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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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쳐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 여기만 벗어나면 괜찮아질 것 같은 마음이 요동칠 때, 다른 곳을 갈망한다. 누구나 살면서 느껴봤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이곳만 아니면 상관없을 것 같은 어떤 절박함. 그곳에 누군가 아는 이가 있어 기댈 수 있다면 떠나는 일은 쉽다. 시징, 윤주, 미정도 그랬다. 업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시징에게 한국의 영등포는 연인 은철의 공간이었다. 방송작가를 그만둔 윤주가 우연하게 연락된 미정이 있는 제주도로 떠난 이유도, 미정이 제주로 이주를 결심한 건 보경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주는 영등포의 작은 원룸을 시징에게 빌려주고 제주로 떠난다. 미정이 머무는 공간 역시 누군가에게 빌린 공간이다. 자신의 공간을 내주고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건 잠시나마 타인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홍콩에서 한국으로 온 시징도 그러했다. 2014년 은철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방을 내주었다. 처음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은 시징, 윤주, 미정의 공간인 홍콩, 영등포, 제주도를 교차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한 공간을 공유하며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생각하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털어놓는다.


시위 속에서 쓰러진 시징을 도와준 은철, 둘 사이의 만남과 사랑은 3개월 정도였지만 6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시징은 영등포에서 은철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윤주의 방에서 은철을 떠올리는 시징,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시징에게 자신의 마음을 메모로 남긴 윤주. 윤주는 함께 일하던 이들에게 상처를 받고 일을 그만두었다.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온 지난 모든 시간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미정의 연락에 계획 없이 제주로 왔다.


인권법재단 간사로 일했던 미정은 지금은 제주에서 새 공항 반대 활동가로 일한다. 미정에게 어떤 신념이 있는 건 아니다. 제주로 미정을 부른 보경언니와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미정도 법조인의 꿈이 있었지만 모의재판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해 꿈을 접었다. 국가 폭력에 대한 사건으로 상대가 베트남전을 예로 들면서 무너졌다. 미정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다. 자신이 누군가 변호한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그 시절에 대해 물을 수도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고민을 거듭하고 애쓰며 투신할수록 생애는 엉망이 되는지, 미정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85~86쪽)


“윤주야, 난 여기가 편하고 사실 갈 데도 없어. 그게……”

“그게 내 잘못인 거야?” (101쪽)


그게 내 잘못이냐는 미정의 질문은 윤주에게 화살처럼 박힌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렇다. 윤주가 잘못한 게 무엇일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더 나은 삶을 원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일까. 시장, 윤주, 미정의 삶을 통해 우리는 이웃과 사회의 모습을 목격한다. 시징을 통해 홍콩의 우산 혁명과 독립 시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윤주에게서 결혼, 아이, 미래를 포기하며 하루하루 견디는 이들을 보고 미정과 미정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의 상흔과 제주를 비롯한 여러 곳의 난 개발을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 타인의 공간을 통해 자신의 그것을 본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본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삶들이 있다. 시징에는 윤철이 그랬고, 윤주에게는 연인 선우가 그랬고 미정에게는 아버지가 그랬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봐 진심을 내보여줄 수 없어서 얇은 막 같은 걸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서야 서투른 화해를 하거나 이전보다 조금 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다. 은철의 공간이었을 영등포에서 제대로 이별하는 시징, 두렵지만 아버지에게 베트남 참전 이야기를 들은 미정, 멀리서 선우를 지켜보며 그를 이해할 것 같은 윤주.


부유하는 삶은 불완전해 보인다. 하지만 부유하고 떠돌면서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도 하고 몰랐던 상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조해진 작가는 언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의 삶의 고단함을 말한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 만나고 그들에게서 위로받는 생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누군가 있어 떠날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는 생의 여행이라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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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 피플, 나라는 세계 - 나의 쓸모와 딴짓
김은하 외 지음 / 포르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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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알아도 성공한 인생이다. 즐기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에 관심을 추구하고 다가가는 삶은 지루하지 않다. 그럼 그런 이들은 어쩌다 그런 즐거움에 빠졌을까. 어떤 이는 필요에 의해, 어떤 이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게 다르고 그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제목부터 힙하게 다가오는 『힙 피플, 나라는 세계』에서 크리에티브 디렉터, 서점 MD, 라디오 작가, 신문기자, 출판사 대표, 브랜딩 전문가, 갤러리 대표, 정신과 의사 SNS 마케팅 대표까지 9명의 이야기를 듣는다. 부캐와 딴짓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는 일상, 당신의 딴짓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힙 피플, 나라는 세계』는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9명의 딴짓 혹은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에세이로 페이스북 사용자라면 이미 친구가 되었거나 즐겨찾기를 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9명의 저자는 현재 자신의 일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현재의 위치에 이르까지 어떤 시간을 지내왔는지 알려준다. 성공의 노하우라고 해도 좋으며 한편으로는 다양한 SNS의 세계 가운데 페이스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페이스북의 이용기이자 애용기라도 해도 맞을 듯하다.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저자 익숙한 이름이 있어 그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다. 바로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MD 손민규다.


책을 파는 서점에서 그가 하는 일과 그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어떻게 홍보했는지 알려준다. 이건 뭐 다 예상한 일이다. 흥미로운 건 어떤 종류의 글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가 하는 건데 ‘ 더 팔린 책, 더 알리고픈 책’, ‘쓸모없지만 재밌는 기획전’ 같이 호기심 유발의 글이었다. 책을 좋아하기에 읽으면서도 궁금해져서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유머를 중요하게 여기며 웃음에 대해 진심이라고 고백한다. 또한 페이스북 게시글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도 전한다. 그가 알려주는 건 성실함과 대중성이다. 성실함이란 친구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일, 친구 신청하기와 받아들이기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블로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든 사용자는 모두 같은 마음일 테니까.


다음으로 형식. 간단히 말하자면, 잘 찍고 잘 써야 한다. 사진 품질이 떨어지고, 문장이 노잼이면 따봉이 덜 달린다. 요즘은 동영상까지 다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58쪽)


손민규의 경우 페이스북에 업무 외에도 산 관련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했고 그 결과 출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손민규처럼 업무로 시작한 일이 부캐로 이어져 활발한 활동한 김진방 기자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김진방 기자는 ‘금진방’이라는 이름으로 말 그대로 부캐에 완벽하게 성공한 케이스다.


그는 베이징 특파원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취득한 인맥과 정보를 수집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했다. 중국 음식 포스팅으로 그쪽으로는 전문가 되어 책과 강연까지 했으니. 그는 페이스북을 떠나지 않는 이유로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 공간’이라고 말한다. 베이징 특파원을 하면서 하루 종일 정치, 외교, 군사, 경제기사를 쓰면서 직업적 글쓰기에 지쳐갈 때 페이스북에서 자신만의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게 직업이라고 해도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때 만족감과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을 것 같다. 중국 관련해서 맛집을 시작으로 예술로 확장되니 기자 본연의 역할에 도움을 주니 훌륭한 부캐다.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에서 하나의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 페이스북을 출판사 녹색광선 대표 박소정은 창업기로 활용했다. 퇴사 후 자신이 좋아하는 책 가운데 고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한 후 그 모든 준비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소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에 독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SNS. 혼자 일하는 그에게는 페이스북 공간이 업무의 공간이자 휴식의 장소였다. 개인적인 일상을 포스팅한 글에서 댓글을 나누며 느끼는 기쁨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딴짓은 제2의 일이 되었고 본업에 시너지효과를 주었다. 그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우리가 원하는 힙한 일, 딴짓은 힘겨운 일상에서 잠시나마 즐거움을 찾고 휴식을 위한 것에서 비롯된다. 라디오 경제 방송 작가가 향수를 제작해 판매하고 일상 에세이를 쓰는 일도 그러하고 아픈 마음을 치료하며 종이접기에 진심인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좋아해서 종이접기를 시작한 의사가 아들은 그리기 매력에 빠졌지만 종이접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좋아서다. 나를 알리고 관심을 받는 일은 지탄을 받거나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즐기는 일, 그게 바로 힙한 인생이며 퍼스널브랜딩에 성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브랜딩은 남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쌓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신경 쓰기 전에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자기다움’이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브랜드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79쪽)


모두의 딴짓이 9명의 저자처럼 책이나 강연으로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딴짓을 통해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찾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무언가, 아직은 서툴고 능숙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미래는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 멋진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을 채우는 다채로운 빛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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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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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삶을 원한다. 좋은 글을 쓰거나 멋진 글이 아니더라도 글이 주는 힘과 위안을 알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은 무언가를 쓰는 동안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슴속 불 덩어리를 담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 어찌할 바를 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었다. 마구잡이의 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현재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막상 글을 쓰려면 어렵다.


변호사이자 다양한 글쓰기로 알려진 저자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나 같은 혹은 쓰고 싶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제목부터 우리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쓰려는 이에게 이 책은 세심하고 다정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정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유려한 기술을 알려줄 거라는 기대는 품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삶에 대한 태도나 자신만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니까.


목차를 살펴보면 ‘첫 문장을 기다린다’, ‘시작할 동기’ 같은 소제목에서 어떻게 쓰는지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다. 물론 아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저자는 마음에서 말하는 무언가를 받아 적는 일이 글쓰기라고 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처음 글을 쓰는 배경을 살펴보면 일기, 블로그, 짧은 글의 SNS에서 내가 느끼는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던가.


글쓰기는 우리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나가며, 그 시선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우리는 시선의 존재가 디기 위해 글을 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상 곁에 살아 있기 위하여 글을 쓴다. 글쓰기는 관념의 유희, 당위의 강요, 기준의 폭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27쪽)


그러니 처음에 혼자 쓰던 글쓰기는 타자와의 대화가 되고 나눔이 된다.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밀글이 아닌 글은 누군가에게 공개된다. 좋아요, 공감을 누르고 누군가는 댓글을 단다. 그 후로 글은 타자와 공유하는 글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 가운데 글쓰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 경험한 이들은 다 알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글과 삶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글쓰기는 혼자 고독 속에서 고고하게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결국 그 고독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그 누군가가, 그 무언가가 있다. (53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발견한 즐거움과 기쁨은 물론이고 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유를 확장시키는 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경험한 것들, 꾸준히 글을 쓰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순간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떨림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아름답다.


‘글 쓰는 삶’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지만, ‘삶이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삶이라는 거대한 무엇이 써나가는, 그리하여 그것을 그저 받아 적을뿐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존재이지만 존재가 아니기도 한, 삶이 옮겨지는 유령 같은 백지가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이런 생각은 아주 깊고 고요한 위안을 준다. (221쪽)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삶이 글을 쓴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우리가 무언가 쓰고자 했을 때의 삶을 돌아보면 어떤 때는 분노가 어떤 때는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하고 사소한 개인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삶에서 나온다. 모든 삶에 대해 알 수 없겠지만 뉴스나 언론에 등장하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써야 할 삶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여기, 알려지지 못하는 삶이 도처에 널려 있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느낄 때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다. 정말이지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없다. 알아야만 하는, 말해지지 않는, 들릴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 (258쪽)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삶은 더욱 중요하다.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겠지만 책을 내기 위한 글이 아니더라도 당장 돈이 되는 글이 아니더라도, 글은 삶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록하고 주변을 기록하는 일은 점차 사회를 기록하는 일이며 반성과 통찰의 시간은 지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일이다. 기도하듯 글을 쓰는 저자처럼 말이다.


다시, 나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 삶이 엉망이 된다면 좋은 글쓰기도 없다.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 기분, 말 한마디도 챙길 줄 알고 조율하려 할 때, 삶과 글쓰기는 어우러지리라 믿는다. (286쪽)


무언가를 쓴다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쓰는 삶을 산다. 막연히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첫 문장을 기다리는 순간, 삶은 쓰인다. 다음 문장이 기쁘게 오거나 억지도 오더라도 글쓰기가 계속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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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02-15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좋네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요~

얄라알라 2022-02-15 12:27   좋아요 2 | URL
햇살과함께님 댓글 보고, 다시 제목에 도장 꾹 찍고 왔어요. 글이 좋아서 두 번 읽었는데 제목은 뒤늦게 들어오네요^^ 햇살과함께님 덕분

햇살과함께 2022-02-15 13:08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얄라알라님 댓글 보니 본문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2-02-16 09:16   좋아요 1 | URL
글쓰기는 어렵지만 쓰는 동안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좋아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ㅎ

공쟝쟝 2022-02-15 09: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애정하는 정지우 작가님이 또 에세이를 내셨네. 그런데 변호사셨군요. (갑자기 멀어진다...) 소개해주신 문장들이 너무 정지우 같고, 그래서 제가 정지우님 글을 좋아한다죠. 삶과 글쓰기가 어울려져야 한다는 식의 글을 이렇게도 단단히 되풀이해서말하는 또래의 저자가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자극받는 좋은 일이예요.
저는 남들 몰래 글을 쓰면서 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남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아닌 것 같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도 좋은 글을 써야겠군요.
자목련님의 쓰는 삶도 독려합니다. 공들여 쓴 독후의 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0   좋아요 2 | URL
정말 열심히 쓰는 작가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처음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는 글의 분위기나 감성이 여성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에 대한 글이 나와서 남성이라고 알았어요. 변호사, 저도 이 부분에서는 멀어집니다. ㅎ
몰래 글쓰기, 저도 처음에는 모두 비밀글이었는데, ㅎㅎ 나에게 좋은 삶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게 시작이 아닐까 해요. 오늘도 쟝쟝 님께 좋은 쟝쟝 님이기 바라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2-15 09: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글은 삶을 쓰는 일이라는 것 정말 공감되네요. 어떤 글을 쓰든 그 글엔 그 사람의 삶이 녹아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남기는 감상이든 일상을 쓴 글이든 자신만의 경험과 해석이 담길 테니까요. 글쓰는게 항상 어렵고 두렵지만 제 삶을 위해 열심히 써나가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1   좋아요 2 | URL
네, 어떤 글이든 자신의 일부가 담기는 것 같아요. 픽션인 소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글에 내가 있다는 걸 아니까요.
거리의 화가 님, 충만한 하루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02-15 1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왜 심각해질까요? ;;
삶이 글을 쓰다!
삶이 누추하면 글도 그렇겠죠!
이 댓글 쓰면서 반성중입니다.

자목련 2022-02-16 09:23   좋아요 2 | URL
심각해지지 마세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저마다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그러니 오늘도 아름다운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2-15 1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앱으로 오전에 읽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뭔가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자목련님의 페이퍼였습니다. 저는 정지우 작가님을 모르는데 공쟝쟝님, 자목련님의 애정을 받고 계시니 그 또한 찾아봐야겠고요^^
자목련님께서 품으신 가슴의 불덩어리가 어떤 열기인지, 다뤄질 불이었는지 상상하며 지나갑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2-16 09:27   좋아요 3 | URL
다시 들어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최근 활발하게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
당시의 불덩어리는 총체적인 미움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어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독한 말, 나쁜 말을 마구 썼어요. 키보드에 그런 말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지요. 의외로 스트레스가 풀려서 저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정한 마음 건네주신 얄라 님도 따듯한 하루 이어가세요^^

희선 2022-02-16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도 그렇지만 글도 안 써도 괜찮지만, 쓰기 시작하면 안 쓰지 못할지도 모르죠 사람마다 이야기가 있겠네요 글을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2-02-16 09:28   좋아요 2 | URL
읽고 쓰는 일, 말씀처럼 안 쓸 수 없는 삶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게는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품는 게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드네요.
희선 님,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2022-02-1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잿빛극장
온다 리쿠 지음, 김은하 옮김 / 망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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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지 못했던 일상을 살고 있다. 3년 전에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그런 삶인지도 모른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가득하니까. 그래서 놀랄 만한 사건이나 사고로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 주어진 일상을 돌아본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산다는 게 무언지.


온다 리쿠의 『잿빛극장』 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 따라왔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20여 년 전 두 명의 여자가 다리에서 함께 투신자살을 한 신문 기사를 전업작가인 ‘나’는 소설 <잿빛 극장>으로 완성한다. 그리고 다시 그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 상영된다. 소설은 단순하게 연극으로 다시 탄생하는 그 과정을 다루는 건 아니다.


소설은 특이하게 0, (1), 1로 구분하여 구성되었는데 0은 <잿빛 극장>을 쓰는 ‘나’의 일상, (1)은 <잿빛 극장>을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 1은 신문 기사 속 익명의 두 여인 T와 M의 일상을 다른다. 0, (1), 1이 교차하며 이어지기에 조금 혼란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몰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신문 기사 속 두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연극까지 상영하게 된 과정에서 ‘나’와 독자가 가장 궁금한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T와 M은 대학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지만 T의 결혼으로 연락이 끊겼다가 T가 이혼 후 다시 재회한다. 결혼이 자신이 원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T는 친정으로 돌아가는 대시 번역을 하면서 혼자 살기로 결정한다. 그러다 M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생활비를 줄이고 집에서 일하는 T가 자연스럽게 살림을 한다.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을 알아간다. 가령 T의 갑작스러운 결혼과 이혼 같은 것.


소설을 이끄는 건 당연 0, (1)이다. 익명의 두 여인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기에 ‘나’는 막상 연극에 출연 배우를 결정하는 오디션에 참여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존재를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된다. 20여 년 전 마흔 중반의 두 여성이 아주 젊은 나이라는 걸 말이다. ‘나’가 당시 많게 느꼈던 그들의 나이가 현재의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에 빠져든다.


‘파란만장‘ 하지도 않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온 힘을 다해’ 살지도 않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인생이다. 그 일회성만큼은 어떤 인생이든 마찬가지고 예외가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인생이다. (1 - 154쪽)


M이 느꼈던 것처럼 우리는 그저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저마다 파란만장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주어진 삶에 대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뭔가 허무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회의감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것일까. 독자인 나는 점점 궁금해진다. ‘나’처럼 20여 전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된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말이다.


그 두 사람이 죽어서 이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사랑? 우정? 신뢰? 체념?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었을까?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난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0 - 192쪽)


어쩌면 우리도 어느 시기에는 그녀들과 같은 삶은 살아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 시절을 통과하는지도 모른다. 익명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나’가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느낀 허무, 메마른 절망, 그 모든 것을 나는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냄새도 풍기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느끼지 못하도록 한 그 자체가 내가 남긴 유서일지도 모른다. (1- 334쪽)


묘한 소설이다. 먹먹하게 아프다. 소설 속 T와 M이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삶이라는 게 살아갈수록 힘들고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라는 걸 알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에 그들의 선택이 안타깝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인간의 심연, 그 깊은 곳에 내려앉은 절망과 슬픔의 일부를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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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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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소설이 되고 소설 같은 일상을 살기도 한다. 간혹 소설을 읽다 보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작가 주변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잘 썼다는 말로 대신하면 맞을까. 윤성희의 단편집 『날마다 만우절』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떤 이야기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고모의 기억의 이야기, 친구가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말하는 자신의 가족사 같은, 건너 건너 들은 이름만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 우리끼리만 알아야 하는 비밀 같은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 윤성희의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여 그의 소설에는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날마다 만우절』에 수록된 11편의 단편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생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듯 주연, 조연을 가리지 않고 한 번씩 등장해 제 역할을 해낸다. 그들 중 누군가는 부재로 남은 자들이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거나, 오랜 시간 연락이 끊어졌거나, 특정한 이유로 세상과 단절한 경우다. 곁에 없다고 해서 그들과의 기억이나 인연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그리움의 존재이자 화해하지 못한 존재다.


표제작 「날마다 만우절」은 3년 만에 고모를 만나러 가는 ‘나’의 이야기다. 아버지와 싸우고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고모가 암에 걸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엄마, 남동생과 함께 걱정과 근심으로 고모 집에 도착하지 고모는 없었다. 걱정이 더해가는 사이 나타난 고모는 암에 걸렸다는 게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 그런 거짓말을 해야만 다시 가족이 모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황당하면서도 안도감을 감추지 않는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자신이 했던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부모님의 첫 만남부터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는 일상들이 유쾌한 팝콘처럼 터진다.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순간이라고 할까.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이니 ‘나’도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두가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말들은 얼마나 많을까. 감춰둔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또 있다. 「남은 기억」 속 영순과 ‘나’도 뜻하지 않은 해후로 서로의 지난 삶을 들려준다. 암이 재발한 영순에게 ‘나’는 과거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 그때 영순의 남편은 사업이 잘 되었고 어쩌다 보니 갚지 못했다. 서로가 소원했던 시간의 사정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웃으로 살면서 지냈던 소소한 일상부터 사업이 망한 이야기. ‘나’에게도 일이 많았다. 아들 내외가 죽고 손자를 키우게 된 것이다.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영순은 암에 걸렸고 ‘나’는 아들을 잃었지만 삶은 또 이렇게 기억 속 누군가를 만나 서로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영순은 살아갈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수 있지만 ‘나’는 손자를 생각하면 살아갈 날이 더 길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마지막엔 어떤 기억으로 채워질까.


윤성희는 십 대부터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에 소개한 두 편과 원하지 않은 퇴직을 한 「여름 방학」후 담담하게 생활을 이어가는 ‘나’, 아파트 단지에서 분홍 킥보드를 훔치는 60대 할머니의 사연을 들려주는 「어느 밤」에는 노년의 삶을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버스에 치인 사고로 병원에 누워 매일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눈꺼풀」과 두 명의 친구와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며 항상 자신을 챙기던 옆집 형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에는 십 대 소년이 주인공이다. 아직은 모든 게 궁금하고 자신의 감정조차 가늠할 수 없는 십 대, 세상의 이치를 조금을 알 것 같은 노년에게도 삶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수월할 것 같은데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어린 시절 내가 알았던 어른의 삶도 이랬을까.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내려간 시골로 내려간 부모님에게 일어난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돌아보는 「블랙홀」속 삼 남매나 항상 다정하고 자신을 제일 예뻐한 삼촌이 어쩌다 교도소에 갔는지 「스위치」의 조카는 결국 우리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네 번의 절교와 한 번의 파혼을 당했다. 네 번의 절교와 한 번의 왕따를 당한 뒤 선물처럼 찾아온 단짝 친구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다. 두 번이나 이직을 했고, 스트레스로 탈모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섯 번째로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애를 써서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다. (「여섯 번의 깁스」, 59쪽)


어쩌면 소설 속 문장처럼 우리는 애를 써서 그냥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느라 다치고 조금 괜찮아진 것 같으면 다시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일 앞에서 애를 쓰고 또 애를 쓰며 살아간다. 언제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 기억으로 남는 게 인생은 아닐까. 그러니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건 유머일지도 모르겠다. 윤성희가 소설에서 항상 놓치지 않는 그것. 아직은 그 심오한 뜻을 깨달을 수 없지만 언젠가 나도 유머를 건네는 것으로 상실과 상처와 슬픔을 달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술 수업 첫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마술에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유머라고. 나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만 같았다. (「어느 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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