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끈적하게 달라붙던 날들에는 짧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느라 애를 먹었다. 바람이 가을을 데리고 오는 요즘은 목덜미를 매만지는 바람이 좋아서 제법 자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싶다. 조만간 미용실에 다녀올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존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무엇일까? 반드시 무언가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쓸쓸한 마음을 숨길 필요까지는 없다.

 

 영원한 여름과 8월은 나를 밀어내고 재촉하듯 9월이 왔다. 하루 세 번 밥을 잘 먹고 있다. 이상하면서도 이상하지 않은 꿈과 새벽에 한 차례 깨어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줄어든다. 받지 않는 전화기는 알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몰입할 대상이 있다는 건 중요하다. 하루에 한 번씩 여름 이불을 빨고 도저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을 정리한다. 제목부터 묵직한 외로움 덩어리를 안겨주는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를 조금씩 읽고 있으며 이런 책을 샀다.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 기다림을 선물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참 좋구나 생각했다.

 

 보르헤스를 거의 읽지 않았어도 보르헤스의 말을 통해 그를 만난다. 내게는 상실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메이블 이야기』, 조해진이라서, 제목이여름을 지나가다  이유만으로 곁에 둔다. 정한아의 애니와 구병모의 빨간구두당도 기다리는 책이다. 소장용으로 탐나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 행인도 몰입하고 싶은 대상이다. 9월에 해야 할 일의 목록과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작성한다.

 

 

 

 

 

 

 

 

 

 

 

 

 

 

 

 

 

 어제는 친구와 선배 언니에게 가을 인사를 전했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참 좋다. 선배 언니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고 친구는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해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혹은 올해에는 꼭 만나자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참 고맙고 기쁜 일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쌓여야 만날 수 있을까? 가을이 시작되니 다시 또 당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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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9-04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름에 머리를 묶다가 이제 머리를 잘랐어요.

[그장소] 2015-09-06 02:51   좋아요 0 | URL
저도 댕강~하고 머릴~ ㅋㅋㅋ
머리카락을 싹둑하니, 짧게 단발로 쳐냈어요. 그게 벌써 한달이나 되었어요.
이제 조금 머리칼이 잡혀 핀을 할 지경은 되네요!

보물선 2015-09-06 08:53   좋아요 1 | URL
머리카락을 자른건데 맨날 이렇게 쓰게 되네요 ㅋ

자목련 2015-09-07 11:05   좋아요 1 | URL
가을엔 단발머리^^

[그장소] 2015-09-06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에 구름 떠나네
보라색 그 향기도
이 몸이 하늘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곁에 사랑도 가네
빨간 입맞춤도
시간이 멈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비 맞은 태양도 목 마른 저 달도
내일의 문 앞에 서 있네
아무런 미련없이 그대 행복 위해 돌아 설까나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 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 하리

내 곁에 사랑도 가네
빨간 입맞춤도
시간이 멈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비 맞은 태양도 목 마른 저 달도
내일의 문 앞에 서 있네
아무런 미련없이 그대 행복 위해 돌아 설까나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 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모두 다 사랑 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 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 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 하리

...................................................................

이건 김경호의 미성을 들어 줘야 한다는!

비 맞은 태양도, 목 마른 저, 달도!
봐 줘야..하니까..시선 들어서..
들려 갑니다...^^

자목련 2015-09-07 11:07   좋아요 1 | URL
김경호의 목소리는 가을이군요. 그러고보니 요즘 방송에 뜸한 것 같아요. 그장소 님 덕분에 저도 이 노래를 듣습니다^^

프레이야 2015-09-09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은마음이 얼마나 쌓여야 ‥
울컥해지네요. 아, 가을이 어서 지나가면 좋겠어요^^

자목련 2015-09-09 20:27   좋아요 0 | URL
평생 그 마음을 쌓아두기만 하는 마음도 존재한다는 게 서글퍼요. 가을이라서 그렇겠지요?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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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가 담아내는 삶이라는 경우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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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어둔 현관문에 붉은 기운이 스민다. 여름의 끝에 마주한 노을은 펄떡이는 생선처럼 생기가 가득하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노을인데 누군가는 이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서럽고 서럽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거나 기록하지 않고 보낸 날들에게 미안하고 안부를 전하고 싶다.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는 멀리 달아났다. 삶이라는 게 이러하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 있는 나는 여전히 입구를 알 수 없는 미로를 헤매는 듯하다.

 

 하나의 여름이 사라지는 시간, 하나의 여름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한 여름이 된다. 불을 꺼도 거실을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이 뜬 밤, 가만히 소리 없는 목소리로 당신을 불러본다. 하루하루 습관처럼 닿을 수 없는 당신과의 거리를 측정하며 그것을 인식하며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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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8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8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렇게 울어댈까? 그저 본능적인 몸짓에 불과한 것일까? 새벽부터 울어대는 매미를 곁에서 지켜본다면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그러니까 매미의 몸부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과 다른 사람 말이다. 작년보다 훨씬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다. 나뿐이 아니다. 아마도 이 여름을 사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만 국한된 어떤 여름이 있다고 여기는 건 나의 이기심 때문이다.

 

 입맛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굶는 건 아니다. 자두, 복숭아, 냉커피, 비빔면 이런 것들을 먹고 있다. 여름밤처럼 차가운 캔맥주를 먹고 싶은 날들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맥주 금지령이다. 이른 아침에 오는 문자는 신간 알림이 대부분이고 첫 문자는 제임스 설터의 마지막 소설 올 댓 이즈였다.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번역자의 이름이 낯설다. 기다리고 있는 책은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한국이 싫어서』와는 다른 느낌을 기대한다. 읽고 싶고 궁금한 책은 전영애의 시인의과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로 두 권 다 같은 출판사, 시인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2015년 퓰리처 수상작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작가는 눈이 아닌 귀로 듣고 보는 세상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올여름은 아마도 충동구매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이들이 일어나는 여름이다. 우리가 안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매미는 멈추지 않고 울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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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 2015-08-0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안녕하세요? <시인의 집>을 만든 편집자입니다.
책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드는 내내 행복했던 책이에요.
충동구매일지언정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

자목련 2015-08-06 17:18   좋아요 0 | URL
소로 님, 반갑습니다.
계획충동구매로 지금 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안겨준 책이라니, 더욱 궁금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만들어주세요^^
 

 

 눅눅하다. 방을 도려내서 전자레인지에라도 돌리고 싶다. 내일도 비 소식이 있다. 제습기를 돌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건조대에는 기운 없는 표정의 옷가지들이 있고 침대에는 책 몇 권이 널브러져 있다. 악스트를 읽고 구매한 최진영의 구의 증명,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도 그 시리즈다. 김중혁의 단편집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나란하게 보이는 『악기들의 도서관』, 『펭귄뉴스』도 읽지 않았다. 산문집은 빨리 읽었는데 소설집은 미뤄진다.  어쨌거나 연애소설이란 부제 아닌 부제가 붙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꼼꼼하게 읽고 싶다.

 

 연애,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를 빼놓을 수 없다. 말랑말랑하면서도 절절하고 당돌한 사랑에 대한 표현에 빠져든다. 아껴가며 조금씩 읽고 싶은 소설이다. 그래서 현재 멈춘 상태다.

 

 그녀는 열세 살이 되던 여름에 떠났다. 우리의 경쾌함과 밝은 웃음, 내 불멸의 사랑, 그녀가 처음으로 흘린 피까지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나는 계속 그녀를 기다렸지만 나의 기다림은 남자들의 매력적인 야성미에 보잘 것 없었다. 그녀는 나 없이 성숙했다. 그녀는 나 없이 아름다워졌다. 그 누구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하는 아름다움. (57~58쪽)

 

 독서 에세이는 거부할 수 없다. 읽는 인간이 그런 책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선택한 책이라니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한동안 큰언니와 지내면서 가족과 형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이라는 병을 통해 가족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와 조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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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7-2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 연인들은 투케로 간다는 여행에세이 인줄알았는데 아니군요. 김중혁의 소설집이 반가워요. 전 이분의 장편보다 단편이 좋아요

자목련 2015-07-29 09:24   좋아요 0 | URL
묘한 매력을 지닌 소설집이에요. 김중혁 님의 이번 소설은 연애라는 키워드가 있어 기대가 커요^^

프레이야 2015-07-2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연인들, 담아가요
표지가 어디론가 부르네요. 환상 같기도 하고 허상 같기도 하고‥
이곳은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에요. 밤이라 식었지만 그래도 후텁지근ㅠ 내일은 더할 것 같은데‥ 여름답게요! 김중혁의 신간 단편집도 끌려요. 편안한 밤~^^

자목련 2015-07-29 09:23   좋아요 0 | URL
바다, 축제, 바탕스, 그리고 사랑의 감정들이 골고루 담긴 소설이라고 할까요.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꽃의 이야기도 흥미로워요.(아직 다 읽지는 못해지만요.)

여긴 비가 와요. 비 오는 수요일입니다. 쏟아져요, 그래서 또 제습기 돌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