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팬데믹의 시대,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이별은 준비 없이 진행된다.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고,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 생은 유한하고 모두 죽음을 맞는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기다리며 막연하게 후회와 슬픔에 잠겨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영원 스승 이어령이 김지수 기자와 나눈 대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과 삶에 알려준다. 


무엇보다 스승은 내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그는 음습하고 쾨쾨한 죽음을 한여름의 태양 아래로 가져와 빛으로 일광욕을 시켜주었다. (9쪽)


이미 김지수는 이어령과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시, 라스트 인터뷰라는 말처럼 정말 마지막 인터뷰인 것이다. 암을 선고받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스승이 들려주는 사유는 일상 대화처럼 편안하게 시작되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풍부한 철학 수업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매주 화요일의 대화로 총 16번 이어졌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어둠의 팔목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23쪽)


죽음과 팔씨름을 하는 하루하루를 짐작할 수 있을까. 이어령처럼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겐 있을까.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저자를 맞이하며 풀어놓는 삶의 지혜와 사유는 한 분야에 속하지 않고 전방위적 대화로 확장된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대화가 하나도 어렵지 않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같다고 할까. 인문, 철학, 문학, 다방면에 정통한 이어령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한 우물이 아닌 여러 우물을 파는 일, 그는 호기심이고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여러 우물을 팠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계속 쓰는 것이라고. 그러니 책도 정독하거나 차례로 읽지 않고 재미있는 부분만 읽고 재미없으면 던져버린다고. 끈질기고 지독하게 무언가에 열중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메이비maybe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 말이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인식하고 존재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일까. 죽음과 존재에 대한 사유가 유독 많고 성경 구절이나 신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해설이 무척 놀랍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마음이나, 돌아온 탕자에 대해 이젠에는 한 번도 듣지 못한 해석이라고 할까. 아흔아홉 마리도 결국은 각각 양 한 마리라는 것,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경험하고 돌아왔을 때 더 값진 삶을 안다는 사실.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말고 방황하고 길 잃은 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조건 성공만 바라는 모두를 뜨끔하게 만든다. 


팬데믹에 접어들면서 마스크 한 장에 생명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 집에서 태어난 집에서 죽었던 우리네 삶이 어쩌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가. 일상의 가까운 곳에 무덤이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었고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마지막 의식도 직접 하지 않았냐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했는데 언제부터 죽음을 다루는 방법이나 태도가 변했을까 싶다.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정녕 죽음을 알 수 있을까.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 가만히 안아줄 수 있을까. 딸인 이민아 목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책 서두에서 죽기 살기로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는 글이 떠올랐다. 죽음이란 끝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모른다는 그의 설명에는 뭔가 울컥하면서도 서글퍼졌다. 비슷한 고통을 경험했더라도 그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기에. 저마다의 존재 사이에 드리운 얇은 막. 


“우리은 영원히 타인의 아픔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얇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처진 얇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 일 수 있는 것’처럼.” (122쪽)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어른으로, 스승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자신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라는 말처럼 하루하루의 생이 나만의 것이며 나만의 무늬로 채워진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마,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179쪽)”


“죽음은 고통이야. 그런데 고통이 죽음은 아니야. 고통이 끝나는 공백, 시끄러움이 끝나는 정적…… 그러니까 고통까지도 죽음 밖에 있는 거라네. 숨이 넘어가서 무로 돌아가는 그 순간은 우리가 체험할 수도 느낄 수도 없어.” (247쪽)


책 전체가 하나의 강의이자 거대한 울림이며 어른의 위로라고 해도 맞을 것이다. 생의 끝에서 맞이한 진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게 감사였고 사랑이라고 말이다. 가장 최근에 곁을 떠난 아버지와 큰 언니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집이 아닌 병원에서의 마지막.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큰 언니. 마치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이 겹쳐지는 책, 그 안에서 나의 마지막도 생각하게 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 우리의 생이 모두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받은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3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삶이 가장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보통으로 산다는 건 특별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더 쉬워졌다. 평범과 보통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그 기준은 내가 세운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남들처럼 내 집을 갖기를 바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이란 이런 것이다. 정해진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자꾸만 모른 척한다. 그러니 보통이나 평범 따위에 붙잡힐 필요 없다. 


이희영의 『보통의 노을』 속 노을은 그런 삶을 지향한다. 그런데도 한 번씩 보통의 삶에 대해 자꾸 돌아본다. 고등학생 때 자신을 낳은 엄마는 가족이 아닌 노을을 선택했다. 여덟 살 노을은 그런 엄마가 대단하다. 서른넷의 엄마 자혜는 미혼모 시절에서 액세서리 만드는 법을 배운 기술로 노을을 키우고 현재 공방을 운영 중이다. 사람들은 노을과 자혜를 남매나 친구로 착각한다. 그럴 때마다 자혜는 자신이 엄마라고 아무렇지 않게 밝힌다.


엄마는 늘 우리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우리란 말속에는 내가 너를 위해서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협력이었고, 한 명이 앞서 걷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보폭을 맞춘다는 뜻이었다. (75~76쪽)


그런 엄마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노을은 그냥 무시했으면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질문이 싫어서다. 노을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엄마에게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좋은 사람이 나타나자 생각이 많아졌다. 그 상대가 바로 친구 성하의 열 살 많은 오빠 성빈이기 때문이다. 노을이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집 큰 아들이다. 엄마에게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보다 나이가 어리고 노을과는 열 살 차이라는 게 자꾸 걸린다. 세상의 시선에 엄마가 상처 받을까 걱정이다. 


성하의 부모님 반대와 그 사이에서 아파하는 노을과 엄마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보통의 노을』은 보통의 삶에 대해 주목한다. 삶이란 지인과 이웃, 나아가 모두에게 반드시 이해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노을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하네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중국집은 으레 배달을 할 거라는 손님들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응대를 할 때 배달을 안 하는 중국집이 어디 있냐고 화를 낸다. 배달을 해야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은 데 말이다.


노을은 자신의 출생이 남들이 말하는 보통이 아니기에 보통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데도 성빈과 엄마의 관계에서는 주춤한다. 자신도 모르게 둘 사이가 보통의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꾸 사장님의 눈치를 살핀다. 분명 반대할 거라 여겨서다. 하지만 사장님은 배달을 하지 않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며 성빈과 자혜의 관계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는다.


소설은 묻는다. 보통의 삶 어떤 거냐고? 그게 보통의 삶이라 확신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노을을 좋아하는 친구 성우를 통해 동성애를, 성하와 노을의 관계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우정을, 성빈과 자혜의 만남으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비혼모, 미혼부, 연상연하의 커플, 동성애를 특별함이 아닌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말이다. 


“보통의 삶 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아.”

“각자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게 전부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고속도로 위에 올라서려 분투하는 대신 뭐, 좀 울퉁불퉁하더라도 각자 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144쪽)


성하와 노을이 보통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보통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안달복달하는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똑같은 속도로 주변의 풍경도 보지 않고 달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러니 남들처럼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 노을처럼 나만의 보통과 나만의 평범을 찾으면 그만이다. 


세상에 기준이 어디 있고 표준이 어디 있을까? 엄마가 나를 고등학생 때 낳은 게 어때서. 덕분에 친구처럼 세대 차이 나질 않는데. 살다 보면 나보다 열 살 많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날도 오지 않겠어? 나를 좋아하는 남자 녀석과 친구가 될 수 있잖아.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평범하고 보통인 일상이다. (213쪽)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 진로를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다양한 삶에 대해 알려주는 소설이다. 부모나 어른이 제시하고 이끄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들은 놀라워라 박노해 사진에세이 5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일 여유도 없이 삶은 그 자체로 고단하고 피곤하다. 무엇에 쫓겨 사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향해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무겁고 어둡다. 어디론가 도망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나의 마음에 호통을 치는 글과 사진들. 박노해 시인의 사진 에세이 『아이들은 놀라워라』 속 아이들의 모습이다. 


책 전체에 담긴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자 수호천사’란 메시지가 나의 가슴에 꽂힌다. 무슨 불평이 많냐고, 변명 따위 집어치우라고 말이다. 37점 흑백사진과 글이 주는 울림이 켜켜이 쌓인다. 아이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우리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거대한 우주를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전해진다.


아이는 부모라는 지구 인간의 몸을 타고 여기 왔으나 온 우주를 힘껏 머금은 장엄한 존재이다.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고, 그 무엇이 되어 어디로 나아갈지. 지금 작고 갓난해도 영원으로부터 온 아이는 이미 다 가지고 여기 왔으니. (10쪽, 「서문」 중에서)


박노해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만나온 아이들, 지금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웃고 가난한 일상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아들의 표정 속에서 기쁨의 빛이 쏟아진다. 나는 알지 못하는 그 삶에 내가 잠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끄는 아이들의 환한 미소. 


어른의 부재를 홀로 감당하며 아빠에게 물려받은 낡은 손목시계를 차고 길을 떠나는 소년, 감자를 수확하고 벼 타작을 돕는 아이들, 일을 하러 간 어른들 대신 울며 보채는 동생을 등에 업은 어린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의 과거를 보고 그 과거가 만든 현재를 생각한다. 점령당한 분쟁의 땅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자라고 여전히 꿈꾼다. 포기와 절망이 아닌 현재를 사랑하며 책을 읽는 소년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도 양 떼는 풀을 뜯고 아이들은 책을 읽는다. 비록 내일이면 여린 손에 작은 돌멩이를 쥐고 침략자의 탱크를 향해 달려갈지라도. (32쪽, 「헤브론 광야의 소년들」중에서)





모든 어른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분쟁의 중심엔 아이가 아닌 어른이 있을 터. 그 현실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어른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며 의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기특하다. 모든 게 풍요롭다 못해 넘치고 버려지는 시대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아래의 연필을 쥔 흑백 사진은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아이는 진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부족 마을의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의 반짝이는 눈빛에 담긴 결의를 응원한다. 


배움은 간절함이다. 결핍과 결여만이 줄 수 있는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궁리와 창의, 도전과 분투, 견디는 힘과 강인한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아버린 것은 그 소중한 ‘결여’와 ‘여백’이 아닌가. 간절한 마음에 빛과 힘이 온다. (62쪽, 「간절한 눈빛으로」 중에서)





무엇이 부족해 어른들은 전쟁을 놓지 못하는가. 전시 상황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이스라엘 전폭기 집중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 마을 축제를 위해 연극 연습을 하던 아이들이 폭력으로 숨졌다. 비통하고 애통한 심정을 노래로 달래는 사진 속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감출 수 없다. 


친구들이 죽은 자리에 꽃을 들고 서서 참아온 슬픔을 터뜨리며 노래를 부른다. 보아주고 들어주는 건 나 한 사람뿐인데 아이들은 우리 폭탄 대신 꽃을 손에 들자고, 세계를 향해 평화 시위를 하는 것만 같다. (74쪽, 「폭탄 대신 꽃을」 중에서)





어린이였던 시절, 그때의 모든 기억을 다 간직할 수 없겠지만 전쟁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는데 어른이 되는 순간 어린이의 감정을 잃어버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천진함, 어떤 상황에서도 놀이를 찾고 친구와 어울리는 다정함. 정말 아이들은 놀라고 대단하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설렘으로 기대하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 그저 지긋지긋한 추위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땅에서는 어떤 시간에서는 봄은 그냥 봄이 아닌 희망과 평화의 봄이라는 걸 이제 안다.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눈 속에 싹트는 작은 새싹 하나라도 먼저 보고 언 강 아래로 흐르는 봄의 물소리를 먼저 듣고 종알종알 속삭이고 노래하며 봄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은 봄이다. 그 자체로 봄이다. 설원에 어깨 걸고 선 쿠르드 아이들이 이 분쟁의 땅에서 간절히 평화의 봄을 부른다. (86쪽, 「봄을 기다리며」중에서 )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강인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서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버리는 아이들은, 

아이들은 놀라워라. 


아이들은 시대의 전위여라. 

아이들은 인간의 희망이어라. 

아이들은 어둠 속 빛이어라. (111쪽, 「아이들은 놀라워라」 중에서)


37점의 사진 속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준다. 감추거나 숨기려는 마음은 찾을 수 없다. 낯선 이방인이었을 박노해 시인이 내민 손을 가만히 잡았을 것이다. 그 손을 잡아준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이 귀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볼 수 있다. 복잡하고 어두운 내 마음을 단순하고 환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아이들, 당신에게도 빛을 전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 없는 검사들 - 수사도 구속도 기소도 제멋대로인 검찰의 실체를 추적하다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호사와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시청 중이다. 각각의 드라마에서 변호사는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고 검사는 범인을 잡은 역할을 한다. 변호사와 검사의 좋은 점만 부각시켰을 수도 있지만 현실이 아닌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정의 구현을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다.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살면서 고소, 고발은 하지도 당하지도 않고 사는 게 일반적인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생긴다. 


드라마 때문인지 검사는 날카로운 칼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 칼이 정의를 위해 쓰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뉴스나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된 검사의 모습은 무소 권력 그 자체였다. 변호사 겸 활동가로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일하는 최정규의 『얼굴 없는 검사들』 을 읽으면서 검사라는 직업과 그들만의 세계가 어떻게 단합되는지 알 수 있었다. 책에서 언급된 사건이나 일부 검사의 일이기를 바라면서도 드라마와 달리 불편했고 화가 났다.


검찰제도의 시작이 인권보호 때문이라는 걸 우리는 잊고 있었다.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를 보호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고 검사라는 지위를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는 태도. 재판이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이나 싸움이 아니니 검사에게는 승패가 없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검사의 객관 의무는 지키면 좋고, 안 지키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는 검사가 유능한 검사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그런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인 진짜 검사가 아니다. (49쪽)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검사를 만나려는 이들에게 검사는 닿을 수 없는 존재라니. 여전히 법은 멀리 있다고 여기게 된다. 서면이 아닌 ‘구술 고소’제도가 법으로 규정되었어도 불구하고 검찰은 소극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재고하기 위해 검찰 스스로 도입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재벌이나 권력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되고 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수사기록의 확보에 대한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법으로는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청구를 취하하고 열람등사 신청을 하라고 하는데 이게 진행 중인 사건의 경우는 열람등사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행 중인 사건을 위해 정보가 필요한데 적용할 수 없다니.


수사 기록의 소유권은 검찰에게 있지 않다. 국민인 우리 소유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으로 수사를 한 검찰은 그 기록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수사 기록을 꽁꽁 숨기는 관행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수가 기록을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 중심 검찰의 기본적인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89쪽)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검사에게 주어진 기소권이 어떤 것인지, 그 기소권을 남용하는지 제대로 기소하는지 지켜보는 국민의 일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적 관심을 갖는 사건의 경우에 더욱.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소.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수술을 대리로 한 사건에서 의사는 상해죄가 아니 사기죄로만 기소하는 검찰. 검찰이 유령 대리 수술 참여자를 상해죄에 적용해서 공소 제기한 사례가 없다. 검찰에서는 상해죄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를 명확하기 밝히지도 않고 있으니 도대체 왜?라는 질문만 나온다.


일반 시민에게는 한없이 높은 법이 검찰의 식구, 그러니까 검사들에게는 부드럽고 턱 없이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 다시 접하니 어이가 없다. 김학의 동영상 사건, 길거리 성추행 부장 검사, 현직 부장검사의 교통사고, 모두 무죄이거나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검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일은 재심도 있었다. 억울하게 범죄자가 된 경우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 <재심>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검찰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검찰이 재심을 청구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더욱 놀랐다. 한데 재심 사건 심문기일에 검사가 어떤 의견 도 내지 않고 출석도 하지 않은 기막힌 사례에 할 말을 잃었다. 지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피의자의 인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검찰이 거악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혹여나 더 중요한 시민들의 인권보호를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282쪽)


앞으로 드라마를 볼 때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검사가 유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 공익의 대표자로 진짜 검사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아, 이제는 재미로 보는 드라마도 다르게 보게 돼 줄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서진 우울의 말들 - 그리고 기록들
에바 메이어르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덜란드의 작가, 화가, 가수, 작곡가로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에바 메이어르의 에세이 『부서진 우울의 말들(그리고 기록들)』 은 우울증과 어떻게 지내왔으며 살고 있는지 들려준다. 기존의 우울증에 대해 다룬 책과는 다른 책이다. 의학적 지식이나 이론, 혹은 치료 방법에 대한 내용이 아닌 저자가 느낀 우울증의 현상과 상태를 솔직하게 말한다. 때로 적나라하면서도 때로 문학적 은유가 가득한 문장은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우울하기보다는 아름답다고 여길 정도다.


사실 이 에세이를 읽는 일은 어렵다. 한 편으로는 고통스럽다. 우울증에 대해 적극적인 이해를 구하는 이에게는 색다른 접근 방식이라는 건 인정한다. 저자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울에 민감했다. 그가 우울을 구체적으로 색으로 말할 때 우울은 보다 선명해진다. 한 편으로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저자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예술이 우울에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울에 색깔이 있다면, 단연 회색이다. 그리고 때로는 흰색이다. 흰색은 침묵의 색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색이고, 패배의 색이고, 아무것도 없는 색이고, 상실의 색이다. 만약 모든 색을 함께 섞으면, 그 부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흰색은 눈의 색이기도 하고, 내 고양이 퓌시의 털색이기도 하고, 영원의 색이기도 하다. 영원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의 일부이지만, 우리가 영원 속에서 살 수는 없다. 흰 것에서는 아무것도 자라나지 않는다. (47쪽)


때로 해 질 녘이면, 나는 그림자 같은 옅은 검은색 층 아래에 있다. 마치 나와 다른 모든 것 위로 수채 물감이 한 겹 칠해진 것 같다. 나는 빛 속에 서 있지 않고, 그렇다고 어둠 속에 있지도 않다. 나는 빛과 어둠을 모두 볼 수 있다. (73쪽)


저자가 본격적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시절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술을 마시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거식증에 시달렸다. 전문병원에 입원을 해 다양한 치료를 받았다. 그가 받은 우울증 치료는 다양하다. 청소년기 상담을 시작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전문 병원에서는 다양한 치료(인지, 행동)에 대한 서술은 우울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그러나 그 모든 방법이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해당되거나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에세이가 우울증 치료기나 극복기는 아니다. 자신의 개인사를 시작으로 전방위적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기라고 하면 맞을까. 죽음에 대한 유혹, 그 안에서 마주한 사유를 통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철학자의 저서와 문학 작품을 통해 우울증에 대한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하이데거(존재에 대한 의문), 자크 데리다(우리는 모두 섬에 있다며 근본적인 실존), 버지니아 울프(시간과 씨름하며 삶의 상실과 덧없음을 말하는),누구든 곁에 우울이 존재한다는 걸 말한다. 


저자는 반복적인 우울증으로 힘들었지만 모든 우울증이 같은 증상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어떤 시기에는 숙면하지 못하는 고통, 어떤 시기에는 자살하려는 충동, 거식증의 시기에는 마른 몸으로 인한 육체적 통증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생각한다. 저자의 경우 몸을 움직이는 일이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달리기, 산책, 돌봐야 할 동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돌봐야 할 동물이 있다는 건 반대로 동물들이 저자의 감정을 알아주는 존재와의 친밀함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 


우울증은 세상을 더욱 하얗게 만든다. 눈처럼 하얀 것은 아니다. 눈은 세상이 우리보다 크다는 것을 매우 아름답게 보여준다. 우울증은 세상을 덮는 것이 아니라 지워버린다. 바깥세상이 더 시끄럽고 활기찰수록 그 대비는 더욱 또렷해진다. 고요함을 망토처럼 둘러쓰고 있다고 해서 우울증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연습을 하면 공허함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145쪽)


어떤 일이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저자는 자신과 세상을 정지하게 만드는 공허함에 대해 음악이나 밝은 색의 그림으로 대처하는 게 아니라 고요함을 택한다. 글쓰기와 명상이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요함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세상으로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계속 만나기 위함이다. 


바다는 끝이 없고, 저 멀리서 하늘과 하나가 된다. 당신의 몸도 하나의 바다이다. 밤낮을 따라 움직이고 저절로 늙어가며 당신보다 훨씬 더 오래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것은 곧 끝날 것이고, 당신은 본래의 것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러니 지구에, 당신이 지나온 나날들에 의지하자. 내일은 다를 수 있다. (159쪽)


이 책은 그 세상을 향한 다짐이자 우울증이라는 삶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가 전하고 싶은 건 우울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 그게 중요하다는 게 아닐까 싶다. 때로는 참고 견디고 기다리며 나를 만나기 위해 연습하고, 우울증을 삶의 일부라고 인식하는 일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진솔한 조언. 존재의 이유와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