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매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자제를 이기는 건 언제나 충동이다. 세계문학에 대한 애정이 자라기 시작했을 때, 웅진의 이런 책들을 샀다. 아쉽게도 그 출판사에 대한 애정은 더 자라지 않았고 다른 출판사로 옮겨갔다. 애정의 이동은 같은 책, 다른 출판사로 이어졌고 펭귄클래식의 자리는 좁다. 이윤기 님의 『조르바를 춤추게하는 글쓰기』란 책은 정말 꽁꽁 숨었는지 찾을 수 없다. 적당히 숨은 책을 찾고 읽다 만 책을 펼치고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운명은 숱한 문양과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운명의 난점은 그 복잡함에 있다. 반면에 삶 자체는 그 단순함이 난점이다. (『말테의 수기』, 198쪽)

귀한 문장, 알찬 문장, 마음으로 파고드는 문장으로 채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월든도 펼친다.
내가 호수를 관찰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인간의 윤리에도 적용된다. 그것은 평균의 법칙이다. 두 개의 직경이 이루는 법칙을 통해 우리는 은하계의 태양과 인간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상적인 행동들과 마음속의 구석진 만(灣) 그리고 그 만의 입구를 드나드는 삶의 물결들을 모두 합해 길이와 폭을 따라 선을 그리면 그 선들이 만나는 지점이 그의 성품이 나타내는 높이와 깊이임을 알게 되리라. 아마도 그의 성품이 나타내는 기슭의 지형이나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만 알아도 그의 깊은 속마음과 감춰진 참모습을 헤아리리라. (「겨울 호수」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