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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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작가를 생각한다. 허구의 이야기, 꾸며 낸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그 내면에는 분명 누군가의 삶이 존재할 거라 생각해서다. 최은영의 소설은 뭐랄까. 연약하면서도 단단하다. 그래서 자꾸만 읽게 되고 생각하게 만든다. 『쇼코의 미소』에서 만난 그 맑음의 슬픔과 연대가 좋았다. 이번 『내게 무해한 사람』도 큰 틀에서는 이전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20~30대 여성의 이야기. 고민과 아픔,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성장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한 게 아닌데도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주저하는 듯 조심스러운 고백처럼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다. 어쩌면 그 문장들은 삶의 한 조각이며 한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만났던 설렘을 간직하며 천천히 서로가 하나가 되어가던 마음, 그 순수하고 풋풋한 아름다움이 수채화처럼 그려진 「그 여름」속 ‘이경’과 ‘수이’의 서로를 향한 뜨거웠던 마음이 서서히 식어가는 게 안타깝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만 영원할 뿐 온도와 형태는 변화하는 게 당연한 것인가. 아니, 열여덟의 그들은 서로에게 무해했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사랑은 퇴색되지 않을 테니까.

여전히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다룬 「601, 602」아프고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여성이라서 더욱 섬세하게 포착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가 그동안 모르 척했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마음이 아프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면 다르게 느꼈을까.

그런가 하면 다툼으로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떨어져 지낸 시간보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더 많은 「지나가는 밤」자매 ‘윤희’와 ‘주희’의 속마음은 애잔하고 뜨겁다. 미국에서 5년 만에 한국에 온 윤희는 동생 주희네 집에서 지낸다.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주희와 어린 시절을 더듬으며 서툰 화해를 한다. 제목은 지나가는 밤이지만 그 밤은 서로의 마음속에 깊게 내려앉을 것이다.


시기를 놓쳐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 아주 작은 용기를 냈더라면 상처로 채워진 시간은 줄어들 수도 있었을 텐데. 어려웠던 집안 사정으로 친척 집을 전전했던 「손길」속 ‘혜인’은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숙모와 재회한다. 삼촌의 죽음으로 자신을 돌보고 키워준 숙모와 멀어졌다. 자신을 맡았던 숙모의 나이를 돌아보게 된다. 어렸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숙모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고. (「손길」 중에서)

이처럼 어떤 마음은 시간이 지나야 전체가 보이기도 한다. PC 통신이 활발했던 시절 친구로 만났던 ‘모래’, ‘공무’, ‘나’(나비)의 방황과 서로를 향한 감정을 다룬 「모래의 집」이 그러하다. 셋은 안정감을 주는 삼각형을 떠올리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뜻한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미주’, ‘주나’, ‘진희’의 우정이 진희가 커밍 아웃을 하면서도 깨지고 결국 진희가 세상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고백」은 안타까울 뿐이다. 그 시간을 잘 견뎠더라면 괜찮아졌을까. 아니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문장이 힘이 된다. 후회로 남은 시절, 용서하거나 용서받고 싶은 순간을 위로한다. 그리운 이의 이름을 가만히 읊조리거나 소중한 사진을 꺼내는 것처럼 누군가 그리울 때면 돼뇌이고 싶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모래로 지은 집」 중에서)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고백」 중에서)

최은영의 소설은 이상하게 어떤 이들을 불러온다. 그들은 제목처럼 내게 무해한 사람이고 내가 사랑한 이들이다. 삶이 불행과 불운으로 가득했다고 믿으며 미욱한 나와 치열하게 다투던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말이 유독 애틋하게 다가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누군가로 인해 슬퍼하게 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내 곁에 함께 누워주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왔다.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몇 안 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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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6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7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10-26 10: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아하는 소설집입니다. 인용해주신 문장들을 다시보니 마음이 또 말랑말랑해지려고 해여. >_<

자목련 2021-10-27 15:53   좋아요 2 | URL
말랑말랑해진 마음이 오래 가면 좋겠어요. 단단해질 때도 필요하지만 말이에요^^*

새파랑 2021-10-26 10: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내 작가님들중에 최은영 작가님 너무 좋더라구요. 특히 <내게 무해한 사람>이 가장 좋았어요 ^^
자목련님 리뷰를 읽으니 다시 읽고싶어 지네요~!!

자목련 2021-10-27 15:52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의 이 댓글을 작가님이 본다면 정말 좋겠어요. 좋은 문장이 참 많았어요^^

mini74 2021-10-26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은영작가님 ! 저도 좋아하는 작가, 입니다. *^^* 반가워서 ㅎㅎ

자목련 2021-10-27 15:51   좋아요 2 | URL
많은 분들의 최애작가인 것 같아요!!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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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를 다 읽고 멋진 한 줄 평을 쓰고 싶었다. 막연하고 포괄적이 ‘좋다’란 말이 아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책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다 ‘무궁무진하게 건전한 배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이 책 편집자란 이력이 있고 독서교실을 운영하지만 아이는 없는 저자만 생각했을 때 어린이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린이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서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어떤 지식에 중점을 두는 건 아닐까 했다. 그건 독서교실이라는 공간이 글쓰기, 나가서는 논술로 이어지는 시작점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 대해 잘 모르고 오해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겐 어린이라는 말보다 아이가 더 익숙하다. 한 번도 어린이라는 호칭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주변의 어린이에게도 그렇게 불러준 기억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린이의 생각에 대해서, 어린이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생각해 봤다는 뜻이다.


독서교실에서 만난 어린이는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인격체이고 저마다 지키고 싶은 자신들의 마음과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건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생김새가 다르듯 그들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개별적인 어린이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애쓴다 (42쪽)


키가 작아서 높은 곳이 궁금했을 어린이에게 화를 내고 단순히 식감이 싫어서 버섯 먹기를 거부했을 뿐인데 편식한다고 혼을 냈다. 모두 어린이였으면 그 시절의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무조건 건강에 좋다고 먹기를 강요한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런 마음을 충분히 알고 어린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는 우아하고 점잖다.


어린이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안다. 독서교실에서 저자인 선생님을 챙길 줄 알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책을 골라주고 함께 읽으면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하면서 하는 아이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쁘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엔) 제 마음이 있어요.” (72쪽)


독서교실에 수첩을 놓고 간 아이가 내내 걱정하고 수첩을 찾으면서 선생님께는 알리지 말라고 한 이유를 들으니 더욱 놀랍다. 그 수첩을 저자가 선물했기 때문이고 만약 그 사실을 선생님이 알면 속상해할 거라고. 그러면서 다른 수첩에 기록한 내용을 그 수첩에 다시 옮겨 적는 모습을 상상하니 묘한 기분이다. 어떤 마음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것, 어른인 내가 잃어버린 그 마음을 들킨 것 같다고 할까.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편협한 사고를 이런 글에서 발견한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어린이가 아닌 학생으로만 생각하고 대하는 어른들 속에 나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개인의 나가 아니 일률적인 어른으로 대한다면 싫어하면서 어린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어린이는 2학년 때 2학년만큼 자라고, 5학년 때 5학년만큼 자라지 않는다. 6학년 어린이 중에도 4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고, 3학년 어린이 중에도 5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다. 심지어 한 어린이가 어떤 때는 3학년 같고, 어떤 때는 6학년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어린이의 학년만 중시하는 바람에 어린이가 발달시켜야 할 여러 덕목들 가운데 공부에 대한 것만 강조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의심하고 있다. (79쪽)


이 책의 제목인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른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다가가야 하는 세계였다. 올바른 교육과 환대를 받은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당연하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이라고 하면서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를 만난 어린이들이 부러웠다. 어린이였던 나에게 존댓말을 해준 어른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 존중받는 기억도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어린이를 존중하려고 노력한 적이 거의 없다.


어린이를 지나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이 읽고 배워야 할 책이다. 어린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청소년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어른의 몫이다. 책에서 만나 모든 어린이를 더 많은 어른들이 만나고 기억해야 한다. 그 어린이는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가족 구성원인 어린이뿐만 아니라 주변 어린이, 모든 어린이는 책의 저자처럼 ‘남의 집 어른’인 우리가 지켜야 할 귀하고 소중한 존재란 걸.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또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사이에 늘 새로운 어린이가 온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 문제는 한때 지나가는 이슈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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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든 글은 하나의 소설이며 하나의 귀중한 기록 일지도 모른다. 단지 형식만 다를 뿐. 때때로 삶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어떤 소설은 너무도 평이하고 단조롭게 흐른다. 마치 소설 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처럼. 지금 내 곁에는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에세이가 있다. 각각 다른 작가의 글이다. 두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어느 쪽으로 무게를 둘 수 없을 정도로 균등한 애정을 보낼 수 있다.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황정은이 첫 에세이를 냈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일기日記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그건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은 평범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하루는 어떤 이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며 어떤 이에게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이 커진다. 코로나 시대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들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면서도 그 변화에 어떻게든 반응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건 낯설게만 느껴진다. 반응의 시차가 너무 큰 것일까. 어쩌면 나에게만 해당되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실시간으로 영국의 모습을 중계하는 뉴스를 봤다. 그곳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웠고 마치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2020과 2021년의 두 계절이 머나먼 과거처럼 보인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 나를 기록한다는 것, 어제와 다른 나, 과거와 다른 나를 마주하는 일,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을 발견하는 일은 가장 중대한 일은 아닐까.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의 소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어 좋다. 나의 성장이 그의 성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좁고 작겠지만. 그러니 이런 문장을 따라 읽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주억거려도 좋다. 순도 높은 애정을 고백하고 싶을 만큼. 황정은의 글에서 앤을 만날 거라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게 특히 좋았던 부분은 마릴라가 내면의 혼란을 드러낸 순간들이었다. 앤은 과거에 마릴라가 가져보지 못한 질문과 표현해 보지 못한 분노로 마릴라와 충돌하곤 하는데 마릴라는 그때마다 당혹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돌이킨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앤에게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는 몇몇 순간들은 거의 질투로도 보였는데,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마릴라가 마냥 완성된 어른이 아니라서 좋았고 그에게도 욕망과 원망이 있었다는 걸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마릴라에게 그런 순간을 마련해 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고마웠다. 그들은 앤의 첫 등장 장면을 미래만 상상하며 그린 게이블즈로 오는 중인 앤이 아니라 그린 게이블즈에 당도하기 전의 앤으로 그려냈다. (46쪽)


한강의 소설은 이상하게 항상 신중함이 느껴진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을 고르고 선택하는 일에 있어 무척 많은 시간을 들여 공들여 쓴 것 같다는 뜻이다. 어느 작가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겠냐만 특히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겹겹이 쌓인 비밀의 겹을 하나하나 벗기고 마침내 그 비밀을 마주하는 순간의 슬픔이나 분노를 토해낸다고 할까.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그런 소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 이어 이번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 · 3 사건을 말한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일은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런 마음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전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최근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눈雪의 은유와 상징에 대해 가만히 생각한다.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강풍이 먼바다의 먹구름을 흩을 때마다 햇빛이 수평선으로 떨어진다. 수천수만의 새떼 같은 눈송이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나 바다 위를 쓸려 다니다 빛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 내가 이마를 대고 있는 차가운 차창에도, 두 개의 와이퍼가 끼익, 끽 소리를 내며 닦아내는 버스 앞 유리에도 커다란 눈송이들이 쉼 없이 부딪혔다 사라지고 있다. (67~68쪽)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가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구름에서부터 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떨어져내린 눈이다. 그사이 얼마나 여러 차례 결속했기에 이렇게 커졌을까? 그런데도 이토록 가벼울까. 이십 그램의 눈송이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커다랗게 펼쳐진 형상일까. (111쪽)


글을 읽는 일은 쉽고 단순하다. 그러나 글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하다. 이해하려는 마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해하려는 마음은 다가가는 마음이고 애쓰는 일이다. 황정은의 에세이와 한강의 소설을 이해하는 순간은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믿으면 괜찮다. 읽는 일은 중요하다. 쓰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우선 읽어야 한다. 읽는 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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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0-14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 깊이 동감하게 되네요.^^

자목련 2021-10-15 17:12   좋아요 2 | URL
^^*
스텔라 님, 비가 오고 스산하네요.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1-10-14 19: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황정은이 빨간머리 앤에 대해???
황정은과 한강의 신간들 사야지...하면서 까먹고 있었어요.
이해하려는 마음읏 다가가는 마음이고 애쓰는 일!!! 저도 자목련님의 말씀에 고개 끄덕끄덕 했네요^^

자목련 2021-10-15 17:13   좋아요 3 | URL
그쵸? ㅎ
너무 반갑고 좋았어요.
책읽는나무 님, 향기로운 가을 이어가세요^^

- 2021-10-25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또 이글 참 좋아요🥺 마지막 문단에서 너무 뭉클했어요!!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해하려는 마음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용기가 되요. 결국 나의 오해로 가득한 이해라할 지라도.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존중이 이해하려는 노력이기에.

자목련 2021-10-26 09:50   좋아요 3 | URL
저야말로 공쟝쟝 님의 페이퍼, 넘 좋았어요!!!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넘 반가운데, 어쩌면 우리는 같은 부분을 오래 읽고 오래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구나 싶었습어요. 달아나는 가을, 그 안에서 건강하고 평온한 시간 이어가세요^^

- 2021-10-26 10:12   좋아요 2 | URL
동감입니다. 좋은 책들 사이를 오가며 평온하시기를 🙏🏻

scott 2021-11-05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행복한 금요일
주말 따숩게 ^ㅅ^

자목련 2021-11-09 09:37   좋아요 2 | URL
스콧 님도 축하드려요!
부쩍 쌀쌀해요,. 건강 잘 챙기세요^^

그레이스 2021-11-05 16: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스틸러 고양이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축하합니다. 자목련님~

자목련 2021-11-09 09: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축하드리며 그레이스 님의 마음이 고양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요^^

thkang1001 2021-11-05 16: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1-11-09 09:35   좋아요 1 | URL
응원과 격려의 댓글 감사합니다. 다정하고 따뜻한 시간 보내세요^^

mini74 2021-11-05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1-11-09 09:35   좋아요 2 | URL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1-05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1-09 09:34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이어가세요^^

초딩 2021-11-07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자목련 2021-11-09 09:34   좋아요 2 | URL
초딩 님도 축하드려요.
따뜻한 화요일 보내세요^^
 
다산의 철학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인문학 편지
윤성희 지음 / 포르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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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른들의 말이 꼭 들어맞는 때가 있다.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을 정도다. 그들에게도 그런 말을 전하는 어른이 있었을 것이다. 쓴소리를 하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쓴소리, 이름하여 잔소리를 한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 그건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게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스승이나 선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도 그런 어른이다. 아들과 제자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했던 건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였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의 마음이나 태도는 다르지 않아 그대로 모든 게 적용된다는 게 놀랍다. 편지를 소개하는 편지 큐레이터인 저자는 그 점을 잘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산의 철학을 들려준다. 얼핏 생각하면 조선시대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라 접점이 있을까 싶지만 편지를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산의 편지는 모두 32편으로 가장 많은 부분이 아들인 학연과 학유에게 전하고 있지만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편지를 받는 이들이다. 중한 죄를 지어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혹여 아버지로 인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할까 하는 마음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돌고 돌면서 한시도 멈추지 않으니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재난으로 끝내 청운의 꿈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는 가슴속에 늘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을 품고서 천지도 작다고 보고 우주도 가볍다 여겨야 옳은 것이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24쪽)


한때의 재난은 다산의 아들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지금 우리도 그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안으로 파고들어 움츠러드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내면으로 파고들어 더 깊고 단단한 나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길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마주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런 점에서 서자로 태어난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도 그런 격려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적용은 더욱 그러하다. 취업이 너무 힘든 요즘 취준생이나 자꾸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이들에게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걸 알려준다.


출발선은 내가 그을 수 없지만 도착점은 내가 정할 수 있지 않는가? 세상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길은 언제나 사람 수만큼 있고, 나는 나의 길을 만들 수 있다. 세상이 ‘이게 너의 한계’라고 말할 때마다 기억하다. 나는 내 삶의 영역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으며, 내 인생의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걸. (37~38쪽)


그런 마음은 비단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인생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사는 게 뭔지 조금 안다 싶어도 언제나 고비를 만난다. 고비는 저마다 다른 해답을 안겨주기도 하고 때론 비관과 비참함을 몰고 오기도 한다.


귀양살이 아버지 다산을 향한 아들의 애틋한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아들 학연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로 인해 유배를 풀어주라는 명을 받았다. 반대편의 사람들은 정약용이 도성 안으로 오는 것을 막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직접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뜻을 전한다. 하지만 다산은 귀양은 죽고 사는 일에 비해 작은 일이라며 자신의 절개를 꺾으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자신만의 삶을 사는 일과 죽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답대로, 다른 이는 그 사람이 가진 답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가진 정답을 그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160쪽)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가하는 말들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때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일, 그게 가장 현명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관심이 필요한 일에는 무감하고 관심이 필요 없는 일에는 지나치게 말을 거든다. 그저 지켜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희일비하는 삶이라는 걸 안다.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변수가 생기는 게 삶이다. 그 자체를 수용하는 일은 어렵다. 다산의 경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했다는 걸 편지가 증명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본질에 대해서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걸.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숭고하다. 그것이야말로 다산이 전하고 싶은 가장 소중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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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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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하나만 말해주고 전부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 하나가 아주 중요한 힌트였다고 여기면서.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 그 이상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어떤 형체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편혜영의 단편집 『어쩌면 스무 번』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소설을 읽는 일과 마음을 읽는 일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편혜영의 소설에는 확연하게 실체를 공개한 적이 없는 듯하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말이다. 소설 전반의 분위기는 언제나 불안과 공포가 가득하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무엇에서 시작되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독자가 모두 아는 알고 있다는 전제로 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 일상 곳곳에 포진되어 있으니까.



편혜영은 슬그머니 그것을 던질 뿐이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은 하나같이 불운하고 불행하다. 막연하게도 어떤 희망이나 행운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저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편혜영은 몇 개의 조각만 보여준다. 그 조각으로 퍼즐 전체를 상상하는 일, 인물의 과거나 상처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할까.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에서는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의 전원주택에 대한 평화로운 상상을 깨부순다. 치매에 걸린 장인을 돌보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수면제를 먹고 장인이 잠든 그 시간만이 화자인 ‘나’와 아내에게 휴식의 순간이라는걸. 부부에게 찾아온 방문객으로 인해 인지하는 현실적 문제. 한 폭의 그림처럼 여겨지는 전원주택은 안전한 곳도 독립된 곳도 아니었다. 그나마 화자에게는 모두를 피해 옥수수밭에서 숨어 혼자 바라보는 달이 유일한 위안이다.



이랑에 앉아 옥수숫대 사이로 서서히 해가 지는 걸 지켜봤다. 붉은빛을 띠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건 무시무시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조금 더 기다리면 하늘에 희미하게 달이 떠올랐다. 운 좋게 둥근 달을 보는 날이면 옥수수밭에 숨어서 이렇게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싶어졌다. 어쩌면 스무 번. 기껏해야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졌다. (「어쩌면 스무 번」, 27~28쪽)


막다른 골목으로 내쫓기는 기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편혜영의 소설 속 인물은 모두 그러하다. 바닥을 쳐야 일어설 수 있다는 그런 회복력이 아니라 끝도 없이 마주하는 막다른 골목. 「호텔 창문」속 ‘운오’는 사촌 형의 죽음으로 인해 살아남았다는 기억만으로도 살아가는 일이 힘겹다. 자신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기억의 늪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그런 부채감은 어디에나 있다. 「플리즈 콜 미」의 ‘미조’는 딸을 유학 보내고 모든 게 잘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퇴직 후 무리하게 벌인 사업이 망하고 치매에 걸린 남편이 실종되고 공부 대신 결혼을 선택한 딸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남편의 실종 후 미조는 술에 의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딸과 사위가 있는 미국에 다니러 와서도 그들 몰래 술을 마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미조는 알 수가 없다. 남편의 마지막 행선지에 대해 경찰과 딸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 이유도 잘 모르겠다. 그건 딸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미조에겐 비밀이 돼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저 잘 살고 싶었고 잘 살기 위해 약간의 비밀과 가면이 필요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가족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용실을 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좋은 날이 되었네」 속 모자도 그랬다. 아들은 아들대로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도 자신의 방식으로 아들을 대했다. 누구에게도 어머니는 양육에 대해 관심과 조언을 얻지 못한 채 아들을 키웠다. 사실은 서로에게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알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건물만 믿고 대출을 하고 투자를 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많은 걸 묻지 않았고 자신의 형평에 대해서도 전하지 않았다. 자꾸만 늘어나는 아들의 빚처럼 어머니에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 아들이 모르는 사이 건물은 남에게 넘어갔고 아이를 봐주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심지어 그 아이를 학대하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가위를 휘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나는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지만 언제나 사이가 괜찮았다.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좋은 날이 되었네」, 190쪽)


산다는 건 모르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이다. 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질병이나 죽음은 곁을 내주며 살아가고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불운과 불행을 막을 방패는 항상 한발 늦게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보험을 파는 아줌마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룬 「미래의 끝」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완벽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비밀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편혜영의 소설은 불편한 비밀을 하나 더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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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트북으로 자목련님 서재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네요
저 고양이는 항상 저 자리에 있나봐요
너무 예쁩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1-09 09:42   좋아요 0 | URL
네, 얼마 전부터 고양이가 저 자리를 지켜요^^

새파랑 2021-11-05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책과 표지가 자목련님하고 잘 어울리는거 같아요^^

자목련 2021-11-09 09:41   좋아요 0 | URL
새파랑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저와 잘 어울린다는 말씀에 이 소설집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포근하고 다정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1-05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1-09 09:40   좋아요 1 | URL
^^*

초딩 2021-11-07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1-11-09 09:40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