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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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죽을 걸어보자면 사물 에세이는 많다. 똑같은 사물이지만 저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그에 대한 기억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물이 간직한 사연과 추억은 고유하면서도 다양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많이 쓰는 소재로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이향규의 일상 에세이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사물에 대해 말하지만 남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어쩌면 저자의 보통의 일상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다 보통의 일상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영국에서 거주하는 일, 이방인으로 사는 일, 파킨슨병에 걸린 영국 남자를 남편으로 둔 일, 영국에서 우리말(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것. 그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니까 책의 제목처럼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 에세이는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토요일 아침에 혼자 먹는 고사리나물, 미역국, 김치가 어떤 의미로 <위로 음식>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국의 땅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을 생각하는 동시에 내가 기억하는 미역국은 어떤가 떠올리며 나를 위로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앞서 딴죽을 걸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저자가 들려줄 다른 사물에는 어떤 따뜻함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파킨슨병으로 외출을 할 때마다 남편을 도와주는 <지팡이>에서는 자연히 한국과 영국의 모습을 비교하게 된다. 타인과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한국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모르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시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두운 밤길 운전에 필수적인 <전조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앞을 비춰주는 전조등의 고마움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용기를 주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영국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펍>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맥주를 파는 가게가 아닌 동네 이정표 역할을 하는 <펍>, 나만의 단골가게가 아닌 모두의 단골가게라는 느낌이 들었다. 택배를 받아주기도 하고 이웃과 이웃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그곳이 정겹고 내게는 그런 공간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시계>란 사물에 대해서는 그저 오래된 시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돌봄’으로 이어진다. 한국 아파트에 살면서 관리사무소를 통해 수리하고 안내받았던 것과 다르게 영국에서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저자는 아파트를 돌봐준 이들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한국에서 돌봄을 받기만 하다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하며 쓴 글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돌봄에 대한 인식이다.


돌보는 일은 ‘전문직’인 것 같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의 필요와 요구를 알아채는 뛰어난 감수성, 타인의 속도에 맞추는 인내심, 의식주처럼 삶의 재생산에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 시대 변화를 학습하는 능력, 강건한 체력과 정신 건강이 요구된다. (<시계>, 186쪽)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돌봄이 전부가 될지도 모른다. 거대한 돌봄의 시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말로 돌봄이니까. 그런 의미로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물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단체 대화방>이라 하겠다. 성탄절 아침에 전기가 나갔을 때 동네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를 올리자 도움을 알리는 답글이 가득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든든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이 고마웠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도 무서워진 세상에 접하는 무해한 일상이라니.


당신과 나를 연결하는 사물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마음을 나누는 삶을 생각한다. 삶의 가치는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아닌 그런 소소한 다정함에서 찾을 수 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일,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삶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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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07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부쩍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당근‘사용하다가 동네 분에게 도움 받은 일 떠오릅니다. 소소한 다정함~^^♡

자목련 2023-07-10 09:12   좋아요 1 | URL
외국에서 한국어는 단어만 들어도 반가울 것 같아요.
당근도 이웃을 연결하는 앱 같네요. 저는 당근을 아직 이용해 본 적이 없어요^^

2023-07-14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