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 - 덜 신경 쓰고, 더 사랑하는 법
전승환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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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을은 조급함을 몰고 온다. 곧 이 계절은 겨울로 바뀌고 올해는 사라지고 내년이 도착하는 사실이 그러하다. 뭔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계획했던 일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계획했던 일들을 다 못했다고 해서 내가 크게 잘못한 걸까. 잘못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이 한결 놓이는 듯하다가 다시 복잡해진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괜한 수다를 떨거나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가을이라서 그럴까. 방황하는 젊음도 아닌데 무엇이 나를 흔드는가. 그러다 이런 문자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말, 내가 사랑하는 말, 어쩌면 누구나 소중하게 여기는 보통의 말.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길이 있다. 저마다의 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한다. (253쪽)

 

 내가 택한 방향으로 열심히 걷고 있다고 믿었는데 저 깊은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다른 이들의 길을 부러워하고 있었나 보다. 나의 삶, 나의 길에 나만의 의미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저마다의 삶을 존중하고 나 스스로 나를 축복하는 일.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단어에 집착하지 않으니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란 제목에서 행복 대신 나는 건강, 즐거움, 평온, 웃음으로 대신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그것을 내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그러니 자신의 상황, 감정에 따라 좋아하는 구절,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다르다. 당연하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힘들거나 지난 인연을 자꾸만 붙잡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이런 부분이 위로가 될 것이다. 감정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책은 그런 존재니까. 오늘 읽은 문장이 오늘보다는 내일 더 와닿을 수 있고, 이미 지나간 어느 시절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니까. 하나의 사랑이 끝났으니 마침표를 찍는 일도 중요하다. 다른 사랑이 올 수 있도록. 

 모든 사랑은 서로가 성장하는 과정임을 나는 배웠다. 누가 상처를 주었고 이별을 먼저 말했는지 따져보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행복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173쪽)


 사소한 것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관계에 대해서는 그 사소함과 소소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혼자라는 것을 즐길 수 있다고 여겼지만 온전한 혼자는 조금 힘든가 보다. 오래된 친구,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 온라인에서 만나 지속된 인연, 그 인연들에 대해 생각한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죽은 관계란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 믿음에, 아무 때나 연락해도 반갑게 받아줄 거라 여기며, 무뚝뚝하게 구는 내 마음을 혼내는 것 같다.

 만나지 않으면 죽는다. 평행 함께할 거라 믿었던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서로 연락하지 않으면 죽은 관계이다. (121쪽)

 첫 직장에서 만난 업무의 고단함을 격려하고 상사 욕을 하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렸던 동기는 지금껏 안부를 전하고 한 번씩 얼굴을 보는 사이다. 신기하게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순수한 기억을 공유하며 부끄러운 첫사랑의 속내까지도 꺼내 보일 수 있는 친구, 선배라는 이름으로 내게 너무 소중한 이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맙고도 고마운 친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어느덧 그들의 이름에는 나의 일부가 담겨있다.

 삶의 첫 장에서 만난 인연들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함께한 추억이 많은 친구들을, 그 추억이 별 의미 없고 시답잖은 기억일지라도 함께 공유한 시간과 기억은 삶을 빛나게 하는 보석과도 같다. (280쪽) 

 여러 빛깔의 마음을 불러오고 잊었던 시간을 데리고 오는 책이다.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좋아거나 예쁜 사진과 짧은 글로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이 책이 깊은 밤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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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 배수아 컬렉션
배수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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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결같은 순간이 있다. 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꿈속처럼 아득한 순간 말이다. 비현실적으로 너무 좋아서 꿈인가 싶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제발 꿈이었으면 하는 그런 순간. 배수아의 단편집『뱀과 물』을 읽으면서도 누군가의 꿈속을 보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 꿈은 악몽은 아닐까. 악몽이라면 소설 속 인물을 꿈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 배수아를 읽는 일은 흐릿한 이미지를 오래 바라보는 일, 불편한 공간에 둘러싸인 낯선 시선과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설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왔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반두를 다녀온 것 같고, 길을 걷다가 눈 아이를 만나면 알아볼 것만 같다. 누군가는 배수아의 소설에서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어보았을 잔혹동화나 마법의 세계를 보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맞는 말이다. 돌봄을 받지 못한 소녀, 폭력과 폭언인지도 모르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을 소녀, 어머니나 아버지의 부재로 이어진 상실의 결속 같은 것. 그래서 단편의 소녀는 누군가를 찾아 떠나기도 하고 그 길에서 자신과 닮은 이를 만난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곳, 그들만이 알 수 있는 곳이 된다.

 

 그 공간을 만들고 끌어당긴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배수아만의 감각이며 경험일지도 모른다. 공포나 두려움의 기억을 조작하여  환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소녀는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하고 주무르는 건 아닐까. 이제 그 이야기 속 소녀를 만나보자. 키가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았던 소녀와 키가 커서 눈에 띄는 소녀, 아버지를 찾아 반두로 향하는 트럭에 올라탄 소녀, 소년으로 위장해 위험한 기찻길에 누워 엄마를 기다렸던 소녀. 한 번도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어린 시절. 온통 불온하고 불길한 기운이 가득하다. 소녀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니, 성장통을 앓지 않고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소녀 앞에 나타난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들, 그러니까 열 개의 손가락에 금빛 반지를 끼고 있었지만 얼굴은 알 수 없고 마술사 아버지와 거인이면서 사령관인 아버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 유년의 기억은 왜곡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견딜 수 있기에. 「얼이에 대하여」속 여동생을 낳고 아팠던 어머니를 기다리던 ‘나’는 소년이자 소녀였던 얼이의 다른 이름이었고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와「노인 울라에서」에서 아버지를 찾는 ‘눈 아이’는 동일 인물처럼 보인다.보호자 없이 아이는 어디론가 계속 이동한다. 이미 거론한 단편 속 소녀뿐 아니라「뱀과 물」속 소녀는 혼자 서류를 들고 직접 전학할 학교에 찾아오고 심지어 「도둑 자매」에서는 유괴를 당한다. 유방암을 앓아 더럽고 이상한 냄새로 가득한 방에 누워있는 여자를 엄마라 부르며 아이에게 언니라며 말하는 이상한 소녀에게서 도망을 치려고 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소녀는 너무 어려 공포를 모르거나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 순진하게 믿고 있는 듯 그려진다. 

 

 소녀 곁을 맴도는 어른은 누구인가. 단편마다 거론되지만 등장하지 않는 마술사이거나 사령관인 아버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 대신 「1979」의 남자 교사와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속 할머니는 보호자일까. 남자 교사는 자신의 반 아이들을 과수원 집에 초대하지만 소녀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집안 사정도 제대로 모르며 할머니는 커다란 트렁크에 짐을 챙겨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남교사는 허울뿐인 어른이었지만 할머니는 손녀의 이상이었다. 어쩌면 교사가 매일 통화하는 아픈 동생만이 소녀를 아는 유일한 어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소설집은 그가 정의한 어린 시절로 압축된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자신이 어린 시절을 가졌다는 믿음은 망상이에요. 우리는 이미 성인인 채로 언제나 바로 조금 전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니까요.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망상이에요. 모든 미래도 망상이 될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 (「1979」, 94쪽)


 꿈을 꾼다. 그것이 악몽인지 길몽인지 분간할 수 없다. 아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계속 걷는 소녀는 어른이 되었지만 방향을 잃었고 목적지를 찾지 못한다. 승려를 만나기도 하고 뱀과 물이 나타나 위협하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의 여행자를 알아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편지를 받고 상실의 결속으로 쓰인 시를 낭독한다. 꿈에서 깨어야 할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들에게 어떻게 작별의 인사를 전해야 할지. 망상일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이에게 잘 지내라고, 잘 있으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소리를 내지 않는 대신 입모양으로 길게 말한다. 안녕이라고.

 

 어린 시절이라고 불리는 거무스름한 낡은 주물 거울에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도둑 자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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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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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고독이다. 누가 됐든, 누군가의 시선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것, 무심한 익명이 된다는 것, 군중 속의 하찮은 돌멩이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264쪽)

 

 나만 알고 싶은 일들이 있다. 나만 간직하고 싶은 감정도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부모나 형제라도 그것에 대해 알려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에 대해 대충 둘러대고 살짝 거짓을 대응하면서도 지키고 싶은 것. 쓰고 보니 그것은 비상금 같은 것 같다. 때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어떤 상태, 어떤 결과에 대해 말을 하다 보면 그전의 감정들, 혹은 사건들, 그것의 원인에 대해 듣고 캐묻는 이들도 있고 그것은 몹시 힘들며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 나의 그것, 아델에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욕망, 사랑, 충동, 우울, 권태로 다가온다. 『달콤한 노래』2016년 공쿠르상 수상한 레일라 슬리마니의 데뷔작 『그녀, 아델』은 파격적인 소설이다. 서른다섯 살의 아델은 아름답고 멋진 여성이다. 의사 남편 리샤르와 세 살 난 아들 뤼시앙이 있고 신문사 기자로 일한다. 누가 봐도 단란하고 완벽한 삶을 영위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여자, 항상 불안하고 초초하다.

 

 아들을 돌보는 일도 너무 힘들다. 뜨거운 모성애과 사랑, 안타까움도 없다. 둘째를 갖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파리를 떠나 전원생활을 하자는 제안도 자꾸만 미룬다. 술과 담배, 마약, 그리고 남자가 끊이지 않는다. 그녀의 행보는 두려울 거라고 전혀 없는 것처럼 당당하다.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두 개, 알라비이를 만들어 줄 친구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남편이 알아차릴까 두렵고 조심스럽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바깥의 공기가 침입할까 전전긍긍이다. 이쯤 되면 진정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의문이 든다. 이혼을 하고 혼자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아델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 보면 괜스레 내가 조바심이 난다. 모임이나 파티가 있는 곳, 심지어 출장지에서도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지속적인 관계는 없다. 그저 그때뿐이다. 아델이 찾는 건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순간의 쾌락 같다. 아델의 우울과 권태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거칠 것 없이 제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혼자서 골목길을 걷지도 못한다. 이대로 그녀는 정말 괜찮을 걸까?   

 

 아델은 자신이 접근하는 남자들에게 어떤 욕망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갈망했던 건 그들의 살갗이 아니라 상황 자체였다. 장악당하는 것. 쾌락에 빠진 남자들의 얼굴을 관찰하는 것.(167쪽)

 

 어떤 일이든 끝은 있고 비밀은 들통나기 마련이다. 상대가 남편의 동료 자비에가 아니었다면 달라졌을까? 운명처럼 자비에의 부탁으로 당직을 서던 시간 자비에와 아델은 만남을 갖는다. 귀갓길에 리샤르는 사고를 당하고 아델은 매일 병실을 지킨다. 리샤르를 돌보는 정성은 찾을 수 없다. 퇴원 후에도 자비에를 만나고 리샤르는 모든 걸 알아버린다. 리샤르와 아델은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고 당연히 회복은 불가능한 상태. 그런데 왜 리샤르는 아델을 버리지 않았던 것일까. 시골로 이사를 오고 둘은 편안한 사이처럼 보인다. 리샤르는 아델을 감시하며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다. 아델은 삶의 의욕과 욕망을 잃어버린 시든 식물 같다. 리샤르가 아델을 의심하면서도 곁에 두는 건 어떤 마음일까. 과거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균열이 생긴 부모님의 결혼 생활에 영향을 받을 것일까. 아델의 부모도 원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리샤르와 아델도 어느 순간에는 서로를 사랑했을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과 방향이 달랐을 뿐. 누군가는 아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때까지 아델이 얼마나 스스로를 망가뜨릴지 두렵기까지 하다. 『달콤한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도 인물의 내면 묘사가 놀랍도록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에 감탄하는 만큼 괜찮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직은 작가의 다음 소설이 나온다면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아델은 꼼짝하지 않는다. 타일 바닥에 길게 뻗은 채로 아주 서서히 호흡을 되찾는다. 뒷덜미가 흠씬 젖어 한기가 밀려들면서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진다. 가슴께로 무릎을 가져와 모은다. 서서히, 그녀가 흐느낀다. 노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눈물에 일그러지고 전날 밤의 화장으로 얼룩진 피부에 줄을 그린다. 그녀를 포기한, 혐오스러운 이 몸뚱이를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어본다. 혓바닥 끝으로 입 천장에 달라붙은 음식 찌꺼기가 느껴진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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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9-16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표지는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카나코>가 생각나게 합니다. 많이 다른데도요.
비가 조금씩 내리는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자목련님, 편안한 일요일 밤 되세요.^^

자목련 2018-09-17 11:20   좋아요 1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비슷한 분위가 나네요. 서니데이 님,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일교차 심하니 감기 조심하시고요^^
 

 

 그토록 지독했던 여름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숨 막힐 듯 뜨거웠던 열기는 언제 식었단 말인가. 아침저녁으로 팔뚝을 쓸어내린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내게로 천천히 스며든다. 밤은 깊어 가고 그 까만 빛은 더욱 영롱해지니 이런 밤에 당신의 내면을 듣는다. 당신의 글을 읽는다. 이상하게 가을엔 소설보다 산문에 더 끌린다. 시집도 물론 좋다. 이 가을에 센티해지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단정하게 그리고 단호한 느낌이 가득했던 『슬픈 인간』이 제격이다.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의 시대, 내가 알지 못하는 글에 대한 간절함,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생에 대한 우울감과 상처와 회복을 반복하는 생의 아이러니. 26명의 작가가 쓴 41편의 산문을 수록한 『슬픈 인간』을 읽으면서 산문이란 이렇게 아름답고 강렬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끄는 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마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러니까 좋은 산문, 좋은 수필은 어떨 것일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은 아닐까. 평범한 일상 가운데 느닷없이 찾아오는 명징하면서도 이상한 기류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일기처럼 보이지만 일기는 아닌 글, 한 발 떨어져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힘.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온몸의 감각을 열어놓고 그 소리를 간직하고 싶은 간절함이 생긴다. 그 피아노 소리는 어떤 형상과 빛을 냈던 것일까.

 

 그때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친다기보다 만지는 소리였다. 무심결에 발걸음을 멈추고 스산함에 잠긴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달빛이 가늘고 긴 피아노 건반을 넌지시 비추고 있었다. 명아주 수풀 속 그 피아노를.ㅡ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도 없었다. 딱 한 음이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분명했다. 나는 조금 으스스 해져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때 내 뒤에 잇던 피아노가 분명히 또 희미한 소리를 냈다. 난 물론 뒤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걸어갔다, 습기를 머금은 세찬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걸 느끼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피아노」중에서, 38쪽)

 

 잘 알려져서 그들의 문학을 전부 다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나쓰메 소세키, 미야자와 겐지, 다자이 오사무를 제외하면 내게는 이름조차 낯선 작가들의 글이었다. 그것은 어떤 산문을 읽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 『긴 봄날의 소품』에서 만난 산문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담백한 유머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듯 세상에 작가는 너무 많고 내가 읽어야 할 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26명의 작가의 산문은 각각 많게는 세 편, 적게는 한 편을 읽을 수 있는데 작가의 이력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산문의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의 상흔이나 생활고, 우울증에 대한 것들이 그러하다. 글을 통해 그 시대를 상상하고 작가의 불안을 읽는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인지 짐작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글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조금이나마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산문은 그 안에 담긴 고통을 상쇄시킬 정도로 아름다웠고 작가의 심리를 고스란히 묘사한 글은 걱정을 불러왔다.

 

 나는 길을 걸으며 내 발소리가 고요하고 차분하다고 느낀다. 전찻길을 가로질러 폭 일 미터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양쪽 높은 건물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선명하게 아름답다. 정말 이렇게 예쁘고 파란 하늘이 거리에 존재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의 굶어 죽을 지경으로 불판 폐허를 비틀비틀 걸아 다녔을 때, 그때도 저 높은 하늘에서 살짝 새나온 이상하리만치 맑고 깨끗한 빛이 있었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어떤 힘이 내게 그 사실을 격렬하게 상기시켰다. 나는 나의 발소리를 나의 숨소리마냥 하나둘 세고 있다. (하라 다미키 「불의 아이」중에서, 318쪽)

 

 분명 보통의 일상인데 감탄을 자아내는 산문이 많았다. 그것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일까. 아니면 쓰고 또 쓰면 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다자이 오사무 「온천溫泉」과 같은 짧은 글은 온천이 아니더라도 욕조에서의 기분을 써 보거나 마사무네 하쿠초의「꽃보다 경단」처럼 꽃 피는 풍경이나 추억을 묘사해도 좋을 듯하다. 26명의 작가의 글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쁨, 그 안에는 치열한 아름다움과 함께 슬픈 인간의 초상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물이다, 그래, 흡사 수정을 녹인 듯 아름답다, 나의 몸을 담그기에 어쩐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탕으로 들어간다, 졸졸 물이 넘쳤다, 아까운 짓을 했구나, 탕 안에 찰랑찰랑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기분 좋다, 햇살이 불투명 유리 너머로 쏟아져 물 밑까지 비추었다. 물은 다시 잠잠해져 나의 몸을 감쌌다. 정말로 밝다, 밖에서 참새가 짹짹 울었다. 무심코 밝은 창문 쪽을 바라본다, 뜰에서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불투명 유리에 검은 그림을 그렸다. 바슬바슬 미미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뭇잎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졌다…… 괜스레 쓸쓸했다. 야릇하게 몸이 나른해졌다. 물에서 하얀 수증기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손으로 앞으로 쭉 뻗다 문득 손톱을 봤다, 많이 길었네, 잘라야겠어. 정말이지 고요하다, 나의 몸도 영혼도 수증기와 함께 천상으로 피어오를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자이 오사무 「온천溫泉」전문, 186쪽)

 

 가을밤, 점점 고요해지는 순간에 베릴 마크햄의 『이 밤과 서쪽으로』도 마주하면 좋을 책이다. 제목부터 근사하지 않은가. 서쪽으로 가면 무엇이 나올까. 읽기도 전에 나는 그 밤과 서쪽을 생각했었다. 지평선과 맞닿은 초원, 그 위를 달리는 야생동물. 한 여자의 내밀한 일상의 기록이자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베릴 마크햄은 1902년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삶의 뿌리를 아프리카에 내리기로 선택했다. 아프리카 케나에서 말을 조련하고 원주민들과 사귀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아프리카에서 살아간다는 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여유롭고 아름답기만 했을까. 그러나 베릴 마크햄은 달랐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을 향해 나갔다.

 

 아프리카는 신비롭다. 야생의 땅이자 푹푹 찌는 열화 지옥이다. 사진가들에게는 천국이고, 사냥꾼들에게는 발할라요, 현실도피자들에겐 유토피아다. 아프리카는 당신이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해석이라도 받아준다. 아프리카는 죽은 세계의 마지막 흔적이기도 하고 새롭게 빛나는 세계의 요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에게 아프리카는 그저 ‘고향’​이다. 아프리카에는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그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 (27쪽)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페루로 가야 했을 때 베릴은 아프리카에 남았다. 그만큼 그녀에겐 아프리카가 전부였다. 그리고 운명의 그것, 비행기와 만났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상상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그것을 해냈다. 1931년 비행사가 되었고 1936년에는 대서양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단독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자 비행사였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전진했다는 게 중요하다. 아프리카 어느 한 계곡에서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었고 설령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더라도 구조대를 기다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던 시절은 아니었으니,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은 형체가 없다. 낮게 걸린 별들이 빛나고 달이 은빛 날개를 휘감았을 때, 이 세상은 물이 모두 사라지고 다섯 번째 날의 밤이 여전히 제 존재가 신기하기만 해 당혹스러운 피조물들 위로 내렸을 때의 모습이 분명한 창공처럼 된다. 아무도 텅 빈 지평선에 자기 꾀의 덧없는 상징을 구체화하거나, 도로를 만들려고 땅을 파헤치거나, 집을 지으려고 나무를 쌓기 전의 텅 빈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불모의 세계는 아니었다. 생명의 기원을 품고 기대에 부풀어 하늘 아래 누워 있는 세상이었다. (364쪽)

 

 밤이 깊을수록 잡념이 파고들 때가 있다. 9월의 중반이 지나고 남은 세 달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라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마음을 모으는 일, 내면을 하나로 집중하는 일, 그 하나가 책을 읽는 일은 아닐까. 차분하면서도 감정의 고조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문장, 담백하고 유려한 문장을 읽는 동안 당신의 내면으로 채워진 까만 밤은 부드러운 이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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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숨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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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을 기억에서 도려낸 것처럼 말끔하게 잊고 살아가려 애쓴다. 그것과 연관된 물건이나 사람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까 두려운 마음을 숨기면서 멀리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일부라는 걸 부인하고 싶은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 해도 다르지 않다. 박영의 장편소설 『불온한 숨』속 인물들은 그렇게 위태로운 삶을 지속한다. 

 죽은 딸과 닮았다는 이유로 선택된 제인과 병약한 아들이라서 아버지에게 선택받지 못한 텐의 하루하루는 생존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제인 대신 진짜 제인이 되기 위해 춤을 춰야 버림받지 않을 것 같았고 그림자처럼 살아야만 했다. 아픔을 드러내면 안 되었고 진짜 욕망을 키울 수도 없었다.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진짜 삶을 찾을 용기를 내기엔 제인을 붙잡는 게 많았다. 유모인 크리스티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춘기 딸 레나가 그랬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서른여덟의 나이가 그랬다. 레나와의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고 무용수로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 제인에게 텐의 안무는 기회였다. 그의 충격적인 안무만이 제인을 무대에서 빛나게 할 방법이었다. 적어도 텐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함께 춤을 배운 사이라는 텐의 인사에 제인이 지운 과거가 고스란히 살아났다. 자신에게 접근한 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제인은 알 수 없었다. 제인과 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 제인에게 춤은 무엇일까.

 

 이제껏 나의 생은 그저 누군가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벌인 한낱 연극에 불과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 나는 팔과 다리가 잘린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어둠 속을 더듬어나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한 발자국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139쪽)

 

 이해할 수 있겠니? 어둠 속에서 추는 춤만이 진정한 춤이라는 걸 그런 춤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걸. 그런 춤을 춰야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는걸.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 오직 너의 춤을 춰. 제인. (155쪽)

 

 싱가포르란 섬을 배경으로 춤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간의 욕망을 관능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곳곳에서 흐르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몽환적인 춤의 세계로 이끄는 박영의 문장은 신비로운 듯하면서도 ​날카롭다. 감춰진 비밀의 순간을 향해 다가가는 순간, 폐부를 찌르는 듯 격정의 호흡으로 몰아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저절로 내 눈앞에 무대가 펼쳐졌고 눈을 가리고 춤을 추는 제인, 그를 바라보는 텐이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빛과 소리가 사라진 채 오직 춤만이 존재하고 제인을 지배하고 점령하는 듯했다. 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춤을 출수록 거울은 점점 나를 향해 좁혀왔다. 어느덧 나는 사방이 유리도 된 관 속에 갇혀 턴을 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런 내 안의 불안감과 공포를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시치미를 떼고 누구보다 강인한 모습으로 스텝을 밟았다. (32쪽)

 

 눈덩이처럼 커졌을 제인의 이로움은 누가 알 수 있을까. 임선경이 아닌 제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담아둔 고통이 눈 덩어리처럼 커져 자신을 올가 매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살아온 그녀. 레나와 제인의 갈등, 지친 제인의 얼굴과 내면의 불안, 그 모든 것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승화시켜다고 하면 맞을까. 성공을 위해 가면 뒤로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제인이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위험한 삶을 사랑하는 크리스티나. 가면을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함과 절대로 벗어버릴 수 없는 단호함,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욕망. 그녀들의 아슬아슬하고 불온한 몸짓이 곧 폭발할 것만 같아 불안하면서도 그곳이 시원하게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 모두 그런 잠재적 불온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혼자라는 생각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에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전한다. 잠깐이라도 가면을 벗어버리고 그 바람에 취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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