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철학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인문학 편지
윤성희 지음 / 포르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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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른들의 말이 꼭 들어맞는 때가 있다.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을 정도다. 그들에게도 그런 말을 전하는 어른이 있었을 것이다. 쓴소리를 하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쓴소리, 이름하여 잔소리를 한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 그건 애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게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스승이나 선배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좋은 어른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도 그런 어른이다. 아들과 제자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했던 건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였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의 마음이나 태도는 다르지 않아 그대로 모든 게 적용된다는 게 놀랍다. 편지를 소개하는 편지 큐레이터인 저자는 그 점을 잘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산의 철학을 들려준다. 얼핏 생각하면 조선시대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라 접점이 있을까 싶지만 편지를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일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산의 편지는 모두 32편으로 가장 많은 부분이 아들인 학연과 학유에게 전하고 있지만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편지를 받는 이들이다. 중한 죄를 지어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혹여 아버지로 인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할까 하는 마음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돌고 돌면서 한시도 멈추지 않으니 이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재난으로 끝내 청운의 꿈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는 가슴속에 늘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을 품고서 천지도 작다고 보고 우주도 가볍다 여겨야 옳은 것이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24쪽)


한때의 재난은 다산의 아들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지금 우리도 그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안으로 파고들어 움츠러드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이 내면으로 파고들어 더 깊고 단단한 나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길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마주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런 점에서 서자로 태어난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도 그런 격려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의 적용은 더욱 그러하다. 취업이 너무 힘든 요즘 취준생이나 자꾸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이들에게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걸 알려준다.


출발선은 내가 그을 수 없지만 도착점은 내가 정할 수 있지 않는가? 세상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길은 언제나 사람 수만큼 있고, 나는 나의 길을 만들 수 있다. 세상이 ‘이게 너의 한계’라고 말할 때마다 기억하다. 나는 내 삶의 영역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으며, 내 인생의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걸. (37~38쪽)


그런 마음은 비단 청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인생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사는 게 뭔지 조금 안다 싶어도 언제나 고비를 만난다. 고비는 저마다 다른 해답을 안겨주기도 하고 때론 비관과 비참함을 몰고 오기도 한다.


귀양살이 아버지 다산을 향한 아들의 애틋한 마음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아들 학연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그로 인해 유배를 풀어주라는 명을 받았다. 반대편의 사람들은 정약용이 도성 안으로 오는 것을 막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직접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뜻을 전한다. 하지만 다산은 귀양은 죽고 사는 일에 비해 작은 일이라며 자신의 절개를 꺾으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자신만의 삶을 사는 일과 죽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답대로, 다른 이는 그 사람이 가진 답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가진 정답을 그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160쪽)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가하는 말들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도움을 요청할 때 구체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일, 그게 가장 현명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관심이 필요한 일에는 무감하고 관심이 필요 없는 일에는 지나치게 말을 거든다. 그저 지켜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희일비하는 삶이라는 걸 안다.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변수가 생기는 게 삶이다. 그 자체를 수용하는 일은 어렵다. 다산의 경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력했다는 걸 편지가 증명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본질에 대해서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걸.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숭고하다. 그것이야말로 다산이 전하고 싶은 가장 소중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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