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여름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 여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여름과 친해지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장맛비의 피해가 없이 지나가는 여름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막 시작된 장마로 피해 소식이 들린다. 모두에게 똑같은 여름은 없다는 걸 이 여름은 또 상기시킨다.


날씨를 검색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시간대별로 날씨를 살핀다. 언제부터 날씨가 우리 일상을 이렇게 지배했던가. 준이 없이 소나기를 맞던 날은 기억에만 존재한다. 예보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자연의 일을 인간이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AI 시대에는 당연한 걸까.


여름엔 수국, 여름엔 장마, 여름엔 더위, 여름엔 휴가, 여름엔 이런 책들. 바로 김연수의 단편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말하고 싶은 거다. 작년 가을에 나온 단편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이어 반가운 소식이다. 어쩌면 여름을 위한 기획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기획을 칭찬한다. 표지는 또 얼마나 황홀하게 빛나는가.











한 권은 아쉬우니 한 권 더. 책장에 있는 나쓰메 소세키 읽기를 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말하길 『마음』이 좋다고 하니 책장에 없으니 마지막으로 구매. 아름답지 않은 변명이다. 어쨌든 너무나 많은 여름이 마음을 움직인다. 7월엔 마음을 읽게 될까.






이번엔 수국 사진도 한 번 더! 분홍 수국은 분홍 수국만의 자태가 있다. 사실, 나는 분홍 수국보다는 청보라 수국에 마음이 기우는데 막상 분홍 수국을 마주하고 나니 내년 수국 주문을 걱정한다. 내년엔 분홍이랑 청보라 두 송이를 주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년엔 내년의 수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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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6-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새로 나온 김연수 작가님 책이군요! 표지를 어쩜 이리 잘 뽑아냈는지요^^ 수국 사진까지 참 아름답습니다.
남부는 피해가 있는 모양이더군요ㅠㅠ 모쪼록 앞으로 남은 여름 큰 피해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목련 2023-06-30 10:48   좋아요 0 | URL
출판사 마케팅의 승리입니다. 피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반도가 참 넓구나 싶어요. 주말엔 폭염이라는데, 얼마나 더울까 싶고요. 모두가 건강한 여름이면 좋겠어요.

blanca 2023-06-3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가 깜짝 책을 내주어 얼마나 기뻤는지요. 기대만큼 역시나 좋았답니다. 수국 참 이쁘네요!

자목련 2023-07-03 09:5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너무 좋았어요^^

은오 2023-06-3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왠지 여름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안친하시다니.... 어떤 계절 좋아하세요?! 전 여름보단 겨울이 좋긴 합니다 ㅋㅋㅋ
책 표지랑 꽃 너무 예뻐요!! 저렇게 생긴게 수국이구나... 이제 저렇게 생긴 꽃 보면 저도 수국이다! 할 수 있겠어요!

자목련 2023-07-03 09:55   좋아요 1 | URL
더위에 약해서 여름은 힘들어요. 땀으로 삐질삐질~~
은오 님의 수국과 반갑고 즐겁게 인사하길 바라요!

망고 2023-06-3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랑 책표지 너무 예뻐요! 근데 김연수 작가님 이번책도 단편집이네요 장편을 바랬는데😂 그래도 책이 예뻐서 탐나긴 해요ㅎㅎㅎㅎ

자목련 2023-07-03 09:45   좋아요 0 | URL
망고 님의 바람처럼 장편은 열심히(?)쓰고 계시지 않을까요? ㅎ
예뻐서 탐나는 마음, 제 마음이었습니다 ㅋ

서니데이 2023-06-3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 참 예쁘네요. 이번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책 표지도 다지인이 좋은 것 같아요.
자목련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일들 가득한 7월 되세요.^^

자목련 2023-07-03 09:44   좋아요 1 | URL
김연수 작가의 책은 선물 같아요 ㅎ
오늘도 많이 더울 것 같아요.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3-07-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을 보며 책을 보실 듯하네요 여름에 저 책이 딱 나와서 반갑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3-07-03 09: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딱 나와서 좋았어요^^
 
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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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출판사의 소개 문구나 먼저 읽은 이의 리뷰를 읽어도 내가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 는 봄에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라는 걸 나는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봄이 되면 이 소설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풀베개』는 봄꿈처럼 아련하고 잡으려 애써도 잡히지 않는 꽃잎으로 남은 소설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는 이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뭐랄까, 소설이 아닌 산문 같다고 할까. 소설 곳곳에 나쓰메 소세키의 ‘하이쿠’가 많이 등장한 탓도 있겠지만 소설 속 화자의 생각이 나쓰메 소세키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예술에 대한 생각 말이다. 첫 문장부터 언급되는 예술에 대한 정의와 이해가 그렇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상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묘사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솟아난다. 착상을 종이에 옮겨놓지 않아도 옥이나 금속이 스치는 소리는 가슴속에서 일어난다. 이젤을 향해 색을 칠하지 않아도 오색의 찬란함은 스스로 심안(心眼)에 비친다. 그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이렇게 깨달을 수 있고 혼탁한 속세를 마음의 카메라에 맑고 밝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16쪽)


화자인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완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소설은 ‘나’가 만난 길에서 만난 이들과 나누는 이야기, 그 안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들은 하이쿠로 채워진다. 봄날의 풍경, 몽환적인 여인 ‘나미’, 스님, 러일전쟁 참전을 위해 떠나는 ‘나미’의 사촌의 느낌들. 어쩌면 하이쿠도 한 편의 그림이라고 하면 맞을 수도 있다.


‘나’와 ‘나미’ 사이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둘이 나누는 하이쿠 대화가 아름답다. 연애나 사랑, 현실의 고민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진정한 삶은 따로 있다는 듯한 ‘나미’의 말투가 인상적이다. 온천장 주인의 딸로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나미’, 미친 여자라는 소리를 듣지만 정작 미친 건 러일전쟁이 일어난 세상이 아닐까 싶다.


그런 나쓰메 소세키의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 녹아있으면서도 아스라이 사라지는 봄날의 모습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그려낸다. 붉은 동백에서 아름다움이 아닌 독기를 발견하는 부분은 지독하게 아리다. 서른의 청춘 ‘나’가 바라보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그러한 것처럼. 짧은 분량임에도 여전히 수월하지 않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지만 사랑받는지 알 것도 같다.


확 피었다가 툭 지고, 툭 졌다가 확 피고, 수백 년의 성상(星霜)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산그늘에서 태연자약하게 살고 있다. 단 한 번 보기만 하면 그걸로 끝! 본 사람은 그녀의 마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 빛깔은 단순한 빨강이 아니다. 도륙된 죄수의 피가 저절로 사람의 눈을 끌어 스스로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듯한, 일종의 이상한 빨강이다. 보고 있으니 빨간 것이 물 위로 뚝 떨어졌다. 고요한 봄에 움직인 것은 그저 이 한 송이뿐이다. 잠시 후 다시 뚝 떨어졌다. 저 꽃은 결고 지지 않는다. 무너진다기보다는 단단히 뭉친 채 가지를 떠난다. 가지를 떠날 때는 한 번에 떠나기 때문에 미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떨어져도 뭉쳐 있는 것은 어쩐지 독살스럽다. (137쪽)


‘나’는 계획했던 그림은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으로 그려진다. ‘나’의 그림의 완성도는 모르지만 『풀베개』란 그림은 자꾸 보고 싶은 한 편의 수채화이자 읽고 싶은 담백한 산문이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에 읽으면 더 황홀하겠지만 장마와 열기로 뜨거운 여름에 봄을 그리며 읽어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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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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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죽기를 바라는 자매가 있다. 투정 비슷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어머니가 죽기를 바란다. 제발 모든 걸 끝내고 떠나주었으면 한다. 그게 어머니를 위해서도 자매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일이라고. 설마 그런 딸들이 있을까 싶지만 오랜 시간 자식들 집을 오가며 지냈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고모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즈무라 미나에 장편소설 『어머니의 유산』 속 ‘나쓰코’와 ‘미쓰키’도 그랬다. 자신밖에 모르는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대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자매의 어머니는 보통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자녀를 위해 희생하거나 인내하는 어머니가 아닌 모든 일의 우선이 자신이었다. 허영과 사치가 가득했고 자신이 원했던 삶의 욕망을 딸들에게 투영시켰다. 그럴 수 있다. 그 덕분에 자매는 피아노를 배우고 파리로 유학도 다녀왔다. 언니 나쓰코는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부유하게 살고 미쓰키도 교수인 남편을 두고 자신도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늙은 어머니를 챙기고 다치면 병원에 모시고 간병을 하는 일, 당연한 자식의 도리 같지만 미쓰키 혼자서 감당하는 일은 벅찼다. 어려서부터 언니만 예뻐하고 차별했던 어머니를 어쩌다 자신의 몫이 되었을까? 어머니를 ‘그 사람’이라 칭하는 언니 나쓰고.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가 소개한 남자와 결혼한 나쓰코는 아이까지 낳았지만 다른 남자가 생겼다. 어머니는 딸을 이해하지 않았고 나무랐다. 그 이후로 둘 사이는 거리가 생겼고 대신 미쓰키가 어머니를 더 챙기게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곁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자식에게 닥친 남편의 외도로 고민하는 오십 대 미쓰키의 복잡한 내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막대한 유산을 남긴 어머니, 어머니의 유품을 챙기며 자매는 어머니를 회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틋함이나 그리움 따위는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어머니, 외할머니의 인생을 떠올리면 같은 운명으로 이어진 것 같다. 게이샤였던 외할머니, 사생아로 태어난 어머니를 위해 하녀처럼 살았던 외할머니와 그런 엄마에게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영악했던 어머니. 첫 결혼에서 낳은 딸을 버리고 아버지를 선택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버린 어머니. 노년에도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사고로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모든 걸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인생에는 계절이라는 것이 있다. 인생의 봄에서 한여름까지는 뭔가를 요구하는 어머니의 강한 욕망이 어머니에게 미래를 주고 있었다. 그것은 딸들에게도 미래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단풍이 짙어지고 나서는 어머니의 강한 욕망이 겉돌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이 되어도 계속해서 허덕이는 어머니는 어쩐지 섬뜩했다. (197쪽)


미쓰키는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면서도 비유를 맞추고 음식과 필요한 물건을 사 나르고 실의에 빠진 어머니를 위한다. 강의와 의뢰받은 번역도 쉬지만 미쓰키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을 생각한다. 어머니가 죽고 어머니와 같이 왔던 호텔에 시간을 보내면서 미쓰키는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프랑스 유학에서 만난 시간, 다락방에서의 프러포즈, 몇 번의 외도와 현재의 외도까지.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가 남긴 거대한 유산이 있어 남편과 이혼을 해도 괜찮다. 지금처럼 좋은 맨션에서 살 수 없고 강의도 해야 하고 번역을 하면 살아야 하지만 충분하다고 여긴다.


젊은 때는 추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늙음’이 두뇌와 전신을 덮칠 뿌만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모두를 덮치는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것을 향해 살아갈 뿐인 인생인 것인가. (491쪽)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하고 포기한 기억은 응어리처럼 남는다. (533쪽)


『어머니의 유산』은 처음에는 어머니와 딸의 지지부진한 관계가 식상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점차 읽을수록 여성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이며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진하게 질문을 던진다. 어머니의 죽음과 모녀 삼대의 이야기를 『이방인』과 『마담 보바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녹아낸 점도 인상적이다. 노년을 향하는 삶, 노년을 경험하기 전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다양한 감정이 이 소설에 있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의 유산』이란 제목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의미, 절대 단순할 수 없는 특별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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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한 리뷰를 느낄 수 있네요.

자목련 2023-06-28 12:28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 님, 그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3-06-27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지만 그러지 않는 부모도 많으니까요^^

자목련 2023-06-28 12:29   좋아요 2 | URL
딸은 엄마의 마음을, 엄마는 딸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겠지 싶어요. 부모와 자식,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관계입니다.
 

어제는 세탁기를 연이어 두 번 돌렸다. 세탁기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삭거리는 여름 이불을 덮고 있으면서 이불솜을 벗겨야 하는 일이 귀찮아 빨지 않은 이불을 세탁해야 했다. 더 미루면 안 되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비가 올 거라 해도 세탁기는 돌아가야 했다. 이불 커버와 고정된 여러 매듭을 하나씩 풀고 이불솜을 먼저 세탁하고 뒤이어 이불 커버를 세탁했다. 이제 진짜로 그 계절을 정리하는 기분이었다.


건조대와 식탁 의자에 이불을 널고 더 글로리 때문에 가입하고 끊어내지 못한 넷플릭스 시리즈 가운데 <사냥개들>을 봤다. 내용 전개상 폭력성이 짙은 부분은 살짝살짝 빨리 넘겨 가면서 끝까지 봤다. 선의란 무엇일까. 그 무해한 선의를 이용한 유해한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은 『소설보다: 여름 2023』 속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가 생각났다. 맞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아둥바둥하는 걸까. 2023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의 소설이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이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아직 나머지 두 단편은 읽지 못했지만 공현진의 소설만으로도 기대는 충족되었다.





『소설보다: 여름 2023』과 함께 야금야금 산책은 레일라 슬리마니의 『한밤중의 꽃향기』와 장바구니를 정리할 때마다 살아(?) 남은 존 버거의 『결혼식 가는 길』이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산문도 소설만큼 좋을 것 같다. 잠자냥 님의 오별이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가 되는 것이다.” 이 문장만으로도 말이다. 책장엔 존 버거의 책이 꽤 있다. 장바구니와 마찬가지로 책과 책장을 정리할 때 제외되는 작가다. 읽지 않은 책들이 있지만 그 목록에 한 권 올라가는 일은 즐겁다.


새벽 내내 내리던 비는 그쳤다. 장마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곧 다시 내릴 것이다. 장마는 시작되었으니까. 장마에 대한 걱정은 뒤로하고 수국을 생각한다. 어제 주문한 수국은 내일 도착한다. 올해는 분홍 수국을 주문했다. 수국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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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2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탁기에게 미안하시다는 그 마음,
저는 그런 마음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어제 세탁기에 제대로 미안하게 일을 시켰어야 하는데 밤사이에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저도 6월 30일 배송 받기로 하고 수국 3단을 주문했는데,
자목련님의 수목이 먼저 도착해서 페이퍼에 올라올 수도 있겠네요^^

자목련 2023-06-27 09:01   좋아요 1 | URL
장마가 온다는 소식에 건조 기능을 쓰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어요. ㅎㅎ
저는 한 송이만 주문했는데 얄라 님이 주문한 풍성한 수국은 얼마나 예쁠까요?

2023-06-27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2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전 이별 - 나를 지키면서 상처 준 사람과 안전하게 헤어지는 법 오렌지디 인생학교
인생학교 지음, 배경린 옮김, 알랭 드 보통 기획 / 오렌지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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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이별은 어렵다. 아무리 굳게 다짐을 해도 이별을 통보하거나 통보받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생각하는 것과 안다고 짐작하는 것은 실제 아는 일,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 된다. 그러니 이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별은 필요하다. 혼자로 살아가는 일이 두렵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삶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에는 이별을 실행하는 것이 좋다. 안다, 그게 어려다는 거, 그래서 힘들가는 것 말이다.


이별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다면 더욱 이별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함께 있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고 서로를 성장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별하는 게 맞다. 그동안의 정 때문에 지내온 시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면 자세히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알랭드 보통’이 참여하고 기획한 인생 학교 시리즈 『안전 이별』 은 이별 앞에서 주춤하는 이들에게 24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오은영 리포트 결혼 지옥>이나 <연애의 참견>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독자는 『안전 이별』의 상담소에 내담자라고 하면 맞겠다.


그렇다. 『안전 이별』 은 연인(배우자, 동거인)이라는 대상과의 이별에 대한 책이다. 처음 『안전 이별』 이란 제목을 보고 모든 이별을 떠올렸다. 반려자, 반려동물, 형제, 부모, 연인, 친구 그들과의 이별에 대한 안내서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이 책은 확실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지금 연애를 하고 있거나, 연인과 관계의 점검이 필요하거나 동거인과의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다면 도움이 될 책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길을 제시한다.


서로 사랑해서 시작된 관계가 어느 순간 시들해지진다. 마냥 좋을 수는 없으니까. 대부분 상대에게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원인을 찾아도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란 어렵다. 회복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아프고 외로운지 확인하고 상대에게 전했을 때 인정하고 고치려 노력한다면 이별은 다음 단계가 아닐 것이다. 아무런 진전과 노력도 없다면 연인에게 필요한 건 이별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견딜 수 없는 것, 그래서 애인에서 이별을 고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애정의 부제다. 상대의 관심을 받는 것, 내 존재를 이해받고 받아들여지는 것, 궁극적인 자극을 받는 것,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것, 누군가 있다는 것,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애정을 쏟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이 연인 관계의 핵심이다. (30쪽)


이별은 왜 어려운가. 어쩌면 좋은 이별을 꿈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헤어진 후에도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중요한 건 책의 제목처럼 『안전 이별』이다. 굳이 이별 통보 후 일어나는 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알 것이다. 헤어짐을 왜 받아들지 못하는 것일까. 다른 사랑을 만나지 못할까 봐, 이별을 후회하게 될까 봐, 혼자인 시간을 견디지 못할까 봐. 이유는 많다. 이별을 결정하기 전 누구나 고민했을 문제는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결 쉬워질 것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 아마도 이런 마음은 아닐까.


이미 바캉스 티켓을 사 두었더라도, 집 계약서에 도장을 막 찍었더라도, 결혼식 청첩장을 찍은 후라도 상관없다. ‘이건 아니야’라는 확신이 든다면, 미적지근하게 굴지 않고 확실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게 바로 상대를 위한 ‘진정한 친절’이다. 상대와 내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는 건 절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며, 이별을 고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되어서도 절대 안 된다. (130쪽)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책이다. 관계를 돌아보고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나은 사랑,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별을 실체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미루고 있다면 『안전 이별』 을 만나보길 바란다. 연인과 잘 지내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연애를 하는 이, 사랑을 기대하는 이, 혼자를 꿈꾸는 이, 이별해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한 이, 누구에게도 나쁘지 않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결정, 나를 위한 삶이 가장 먼저라는 걸 기억한다면 이별도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 누구도 나를 붙을 권리가 없고, 나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에 발맞출 이유가 없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는 나 자신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헤어질 사람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좋은 사람을 알아본 과거의 자신에게 아낌없이 칭찬을 건네자.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자. (108~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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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23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전이별! 뭔가 어울리지 않는듯 하면서도 납득이 되네요.
아이들 책 중에 <네가 뭐라건, 이별 반사>란 책이 생각납니다. 가슴아프지만, 아름다운 이별하는 법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자목련 2023-06-24 09:25   좋아요 1 | URL
요즘 사회적 이슈가 떠오르기도 했어요.안전하고 건강한 이별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개해주신 책은 제목이 넘 귀엽습니다^^

미미 2023-06-2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조금씩ㅋㅋ) 알랭 드 보통은 평범한 주제를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있더군요. 인생 학교 시리즈 다 궁금해요.^^

자목련 2023-06-26 10:34   좋아요 1 | URL
알랭 드 보통의 기획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정말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는 인생 학교가 아닐까 싶어요.
미미 님, 즐겁게 만나시고 맑은 한 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