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치 긴 여름 탓일까. 추석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자꾸 했고 연휴 이틀은 오빠네 식구와 함께 보냈다. 함께 했다는 건 밥을 먹고 TV를 보고 과일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잤다는 말이다. 추석날은 주일이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이곳은 시골이라 추석 전후가 정말 바쁘다. 오빠와 올케언니는 하루를 하루가 아닌 이틀 정도로 살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마늘을 심고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고 했다. 거기다 심각한 가뭄까지 농부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바쁘다.

 

 연휴가 끝나고 큰언니 집에 다녀왔다. 서류가 증명해주는 것들을 처리하고 옷과 가방, 그리고 책을 정리했다. 정리하는 중이라는 말이 맞다. 여전히 우리는 정리 중이다. 그곳에서 10월을 맞았고 쏟아지는 시원한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가을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큰언니와 온전히 사계절을 보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계절을 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바다가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지지만 바다라는 존재만으로 든든한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상한 피곤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뜨거운 열기로 피곤을 누르는 일상이지만 책으로의 복귀는 어렵다. 가져온 책을 정리하고 ​읽은 책에 대해 무언가 쓰고 싶지만 쓸 수가 없다. 대단한 것을 쓰려고 하는 게 아닌데 그물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물을 잘라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책에서 비롯될 것이다. 반가운 김연수 소설의 소식도 그렇다.  반가운 김연수 소설의 소식도 그렇다. 세 권의 책이 재출간되었지만 스무 살『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만 취한다. 두 권의 소설과 함께 김연수를 읽을 좋은 사람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예쁜 민트여서 자꾸 눈이 가는 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색다른 몽골의 얼굴을 보여줄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영감 아닌 염감을 줄 거라 믿는 조에 부스케의 달몰이를 펼치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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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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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시집. 이 가을에 다시 만나니 더욱 새롭다. 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던 애틋하고 고마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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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에는 서울에 다녀왔다. 피곤함과 휴식을 핑계로 잠깐씩 졸고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잠깐 머물렀다. 온전히 나를 소모하고 돌아왔다. 높은 빌딩들과 한강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나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확인했다. 한때는 서울에 볼 일만 있으면 어떻게든 친구를 만나고 서울을 즐기기도 했다. 젊었기 때문이었을까. 복잡한 도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길을 잃은 미아였고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른이었다. 서울을 향할 때는 무척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서울과 이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고 편안했다.

 

 어제는 감자와 양파를 볶아 카레를 만들었다. 요리를 잘 할 줄 모르니 때로 카레는 정말 요긴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엔 돈가스를 튀겼다.) 노란 카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있다. 추석 선물을 주문하기도 했고 끼니마다 커피를 마셨다. 올 초에 커피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일정 부분 지키는 셈이다. 책도 많이 읽고 많이 쓰기로 했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읽고 싶었던 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를 선물 받았고 제목처럼 사랑스러운 김용택 시인의 시집 <사랑이 다예요>를 읽는다.

 

 

 

 

  입맞춤

 

 

  달이 화안히 떠올랐어요.

  그대 등 뒤 검은 산에

  흰 꽃잎들이 날았습니다.

  검은 산 속을 나와

  달빛을 받은

  감미롭고도 찬란한

  저 꽃잎들

  숨 막히고, 어지러웠지요.

  휘황한 달빛이야 눈 감으면 되지만

  날로 커가는 이 마음의 달은

  무엇으로 다 가린답니까. 

 

 

  지금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봄바람인걸요.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당신을 봅니다.

  꽃이 핀걸요.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작은 바람결에도 나는 쓰러집니다.

  당신인걸요. 

 

 

 서울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을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도 조금씩 읽는다. 그리고 인문 메달을 받은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안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서울에 올라가게 되면 누군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일지도 모르는데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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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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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 0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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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 0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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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 0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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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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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 1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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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누구도 고향을 보는 사람은 없다. 고향은 멀리 있고 삶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중이다.’ (49쪽)

 

 모어(母語)를 잊고 사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설령 모어를 잃어버렸다 해도 말이다. 어쩌면 말은 음식과 같아서 그 맛을 영원히 간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잊을 수 없어 언제나 그리워한다. 독일 뮌스터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시인 허수경도 그럴까? 타국에서의 삶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뮌스터의 산책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시인의 산책기는 달랐다. 그녀는 독일 뮌스터를 걷는 동안 독일 시인의 시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시와 함께 걷는 뮌스터라 할 수 있다. 산책의 처음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로렐라이」다. 청아하고도 슬픈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하다. 마치 뭔스터는 반드시 저녁에 걸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공기는 차고 어두워지네, 그리고 라인 강은 조용히 흘러가네 산꼭대기는 반짝인다 저녁 햇살 속에서’

 

 허수경이 걷고 바라보는 뭔스터는 이상하게 아련하게 다가온다. 어느 도시든 마주하게 되는 박물관, 성당, 시장, 그곳에서 마주하는 삶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치의 지독한 만행으로 물든 도시도 아닌데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잠재적 슬픔 같은 게 느껴진다. 특히 사진으로 만나는 츠빙어는 어떤 먹먹함을 몰고 온다. 도시의 방어를 위해 내벽과 외벽 사이에 지어진 공간이지만 나치가 장악했을 당시는 감금과 죽음으로 채워진다.

 

 사라진 존재에 대한 기록과 기억은 무엇으로 존재하며 누구에 의해 전해지는가? 그가 요절한 시인의 시와 삶을 나직하게 들려주며 뮌스터 거리를 걷는 동안 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든다. 전쟁을 기억하는 도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옛 시청과 분주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중앙시장. 그 안에서 저마다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든 기억을 우리는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그것은 모든 과거 위에서 현재를 사는 인간의 일이다. 미래의 인간들은 옛날로 들어간 우리를 잊어버리고 우리가 남긴 흔적으로만 우리를 복원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가 아니라 미래에 가공될 통조림 속의 꽁치 같은 우리다. 우리가 과거를 박물관에 넣어 보관한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105쪽)

 

 이상하게도 뭔스터를 상상할 수가 없다. 내게는 멀고도 아득한 그곳이다. 긴 시간의 끝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조차 품을 수 없는 거리를 실감한다.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지도를 펼치고 시인이 걸어온 곳곳을 짚어봐도 뮌스터가 아닌 그 도시의 벼룩시장을 홀로 걷고 있을 작은 얼굴의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천천히 다가오는 저녁의 그늘 속에서 누군가를 이름을 부르는 모습만 생각난다.

 

 ‘삶이라는 것은 버릇을 되풀이하며 기억을 재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기억에 대한 소망은 그 안에서 부풀어오른다. 기억 앞에 ‘차갑다’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해도 지나간 것들은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진저리가 쳐진다 해도 그리운 그 무언가를 품고 있다. 지나간 것이니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까.’ (151쪽)

 

 그리움이란 말로 남은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과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기록을 담은 『길모퉁이의 중국 식당』과 함께 읽으면 허수경의 숨결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이 향한 곳에 수많은 그대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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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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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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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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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16: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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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1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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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아이’란 말이 있다. 나이만 어른일 뿐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아이 하나가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에 채우지 못한 욕망에 대한 간절한 바람도 어른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누군가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겠지만 결핍이란 말로 치환하겠다. 몇 권의 동화책으로 집약되는 어린 시절의 책읽기를 떠올리면 이 책은 빠지지 않았다. 그것이 왜곡된 기억이라도 말이다. 『비밀의 화원』은 그렇게 나를 지배하는 책이 되었다. 

 

 반드시 다시 읽겠다는 생각보다는 소유의 의미로 곁에 둔 동화책이다. 제목을 거론할 수 없는 몇 권의 책도 그렇다. 동화를 읽는다는 게 비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내게 속한 동화책은 조카에게도 절대 빌려주지 않았다. 우선은 주인인 내가 먼저 읽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굉장히 부끄럽고 슬픈 일이기도 하다. 창피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비밀의 화원』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인물은 메리와 콜린뿐이었다. 한데 디콘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책을 읽기는 한 건가? 디콘은 정말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메리와 콜린이 보지 못한 세상을 볼 줄 아는 아이, 황무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아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아이였다.

 

 알다시피 메리는 고아다. 어린 시절에는 메리의 시선으로 책을 읽었다. 인도에서 영국 요크셔의 고모부 집으로 오게 된다. 혼자 남겨진 슬픔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곳은 고모가 죽고 버려진 화원이었다. 다시 마주한 동화는 메리가 아닌 무책임한 어른을 본다. 자기애가 강한 메리의 엄마, 아내의 죽음으로 아들을 잊은 콜린의 아빠. 전쟁과 콜레라로 부모를 잃은 메리와 꼽추가 될지도 모른다는 짐작 때문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콜린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열 살의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방치가 아닌 관심과 사랑이었다.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현관문은 육중한 참나무 판자로 되어 있고 큼지막한 쇠못이 가득 박혀 있었으며, 쇠로 된 묵직한 빗장이 걸려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엄청나게 큰 회랑이 나왔다. 회랑을 비추는 불빛이 너무도 침침해서, 메리는 벽에 걸린 초상화 속의 얼굴들과 갑옷을 입은 입상들을 흘낏이라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돌로 된 바닥 위에 서 있는 메리는 아주 조그마한, 정말 기묘하게 조그마한 새카만 물체처럼 보였다. 메리는 그렇게 보이는 만큼이나 자기가 보잘것없고, 외롭고, 버림받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36쪽)

 

 모두가 부러워할 거대한 저택에 수많은 방과 하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녀 마사의 엄마 수잔만이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잘 먹고 잘 크도록 줄넘기를 선물하는 마음. 그리하여 메리는 흙을 밝고 비밀의 화원까지 찾아내기에 이른다. 마사의 동생 디콘의 도움으로 화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택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이상한 울음소리의 주인공 콜린과 마주한다. 자신은 죽을 거라 믿는 아이 콜린에게 메리는 비밀의 화원의 존재를 알려준다. 계절의 변화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콜린,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믿는다. 콜린에게 사촌 메리와 디콘의 등장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불러온다.

 

  “봄이 오고 있다고? 그게 어떤 건데? 아파서 방에 누워 있으면 그걸 볼 수가 없어.”

  “그건 비가 오고 있는데 햇살이 내리쬐고, 햇살이 내리쬐는데 비가 오는 거야. 온갖 것들이 땅 속에서 흙을 밀고 나오고 움직이는 거지.” (182쪽)

 

 콜린의 엄마가 사랑했던 장미꽃 화원에서 바깥공기를 마시고 운동을 하고 또래 아이들과 웃고 계절을 만지며 열 살 아이로 태어난다. 아버지처럼 등에 혹이 크고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자란다. 자신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을 걷어내고 아버지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콜린의 의지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마법을 처음 시작하는 방법은, 어쩌면 말야,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냥 얘기하는 걸지도 몰라.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게 될 때까지 말이야. 난 한 번 실험해 볼 거야.” (323쪽)

 

 계절이 바뀌며 변화하는 자연의 묘사가 압권이다. 메리, 콜린, 디콘과 함께 비밀의 화원으로 걸어가는 듯하다. 맑고 밝은 눈빛의 아이들을 상상한다. 자연 속에서 아름답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가장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비밀의 화원에서 피어나는 우정도 마찬가지다. 메리에게 디콘이 없었다면, 콜린에게 메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메리와 콜린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게 무엇인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봄이 오는 걸 볼 수 없었던 콜린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동화를 읽는다는 건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마음을 불러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 편견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했던 마음.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가까이 다가섰던 용기 같은 것 말이다. 다시 읽겠다고 곁에 둔 동화가 늘어나는 건 그만큼 내가 잃어버린 마음이 많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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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9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있고 싶어 조카들 주지 않고 갖고 있는 동화책, 그림책들이 있어요. 비슷비슷할 듯요. 가끔 들춰보면 그저 위로가 되는‥자목련님의 가을날들이 님과 잘 어울리길 바라요^^

자목련 2015-09-09 20:25   좋아요 0 | URL
동화책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에요.
가을과 어울리는 날들이라니, 가을 바다가 보고 싶어집니다!

책읽는나무 2015-09-0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콜린,디콘??
주인공 이름들이 생소해요^^
분명 아름다운 나만의 <비밀의 화원>이라 자부했건만ㅋ
어린시절의 동화책들!!
잃어버렸던 마음 되찾기!!
님의 말씀이 맞네요!!
헌데 저는 동화책을 읽을수록 세부적인 내용들이 새로운 책을 읽는 것처럼 어찌나 새롭던지~~~기억력의 한계체험에 좀 울적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동화는 아름다워요!!

자목련 2015-09-09 20: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특별하고도 특별한 <비밀의 화원>.
아마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이래서 재독을 해야 한다는, ㅎㅎ
동화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