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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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죽을 걸어보자면 사물 에세이는 많다. 똑같은 사물이지만 저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그에 대한 기억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물이 간직한 사연과 추억은 고유하면서도 다양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많이 쓰는 소재로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이향규의 일상 에세이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사물에 대해 말하지만 남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어쩌면 저자의 보통의 일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다 보통의 일상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영국에서 거주하는 일, 이방인으로 사는 일, 파킨슨병에 걸린 영국 남자를 남편으로 둔 일, 영국에서 우리말(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것. 그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처럼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 에세이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토요일 아침에 혼자 먹는 고사리나물, 미역국, 김치가 어떤 의미로 <위로 음식>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국의 땅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을 생각하는 동시에 내가 기억하는 미역국은 어떤가 떠올리며 나를 위로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앞서 딴죽을 걸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저자가 들려줄 다른 사물에는 어떤 따뜻함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파킨슨병으로 외출을 할 때마다 남편을 도와주는 <지팡이>에서는 자연히 한국과 영국의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타인과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한국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모르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시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두운 밤길 운전에 필수적인 <전조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앞을 비춰주는 전조등의 고마움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용기를 주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영국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펍>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맥주를 파는 가게가 아닌 동네 이정표 역할을 하는 <펍>, 나만의 단골가게가 아닌 모두의 단골가게라는 느낌이 들었다. 택배를 받아주기도 하고 이웃과 이웃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그곳이 정겹고 내게는 그런 공간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시계>란 사물에 대해서는 그저 오래된 시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돌봄’으로 이어진다. 한국 아파트에 살면서 관리사무소를 통해 수리하고 안내받았던 것과 다르게 영국에서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저자는 아파트를 돌봐준 이들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한국에서 돌봄을 받기만 하다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하며 쓴 글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돌봄에 대한 인식이다.


돌보는 일은 ‘전문직’인 것 같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의 필요와 요구를 알아채는 뛰어난 감수성, 타인의 속도에 맞추는 인내심, 의식주처럼 삶의 재생산에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 시대 변화를 학습하는 능력, 강건한 체력과 정신 건강이 요구된다. (<시계>, 186쪽)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돌봄이 전부가 될지도 모른다. 거대한 돌봄의 시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말로 돌봄이니까. 그런 의미로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물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단체 대화방>이라 하겠다. 성탄절 아침에 전기가 나갔을 때 동네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를 올리자 도움을 알리는 답글이 가득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든든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이 고마웠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도 무서워진 세상에 접하는 무해한 일상이라니.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사물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마음을 나누는 삶을 생각한다. 삶의 가치는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닌 그런 소소한 다정함에서 찾을 수 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일,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삶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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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07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부쩍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당근‘사용하다가 동네 분에게 도움 받은 일 떠오릅니다. 소소한 다정함~^^♡

자목련 2023-07-10 09:12   좋아요 1 | URL
외국에서 한국어는 단어만 들어도 반가울 것 같아요.
당근도 이웃을 연결하는 앱 같네요. 저는 당근을 아직 이용해 본 적이 없어요^^

2023-07-14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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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의 설정과 교묘한 은유와 상징으로 나를 어지럽게 만들기도 한다. 다르게는 그만큼 매력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소설 보다: 여름(2023)』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새로운 작가의 소설을 읽는 건 언제나 반갑지만 그 첫 만남이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니까. 조심스럽다는 생각, 그러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싶다. 그냥 끌리는 소설의 읽고 그 작가를 기억하면 그만인 것을.


『소설 보다: 여름(2023)』는 대체로 좋았다. 특히 좋았던 소설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이었다. 제목이 암시하는 우울과 절망의 분위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 소설 속 ‘희주’와 ‘주호’는 성인 기초 수영반에 등록했다. 기초에 주목하자. 그러니까 수영을 처음 배우는 것,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수영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이는 열심히 해도 그 자리인 경우가 있다. 희주와 주호는 후자라 할 수 있는데 강사나 다른 회원의 눈에는 둘은 성실하지 않게 보인다. 눈치가 없는 주호는 특히 그렇다. 잘 하는 사람은 앞에 서라는 강사의 말에도 주호는 맨 뒷자리로 가지 않는다. 그런 주호를 희주가 뒤로 이끈다.


수영장 밖에서 주호와 희주는 어떤 사람인가. 주호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희주는 10년의 교사 생활을 끝으로 퇴직했다. 희주는 환경을 생각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버리는 만큼 필요한 것들이 늘어났다. 물건과 물건 사이에서 희주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교사 시절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도 우리는 물에 잠기고 인간은 다 같이 죽을 수 있다는 걸 말한 것도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괴롭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주호의 직장에서 사출성형기에 끼어 동료 하나가 죽었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사고 후에도 공장을 돌아갔고 주호는 이건 아니라며 기계를 컸다. 누가 봐도 돌방행동이었다. 지속되는 주호의 행동에 회사는 주호를 쉬게 만들었다. 어떤 죽음과 어떤 사건에 대해 적당한 기준의 애도와 추모가 가능한가. 그만하면 됐다는 그 선은 누가 정하는가. 주호에게 침묵을 강요한 건 누구인가.


네가 왜 난리냐,라는 말을 듣고 주호는 그러게, 왜 내가 난리일까, 싶었다. 곽주호는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살았다. 나는 정말 책임이 없는 걸까. 그 생각에 사로잡혔고, 무슨 일을 대하든 습관처럼 이 질문을 마주했다. 점점 주호는 자신과 상관없는 뉴스들을 보면서도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물속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21~22쪽)


어쩌면 희주와 주호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왜 남들처럼 살지 않고 유난을 떠냐고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환경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싶었던 희주와 이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느낀 주호. 그들은 정말 나와 다른 사람일까. 수영을 배운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만 수영을 배우는 이들이 다양한 것처럼 수영에 대해 다가가는 방법이 모두 똑같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여러 각도에서 읽을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을 수영장에서 수영장의 그것으로 비유한 점이 탁월하다. 수영장은 다른 어느 곳으로든 치환된다. 내가 속한 작은 모임, 공동체 그 안에서 어떻게 의견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는 생각하게 만든다. 공현진의 다음 소설도 꼭 읽고 싶다.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는 세태소설로 무방하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해 출연한 37세 독신 ‘조맹희’의 이야기다. 너도 나도 사랑을 외치고 찾지만 정작 진짜 사랑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고 할까.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소설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큰 의미나 재미는 없다.


서울에서 고향 울산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해 엄마 ‘추자 씨’와 ‘나’ 사이의 시간과 둘 사이의 관계의 변화를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주는 하가람의 「재와 그들의 밤」도 나쁘지 않다. 20년 동안 살았던 한울 아파트가 산불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가 챙겨온 앨범에서 ‘나’ 가 마주한 건 ‘추자 씨’ 사진뿐이다. ‘나’ 가 모르는 진짜 엄마의 모습. 재와 그들의 밤이 지나면 ‘추자 씨’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나’의 열망으로 가득한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말이 탁월하다.


나는 바랐다. 바람이 굳게 닫힌 투명한 창문을 깨뜨리기를.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이 오래된 발자국들을 뒤덮기를. 깨진 창문으로 걷잡을 수 없는 강한 바람이 불어닥치기를. 또 바랐다. 바람이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젖히기를. 옷장과 서랍 속을 뒤집고 흔들어 부질없는 내용물들의 무덤이 만들어지기를. 산에서 시작한 불길이 빠르게 번져 한울을 집어삼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구호도 장비도 무용해지기를. 모든 것이 까맣게 재가 되어 사라지기를. (「재와 그들의 밤」, 150~151쪽)


한 쪽을 기운 편향적인 리뷰지만 취향의 차이일 뿐 장맛비 쏟아지던 여름에 만난 『소설 보다: 여름(2023)』는 장맛비처럼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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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7-05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분간 소설은 안 읽으려구요. 대기 작품 쌓아놓은 책탑만 100권은 족히 넘는데...ㅜㅜ
현대미술 책들 읽어야 해서 아마도 내년에야 좀 많이 읽지 않겠나 생각합니다..ㅎㅎ

자목련 2023-07-06 11:54   좋아요 0 | URL
그림을 그리시니 예술 분야의 책을 많이 읽으시겠지 싶어요.
늦었지만 미술대전 입상 축하드려요!
시원한 오후 이어가세요^

레삭매냐 2023-07-0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사키 아타루의 책
을 어렵사리 읽고 있는데...

왜 소설을 쓰냐는 말에
소설을 읽었으니까라는
글이 나왔던가요.

세상이 망해도 소설을 읽어
야지 싶습니다.

자목련 2023-07-06 11:59   좋아요 2 | URL
소설을 쓰지는 못하니 계속 읽어야겠지요. ㅎ
날이 덥네요. 사무실은 시원하겠군요. ㅎ
그랟도 시원한 오후 이어가세요^^

은오 2023-07-06 0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좋겠네 자목련님이 널 이렇게 좋아하신단다!

자목련 2023-07-06 12:00   좋아요 2 | URL
은오 님도 좋을까요?
제가 은오 님을 무지 좋아하는데!!

은오 2023-07-06 22:13   좋아요 1 | URL
무지무지 좋아요!!!! 😆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체크포인트 찰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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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기존에 만났던 느낌이 좋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렇다. 다수의 팬을 지닌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란 이름이 주는 영향력,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한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나를 이 책을 이끌었다. 구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도 한 몫 거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가 아닌 취재기라고 해야 맞다.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1991년 3월 12일 심야에 후지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초로, 방송 이후 다시 취재를 거듭하여 쓴 것이다. 그 방송은 그가 스스로 기획한 첫 다큐멘터리이고 처음으로 이십 대에 쓴 책이라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가 기획한 다큐멘터리가 무엇일까. 그것은 한 고위 관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관료의 죽음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환경청 소속 관료 ‘야마노우치 도요노리’로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53세의 야마노우치는 당시 일본 사회를 뒤흔든 ‘미나마타’병의 국가 측 책임자였다. 오래 이어진 정부와 피해 환자 간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야마노우치의 일생과 미나마타병의 시작과 보상 문제 진행과정에 대한 상세한 취재가 이 책의 중심이다. 잠시 쉬겠다는 말을 남긴 채 2층 자신의 방에서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연 최초 발견자는 아내 ‘도모코’였다. 그 황망함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2층에 빨리 갔더라면, 조금이라도 남편을 귀찮게 했더라면, 일에 대해 물어봤더라면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자책한다. 아내의 인터뷰가 이 책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애도하는 마음 말이다.


야마노우치의 아버지는 전쟁중에 죽었고 어머니는 그전에 자신을 떠났다.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그는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다. 그가 지는 시, 편지, 메모를 통해서도 그가 어떤 감성의 소유자인지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성향이었기에 관료 사회에서 공무원으로 지내는 일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와서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한 번도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일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미나마타병(화학공장에서 방류한 수은으로 인한 중독)을 맡은 후로는 귀가도 늦었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책임감이 뛰어난 그였고 정부와 피해 환자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로 보인다. 수은중독이라는 걸 밝히는 과정부터 패해 보상까지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국가를 대변하고 있지만 그 역할은 그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과 같았던 건 아닐까. 야마노우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가 남긴 글과 그가 한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에요. 이건 복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정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기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 대처하려고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만으로 판단하면 복지 업무는 안 됩니다.” (116쪽)


그는 미나마타병의 발병지로 가는 출장을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목숨을 끊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한 인간의 내면을 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아내 도모코조차 그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의 죽음 이후 괴로운 그녀를 주변 이들이 떠받쳐주었고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조금 바꾼다.


사람은 고독하다. 철저하게 혼자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야만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고독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259쪽)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지만 어떤 사회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회문제와 복지제도의 허점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와 개인 간의 분쟁, 화해와 보상 문제로 갈등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쓸쓸함이 감도는 책에서 유난히 눈에 밟히는 건 바로 소개로 만난 아내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분하게 써 내려간 편지에 좋아하는 것 가운데 “바라보는 것 - 구름”이라는 부분이다. 그가 편안하게 구름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외로움과 슬픔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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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 관계에 지친 당신을 위한 심리 코칭
황은정 지음 / 포르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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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에서 당신은 누구일까? 지정한 1명일 수도 있고 복수의 누군가 일 수도 있다. 이 책이 궁금했던 건 제목 때문이었다. 책에 대한 소개가 아닌 오직 제목이 나를 이끌었다. 누군가 죽기를 바랄 정도의 증오는 어디서 발현되었는지 정말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지 궁금했다. 이토록 폭력적인 제목은 불편한 내용이라는 걸 예고한다.


저자는 귀걸이를 훔치다 들킨 일화로 들려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충동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닌 부모에 대한 반항이었다. 저자와 부모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무감각해진 엄마, 상처받은 아이를 돌보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저절로 낫는 상처는 없었다. 공무원이 되었지만 민원인의 폭력에 노출된 저자를 보호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아이를 낳고 퇴사를 했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를 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남편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부모가 우리를 돌보던 방식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이 된다. (35쪽)


심각한 위기가 닥쳐왔고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한다. 자신 안에 여전히 웅크리고 있는 내면의 아이와 만나는 일은 상담이나 심리 치료에서 접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상처받고 분노에 어쩔 줄 모르는 아이, 저자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위로받는다. 그러나 긴 시간 쌓여 온 상처가 글쓰기 수업 하나로 온전하게 치유되는 건 아니다. 저자는 남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을 돌아본다.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아이와 남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부부 상담으로 남편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 이를테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다르고 대화의 주제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가볍고 사소한 대화를 원했고 저자는 깊이 있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를 원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계속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렵지만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 주는 것. 그게 다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68쪽)


내가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고통을 알아보고 인정하자 처음으로 나만큼 고통스러운 타인의 아픔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나만의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시간이었다. (79쪽)


저자는 치유 전문가에게 개인 상담을 받으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직시한다. 그때 그 시절 저자가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내면 아이의 상처, 그것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아야 했던 것들의 결핍이라고 말한다. 그때의 그 아이를 이제라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 필요하다고. 누군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에서 시작되었고 과거를 잘 정리해야 현재를 잘 살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분노를 건강하게 밖으로 흘려보내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분노가 나간 자리에 사랑을 채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그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미치도록 화가 나는 이유가 정말 눈앞의 그 사람 때문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 안에 있다. (130쪽)


『당신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에서 말하는 것도 관계와 심리에 대해 다루는 기존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나아지는 과정이 같은 상황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와닿을 것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내면 아이를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면 아이를 안아주고 볼보는 일의 중요함과 그로 인해 어려웠던 관계가 나아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이해하고 자기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침묵으로 듣기’를 실천해 보라.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표정, 몸짓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찬찬히 바라보자. 내가 입을 닫으면 상대방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194쪽)


나도 모르는 분노로 가득하다면, 가장 가까운 가족과 묵힌 감정으로 힘들다면,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이 그 마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 준다. 누군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옅어지고 허물어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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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7-03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으니 두둥실 천국같은, 에세이 생각나네요. 작가도 엄마에게 어린 시절 폭력학대를 당했는데 엄마한테 맞으면 학교 일기장에 엄마한테 맞었다라는 말을 쓸 수 없어서 맞었다는 말 대신에 이런저런 글을 일기장에 쓰면서 글솜씨가 늘은 것 같다고.. 아마 작가에게는 그게 치유 아니였을까 싶네요!!

자목련 2023-07-04 09:23   좋아요 0 | URL
어떤 형태든 쓰는 일은 좋은 것 같아요. < 두둥실 천국같은>은 검색해보니 표지가 참 예쁘네요.
기억의 집 님, 비가 온다고 하지만 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장마가 시작되었다. 여름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 여름을 어떻게 지내야 할까. 여름과 친해지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장맛비의 피해가 없이 지나가는 여름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막 시작된 장마로 피해 소식이 들린다. 모두에게 똑같은 여름은 없다는 걸 이 여름은 또 상기시킨다.


날씨를 검색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시간대별로 날씨를 살핀다. 언제부터 날씨가 우리 일상을 이렇게 지배했던가. 준이 없이 소나기를 맞던 날은 기억에만 존재한다. 예보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자연의 일을 인간이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AI 시대에는 당연한 걸까.


여름엔 수국, 여름엔 장마, 여름엔 더위, 여름엔 휴가, 여름엔 이런 책들. 바로 김연수의 단편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말하고 싶은 거다. 작년 가을에 나온 단편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이어 반가운 소식이다. 어쩌면 여름을 위한 기획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기획을 칭찬한다. 표지는 또 얼마나 황홀하게 빛나는가.











한 권은 아쉬우니 한 권 더. 책장에 있는 나쓰메 소세키 읽기를 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말하길 『마음』이 좋다고 하니 책장에 없으니 마지막으로 구매. 아름답지 않은 변명이다. 어쨌든 너무나 많은 여름이 마음을 움직인다. 7월엔 마음을 읽게 될까.






이번엔 수국 사진도 한 번 더! 분홍 수국은 분홍 수국만의 자태가 있다. 사실, 나는 분홍 수국보다는 청보라 수국에 마음이 기우는데 막상 분홍 수국을 마주하고 나니 내년 수국 주문을 걱정한다. 내년엔 분홍이랑 청보라 두 송이를 주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년엔 내년의 수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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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6-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새로 나온 김연수 작가님 책이군요! 표지를 어쩜 이리 잘 뽑아냈는지요^^ 수국 사진까지 참 아름답습니다.
남부는 피해가 있는 모양이더군요ㅠㅠ 모쪼록 앞으로 남은 여름 큰 피해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목련 2023-06-30 10:48   좋아요 0 | URL
출판사 마케팅의 승리입니다. 피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반도가 참 넓구나 싶어요. 주말엔 폭염이라는데, 얼마나 더울까 싶고요. 모두가 건강한 여름이면 좋겠어요.

blanca 2023-06-3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가 깜짝 책을 내주어 얼마나 기뻤는지요. 기대만큼 역시나 좋았답니다. 수국 참 이쁘네요!

자목련 2023-07-03 09:5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너무 좋았어요^^

은오 2023-06-3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왠지 여름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안친하시다니.... 어떤 계절 좋아하세요?! 전 여름보단 겨울이 좋긴 합니다 ㅋㅋㅋ
책 표지랑 꽃 너무 예뻐요!! 저렇게 생긴게 수국이구나... 이제 저렇게 생긴 꽃 보면 저도 수국이다! 할 수 있겠어요!

자목련 2023-07-03 09:55   좋아요 1 | URL
더위에 약해서 여름은 힘들어요. 땀으로 삐질삐질~~
은오 님의 수국과 반갑고 즐겁게 인사하길 바라요!

망고 2023-06-3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랑 책표지 너무 예뻐요! 근데 김연수 작가님 이번책도 단편집이네요 장편을 바랬는데😂 그래도 책이 예뻐서 탐나긴 해요ㅎㅎㅎㅎ

자목련 2023-07-03 09:45   좋아요 0 | URL
망고 님의 바람처럼 장편은 열심히(?)쓰고 계시지 않을까요? ㅎ
예뻐서 탐나는 마음, 제 마음이었습니다 ㅋ

서니데이 2023-06-3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 참 예쁘네요. 이번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책 표지도 다지인이 좋은 것 같아요.
자목련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일들 가득한 7월 되세요.^^

자목련 2023-07-03 09:44   좋아요 1 | URL
김연수 작가의 책은 선물 같아요 ㅎ
오늘도 많이 더울 것 같아요.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3-07-0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을 보며 책을 보실 듯하네요 여름에 저 책이 딱 나와서 반갑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3-07-03 09:4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딱 나와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