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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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가 삶을 지배한다. 더위를 피해 외출을 삼가고 고민 끝에 에어컨을 켠다. 다음 달 전기요금을 걱정하면서 맘 놓고 편하게 지내지도 못한다. ​주변 친구나 지인의 사정도 그만그만하다. 그래서 속상한 일이나 자잘한 고민을 터놓게 된다. 나와 너무도 다른 삶을 사는 이에게는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대신 적정한 거리와 선을 긋는다. 경제적 격차를 크게 느끼거나 삶의 지향점이 다를 때 자신도 모르게 이미 선명한 선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고 누군가는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선을 지워버릴 수는 없을 걸까.

 

 엄마의 재혼 후 방황하다 가출을 하고 성매매 알선을 하는 조의 밑에서 일하는 「개의 나날」속 ‘나’와 어쩌면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던 장에게는 어떤 선이 있었을까. ‘나’의 엄마와 헤어졌더라도 장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 어땠을까. 장이 죽은 후 그가 남긴 편지와 기념해야 할 날마다 봉투에 돈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마다 네 생각이 났다.(62쪽)는 편지처럼 그냥 한 번씩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현재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은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조의 지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은 우리의 그것과 같기에 ‘나’가 기형도의 시를 읽는 것으로도 시작되었다고 기대한다.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말이다.

 

 서유미의 소설 속 풍경은 그만그만하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상경한 20대 자매의 고단하고 힘든 서울살이를 담은 ​「에트르」은 청춘의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르바이트만 하려는 게 아닌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줄 형편이 아니다. 다른 집을 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고 아주 작은 행복마저 멀게만 느껴진다. 서울살이에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한숨이 나왔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동네의 골목이, 한참 떨어져 있는 곳과 이토록 닮아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익숙해서 정겨운 것이 아니라 이곳도 그곳 같을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스산했다. (「에트르」, 28~29쪽)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한 후에는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책임감을 부여받은 삶은 더욱 고달프다. 점점 서로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쌓이고 불안하면서도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는 「휴가」속 은호와 아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떠난 여행에서 사라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며 일상을 견디는 「뒷모습의 발견」의 여자, 이혼 후 팔리지 않는 집 때문에 사우나에서 지내면서 전처와 다툼을 하는 「이후의 삶」속 남편은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모습이 되었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평일 휴가를 얻었지만 늦잠을 자거나 잘 안다고 믿었던 남편(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확인하고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꿨던 집이 이혼과 동시에 애물단지가 돼버리고. 그들의 일상이 현실적이라 공감이 가면서도 그들에게 뭔가 신나고 행복한 일이 일어났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공정할 정도로 똑같은 일상들, 사소하게 방향을 틀기만 해도 달라지는 삶은 선을 넘었을 때 가능할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한 후에 남편과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60대가 지나 아들이 직장을 갖고 딸이 결혼한 후에야 선을 넘은「변해가네」속 ‘나’는 어떻게 보면 이 소설집에서 가장 능동적이다. 예정일보다 빠른 딸의 출산과 치매의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다드려야 하는 하루. 돌보고 키우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는 그 심경을 알 것도 같았다. 결혼 후 엄마와 아내로 살면서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지 못한 삶, 돈 잘 버는 사위를 두둔하며 이혼을 하겠다는 자신을 탓하던 엄마, 기억을 잃고 소녀처럼 부끄러운 웃음을 짓는 엄마를 바라보는 자식들. 딸이자 엄마인 복잡한 감정도 함께.

 

 6편의 소설엔 저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고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보통의 일상을 바라는데 그마저 너무 멀리 있어 고달프고 비참하다. 그만그만한 풍경은 쓸쓸한 기운을 전해주면서도 자꾸만 떠오르는 몇 장면으로 압축된다. 은호와 아내가 출근 후 빈집에 드리울 길고 따사로운 햇볕, 사우나에서 같은 옷을 입고 미역국과 식혜를 먹으며 TV를 시청하는 사람들,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케이크 상자를 손에 꼭 쥔 채 골목을 나오는 젊은 여자. 그들의 하루가 어떻게 끝 날지 모르지만 지금 오늘을 산다면 조금 시원하면 좋을 텐데. 그들과 우리가 마주할 내일이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 없어 무섭고 두려울지라도.

 

 나쁜 소식 없이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됐지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두려웠다. 무언가 쏟아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금의 상태를 무사하다고 해도 좋을까. (「뒷모습의 발견」,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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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8-0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서재의 분위기도 그리고 프로필 이미지도 달라져서 또 다른 계절의 느낌이 듭니다.
더운 날씨가 이제 더이상 더울 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매일 너무 덥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8-04 17:22   좋아요 1 | URL
오늘은 정말 덥네요. 샤워를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ㅎ
입맛도 사라지고, 얼마나 이런 날들이 계속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서니데이 님도 청량한 주말 보내세요. 건강도 잘 챙기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