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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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고 딸이고 엄마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딸이라 차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대놓고 차별을 하셨다. 귀하고 좋은 건 모두 오빠와 남동생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대학 진학에 있어서도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만류하셨다. 물론 고집이 센 나는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 엄마는 여유로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밥을 사 먹고 나서야 엄마가 말하지 못한 진심을 짐작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성차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았던 건 아닌데도 그렇다. 관심이 많지 않았고 직장에서 부당대우를 받은 기억은 없었다. 같이 어울려 다녔던 여자 동료의 덕택인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시절이다. 조남주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르고 여자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한다.

 

 ‘김지영씨의 어머니뿐 아니라 이미 아이를 낳아 키워 본 친척들, 선배들, 친구들 중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TV나 영화에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만 나왔고, 어머니는 아름답다고 위대하다고만 했다.’ (150쪽)​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급속히 변해도 일과 육아로 지친 일상은 변함이 없다. 그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고, 엄마니까 희생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모성애가 있지 않냐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이를 얻었으니 감내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가 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빠는 여전히 육아의 주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여자들의 승진은 남자들에 비해 느리다. 소설 속 김지영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여자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맞벌이를 하다 아이가 생겼고 출산휴가와 양육에 대해 고민하다 퇴사를 했다. 엄마로 살아가면서 자존감은 떨어지고 김지영은 종종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친정 엄마가 되거나 대학 선배가 되어 김지영을 대변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레 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해야 하는 소설 속 상황이 현실과 너무 닮아서 가슴이 아프다가 화가 났다.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46쪽)

 

 소설은 엄마이자 여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김지영들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그러니까 1%도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보고서라고 할까. 딸 둘을 낳고 셋째가 딸이라서 유산을 선택한 어머니 세대의 고통, 남자아이가 우선이었던 학교생활, 이중적 시선으로 여자 후배를 보던 남자 선배, 아무렇지 않게 언어폭력을 행하는 남자 동료와 상사, 지친 육아에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전업주부에게 ‘맘충이’라 부르는 직장인. 사회 곳곳에서 쏟아지는 차별과 비난을 받으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기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불쑥불쑥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만 같다. 존중받아 마땅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여자의 삶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왜 우리는 이런 소설을 읽고 분노하고 공감하며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작가의 치밀하고 탄탄한 취재가 오히려 씁쓸하다. 이 땅에서 태어난 살고 있는 여자라면 한 번쯤 경험한 에피소드라서 우울하다.

 

 문득,‘여자라서 행복하다’던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여자사람으로 온전하게 행복한 이는 얼마나 될까. 세대가 다르지만 결국엔 김지영의 삶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혼과 육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는 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함께 읽고 느끼고 공감해야 할 중요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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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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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한다. 각자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업무를 하고 월급을 받거나 일당을 받는다. 그것으로 누군가는 풍족하게 살고 누군가는 겨우 살아간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열심히 일이라 하라고 말한다.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젊으니까 괜찮다고, 훈계 비슷한 조언을 내뱉는 이들도 있다. 모두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다른 말로 기성세대, 선배로 부른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은 그 판이 달라진다. 업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가치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을 해주고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니까. 일을 할수록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일에 대한 가치가 흔들리면 매일 고민한다. 이 일을 때려치워야 하나, 참고 다녀야 하나. 일은 생계로 이어지기에 현재의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쉽게 다른 일로 바꿀 수 없기에.

 

 문 기사의 고민도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짐작할 수 없었다. 진수식을 마친 2002호가 누워버렸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당연히 회사에서 누운 배를 세우든지 정리하든지 잘 해결할 거라 믿었으니까. 그러나 회사의 입장은 달랐다. 모든 것이 이익으로 귀결되었다. 원칙과 기준은 무용지물이었고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보험 업무를 팀장이 맞지 않았다면 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회사와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모하며 살았을 것이다.

 

 ‘사실은 사실로 판가름 나지 않았다. 사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힘이었다.’ (65쪽)

 

 수직관계로 이어지는 힘의 위력을 누운 배를 통해 절감했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회장의 측근은 책임이 아닌 권리만 주어졌고 진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대했다. 불합리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배당하고도 알려주는 이가 없었고 실적으로 내기를 바랐다. 사장이 바뀌고 기사에서 대리로 승진을 했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은 2년째 누워 있는 배처럼 멈춰 있었다. 중국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곳곳에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고 협력할 업체도 많다며 으름장을 놓고 사람들을 무시했다. 회사란 등대의 불빛은 꺼지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그곳을 떠났다.

 

 ‘앞서간 사람들은 각자 이정표였다. 그만큼 갔다는 것일 뿐 그곳이 끝이라는 뜻도, 그 길로만 갈 수 있다는 뜻도 아니었다. 꿈이나 이상은 인생이 주는 것, 젊음이 주는 것이다. 가능성이 사그라지고 살아갈 날보다 더 많은 과거들이 자신의 뒤로 퇴적하면 꿈은 가벼워지고 옅어지며 이윽고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298쪽)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냥 이렇게 요령을 익히고 월급을 받고 때가 되면 승진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선택은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젊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소모만 강요하는 회사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문제라는 점에서 충분한 조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혁진의 『누운 배』는 많은 공감을 불러온다.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을 읽다 보면 2002호가 누워 있는 중국의 바닷가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단순하게 직장생활의 애환이나 한국을 떠난 해외로 눈을 돌린 청년실업의 문제를 거론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누운 배’자체가 우리의 현재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배가 처음 누웠을 때 올바른 판단으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며 어영부영 시간을 끄는 회사의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정부나 기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배가 누울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초를 쌓고 기본에 충실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보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단지 요행과 허무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만 봤기 때문에 저 배를 썩도록 내버려뒀고 썩은 다음에야 일으켰으며 일으킨 다음에야 썩은 줄 알았다. 내 인생을 보이는 대로 볼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치와 진실을 통해 똑똑히 들여다봐야 한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아직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래야 한다. 나는 이미 누웠는지도 모르지만, 너무 오래 누운 것은 아닐 것이다.’ (328~329쪽)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기본을 건너뛰면 무너지고 누울 수 있다. 언제나 젊음을 유지할 수 없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온다. 소설 속 문 대리는 서른 초반이다. 젊은 나이로 가능성의 존재다. 소모한 시간 속에 누워있지 않고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고 나가는 젊음, 부럽다. 무엇이 자신의 가치를 빛내줄 것인지 아는 젊음은 아름답다. 설령 그 젊음이 조금 늦었다 할지라도.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것이니 지금 일어나 한발 한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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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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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들에 화가 나고 정작 화를 내야 할 일에는 무기력해진다. 아니다. 사소한 것들에도 점점 화를 내지 않는다. 사소한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말이다. 잘못된 것을 수정해 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는다. 바뀔 수 없다는 한계를 경험했다고 할까. 어떤 제도에 대해 혹은 어떤 관계에 대해 열정이 식은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떠올라 화들짝 놀란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어 부단히 노력하는데 자꾸만 무너지니 어떻게 해야 하나. 이기호의 짧은 소설『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속 40편의 이야기도 그랬다.

 

 심각한 사회 문제인 청년 실업을 풍자한「낮은 곳으로 임하라」속 주인공은 강원도 고향집에 같이 가자는 친구를 따라 시골에 도착한다. 맛있는 집밥을 먹여주겠다던 친구는 아버지에게 사업 자금을 부탁하며 자신의 처지가 주인공보다 낫다고 말한다. 어떻게는 취직을 하려고 발버둥 치는 자신을 백수로 전락시킨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낮은 곳을 찾아 나서는 수많은 취업자가 떠올라 씁쓸하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이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낮은 곳으로 임하라」, 27쪽)

 

 홀로 노년을 보내는 부모 세대의 쓸쓸한 자화상인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은 어머니 곁을 지켜주던 개(봉순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아픈 몸으로 자신을 지켜준 봉순이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늘어나는 수명으로 인해 노인 복지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봄비」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전화를 받고 달려가면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의 잠든 곳에 계신다. 아픈 어머니의 기억에 살아 있는 아버지.

 

 공유가 아닌 소유를 원하는 개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아파트먼트 세르파」는 서글프다. 고층 아파트 주민을 고객으로 하는 치킨집에 배달 알바를 하는 남자는 일을 시작하면서 높은 시급의 이유를 실감한다. 배달원은 오직 계단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행운으로 계단을 오르기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문한 주민에게 치킨을 건네며 나눈 대화처럼 우리는 하나(나)만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글쎄요.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아파트먼트 세르파」, 143쪽)

 

 어느 날 갑자기 방을 떠나 베란다에서 생활하던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진 「아내의 방」과 SNS에서 멋진 남자인 척 살고 있는「남편의 이중생활」은 가족이지만 속내를 알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 같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았던 아내와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고 달랠 수 있을까.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바로 앞 동의 아파트의 불 켜진 주방이었습니다. 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 다른 많은 아내들……. 아내 또한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겠죠.’ (「아내의 방」, 49쪽)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걱정과 고민, 그리고 슬픔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어느 하나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직진하는 게 아니라 제자리걸음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빠르게 걷고 심지어는 달려가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기호는 그런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울고 웃는 우리네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때로 함께 웃고 때로 함께 울게 만드는 따뜻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짧은 이야기. 울고 싶은데 참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울어도 좋다고, 웃을 일 없는 사람들에게 한 번 웃으라고 웃음을 권한다. 그러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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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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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누야마 집안에는 가훈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 그 가훈을 자매는 각각의 방식으로 신조 삼았다. (11쪽)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잠들기 전 아침에 출근할 때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느라 잠들지 못하고 누군가는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어떻게 고백할까 고민하느라 다른 일에 전념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 나의 고민은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민의 당사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어디 고민뿐일까, 모든 일이 그러하다. 에쿠니 가오리의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속 세 자매에게도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나름의 규칙이 있다.

 

 고백하자면 제목에 의지해 나름대로 밝고 명랑한 소설이기를 기대하면서 읽었다. 복잡한 이야기가 아닌 산뜻한 구조로 들려주는 맑은 소설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전혀 복잡하지 않다. 아빠의 외도로 이혼을 한 부모님을 존중하며 아사코, 하루코, 이쿠코 세 자매가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상했겠지만 보편적인 그것은 아니다. 소설은 세 자매의 일상을 교차로 들려준다. 그들의 일, 사랑, 그리고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첫째 아사코는 평범한 주부처럼 보인다. 남편을 내조하며 평온하게 방금 다림질이 끝난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아사코의 결혼생활은 불안의 온실이었다. 결혼 2년에 접어들며 시작된 남편의 폭력에 익숙해졌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사코의 삶엔 생기가 없었고 낮은 자존감으로 그녀의 밑바닥엔 우울과 불안만이 존재했다.

 

 기억은 냉동된 식품 같은 것이라고 아사코는 생각한다. 오래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냥 거기에 있다. 썩는 일도 성장하는 일도 없다.’ (49쪽)

 

 둘째 하루코는 유학을 다녀와 자신의 분야에서 멋지게 성장하는 커리우먼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하루코는 결혼이 아닌 사랑을 원한다. 남자친구의 청혼을 아무렇지 않게 거절하면서 현재의 상태에 만족한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갈망으로 과거 연인을 만나기도 한다. 하루코는 종종 동생 이쿠코와 만나 술을 마신다. 동생의 연애에 대해 조언하기도 하고 이혼한 부모님과 큰언니의 소식을 듣는다.

 

 막내인 이쿠코는 운전면허학원에서 일한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커서 엄마에게 매일 안부 전화를 하고 아빠를 정기적으로 찾아간다. 큰언니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가장 먼저 접한 것도 이쿠코다. 그러나 남자관계에서 있어서는 세 자매 중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친구의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다양한 연령의 남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족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쿠노는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할 뿐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만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걸 가장 어려워한다.

 

 세 자매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사랑에 대한 가치도 삶을 추구하는 방식도 다르다. 세 자매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지만 서로에게 조언을 멈출 수 없다. 어느 누가 언니의 불행을 방관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동생의 안정을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못이다. 에피소드로 끝난 가출 뒤에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찾기로 결정한 아사코, 과거 연인의 메일로 남자친구와 다툰 후 이별을 선언한 하루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친구와의 만남으로 결혼까지 생각하는 이쿠코.

 

 우리는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나의 삶을 산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그것과 손을 잡든 싸우든 내가 해야만 한다. 에쿠니 가오리는 세 자매의 삶을 통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캐릭터에 맞는 배경 설정과 담백하면서도 치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기대했던 산뜻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내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즐겁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하루코의 말처럼 진지함보다는 그냥이 더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인생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야.”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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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이 되었다. 곧 첫눈이 내릴 것이다. 어제는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한 달에 한 번, 내게는 의식처럼 행해지는 일이다.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내게로 달려들었다. 적군을 향한 맹렬함이 느껴졌다. 겨울이구나, 생각했다. 하나의 기도를 계속 드린 것 같다. 아니, 다른 기도도 있었다.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이전과는 다른 순수한 인간처럼 여겨진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하늘은 밝은 잿빛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하늘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사진을 찍어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따뜻한 무언가를 찾는 계절이다. 장갑, 워머, 덧신. 몸을 감추는 계절이다. 마음을 감추는 계절은 아니었으면. 11월은 분주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아직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이랄까. 그 시간에 무언가를 다 채울 수도 없고 무언가를 찾을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곁에 둔 김상혁의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에는 십일월에 대한 두 편 시가 수록되었다. 같은 듯 다른 십일월을 상상하게 된다.

 

 십일월에 내리는 눈에는 비가 섞여 있어 잠을 자고 나면 꿈의 차디찬 들판을 달리던 가슴에 식은땀이 흐른다네 오늘 우산도 없이 현관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내일도 꼼짝없이 눈 속에 서서 떨어야 하는 식이지 누구나 화가 앞에서 발가벗을 용기를 가진 건 아니라네. (「십일월」 ​중에서)

 

 십일월은 내년을 기대하기에도 한 해를 돌아보기에도 좀 이르다. 자동차 정비를 핑계로 부모에게 꾼 돈으로 아이를 지우거나 그런 일을 겪고 내가 개종을 해도 지인들은, 십일월은 참 조용한 달이야, 하고 낮게 중얼거리고는 차를 따뜻하게 끓이기 시작할 만큼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애인과 모텔 전기장판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버지를 잃게 된 어머니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십일월 우기에 태어났다는 신에 대해 생각하면서. ​(「십일월」전문)

 

 11월의 빛을 생각하며 호퍼의 그림을 보기도 한다. 그림 속 여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그곳에서 누구를 기다리는냐고. 이런 놀이 아닌 놀이는 11월과 호퍼의 그림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제를 보냈고 곧 오늘도 보내겠지. 11월의 날들에 나란하게 걷을 수 있는 이가 있기를 바란다. 손을 맞잡고 발을 맞추며 걷는 다정한 사람이길 바란다. 귀여운 강아지 혹은 도도한 고양이여도 좋겠다.​ 곧게 뻗은 은행나무라도 괜찮다. 밤이 되면 전부를 불태워 빛이 되는 가로등이어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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