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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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였던 이들은 영원히 우리일까.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떠났을 때에도 그는 우리 곁에 머문다. 조금씩 잊히겠지만 말이다. 상실과 부재를 채우는 건 우리였던 시절의 기억이다. 함께였던 시간의 기억, 머물렀던 공간. 좋았던 것은 좋았던 대로, 나빴던 것은 나빴던 대로 우리로 남는다. 


장희원의 첫 소설집 『우리의 환대』는 우리였던 이들의 기억인 동시에 남겨진 자의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할까. 누군가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일에 대해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준다. 떠난 이에 대해 말할 때 그를 아는 이가 있다면 감정은 뜨겁고 솔직해진다. 사고로 죽은 친구 여정의 아버지의 초대를 받은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속 ‘나’와 ‘재희’는 여정의 아버지에게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사고로 죽은 여정, 여정 없이도 남겨진 우리는 살아간다. 언제나 있던 그 자리에 여정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재는 그런 기이한 순간을 불러온다. 떠났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다 불쑥 그의 부재를 확인한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거였다는 듯이. 상실은 온전한 부재를 통해서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표제작 「우리〔畜舍〕의 환대」에서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는 일, 그것을 인정하는 일을 부모에게 거대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부모가 알고 기대를 품었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상실감은 이루할 수 없이 크다. 어쩌면 건널 수 없는 하나의 경계선을 두고 바라만 보는 일은 다른 이름의 상실이자 부재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번대로 조금씩 소멸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혜주와 ‘나’보냈던 여름을 들려주는 「혜주」는 익숙함에 대한 부재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픈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하던 혜주, 간병을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내고 고집을 부리던 아버지에 대한 속상함을 토로하던 혜주와의 익숙했던 통화가 점점 줄어들고 ‘나’의 이직으로 혜주와 조금씩 줄어들고 끝난다. 이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멀어지는 것들은 모두 결국 부재이며 상실이구나 싶다.


상실의 쓸쓸함이 유독 진하게 느껴진 단편은 「남겨진 사람들」과 「기원과 기도」였다. 「남겨진 사람들」 속 유진은 과거 연인이었던 상주와 같던 강원도로 떠난다. 연인 재우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만 왔다. 유진이 마주하고 싶었던 풍경은 무엇일까. 죽은 상주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유진은 상주가 아주아주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을 가고 싶어 했다는 걸 생각한다. 그리고 그 풍경을 상주가 유진과 함께 보고 싶어 했다는걸. 유진은 상주가 올라와서 보았던 곳까지 힘들게 올라간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 그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서서 자신 쪽으로 돌아봐주기를, 안타깝게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이라도 자기를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왜 자꾸 그런 간절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남겨두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을 때는 혼자 남겨진 것 같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 164~165쪽)


현재의 유진에게 우리는 상주가 아닌 재우일 것이다. 하지만 죽은 상주를 향한 애도는 다른 일이다. 어쩌면 혼자 강원도를 여행하는 일이 남겨진 유진이 상주를 애도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진이 남기고 온 것은 무엇일까. 그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건 나 역시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과 기도」는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떠난 자의 시선이다. 소설 속 화자인 ‘현주’는 떠난 사람이다. 그러니까 엄마보다 먼저 죽은 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방의 도시를 떠나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 진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살게 된 현주는 병에 걸려 죽었다. 죽은 현주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동생 현수와 엄마는 산속의 어떤 집으로 향한다. 거기에 있는 이들이 축문을 읽고 같이 기도를 드리고 장만한 음식을 먹고 돌아온다. 이 모든 과정에 죽은 현주가 동행한다. 그토록 완전히 떠나고 싶었던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짐직할 수 없지만 불현듯 큰언니나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목이 메어왔다.


왜 나는 아직 이곳일까. 왜 이곳에 마음을 두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 마음을 항상 저버릴 수 없었을까. 차마. 왜. 이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현수는 이제야 맞는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다행이야. 현수는 엄마가 깨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조금씩 익숙한 풍경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그 풍경을 마주할 뿐이었다. (「기원과 기도」, 193~194쪽)


이 소설집에서 죽음은 상세하고 구체적인 묘사가 아닌 사고나 병사로 간단한 상황으로 설명한다. 죽음이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남겨진 이들이 그들의 죽음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들을 향한 마음은 쉬이 멈추거나 사라질 수 없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것들과 멍한 시간들, 그것들이 부재와 상실의 자리를 머문다. ‘우리’의 부재를 채운다.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들과 나는 한 번도 우리였던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살아가는 데 불편을 주지 않는 감정이 조금은 슬프다. 춥고 쓸쓸한 겨울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 단편집을 읽어서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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