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이영미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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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더워지면서 현관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이웃의 아기가 현관문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마구 걷는 걸 좋아하는 시기, 호기심이 많은 시기의 아이가 귀여워 그냥 놔뒀는데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는 문을 열어둔 내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이 닫혔다면 아이는 그냥 포기했을 테니까. 양육을 담당할 의무가 없는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이는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식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으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 표현법은 저마다 다르다. 보통의 경우 어머니가 다정하면 아버지는 엄하다. 맞벌이 경우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준다고 들었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료타도 그랬다.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 게이타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도 놓치는 일이 잦았다. 전업주부인 미도리가 아이를 챙기니까 괜찮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게이타가 사립학교에 입학하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순종적으로 자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다. 출산 당시 바뀌었다고. 병원에서는 바뀐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고 아무렇지 않게 빠른 시간에 아이를 교환하라는 말을 전한다.

 

 노노미야 가족은 삼각형이었다. 료타와 미도리와 게이타가 그리는 삼각형은 이등변삼각형이다. 미도리와 게이타가 연결된 밑변은 짧다. 아주 짧다. 그리고 꼭짓점인 료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그래도 좋았다. 비뚤어졌어도, 불안정해 보여도, 그것이 노노미야 가족이었다. (137쪽)

 

 6 동안 살을 비비고 키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니. 미도리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막상 상대 아이인 류세이를 만났지만 내 아이가 저기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료타는 상대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교양도 없고 경제력도 그렇고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까지 별로다. 어쨌든 자주 만나 서로의 아이를 보고 주말에는 집에서 재우기로 한다. 막장 드라마 소재라 할 수 있는 뒤바뀐 아이. 극과 극으로 비교되는 환경,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극명하게 다르다. 료타가 아이에게 규칙을 정해주었다면 유다이는 자유롭게 방목으로 키웠다. 료타는 아이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류세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게이타와 함께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아빠인 료타와 유다이는 종종 충동 비슷한 게 있지만 엄마인 미도리와 유카리는 서로 연락을 하면서 아이에 대해 정보를 공유한다. 

 

 “시간이 다는 아닐 텐데요.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에요, 아이들은 시간이라고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156쪽)  

 

 가족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보통의 일상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면서 가족에 대한 이해와 부모의 의미를 되새기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 류세이를 바라보는 미도리의 마음에 퍼지는 파장, 잠에서 깬 게이타를 안심시키며 안아주는 다정한 유카리. 제목처럼 특별히 부성애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는 없다. 낳은 정과 기른 정에서 갈등하는 진부한 모습도 볼 수 없다. 그저 담백하게 일상을 들려주고 조금씩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변화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룰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독자에게 자신의 가족과 부모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료타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하듯 말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바빠서 함께 식탁에 모여 밥 한 끼를 먹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가족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고 명절에는 존속 상해의 뉴스를 접한다. 이러한 시대에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은 무엇이며, 부모는 무엇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끊임없이 묻는다. 가까이 있어도 데면데면하며, 살가운 말 대신 무뚝뚝하게 대하는 나의 행동이 미안하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조금은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가까운 사이의 가족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한 가족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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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22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영화로 봤는데 나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그의 작품은 늘 가족을 일관되게 그리더군요.
전 그런 자세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태풍 지나고>봤는데 오늘 밤 같은 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태풍이 몰려온다니...ㅋ

자목련 2018-08-24 16:12   좋아요 1 | URL
네,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느 가족>도 영화 소개에서 보니 가족 구성원이 무척 특별하더라고요.
말씀하신 영화를 떠올리니 놀이터 미끄럼틀(정확한 기억이 맞는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프레이야 2018-08-22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본 어느가족도 뭉클했어요. 오히려 사회구조와 가족을 냉정히 바라보게도 되구요. 그게 히로카즈 감독의 의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따뜻해서 좋았어요. 계속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꾸려서 내보이네요. 태풍전일입니다. 무더위 잘 견디셨는지요.

자목련 2018-08-24 16:15   좋아요 0 | URL
하나의 주제를 폭 넓고 심도 깊게 파고드는 감독인 것 같아요. 소소한 일상과 대화를 통해 감동을 주는 힘, 역시 대단한 감독입니다. 이곳은 어젯밤에는 비과 바람도 많지 않았어요. 폭염의 시간도 어떻게든 지나가는 구나 싶어요. 곧 가을이 오겠지요. 그 안에서 평안하시길 바라요.
 
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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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하루를 기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더라도 쓰는 동안 하루를 돌아보고 감정을 정리하는 일은 일정량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습관처럼 쓴다고 해도 어렵다. 인생의 소중한 날, 슬픈 날은 기록하지 않아도 가슴에 새겨진다. 일기를 쓴다는 건 나를 기록하는 일이다. 나 외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긴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이에게는 기록은 중요한 정보이며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 마주하면 호탕한 웃음을 선물하기도 한다.

 

 남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생각 속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혼자 의연히 선 사람은 칭찬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남의 비난에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132쪽)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다. 호기롭게 말로만 그런 경우도 있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때의 나에게 잘했어, 괜찮아라고 말을 건넬 여유가 생긴다. 쓸데없는 말들이 이어지는 걸 보니 내게 이경미의 『잘 돼가? 무엇이든』​가 나쁘지 않았나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에세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런 종류란 흥행 영화, 드라마로 대중에게 알려진 이들의 글이라는 거다. 어떻게 보면 괜히 부러워서 심술을 부리는 모양이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는 보지 않았다. 안면홍조증에 걸린 배우 공효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의 감독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그보다는 방송에서 단편영화를 촬영하는 걸 보여주는 프로를 통해 <아랫집>을 보았을 뿐이다. 기이하면서도 신선하고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글은 역시 감각적이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제목처럼 ‘잘 돼가? 무엇이든?’라고 묻는다면 ‘응, 잘 돼가고 있어. 완벽해!’라고 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처럼 ‘그냥 그래’, 혹은 ‘생각처럼 안 돼서 힘들어’ 하고 답하는 이가 훨씬 많겠다. 예상했겠지만 그냥 사는 이야기다. 그냥 사는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어떤 이의 이야기 같아서 웃기도 많이 웃고 고개를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속상해했다.

 

 백인 공포증이 있었지만 13살 연하의 백인과 결혼했고 어쩌다 보니 영화학교에 입학했고 시나리오가 안 써져서 죽을 것 같아 악몽을 꾸고 짝사랑하는 이에게 고백도 못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스크립터로 일할 때는 밧데리를 가져다 달라는 감독의 말을 박대리로 알아듣고 스텝들에게 박대리를 외치고 아빠랑 싸우다가 상추로 맞은 이야기. 진짜 인간 이경미 감독의 소소한 일상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블로그의 비공개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글들을 공개로 돌려 짠하고 보여주는 거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순간 궁금해졌다. 비공개가 공개로 바뀌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채널예스에서 ‘이경미의 어쨌든’이란 칼럼으로 연재를 한 글을 제외하면 말이다.

 

 유머를 장착한 진솔한 글을 읽다 보면 이경미 감독에겐 영화, 시나리오, 가족이 전부라는 걸 알게 된다.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좋아하는 일과 든든한 응원을 하는 지원군이 있으니 그녀는 행복한 편이다. 나는 그녀가 부모님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가 너무 좋았다. 아니, 부러웠다. 이상한 소리를 들은 고3 딸을 데리고 광복절에 구마 사제에게 데리고 가고 딸의 손목 염증이 걸려 맥 짚어주는 할아버지가 처방한 여섯 개의 구멍이 있는 스티커를 몸 여기저기 붙이고, 웨딩드레스 대신 원피스 입겠다는 딸 때문에 9일 기도에 들어 가고,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문자로 보내는 엄마라니.

 

 입은 꼭 다문 채 점점 마르고 새까맣게 변해가는 나를 본 뒤로 엄마는 매일 밤 “편안히 잘 자라” 문자를 보내주었다. 어두운 망망대해 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저 문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211쪽)

 

 한때는 잘 살고 싶었다. 소위 남들처럼 행복하게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잘 산다는 게 뭔지, 남들처럼은 또 뭔가 하고 따져보게 되었다. 내가 사는 건 내 삶이지 남들이 사는 삶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됐다. 알았으니 이제 나의 판단과 가치를 믿고 살아간다. 그러니 예전보다 편안해졌고 부질없는 욕심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내려놓음, 비움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길. 좌절하고 질투하고 화내고 버티는 중이니까.

 

 그동안 살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선의와 도덕성이 아무리 충분해도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온전한 동의와 공감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살아온 배경이 제각각인 우리. 그러나 인생은 덧없이 짧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아등바등 버티기는 다 마찬가지다.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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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9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밧데리!박대리....아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럽고 황당했을까요 하지만 돌아보면 웃을수 있고 그게 인생인가 싶네요

자목련 2018-08-20 17:1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소소한 실수와 민망한 상황들의 집합체가 인생이겠지요. 이 책에는 그런 에피소드가 몇 개 더 등장하는데 넘 웃겼어요.
 
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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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대단한 평정심을 지닌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평점 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굴곡 없는 평탄한 인생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190cm 장신의 멋진 콧수염을 기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의 인생을 듣고 나면 달라진다. 유머가 있는 삶, 그것은 고귀하고 품격 있는 우아한 삶이라는 걸 말이다.

 

 격동의 시기, 1920년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성공 후 로스토프 백작은 호텔에 연금된다. 시대를 떠올리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문제는 종신형이라는 거다. 평생 동안 감시를 받으며 호텔에서만 살아야 하다니. 그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저 시(詩)를 썼을 뿐이다. 그 시에 대한 토론은 뒤로 미루고 로스토프의 호텔 적응기, 아니 호텔 탐험기를 들어보자. 호화로운 스위트룸이 아닌 창고로 쓰거나 하녀의 숙소였던 다락방으로 옮겨졌다.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추억의 물건, 여동생의 초상화, 책과 최소의 것들만 로스토프와 함께한다. 호텔의 직원들은 여전히 백작을 깍듯이 대하지만 혁명의 주체이자 감시자들은 못마땅하게 여긴다.

 

 정해진 대로 하루 일과에 맞춰 식사를 하고 이발소에 가고 무심하게 흐르던 호텔에서의 생활은 소녀 니나와의 만남으로 달라진다. 니나의 만능키 덕분에 진짜 호텔을 발견한다. 우편물이 모이는 장소, 세탁실, 전화 교환실, 무도회장을 엿볼 수 있는 발코니까지, 호텔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니나와의 우정을 쌓는다. 예상하지 않았던 일상을 경험하고 다락방의 옷장으로 이어지는 멋진 서재까지 만들었지만 로스토프에게 생은 우울하다. 여동생의 기일에 맞춰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 법, 생을 마감하기 직전 맛본 벌꿀은 그리운 고향 사과나무 꽃이었다. 이처럼 소설 곳곳에는 우연을 가장한 아름다운 필연이 가득한데, 작가는 어떻게 이런 장치를 해냈을까. 적재적소에 러시아 문학을 끌어들인 점도 그렇다. 시대적 의미를 설명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해도 반하고 만다.

 

 다양하고도 수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호텔의 특수성은 로스토프에게 ​갇힌 삶이 아니라 열린 삶으로 초대한 격이다. 직원뿐 아니라 호텔을 벗어났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가 맺어졌으니까. 배우 안나와 사랑을 나누고, 프랑스와 영어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당 지도부 오시프와 친구가 되고, 웨이터로 일하면서 요리사 에밀과 지배인 안드레이와 동료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스토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소피야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는 소녀였던 니나가 잠시 부탁한 딸, 소피야. 그랬다, 로스토프의 삶에 혁명과 이념을 뛰어넘을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누구보다 능력이 탁월한 웨이터가 되었고 소피야의 아버지가 되었고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이쯤에서 그가 백작이라는 신분으로 누렸던 명예와 부를 생각하며 식당의 웨이터로 손님을 받고 메뉴를 정하고 의자 배치를 하며 모두에게 존중받으며 모두를 존중하는 로스토프의 얼굴을 상상해보자. 젊고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자하고 온화한 노년의 신사를 품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지탱하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그가 읽은 몽테뉴의 수상록일까, 안톤 체호프와 톨스토이의 문학일까.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교육과 글도 그를 완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의 고유성을 사라지고 호텔의 와인까지 화이트와 레드로만 구분되는 시대, 로스토프는 절망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공간인 다락방에서 지난 추억에 빠져서 책만 읽고 가끔씩 찾아오는 오랜 친구 미시카만 겨우 만나는 수동적인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저는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 것과 상황을 잘 감수해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338쪽)
 
 로스토프 백작의 이 말은 내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무너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을 지녔다. 1922년부터 1954년까지 32년 동안 ​호텔에서 산 백작과 나의 생을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예고 없이 인생을 찾아오는 불행과 불운을 견디는 모두에게 이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혹은 반복적으로 견뎌야 하는 고통의 시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이다. 한 인간의 삶은 온전히 그 자신에게만 속해있고 누구도 지배할 수 없는 신성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괜찮은 신사, 로스토프에게 행운은 언제 도착하는 걸까. 소설에 빠져 재미있게 읽으면 읽을수록 로스토프가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700쪽이 넘는 소설을 놓을 수 없는 이유였다. 쇼피야가 피아노 신동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소피야만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건 아닐까. 파리로 떠나는 쇼피야의 출국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과정에서도 나는 작가 에이모 토울스가 그린 유머와 그림을 발견하지 못했다. 소설은 끝까지 읽어야 하고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여 나가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우리의 인생행로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위협적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한다면 우리에게 극히 명료한 순간이 찾아들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 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으로 꿈꿔온 대담하고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을 때조차도 그러하는 것이었다.’ (687쪽)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저당잡힌 백작의 생존기가 아니라 품위 있는 한 남자의 빛나는 삶의 처세술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답게 사는 건 무엇일까. 살다 보면 끊임없이 묻는 질문들.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온 로스토프의 생에서 우리는 발견할지도 모른다. 로스토프가 쓴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란 시에 대해 그가 한 말 ‘모든 시는 행동을 요구합니다.’처럼 삶은 행동함으로 움직이고 살아난다. 행동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자신이다. 어디선가 시련과 고난이 닥쳐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백작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재미와 함께 묵직한 감동을 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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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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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가 삶을 지배한다. 더위를 피해 외출을 삼가고 고민 끝에 에어컨을 켠다. 다음 달 전기요금을 걱정하면서 맘 놓고 편하게 지내지도 못한다. ​주변 친구나 지인의 사정도 그만그만하다. 그래서 속상한 일이나 자잘한 고민을 터놓게 된다. 나와 너무도 다른 삶을 사는 이에게는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대신 적정한 거리와 선을 긋는다. 경제적 격차를 크게 느끼거나 삶의 지향점이 다를 때 자신도 모르게 이미 선명한 선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고 누군가는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선을 지워버릴 수는 없을 걸까.

 

 엄마의 재혼 후 방황하다 가출을 하고 성매매 알선을 하는 조의 밑에서 일하는 「개의 나날」속 ‘나’와 어쩌면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던 장에게는 어떤 선이 있었을까. ‘나’의 엄마와 헤어졌더라도 장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 어땠을까. 장이 죽은 후 그가 남긴 편지와 기념해야 할 날마다 봉투에 돈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마다 네 생각이 났다.(62쪽)는 편지처럼 그냥 한 번씩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현재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은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조의 지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은 우리의 그것과 같기에 ‘나’가 기형도의 시를 읽는 것으로도 시작되었다고 기대한다.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말이다.

 

 서유미의 소설 속 풍경은 그만그만하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상경한 20대 자매의 고단하고 힘든 서울살이를 담은 ​「에트르」은 청춘의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르바이트만 하려는 게 아닌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줄 형편이 아니다. 다른 집을 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고 아주 작은 행복마저 멀게만 느껴진다. 서울살이에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한숨이 나왔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의 골목이, 한참 떨어져 있는 곳과 이토록 닮아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익숙해서 정겨운 것이 아니라 이곳도 그곳 같을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스산했다. (「에트르」, 28~29쪽)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책임감을 부여받은 삶은 더욱 고달프다. 점점 서로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쌓이고 불안하면서도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휴가」속 은호와 아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떠난 여행에서 사라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며 일상을 견디는 「뒷모습의 발견」의 여자, 이혼 후 팔리지 않는 집 때문에 사우나에서 지내면서 전처와 다툼을 하는 「이후의 삶」속 남편은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모습이 되었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평일 휴가를 얻었지만 늦잠을 자거나 잘 안다고 믿었던 남편(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확인하고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꿨던 집이 이혼과 동시에 애물단지가 돼버리고. 그들의 일상이 현실적이라 공감이 가면서도 그들에게 뭔가 신나고 행복한 일이 일어났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공정할 정도로 똑같은 일상들, 사소하게 방향을 틀기만 해도 달라지는 삶은 선을 넘었을 때 가능할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후에 남편과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60대가 지나 아들이 직장을 갖고 딸이 결혼한 후에야 선을 넘은「변해가네」속 ‘나’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집에서 가장 능동적이다. 예정일보다 빠른 딸의 출산과 치매의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다드려야 하는 하루. 돌보고 키우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는 그 심경을 알 것도 같았다. 결혼 후 엄마와 아내로 살면서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삶, 돈 잘 버는 사위를 두둔하며 이혼을 하겠다는 자신을 탓하던 엄마, 기억을 잃고 소녀처럼 부끄러운 웃음을 짓는 엄마를 바라보는 자식들. 딸이자 엄마인 복잡한 감정도 함께.

 

 6편의 소설엔 저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고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보통의 일상을 바라는데 그마저 너무 멀리 있어 고달프고 비참하다. 그만그만한 풍경은 쓸쓸한 기운을 전해주면서도 자꾸만 떠오르는 몇 장면으로 압축된다. 은호와 아내가 출근 후 빈집에 드리울 길고 따사로운 햇볕, 사우나에서 같은 옷을 입고 미역국과 식혜를 먹으며 TV를 시청하는 사람들,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케이크 상자를 손에 꼭 쥔 채 골목을 나오는 젊은 여자. 그들의 하루가 어떻게 끝 날지 모르지만 지금 오늘을 산다면 조금 시원하면 좋을 텐데. 그들과 우리가 마주할 내일이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 없어 무섭고 두려울지라도.

 

 나쁜 소식 없이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됐지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두려웠다. 무언가 쏟아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금의 상태를 무사하다고 해도 좋을까. (「뒷모습의 발견」,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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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8-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서재의 분위기도 그리고 프로필 이미지도 달라져서 또 다른 계절의 느낌이 듭니다.
더운 날씨가 이제 더이상 더울 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매일 너무 덥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8-04 17:22   좋아요 1 | URL
오늘은 정말 덥네요. 샤워를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ㅎ
입맛도 사라지고, 얼마나 이런 날들이 계속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서니데이 님도 청량한 주말 보내세요. 건강도 잘 챙기시고요^^
 
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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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제법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고 말이다. 처음엔 혼자서 그 모든 걸 견디고 애를 쓴 거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이들의 따뜻한 마음과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를 사랑한 이들의 기운이 내게로 흐르고 있었던 거다. 태초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사랑까지 전부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사야카와 이치로가 운명처럼 다시 만나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은 아닐까.

 

 사토루와 사별하고 딸 미치루와 함께 시부모님의 2층에 살고 있는 사야카에서 도착한 한 통의 편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마당에서 찾고 싶다는 내용의 발신자는 헤어진 연인 이치로였다. 과거에 이치로가 살았던 집에 자신이 살고 있다니. 마당의 흙을 파보니 조그만 뼈가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야카는 이치로와 재회한다. 스무 살에서 만나 결혼까지 생각했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아이를 낳아달라는 말로 사토루의 청혼을 받아들인 사야카의 마음은 사랑이었을까. 어린 시절 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잃고 사물과 접촉하면 이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야카였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삶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판단하고 예측한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사야카도 이치로는 과거를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사과한다. 마음에 간직했던 미안함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불편했던 것들이 해결되고 사야카와 이치로는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한다. 조금은 특별한 사야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은 느리게 천천히 생활하는 이치로를 인정한다. 조금씩 일상을 공유하고 좋은 친구로 지내는 두 사람, 환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간이 지났기에 상처가 온전히 나은 건 아니다. 상처를 똑바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힘은 자신의 곁을 지킨 이들에게서 비롯된다. 사고로 다친 손을 치료하는 동안 사야카를 돌본 발리의 고마운 이들, 병과 싸우고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미치루를 사랑한 사토루, 손녀와 며느리를 배려하고 지원해준 시부모님, 헤어진 후에도 사야카를 위해 기도했던 이치로의 어머니.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는 말처럼 우리의 생은 이렇게 서로에게 연결된 건 아닐까. 아무도 모르게 나와 닿아 있는 수많은 손길, 그 포근한 손길이 울고 있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웃고 있는 나를 안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있다 없어지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갖가지 좋은 일들을 생각한다. 그 여운이 모두를 따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138쪽)

 

 요시모토 바나나는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대해 말한다. 한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섣불리 안다고 자신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둘 사이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제법 잘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맑고 투명한 구슬 같은 소설이다. 가만히 두 손으로 감싸고 자꾸만 바라보게 만드는 영롱한 구슬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동화 속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처럼. 선하고 고운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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