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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팬데믹의 시대,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이별은 준비 없이 진행된다.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고,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 생은 유한하고 모두 죽음을 맞는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기다리며 막연하게 후회와 슬픔에 잠겨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영원 스승 이어령이 김지수 기자와 나눈 대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과 삶에 알려준다.
무엇보다 스승은 내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그는 음습하고 쾨쾨한 죽음을 한여름의 태양 아래로 가져와 빛으로 일광욕을 시켜주었다. (9쪽)
이미 김지수는 이어령과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시, 라스트 인터뷰라는 말처럼 정말 마지막 인터뷰인 것이다. 암을 선고받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스승이 들려주는 사유는 일상 대화처럼 편안하게 시작되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풍부한 철학 수업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매주 화요일의 대화로 총 16번 이어졌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어둠의 팔목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23쪽)
죽음과 팔씨름을 하는 하루하루를 짐작할 수 있을까. 이어령처럼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겐 있을까.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저자를 맞이하며 풀어놓는 삶의 지혜와 사유는 한 분야에 속하지 않고 전방위적 대화로 확장된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대화가 하나도 어렵지 않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같다고 할까. 인문, 철학, 문학, 다방면에 정통한 이어령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한 우물이 아닌 여러 우물을 파는 일, 그는 호기심이고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여러 우물을 팠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계속 쓰는 것이라고. 그러니 책도 정독하거나 차례로 읽지 않고 재미있는 부분만 읽고 재미없으면 던져버린다고. 끈질기고 지독하게 무언가에 열중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메이비maybe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 말이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인식하고 존재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일까. 죽음과 존재에 대한 사유가 유독 많고 성경 구절이나 신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해설이 무척 놀랍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마음이나, 돌아온 탕자에 대해 이젠에는 한 번도 듣지 못한 해석이라고 할까. 아흔아홉 마리도 결국은 각각 양 한 마리라는 것,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경험하고 돌아왔을 때 더 값진 삶을 안다는 사실.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말고 방황하고 길 잃은 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조건 성공만 바라는 모두를 뜨끔하게 만든다.
팬데믹에 접어들면서 마스크 한 장에 생명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 집에서 태어난 집에서 죽었던 우리네 삶이 어쩌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가. 일상의 가까운 곳에 무덤이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었고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마지막 의식도 직접 하지 않았냐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했는데 언제부터 죽음을 다루는 방법이나 태도가 변했을까 싶다.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정녕 죽음을 알 수 있을까.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 가만히 안아줄 수 있을까. 딸인 이민아 목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책 서두에서 죽기 살기로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는 글이 떠올랐다. 죽음이란 끝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모른다는 그의 설명에는 뭔가 울컥하면서도 서글퍼졌다. 비슷한 고통을 경험했더라도 그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기에. 저마다의 존재 사이에 드리운 얇은 막.
“우리은 영원히 타인의 아픔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얇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처진 얇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 일 수 있는 것’처럼.” (122쪽)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어른으로, 스승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자신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라는 말처럼 하루하루의 생이 나만의 것이며 나만의 무늬로 채워진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마,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179쪽)”
“죽음은 고통이야. 그런데 고통이 죽음은 아니야. 고통이 끝나는 공백, 시끄러움이 끝나는 정적…… 그러니까 고통까지도 죽음 밖에 있는 거라네. 숨이 넘어가서 무로 돌아가는 그 순간은 우리가 체험할 수도 느낄 수도 없어.” (247쪽)
책 전체가 하나의 강의이자 거대한 울림이며 어른의 위로라고 해도 맞을 것이다. 생의 끝에서 맞이한 진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게 감사였고 사랑이라고 말이다. 가장 최근에 곁을 떠난 아버지와 큰 언니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집이 아닌 병원에서의 마지막.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큰 언니. 마치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이 겹쳐지는 책, 그 안에서 나의 마지막도 생각하게 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 우리의 생이 모두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받은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