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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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건 항상 조심스러워야 한다. 어떤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라도 나의 그것과 결코 똑같이 포개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짐작과 판단은 무서운 것이다. 작가의 산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황시운의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대해 사고 이후의 일상에 대한 글이 아닐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가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말이다. 


그러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책을 덮고 말았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 난 후에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에게 일어난 사고가 어떤 사고인지 이제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내가 이렇게 일상이라고 써도 괜찮은 걸까 싶은 일상들. 나는 여러 차례 수술을 한 이력이 있다. 매 수술마다 전신마취를 했고 그것 때문에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첫 문장을 읽고 병실에 누워있던 내가 떠올랐다. 그와 나는 전혀 같은 상황이 아님에도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랬다. 황시운의 산문은 나는 모르는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책이 아니면 살아가는 동안 영영 알지 못했을 이야기다.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순간에 사고를 당한 작가, 그로 인해 척수손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되고 반복된 수술과 재활을 통해 현재는 휠체어를 타는 삶, 자신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면서도 한 번씩 모든 삶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11년이 지난 현재 고통과 동반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 하루하루 매 순간의 생생함을 낱낱이 들려주는 글 속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몸부림치며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아진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어진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33쪽)


좋은 이들과 밤 산책을 나간 게 잘못은 아닐 터. 난간이 있어야 하는 다리에 난간은 없었고 작가는 추락했다. 빠른 판단과 이동은 없었고 수술은 미뤄졌다. 그동안에 고통은 온전히 작가 혼자의 몫이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예고하듯이 말이다.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를 괴롭히는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작가를 돌보는 엄마가 곁에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듯 작가는 다시 시작한다. 수천 번의 움직임으로 균형을 잡고 휠체어에 오르고 소설을 쓰고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간다. 왜 이런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이 일이 우리(휠체어 장애인)를 세상에 알리는 향한 ‘입’이라는 걸 말한다. 비장할 게 없는 일이 비장하게 전해지는 것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일조했을 것이다. 다른 삶이라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말이다.





작가의 일상은 통증에서 시작해 끝나지 않을 통증으로 끝난다.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건 뭔가에 몰입하는 순간인데, 그 순간은 통증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야 가능하니 악순환인 것이다. 참아내고 견디며 맞이한 그 짧은 순간에 그는 글을 쓰고 소설을 쓴다. 소설만이 자신을 증명하고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존재의 이유였다. 장애인 재택근무를 하고 소설을 쓰고 휠체어를 타고 친구들을 만난다. 이렇게 쓰고 일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드시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대소변 처리의 어려움, 휠체어 바퀴가 굴러가기 어려운 도로 상황과 출입이 어려운 가게들까지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절망이 가득했다. 휠체어가 넘지 못할 턱들처럼 눈에 보이는 어려움뿐 아니라 그를 향한 사람들과 사회의 시선은 냉대 그 자체였다. 빈번하게 마주하는 출입이 불가능한 가게들로 인해 함께 재활 치료를 했던 이들과의 만남이나 친구와의 약속이 미뤄지거나 집에서만 만나야 할 때마다 화 나고 속상했을 마음을 어떻게 달랬을까. 공연 예매 당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주차부터 모든 게 엉망으로 이어졌던 작가의 불편하고 불쾌했던 기억은 현재 우리 사회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운영이 어떤지 알려준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작가를 밀어낸 무리 중에 나는 없었을까. 턱을 높이고 틈을 벌여 놓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 모두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무수한 턱들을 앞세워 사회가 아무리 나를 밀어낸다 해도 나는 여전히 세상 속, 사람들 틈에 있고 싶었다. (95쪽)


절망에서 그를 이끈 건 소설이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엄마였고 가족이었다. 간병과 돌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희생한 엄마. 모든 엄마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을 에는 통증에 울부짖는 작가에게 오늘이 가장 덜 아픈 날이라고 담담하게 위로하면서도 꿈에서는 걷고 뛰고 수영을 한다며 기적을 바라고 재활 치료를 받을 때 두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하면 걸을 수 있을 환자를 부러워하는 걸 이해하고 받아주는 엄마. 암으로 투병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소설집이 나오기를 바랐던 아빠, 휠체어 타는 고모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불편한 친구와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는 조카들. 같은 병원에서 만나 재활을 하며 인연을 이어간 친구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작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선후배와 동료 작가들. 


사람들은 종종 감사해야 할 일을 잊고 살아간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잊은 채 남이 가진 것에만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179쪽)


어쩌면 이 책은 그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이자 고마움과 감사함을 전하는 따뜻하고 다정한 편지일지도 모른다. 하반신 마비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통증을 뇌가 기억해 온몸으로 견디며 그가 어떻게 고통을 참아내며 글을 썼을지 생각하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만난 산문집은 내게도 그러했다. 나의 어려움과 작가의 어려움을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의 어려움과 작가의 어려움을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모든 게 감사하고 그 덕에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길을 잃었다면 다시 길이 보일 때까지 질기게 버티는 수밖에. 세상이 동강나기 전부터, 그것 말고는 내가 아는 다른 방법 같은 건 없었다. (240쪽)


우리는 모두 작가처럼 질기게 자신의 삶을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혼자만의 버팀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함부로 타인의 삶에 할 수 없지만 타인의 아픔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의 당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 귀를 기울여 듣고 당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어쩌면 당신도 영영 몰랐을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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