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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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였던 이들은 영원히 우리일까.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떠났을 때에도 그는 우리 곁에 머문다. 조금씩 잊히겠지만 말이다. 상실과 부재를 채우는 건 우리였던 시절의 기억이다. 함께였던 시간의 기억, 머물렀던 공간. 좋았던 것은 좋았던 대로, 나빴던 것은 나빴던 대로 우리로 남는다. 


장희원의 첫 소설집 『우리의 환대』는 우리였던 이들의 기억인 동시에 남겨진 자의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할까. 누군가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일에 대해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준다. 떠난 이에 대해 말할 때 그를 아는 이가 있다면 감정은 뜨겁고 솔직해진다. 사고로 죽은 친구 여정의 아버지의 초대를 받은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속 ‘나’와 ‘재희’는 여정의 아버지에게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사고로 죽은 여정, 여정 없이도 남겨진 우리는 살아간다. 언제나 있던 그 자리에 여정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재는 그런 기이한 순간을 불러온다. 떠났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다 불쑥 그의 부재를 확인한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거였다는 듯이. 상실은 온전한 부재를 통해서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표제작 「우리〔畜舍〕의 환대」에서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는 일, 그것을 인정하는 일을 부모에게 거대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부모가 알고 기대를 품었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상실감은 이루할 수 없이 크다. 어쩌면 건널 수 없는 하나의 경계선을 두고 바라만 보는 일은 다른 이름의 상실이자 부재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번대로 조금씩 소멸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혜주와 ‘나’보냈던 여름을 들려주는 「혜주」는 익숙함에 대한 부재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픈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하던 혜주, 간병을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내고 고집을 부리던 아버지에 대한 속상함을 토로하던 혜주와의 익숙했던 통화가 점점 줄어들고 ‘나’의 이직으로 혜주와 조금씩 줄어들고 끝난다. 이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멀어지는 것들은 모두 결국 부재이며 상실이구나 싶다.


상실의 쓸쓸함이 유독 진하게 느껴진 단편은 「남겨진 사람들」과 「기원과 기도」였다. 「남겨진 사람들」 속 유진은 과거 연인이었던 상주와 같던 강원도로 떠난다. 연인 재우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만 왔다. 유진이 마주하고 싶었던 풍경은 무엇일까. 죽은 상주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유진은 상주가 아주아주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을 가고 싶어 했다는 걸 생각한다. 그리고 그 풍경을 상주가 유진과 함께 보고 싶어 했다는걸. 유진은 상주가 올라와서 보았던 곳까지 힘들게 올라간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 그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서서 자신 쪽으로 돌아봐주기를, 안타깝게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이라도 자기를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왜 자꾸 그런 간절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남겨두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을 때는 혼자 남겨진 것 같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 164~165쪽)


현재의 유진에게 우리는 상주가 아닌 재우일 것이다. 하지만 죽은 상주를 향한 애도는 다른 일이다. 어쩌면 혼자 강원도를 여행하는 일이 남겨진 유진이 상주를 애도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진이 남기고 온 것은 무엇일까. 그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건 나 역시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과 기도」는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떠난 자의 시선이다. 소설 속 화자인 ‘현주’는 떠난 사람이다. 그러니까 엄마보다 먼저 죽은 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방의 도시를 떠나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 진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살게 된 현주는 병에 걸려 죽었다. 죽은 현주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동생 현수와 엄마는 산속의 어떤 집으로 향한다. 거기에 있는 이들이 축문을 읽고 같이 기도를 드리고 장만한 음식을 먹고 돌아온다. 이 모든 과정에 죽은 현주가 동행한다. 그토록 완전히 떠나고 싶었던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짐직할 수 없지만 불현듯 큰언니나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목이 메어왔다.


왜 나는 아직 이곳일까. 왜 이곳에 마음을 두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 마음을 항상 저버릴 수 없었을까. 차마. 왜. 이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현수는 이제야 맞는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다행이야. 현수는 엄마가 깨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조금씩 익숙한 풍경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그 풍경을 마주할 뿐이었다. (「기원과 기도」, 193~194쪽)


이 소설집에서 죽음은 상세하고 구체적인 묘사가 아닌 사고나 병사로 간단한 상황으로 설명한다. 죽음이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남겨진 이들이 그들의 죽음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들을 향한 마음은 쉬이 멈추거나 사라질 수 없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것들과 멍한 시간들, 그것들이 부재와 상실의 자리를 머문다. ‘우리’의 부재를 채운다.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들과 나는 한 번도 우리였던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살아가는 데 불편을 주지 않는 감정이 조금은 슬프다. 춥고 쓸쓸한 겨울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 단편집을 읽어서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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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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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건 항상 조심스러워야 한다. 어떤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라도 나의 그것과 결코 똑같이 포개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짐작과 판단은 무서운 것이다. 작가의 산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황시운의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대해 사고 이후의 일상에 대한 글이 아닐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가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말이다. 


그러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책을 덮고 말았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 난 후에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에게 일어난 사고가 어떤 사고인지 이제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내가 이렇게 일상이라고 써도 괜찮은 걸까 싶은 일상들. 나는 여러 차례 수술을 한 이력이 있다. 매 수술마다 전신마취를 했고 그것 때문에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첫 문장을 읽고 병실에 누워있던 내가 떠올랐다. 그와 나는 전혀 같은 상황이 아님에도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랬다. 황시운의 산문은 나는 모르는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책이 아니면 살아가는 동안 영영 알지 못했을 이야기다.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순간에 사고를 당한 작가, 그로 인해 척수손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되고 반복된 수술과 재활을 통해 현재는 휠체어를 타는 삶, 자신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면서도 한 번씩 모든 삶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11년이 지난 현재 고통과 동반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 하루하루 매 순간의 생생함을 낱낱이 들려주는 글 속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몸부림치며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아진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어진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33쪽)


좋은 이들과 밤 산책을 나간 게 잘못은 아닐 터. 난간이 있어야 하는 다리에 난간은 없었고 작가는 추락했다. 빠른 판단과 이동은 없었고 수술은 미뤄졌다. 그동안에 고통은 온전히 작가 혼자의 몫이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예고하듯이 말이다.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를 괴롭히는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작가를 돌보는 엄마가 곁에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듯 작가는 다시 시작한다. 수천 번의 움직임으로 균형을 잡고 휠체어에 오르고 소설을 쓰고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간다. 왜 이런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이 일이 우리(휠체어 장애인)를 세상에 알리는 향한 ‘입’이라는 걸 말한다. 비장할 게 없는 일이 비장하게 전해지는 것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일조했을 것이다. 다른 삶이라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말이다.





작가의 일상은 통증에서 시작해 끝나지 않을 통증으로 끝난다.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건 뭔가에 몰입하는 순간인데, 그 순간은 통증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야 가능하니 악순환인 것이다. 참아내고 견디며 맞이한 그 짧은 순간에 그는 글을 쓰고 소설을 쓴다. 소설만이 자신을 증명하고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존재의 이유였다. 장애인 재택근무를 하고 소설을 쓰고 휠체어를 타고 친구들을 만난다. 이렇게 쓰고 일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드시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대소변 처리의 어려움, 휠체어 바퀴가 굴러가기 어려운 도로 상황과 출입이 어려운 가게들까지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절망이 가득했다. 휠체어가 넘지 못할 턱들처럼 눈에 보이는 어려움뿐 아니라 그를 향한 사람들과 사회의 시선은 냉대 그 자체였다. 빈번하게 마주하는 출입이 불가능한 가게들로 인해 함께 재활 치료를 했던 이들과의 만남이나 친구와의 약속이 미뤄지거나 집에서만 만나야 할 때마다 화 나고 속상했을 마음을 어떻게 달랬을까. 공연 예매 당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주차부터 모든 게 엉망으로 이어졌던 작가의 불편하고 불쾌했던 기억은 현재 우리 사회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운영이 어떤지 알려준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작가를 밀어낸 무리 중에 나는 없었을까. 턱을 높이고 틈을 벌여 놓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 모두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무수한 턱들을 앞세워 사회가 아무리 나를 밀어낸다 해도 나는 여전히 세상 속, 사람들 틈에 있고 싶었다. (95쪽)


절망에서 그를 이끈 건 소설이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엄마였고 가족이었다. 간병과 돌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희생한 엄마. 모든 엄마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을 에는 통증에 울부짖는 작가에게 오늘이 가장 덜 아픈 날이라고 담담하게 위로하면서도 꿈에서는 걷고 뛰고 수영을 한다며 기적을 바라고 재활 치료를 받을 때 두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하면 걸을 수 있을 환자를 부러워하는 걸 이해하고 받아주는 엄마. 암으로 투병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소설집이 나오기를 바랐던 아빠, 휠체어 타는 고모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불편한 친구와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는 조카들. 같은 병원에서 만나 재활을 하며 인연을 이어간 친구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작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선후배와 동료 작가들. 


사람들은 종종 감사해야 할 일을 잊고 살아간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잊은 채 남이 가진 것에만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179쪽)


어쩌면 이 책은 그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이자 고마움과 감사함을 전하는 따뜻하고 다정한 편지일지도 모른다. 하반신 마비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통증을 뇌가 기억해 온몸으로 견디며 그가 어떻게 고통을 참아내며 글을 썼을지 생각하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만난 산문집은 내게도 그러했다. 나의 어려움과 작가의 어려움을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의 어려움과 작가의 어려움을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모든 게 감사하고 그 덕에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길을 잃었다면 다시 길이 보일 때까지 질기게 버티는 수밖에. 세상이 동강나기 전부터, 그것 말고는 내가 아는 다른 방법 같은 건 없었다. (240쪽)


우리는 모두 작가처럼 질기게 자신의 삶을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혼자만의 버팀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함부로 타인의 삶에 할 수 없지만 타인의 아픔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의 당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 귀를 기울여 듣고 당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어쩌면 당신도 영영 몰랐을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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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스무 살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7
최지연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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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라고 착각한다. 지나고 보면 겨우 스무 살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스무 살에 도착하면 뭔가 대단한 일들을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도 괜찮을 것 같도 마음껏 술에 취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스무 살을 향해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제1회 성장소설상 수상작인 최지연의 『이 와중에 스무 살』 은 그런 스무 살의 마음을 들려준다. 


주인공 은호는 서울의 강북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났다. 그동안 집안의 장녀로 엄마의 착한 딸이자 동생의 든든한 누나였던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대학생 은호로만 지낸다. 학과 공부는 뒤로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선배 윤지가 활동하는 철학 동아리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상담실 안내 게시물을 보고 상담실을 찾았다. 상담사 앞에서는 이상하게 모든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러니까 엄마에 대한 은호의 감정들 말이다. 


느닷없이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 은호의 자취 집에서 함께 살면서 갈등은 심해졌다. 은호는 엄마의 기대와 간섭이 싫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신을 낳은 엄마의 삶은 은호와 동생을 위한 것으로 채워졌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고 밖으로 도는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다. 그런 엄마를 위해 은호는 열심히 공부하고 엄마의 말에 순종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남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싶었다.


상담을 하면서 은호는 자신이 잊고 있던, 아닌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대면한다.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간 엄마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했던 기억, 돌아온 엄마가 또 떠날까 하루하루가 두려웠던 시간, 그 일에 대해 한 번도 엄마에게 묻지 못했던 마음들. 그때 남았던 상처가 자신의 연애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은호는 사귀는 남자친구에게 항상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했는데 상대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상담사는 말한다. 꺼내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여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식당 일을 그만두고 친구라고 소개한 아저씨의 일을 도우면서 은호와 엄마는 조금 친해진 것 같았다. 엄마의 지방 출장이 많아지고 은호는 엄마가 아저씨와 재혼을 하기를 은근히 바랐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아저씨가 자신을 여자로 보자마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은호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매일 욕하고 싸우는 아빠를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공무원 되라고 행정학과를 보냈는데 휴학이나 한 은호에게 화가 난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 보고 사는 엄마가 정말 싫었다. 숨이 막힌다고 말하면서 좋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살라는 은호에게 “나는 남자 손끝만 스쳐도 소름이 끼쳐, 알아?”란 말을 하며 빰을 때리며 나가라고 소리치는 엄마. 


집을 나온 은호는 엄마가 아빠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잘 사는 엄마를 바랐으면서도 엄마의 남은 인생을 남자에게 기대 살기를 바랐을 뿐 엄마가 원하는 인생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잠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쳐도 엄마가 나오지 않자 은호는 119에 신고를 한다. 약과 술을 함께 마신 몽롱한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술을 못 마시는 엄마가 왜? 설마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자살 소동 후 엄마는 예전처럼 식당에 나가고 쉬는 날에는 핸드폰 게임을 하며 지냈다. 은호에게 공무원 시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은호도 엄마에게 약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을 은호 학생이 다 헤아리고 떠맡지 않아도 돼요. 엄마에게 너무 많은 마음의 짐을 느낄 필요도 없고요.”

“엄마의 감정과 제 감정을 구분하라는 말씀이신 거죠?”

“맞아요, 은호 학생이 엄마에게 바라는 것처럼, 은호 학생도 엄마를 놓아줘요. 편안하게 힘을 빼면서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거죠.” (205쪽)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생한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K 장녀, K 장남의 무게는 이렇게 시작된 게 아닐까. 자신이 삶을 잘 살는 일, 그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간다. 상담사의 말처럼 은호가 엄마를 놓아주는 일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식당 일을 하면서 내 힘으로 먹고사는 일이 좋다고 말하는 엄마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말이다. 


나는 부신 눈을 감으며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감은 눈 아래로 빛의 잔상들이 반짝반짝 어른거렸다. 좋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고, 엄마는 말없이 내 무릎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순간 나는 누구의 딸이 아니었고, 엄마도 누구의 엄마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자유롭게 함께 있었다. (250~251쪽)


스무 살은 그저 스무 살이고 마흔 살, 예순 살도 나이일 뿐이다. 어떤 나이를 살든, 뭔가 대단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뒤늦은 방황과 자아 찾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와의 적당한 거리를 찾고 서로를 응원하는 결말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와 딸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제목처럼 이 와중에 스무 살이 된 이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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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12-1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16 09:1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눈이 그치고 여전히 쌀쌀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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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한 삶을 위협하는 건 무엇일까. 예상하지 못했던 강력한 외부의 자극, 누구도 막지 못했을 사건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진다.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뚫고 지나가야 할까.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건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놓친다. 어쩌면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집 『레이디스』에서 그런 우리의 내부를 만난다. 때로 불안을 숨기고 때로 아무렇지 않은 것 불안을 이겨내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모습들. 16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면을 가득 채운 초초한 기운이 어떤 형태로든 한순간 폭발하는 순간이 곧 올 거라는 예감과 마주한다. 해소될 수 있는 불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첫 번째로 만나는 단편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에서 불안은 남자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수녀원에 들어온 갓난 남자아이가 들어오면서 발생한다. 불안은 나를 알아가면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여자아이로 자라온 남자아이가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발생하는 분노와 불안이다.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자연적인 감정을 억압했을 때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불안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숨기려 한다. 상대에게 얕볼까 봐 초짜인 게 들통날까 봐 그렇다. 시골에서 대도시 뉴욕으로 이주한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속 가족이 느낀 불안은 지극히 정상적인 불안이다. 어른인 부모와 다르게 아파트의 냄새와 공기마저 불안으로 다가오는 아이의 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것은 감추어할 것처럼 여겨진다. 직장을 구하는 일,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일의 공포는 가만 생각하면 우리 일상을 둘러싼 공포와 다르지 않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소설을 통해 전달하는 불안은 보통의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불안에 잠식당하는 것일까. 


내일 새 학교에 가면 친구들을 아주 많이 사귀어서 거짓말을 보상해야 했다. 아이들이 전부 다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보다 두 배로 못되고 매정해도 어쩔 수 없다. 등을 토닥여주는 아빠의 손길이 느껴졌고, 자기 등 뒤에서 아빠도 허리를 구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상하다고, 엘스퍼스는 생각했다. 숨죽이고 있던 기나긴 일분 동안 엄마와 아빠는 둘 다 그렇게 조용할 수 없으리만큼 조용했다.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141쪽)


물론 잠재적 범죄로 인한 공포와 불안에 대한 소설도 만날 수 있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피해 탈출을 감행한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의 아내가 도시의 놀이공원에서 우연하게 만난 사람이 동창이 아닌 나쁜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이나 어린 소녀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낯선 남자가 돌변하는 태도를 그린 「엄청나게 친절한 남자」는 범죄로 이어지기에 충분하다. 잔혹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말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나처럼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를 여읜 주인공이 보모로 들어간 집의 가족이 되고자 하는 「영웅」은 더욱 괴기하다.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면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이뤄질 거라 믿어 끝내 불을 지르는 모습은 불안이 몰고 온 처참한 결과를 보여준다. 일상을 가득 채운 불안은 두려움이 아닌 어떤 상상과 기대에서 시작되기도 하는데 가상을 남편을 만들어 그에 대한 상담을 받는 「애프턴 부인, 그대의 푸르른 산비탈에 둘러싸여」속 여자나 혼자만의 감정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한 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하늘로 막 비상하려는 새들」의 남자의 경우 말이다. 언제 답장을 받을까 불안하다 못해 남의 편지함까지 확인하는 이상한 행동으로 발전한다. 


이처럼 소설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들은 특별한 삶의 이력을 지닌 이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때로 주변 이웃의 행동으로 인해 하루하루 평온하게 흐르는 일상이 흔들린다.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속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온 젊은 엄마가 마주친 연인의 모습 같은 것. 자신과 똑같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자 앞에 나타난 남자. 둘 사이이 흐르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나 이 단편에서 나를 흔든 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런 문장이었다. 모든 것이 불안으로 둘러싸인 극도의 짧은 순간의 감정을 묘사한 문장. 어떤 미래가 도착할지 알지 못하면서도 연인 곁에서 고요를 순간 불안은 그들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고요는 모든 고요와 다른 모든 종류의 평화를 뛰어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불현듯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으로 영원한 진실을 발견한 것처럼 방금 우연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 곁에서 백일몽의 아름다움은 절대로 알퍅하지 않고 고독하게 존재하는 그림처럼 움직임이 없지도 않으며 납작하지도 않다는 것을. 그녀 곁에는 전진하는 움직임이 없고 대기에 전류처럼 짜릿하게 흐르는 에너지가 있으면 현실이나 상상 속 사물의 둥근 자질, 온전한 자질이 있었기에.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 164쪽)


그래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소설집에서 보여준 미스터리, 강박, 집착에 매료된다. 어느 하나 비슷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16편의 이야기. 저마다 고유한 인간의 심연에 가득한 우울과 불안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스릴 넘치고 긴박한 분위기, 복잡한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들. 일상의 불안을 포집해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놓은 놀랍고도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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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30만 부 리커버 특별판)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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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구는 중요하다. 특히 십 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와 잘 지내는 일은 어렵다. 나를 다 보여주면 상대도 다 보여주기를 바라고 내가 비밀을 말하면 상대도 비밀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친구와의 관계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황영미의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는 그런 십 대의 마음을 아주 잘 묘사했다. 학교에서 은따,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가면을 쓰고 마음을 숨기는지 말이다. 그 마음이 안쓰러워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나 따돌림을 하는 아이, 모두 저마다의 아픈 상처와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을 앞두고 다현은 반 배정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자신을 끼워준 ‘다섯 손가락’ 모임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중 두 명과 한 반이 되었다. 문제는 짝꿍이다. 친구들의 밉상 2위에 랭킹 된 은유다. 친구들이 왜 은유를 미워하는지 다현은 잘 모르겠다. 수행평가 때문에 은유와 같은 조가 되었는데 모임 친구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모둠 활동을 위해 은유 집에 간 다현은 은유가 이상하지 않다. 다섯 손가락 친구들은 강남에서 이사 온 은유가 학원도 일부러 안 알려주고 변호사 아빠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모둠의 다른 친구들에게 들은 사정은 달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모가 계신 동네로 이사를 왔고 은유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했다고.


다현은 다섯 손가락 모임의 친구에게 은유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기에 말하지 못했다. 다현은 모임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난다는 말도 아이돌 노래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진지충’이라는 것, 비공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은따가 되기 싫어서, 그런데 이 모든 걸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다. 오직 운영하는 블로그에만 자신의 마음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은유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라졌다. 우연하게 길에서 만난 은유와 함께 집에 온 다현이는 은유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가 떠나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올 수 없었는데 다섯 손가락 모임의 친구는 그걸 모르니 은유가 밉고 싫었을 것이다. 은유는 단짝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혼자 지내고 상관없다고 말한다. 


“왜? 친해지는 게 왜 겁나는데?”

“어차피 또 헤어질 거잖아. 난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을 거야.”

“야! 그러다 왕따 되면 어쩌려고?”

“왕따? 왕따 되면 되는 거지. 난 왕따 따위는 겁 안 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지는 게 겁나지.” (114쪽) 


다현이 은유와 가까워질수록 다섯 손가락 모임과는 점점 멀어졌다. 아니 그 친구들이 다현이를 은따, 왕따시키는 게 맞다. 다섯 손가락에서 다현은 친구가 놓고 간 학원 교재를 심부름하거나 눈치를 보면서 맞장구를 치거나 용돈으로 선물을 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하고 싶을 말을 꽁꽁 숨긴 채 그래야 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친구로 대하지 않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잘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156~157쪽) 


다섯 손가락과 다현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다. 나무들처럼 혼자라는 은유의 말이 다현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다현은 비공개 블로그를 공개로 돌리고 모둠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과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공유한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울컥해진다.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는 다현이 대견스럽다. 옆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만 신경 쓸 거야.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면 그냥, 내가 먼저 좋아할 거야.” (179~180쪽)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를 읽으면서 학창 시절 좋아했던 친구와 점점 서먹해졌던 때가 떠올랐다. 무조건 좋아하는 마음에 다가서기만 했던 내 모습이 친구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감정과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로 많이 힘든 시기를 겪는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을 위한 도서여도 무방하다. 그만큼 관계에 대해 잘 묘사하고 설명하다. 아주 좋은 책이라는 설명으로 부족할 정로도 좋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성장한다는 것을. 그렇게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좌절하며 천천히 단단해질 것이라고. 다현이 블로그에 올린 글처럼. 


그냥 웃어, 노래 가사처럼 넘어지면 아픈 게 당연하다. 생채기가 나고 피가 흐르겠지. 하지만 조만간 껍질이 생길 것이다. 새롭고 단단한 껍질. 나의 외피.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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