의 말처럼 우리가 잘 켜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문단이 흔들리는 요즘, 소설을 좋아하고 읽는 나는 누군가 그 답을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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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 리뷰 입니다~ 제가 알라딘 이면 , 상주고 싶을만큼 !^^ ㅎㅎㅎ

자목련 2016-12-28 15:11   좋아요 1 | URL
그장소 님이 주시는 상이라 더 기쁩니다^^

[그장소] 2016-12-28 16:27   좋아요 0 | URL
이히힛~ 말로만 반짝반짝 하는 상을 드려서..죄송하네요! 그치만 넘 좋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