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이영미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날씨가 더워지면서 현관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이웃의 아기가 현관문을 기웃거린다. 그러다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마구 걷는 걸 좋아하는 시기, 호기심이 많은 시기의 아이가 귀여워 그냥 놔뒀는데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는 문을 열어둔 내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이 닫혔다면 아이는 그냥 포기했을 테니까. 양육을 담당할 의무가 없는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이는 모두 예쁘고 사랑스럽다. 자식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으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 표현법은 저마다 다르다. 보통의 경우 어머니가 다정하면 아버지는 엄하다. 맞벌이 경우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물질적으로 보상을 해준다고 들었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다. 료타도 그랬다.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 게이타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도 놓치는 일이 잦았다. 전업주부인 미도리가 아이를 챙기니까 괜찮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게이타가 사립학교에 입학하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순종적으로 자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소식을 들었다. 출산 당시 바뀌었다고. 병원에서는 바뀐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고 아무렇지 않게 빠른 시간에 아이를 교환하라는 말을 전한다.

 

 노노미야 가족은 삼각형이었다. 료타와 미도리와 게이타가 그리는 삼각형은 이등변삼각형이다. 미도리와 게이타가 연결된 밑변은 짧다. 아주 짧다. 그리고 꼭짓점인 료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그래도 좋았다. 비뚤어졌어도, 불안정해 보여도, 그것이 노노미야 가족이었다. (137쪽)

 

 6 동안 살을 비비고 키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니. 미도리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막상 상대 아이인 류세이를 만났지만 내 아이가 저기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료타는 상대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교양도 없고 경제력도 그렇고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까지 별로다. 어쨌든 자주 만나 서로의 아이를 보고 주말에는 집에서 재우기로 한다. 막장 드라마 소재라 할 수 있는 뒤바뀐 아이. 극과 극으로 비교되는 환경,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극명하게 다르다. 료타가 아이에게 규칙을 정해주었다면 유다이는 자유롭게 방목으로 키웠다. 료타는 아이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류세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게이타와 함께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아빠인 료타와 유다이는 종종 충동 비슷한 게 있지만 엄마인 미도리와 유카리는 서로 연락을 하면서 아이에 대해 정보를 공유한다. 

 

 “시간이 다는 아닐 텐데요.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에요, 아이들은 시간이라고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156쪽)  

 

 가족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로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보통의 일상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면서 가족에 대한 이해와 부모의 의미를 되새기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 류세이를 바라보는 미도리의 마음에 퍼지는 파장, 잠에서 깬 게이타를 안심시키며 안아주는 다정한 유카리. 제목처럼 특별히 부성애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는 없다. 낳은 정과 기른 정에서 갈등하는 진부한 모습도 볼 수 없다. 그저 담백하게 일상을 들려주고 조금씩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변화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룰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독자에게 자신의 가족과 부모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료타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하듯 말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바빠서 함께 식탁에 모여 밥 한 끼를 먹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가족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고 명절에는 존속 상해의 뉴스를 접한다. 이러한 시대에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은 무엇이며, 부모는 무엇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끊임없이 묻는다. 가까이 있어도 데면데면하며, 살가운 말 대신 무뚝뚝하게 대하는 나의 행동이 미안하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조금은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보다 좀 더 가까운 사이의 가족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한 가족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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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22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영화로 봤는데 나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그의 작품은 늘 가족을 일관되게 그리더군요.
전 그런 자세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태풍 지나고>봤는데 오늘 밤 같은 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태풍이 몰려온다니...ㅋ

자목련 2018-08-24 16:12   좋아요 1 | URL
네,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느 가족>도 영화 소개에서 보니 가족 구성원이 무척 특별하더라고요.
말씀하신 영화를 떠올리니 놀이터 미끄럼틀(정확한 기억이 맞는지)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프레이야 2018-08-22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본 어느가족도 뭉클했어요. 오히려 사회구조와 가족을 냉정히 바라보게도 되구요. 그게 히로카즈 감독의 의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따뜻해서 좋았어요. 계속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꾸려서 내보이네요. 태풍전일입니다. 무더위 잘 견디셨는지요.

자목련 2018-08-24 16:15   좋아요 0 | URL
하나의 주제를 폭 넓고 심도 깊게 파고드는 감독인 것 같아요. 소소한 일상과 대화를 통해 감동을 주는 힘, 역시 대단한 감독입니다. 이곳은 어젯밤에는 비과 바람도 많지 않았어요. 폭염의 시간도 어떻게든 지나가는 구나 싶어요. 곧 가을이 오겠지요. 그 안에서 평안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