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건 아니다. 그래도 사들이는 책에 비해 읽는 책은 적다. 읽고 싶은 책은 사두기만 하고 읽어야 할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결국 정리하고, 사라진 책을 찾고 주문하기도 한다. 엊그제 도착한 요리책은 아직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두껍지 않은 소설책의 첫 장도 만나지 않았다. 주말에 강하게 불어닥친 태풍의 흔적을 기억하면서도 텁텁한 오후가 싫어 비를 기다린다.

 

 책을 사는 것도 즐겁지만 책을 선물하는 것도 기쁘다. 괜히 책 어딘가에 나의 마음이 함께 붙어있을 것 같다고 할까. 읽지 않았지만 그 책의 제목만 봐도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래서 선물은 좋은 것이다. 뭔가 줄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작가는 한은형이다. 우선은 제목 때문에 더 끌린다. 노희경의 드라마 <거짓말>로 시작한 나의 거짓말 사랑은 끝이 나지 않는다. <거짓말>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기대가 크다. 그 기대가 조금 크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클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는 기대만 키운다. 이장욱의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은 여름보다는 다른 계절에 읽고 싶은 소설집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 소설집을 당장 읽지 않을 거라는...) 김태형의 <고백이라는 장르>는 예쁜 동생에게 안긴 시집이다. <처음 만나는 그림>은 표지 속 소녀가 나를 유혹했다.

 

 나희덕의 <그녀에게>는 곧 만나려고 한다. 여자를 말하는 시집, 그것만으로도 곁에 둘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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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다정한 질문 기계, 그것이 책이다.’ (48쪽)

 

 한 권의 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얼마나 될까.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무조건 애정이 표출되기도 하고 질문이라는 걸 염두하며서 책을 읽어야 한다면 책읽기의 즐거움을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라고 정여울은 자신있게 말한다. 겨우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두 권의 책만 읽은 나에게는 어렵고 먼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 헤세의 책을 읽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인생의 어느 시절이 있다.

 

 정여울의 『헤세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헤세의 삶을 향한 여정이다. 헤세가 태어난 독일의 칼프, 헤세가 40년을 살며 잠든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헤세의 향기를 맡는다. 칼프와 몬타뇰라의 풍경과 함께 그곳에서 마주하는 헤세의 흔적을 감성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그 여정엔 헤세의 문학, 그림, 삶이 있다. 그 길을 함께 걷노라면 『수레바퀴 아래서』속 한스처럼 외로운 영혼이었다는 걸 짐작한다.

 

 헤세가 만든 인물은 늘 방황한다.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로 자신과의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헤세의 소설에 대한 정여울의 평론을 통해 헤세를 읽을 수 있듯 그 싸움을 통해 내면을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인지도 모르다. 헤세가 정원을 가꾸고 풍경을 그린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헤세의 책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다른 나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말이다.

 

 헤세와 정여울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책이다. 헤세라는 이유만으로 칼프와 몬타뇰라는 아름다운 도시다. 헤세의 책을 읽고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그러니 누군가에는 문학여행서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헤세로 닿는 길이 된다. 책에 수록된 사진만으로도 그곳에서의 헤세를 상상하게 된다. 읽지 않은 헤세의 소설을 읽고 다시 읽게 되다면 나와 헤세와의 거리도 조금은 좁혀질 것이다.

 

 ‘우리가 헤세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는 우리 곁에 있어줄 것이다. 우리가 고통속에서도 외부를 탓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타인의 결점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볼 때, 그때마다 그가 우리 곁에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404쪽)

 

 헤세에 대한 책들이 많다. 헤세를 향한 정여울의 애정이 가득한 책 외에도 헤세를 만나는 길은 다양한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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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전을 본 적이 있어요. 여러해가 되었네요 어느덧. 그의 수동타이프라이터와 수채화들이 눈에 삼삼해요. 수채화 액자도 두개 샀었죠. 물론 프린트라 아쉽지만. 정여울의 이 책은 담아간 지 좀 됐는데 잊고 있었어요. 자목련님의 페이퍼로 상기되어 고맙습니다^^

자목련 2015-07-10 09:01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만나는 헤세의 그림도 좋아요. 헤세의 소설에 대한 서평도 실렸지만 정여울의 감성이 짙어서 살짝 아쉽기도 했어요. 아침부터 여름이라는 걸 실감하는 더위가 몰려오네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

지금행복하자 2015-07-0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에 헤세전을 보고 왔죠~ 글처럼 아름다운 그림들을 많이 그렸더군요~ 작은 그림들이 더 진솔해보이고 맘에 다가왔던 기억이 나네요~

자목련 2015-07-10 09:0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글, 시, 그림, 헤세는 진정한 예술가였구나 싶었어요. 시원한 하루 시작하세요^^
 

 

 2015년의 절반이 지났고 알라딘에서는 16주년 기록으로 흥미로운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여름은 열매를 맺는 계절인 듯 맛있는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며칠 전에는 자두와 체리 한 팩을 혼자서 다 먹어버렸다. 고운 빛깔의 과일을 입속으로 넣으면서 여름이 참 좋구나, 생각했다.

 

 늘 그랬듯 장마를 기다리는데 장마는 아직 내게로 오지 않았다. 습기 가득한 어제와 오늘, 분명 장마가 오고 있다고 말하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 그게 무엇이든 쑥쑥 몸피가 자라는 게 여름일 텐데. 멈춰버린 마음은 자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속상한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던 6월을 보내고 나니 나를 자라게 할 무언가가 간절하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책이 필요한 때다.

 

 표지만으로도 초록의 기운을 안겨줄 것만 같은 <작가들의 정원>, 윤이형의 <개인적 기억>, 요리에 대한 도전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 첫 번째 대화로 두 번째 대화에 대한 기대가 큰 <불가능한 대화들2>, 여름을 위한 책 <야경>까지.

 

 여름, 여름, 여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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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물려받는다는 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절대 버려서는 안 되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아직 그런 물건이 없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지낸 물건엔 어떤 역사가 있을 것 같다. 대단한 사연은 아니더라도 기억해야 할 그런 역사 말이다. 쉽게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고 버리는 시대에  『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 속 물건에 담긴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안겨준다. 

 

 

 

 

 ‘제가 자라온 그 어떤 곳에도 있었고 오래된 사진에도 같이 찍혀 있는 등 어린 시절부터 계속 봐왔기 때문일까요? 이 장 자체가 마치 친정 같은 존재로 느껴집니다.’ (15쪽)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릇장, 그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편안한다. 누군가에게 친정 같은 존재로 남을 수 있는 그릇장이 얼마나 될까. 튼튼한 그릇장을 보노라니 돌아가신 엄마가 모아두었던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그릇과 내가 모으는 컵들로 모아진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특이하는 이유로 사들인 컵들을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나누는 건 삶의 한 부분을 공유하는 것이니 내가 사용한 것들을 선뜻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책에는 정말 탐나는 소품이 많다. 감히 시도하지 못할 붉은 벽지, 유용하게 쓰이는 갖가지 색의 스카프, 시할머니가 만든 옻 그릇, 귀여운 모양의 컵 받침, 책을 수납할 수 있는 큰 테이블, 생활 소음도 흡수하고 인테리어에도 훌륭한 카펫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자꾸만 보게 되는 건 역시 컵, 의자, 그릇이다. 나뭇잎 문양의 접시에 담긴 이야기는 신기할 정도다. 어머니가 신혼 때 장만한 접시을 여행 중에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어머니와 딸의 접시가 나란히 놓인 식탁을 상상한다.

 

 

 

 

 

 ‘쓸 때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자신의 가정을 열심히 꾸려나갔을 모습이 떠오르며 마음 한편이 따듯해집니다.’ (137쪽)

 

 하루를 여는 아침에 만난 물건을 시작으로 내 곁에 있는 물건을 바라본다. ​바로 보이는 책장, 닳아버린 침대 패드, 이제는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는 식탁의자, 방금 전 커피를 마신 머그, 낡은 사진틀. 나와 같이 있는 것들이다. 내가 소중하게 대할수록 그것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커진다. 우리 삶을 기쁘고 즐겁게 만드는 건 크고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한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반드시 자신의 집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산책길,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나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물 등 집 밖에도 훌륭한 물건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9쪽)

 

 사물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다. 이미 읽었던 책 <사소한 발견>도 떠오르고 곁에 두고 펼쳐볼 때마다 기분 좋은 <김선우의 사물들>과 박영택의 <수집 미학>도 그래서 좋다. 사물에 대한 크고 작은 애정을 마주하는 일, 좋아하는 물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다. 나만의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슬픔을 아는 친구 같은 느낌일까. 물론 책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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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위는 던질 때마다 다른 숫자를 보여준다. 그것이 주사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숫자 1, 숫자 5로 기억될 수도 있다. 숫자1에서 숫자6까지 여섯 가지를 가진 물건, 소설가는 주사위를 닮았다. 매번 던질 때마다 같은 수가 나오는 주사위처럼 어떤 소설가는 소설에서 특정 서사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소설가의 소설은 매번 다른 수를 보여준다. 고유성과 다양성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좋고 나쁨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김유진의 장편소설 『숨은 밤』을 읽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늑대의 문장』으로 만난 김유진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웠지만 매혹적이었다. 잔혹스러운 동화 그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장편소설 『숨은 밤』은 단편의 확장인지도 모른다. 어른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성장하는 아이들과 비주류로 살아가는 주변인과 이방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의 이야기.

 

 여관에서 보호자 없이 장기 투숙하는 화자 ‘나’와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 기(基)는 고아 아닌 고아다. 트럭을 몰며 장사를 하는 나의 아버지는 안(雁)에게 소녀를 부탁한다. 주변의 강으로 낚시를 하러 오는 이들과 여름 축제에 모여드는 곳이다. 안이 있다는 이유로 소녀는 이 마을에 온 것이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어탁을 하는 안과 ‘나’가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한 번씩 안의 집에 방문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 소년 기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마을에서 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보호자도 없다. 군청 직원만이 쌀과 도시락을 챙겨주며 작은 진심을 보였다. 기가 잠깐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직원의 배려였다. ‘나’는 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재활용 교복을 입고 자신보다 작은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전자에서 후자로 흐르는 삶,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자족하는 삶, 안은 그런 삶을 꾸릴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르면, 기는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기는 자기 자신조차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기에게서 뒤늦게 발견한 놀라울 정도의 유치함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의 말은 늘 옳았다.’ (95쪽)

 

 김유진은 여전히 불편하고 불투명하다. 걷어낼 수 없는 얇은 막으로 인물을 설명한다. 물론 기, 안, 장은 독특하다. ‘나’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장(薔)도 기와 안과 마찬가지다. ‘나’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김유진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 기가 어떤 이유로 분노와 함께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돌봄을 받지 않았다는 포괄적인 범위가 아닌 마을에 불을 지른 직접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너는 누굴 싫어해?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그럼 누굴 좋아해?
 나는 너를 좋아해.’ (203쪽)

 

 사랑의 전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김유진의 말은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뜻으로 들린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나’와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기가 서로의 바라보고 있으니까. 단 한 사람의 이해와 인정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서툴고 퉁명스러운 기의 고백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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