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5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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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쓰고 시도 쓰는 젊은 작가. 소설도 읽기 전에 시집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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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로 길게 들어오는 햇빛이 정말 좋다. 봄이라 그런가. 곧 노란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필 것이다. 이렇게 또 봄을 본다는 게 기쁘다. 이상하게 자꾸 말랑말랑한 감정에 빠져든다.  읽고 있는 소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감성은 메마른데 그렇다. 봄이 주는 숙제일까. 같은 자리에서 변화 없이 서 있다는 게 무섭도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감사하다. 같은 일상,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나이가 튼 탓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진다. 소설도 많이 읽지만 에세이에 눈이 간다.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은 어떤 내용인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꼭 곁에 두고 싶었다. 엄마의 골목이라니, 벚꽃의 도시 진해와 골목은 어떤 추억을 보여줄까. 벚꽃을 한 아름 안은 듯 마음이 밝아진다.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를 읽으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이승우의 소설은 이상하게 잘 안 읽게 된다. 소설집 한 권만 읽고 몇 권은 정리한 기억이 있다. 과연 이 소설은 읽을 수 있을까. 어쩌면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는 화분의 나무도 잘 키우지 못하지만 나무에 관한 책은 언제나 기대가 크다. 나무, 숲, 그것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랩 걸』은 이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나를 제일 설레게 하는 책은 존 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눈이 내리는 3월이다. 꽃이 피는 3월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혼자 피어나는 꽃을 생각하며 그것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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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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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지키는 빛이 퍼져나가는 광경을 직접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미 조해진에 대한 애정이 많지만 그것이 더 커지고 오래될 것 같은 완벽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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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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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절망의 근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뿌리를 모조리 뽑아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삶을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규정과 시스템의 변화로 이제껏 살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삶을 배정받기도 한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사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럴 때 한 줌의 빛은 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글이라는 걸 안다. 이 모든 게 조해진의 소설집 『빛의 호위』에 대해 잘 말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당신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표제작 「빛의 호위」는 단연 돋보이는 소설이다. 잡지사 기자인 ‘나’는 분쟁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 권은을 인터뷰하면서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반장이 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는 중요한 말을 권은에게 들었지만 그게 자신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소설은 권은과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권은이 나에게 들려주는 사진기자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권은의 카메라와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 속 알마 마이어의 악보에 대한 기억과 의미라 할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살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좋겠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작고 추운 방에서 기다리던 권은에게 도움을 주려고 반장은 아버지의 카메라를 훔쳤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당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알마 마이어 지하 창고에 숨겨 주고 장은 음식과 함께 악보 한장씩을 넣어주었다. 권은의 세상에 카메라는 빛이었고 알마 마이어에게는 악보가 그러했다.

 

 마치 두사람을 태운 전혀 다른 두척의 배가 똑같은 섬에서, 똑같은 풍랑을 견디며 잠시 표류한 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빛의 호위」, 14쪽)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러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의 호위」, 31쪽)

 

 권은과 알마 마이어의 사연을 통해 ‘나’이전과 다른 삶을 바라보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노력이 내일이 없는 누군가에게 내일을 줄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는 것. 빛이 되는 삶, 그 빛의 호위를 받으며 사는 삶 같은 것 말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으로 빛을 전한다. 숨어 있는,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빛의 힘을 꺼내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우리는 저마다의 생을 살기에 급급하다. 모르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불운한 시대에 놓여 역사적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말이다. 결국 개인의 생이 모이고 엮여 역사가 만들어지니까. 독신으로 살다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요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고모의 첫사랑인 재일조선인 유학생 ‘서군’에 대한 이야기 「사물과의 작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모는 서군이 자신에게 맡긴 원고 때문에 서군이 유학생 간첩으로 몰렸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린다. 고모도 서군도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이며 희생자였다. 생의 기억이 전부 사라지는 생에서도 고모에게 붙잡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은 서군이며 그에게 용서를 구하기를 원한다.

 

 특별한 사람과 관련된 일련의 기억은 연극과도 같아서 기억 속 장면들은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인위적인 무대에서 연출될 때가 많다. 기억의 주체는 감정적이고 과잉되기 마련이고, 때때로 사소해 보이는 소품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물과의 작별」, 31쪽)

 

 이처럼 어떤 기억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어떤 기억은 삶을 갉아먹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철학 강사를 했던 「산책자의 행복」속 홍미영의 기억이 그러하다. 철학과는 인문학부로 통폐합되고 어머니의 병원비로 개인파산에 이르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녀에게 철학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독일로 유학을 간 제자 메이린은 메일로 안부를 묻는다. 과거 메이린이 친구의 죽음으로 힘들어했을 때 자신에게 해준 말이 의미를 새기며 살아간다고. 그것은 메이린을 살게 했고 마음 한편으로 삶의 부재를 바라는 현재의 홍미영에게도 그러하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는 게 두려운 누군가에게도 말이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산책자의 행복」, 31쪽)

 

 조해진의 소설은 대체로 무겁고 우울하다. 타인의 고통에 깊이 파고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존재에 대한 사유도 함께 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알바생, 유학생, 이민자, 비정규직 노동자, 입양아)의 등장도 그렇다. 그들이 타고난 유목민의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힘을 지니지 못한 사회적 약자이거나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해서다.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이들 가운데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이는 많지 않다.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선을 긋고 싶은 게 본연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해진은 그런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겨울의 빛은 점차 옅어진다. 온기를 품은 바람이 불고 매화는 새침한 꽃봉오리를 지녔다. 긴 기다림의 끝에 맞이하는 봄의 기쁨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날들이다. 봄을 나누는 동안 이 소설집도 함께 한다면 봄빛이 더 넓고 환하게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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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3-0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가까워오고 있어요.
자목련님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 드시고, 좋은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7-03-06 10:28   좋아요 0 | URL
점점 봄 기운이 느껴져요.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시고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2017-03-07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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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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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2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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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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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0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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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5: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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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프린스 바통 1
안보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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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물건이나 공간을 소재로 한 테마 소설은 이상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테마 소설집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새로운 작가의 소설과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왠지 특별하고 화려한 삶이 숨어 있을 것 같은 호텔이라는 공간의 이야기 『호텔 프린스』엔 삶이 있었다. 누군가는 집처럼 호텔을 드나들지만 누군가는 일생에 단 한 번도 호텔에 가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호텔은 여행이나 휴가 혹은 일탈의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김미월의 단편 「프라자 호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이 떠오른 이유도 그러하다. 아쉬운 점은 호텔리어의 삶은 그린 소설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방향이나 에피소드와의 조우가 당연한 게 아닌데도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호텔에 들어온 모녀를 다룬 황현진의 「우산도 빌려주나요」, 아내를 찾아 하와이에 온 남자의 이야기 「해피 아워」,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호텔에 투숙하며 병원을 오가는 부부의 복잡한 심리를 잘 보여주는 「때아닌 꽃가 인상에 남는다.  황현진의 소설은 처음이었고 서진과 전석순의 단편도 처음이었다. 장편소설로 만났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고 단편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황현진의 소설에서 엄마와 딸은 서로의 방식대로 상대를 대한다. 그러니까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인 것이다. 소설은 갑자기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엄마와의 통화로 시작한다. 딸은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고 엄마와 통화하느라 매장 밖으로 옷을 들고 나온 줄도 몰랐다. 직원은 절도라며 20배의 배상금을 주장한다. 있는 돈으로 일부를 결재하고 엄마를 만난 딸은 집이 아닌 호텔로 데리고 온다. 군대에 있는 애인의 방문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안 되는 애인과 자꾸만 연락을 하는 매장 직원 때문에 불안한 딸과는 다르데 엄마는 이유도 모른 채 호텔에 온 게 마냥 좋다. 황현진의 소설에서 호텔은 지옥 같은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겨진다.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 내용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 성구는 아내 미라를 찾아 하와이에 도착한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서 온 것이다. 여유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성구는 불안하다. 아내와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우연히 발견한 훌라 교습 학원 영수증을 찾지 못했더라면 아내가 훌라를 배우고 학원 원장과 친구처럼 지낸 것도 몰랐을 것이다. 원장은 미라가 하와이로 떠났을 거라는 말을 듣고 성구는 이곳에 왔다. 하지만 어디서 미라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미라가 원했다고 믿는 하와이의 호텔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이처럼 호텔은 떠나온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혜나의 「민달팽이」에 등장하는 호텔은 화가의 작업실이자 집이다. 청결하고 안락한 호텔방이 아니라 전산실, 기계실이 있는 어둡고 습한 지하. 사방에 유화물감이 가득한 그곳에서 스물둘의 ‘나’는 마흔이 넘은 화가와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그런 상대는 아니다. 아빠의 외도 현장을 엄마와 함께 목격한 후 나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후로 이혼한 엄마는 지루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호텔이 등장하지만 호텔의 기능은 상실한 공간이다. 김혜나는 호텔을 부모의 이혼으로 기능을 잃은 ‘나’의 집과 마음을 대변하는 장치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삶에, 아무런 흔적도 의미도 남기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 알아봤자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마치 이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그저 잠시 잠만 자고 나가면 그뿐, 이곳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민달팽이」, 155~156쪽)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모르는 사이 서로의 삶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간,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 될 수 있는 공간, 이전의 나를 버리고 다른 나로 변화할 수 있는 공간, 작가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실이 되는 공간, 그런 호텔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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