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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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삶을 원한다. 좋은 글을 쓰거나 멋진 글이 아니더라도 글이 주는 힘과 위안을 알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은 무언가를 쓰는 동안 조금씩 정리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슴속 불 덩어리를 담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 어찌할 바를 몰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었다. 마구잡이의 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현재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막상 글을 쓰려면 어렵다.


변호사이자 다양한 글쓰기로 알려진 저자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나 같은 혹은 쓰고 싶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된다. 제목부터 우리의 마음을 너무 잘 아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쓰려는 이에게 이 책은 세심하고 다정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정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유려한 기술을 알려줄 거라는 기대는 품지 않는 게 좋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는 삶에 대한 태도나 자신만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니까.


목차를 살펴보면 ‘첫 문장을 기다린다’, ‘시작할 동기’ 같은 소제목에서 어떻게 쓰는지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다. 물론 아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저자는 마음에서 말하는 무언가를 받아 적는 일이 글쓰기라고 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처음 글을 쓰는 배경을 살펴보면 일기, 블로그, 짧은 글의 SNS에서 내가 느끼는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던가.


글쓰기는 우리의 고유한 시선을 찾아나가며, 그 시선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우리는 시선의 존재가 디기 위해 글을 쓴다.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응시하고, 그 응시의 기록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상 곁에 살아 있기 위하여 글을 쓴다. 글쓰기는 관념의 유희, 당위의 강요, 기준의 폭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27쪽)


그러니 처음에 혼자 쓰던 글쓰기는 타자와의 대화가 되고 나눔이 된다. 블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밀글이 아닌 글은 누군가에게 공개된다. 좋아요, 공감을 누르고 누군가는 댓글을 단다. 그 후로 글은 타자와 공유하는 글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 가운데 글쓰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 경험한 이들은 다 알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글과 삶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글쓰기는 혼자 고독 속에서 고고하게 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결국 그 고독 너머에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그 누군가가, 그 무언가가 있다. (53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발견한 즐거움과 기쁨은 물론이고 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사유를 확장시키는 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경험한 것들, 꾸준히 글을 쓰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순간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떨림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아름답다.


‘글 쓰는 삶’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지만, ‘삶이 글을 쓴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삶이라는 거대한 무엇이 써나가는, 그리하여 그것을 그저 받아 적을뿐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존재이지만 존재가 아니기도 한, 삶이 옮겨지는 유령 같은 백지가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이런 생각은 아주 깊고 고요한 위안을 준다. (221쪽)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삶이 글을 쓴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우리가 무언가 쓰고자 했을 때의 삶을 돌아보면 어떤 때는 분노가 어떤 때는 기쁨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의 생각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하고 사소한 개인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 삶에서 나온다. 모든 삶에 대해 알 수 없겠지만 뉴스나 언론에 등장하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알아야 하고 써야 할 삶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여기, 알려지지 못하는 삶이 도처에 널려 있다.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느낄 때는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다. 정말이지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없다. 알아야만 하는, 말해지지 않는, 들릴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 (258쪽)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삶은 더욱 중요하다.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겠지만 책을 내기 위한 글이 아니더라도 당장 돈이 되는 글이 아니더라도, 글은 삶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록하고 주변을 기록하는 일은 점차 사회를 기록하는 일이며 반성과 통찰의 시간은 지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일이다. 기도하듯 글을 쓰는 저자처럼 말이다.


다시, 나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 삶이 엉망이 된다면 좋은 글쓰기도 없다.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 기분, 말 한마디도 챙길 줄 알고 조율하려 할 때, 삶과 글쓰기는 어우러지리라 믿는다. (286쪽)


무언가를 쓴다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쓰는 삶을 산다. 막연히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첫 문장을 기다리는 순간, 삶은 쓰인다. 다음 문장이 기쁘게 오거나 억지도 오더라도 글쓰기가 계속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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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02-15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좋네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도요~

얄라알라 2022-02-15 12:27   좋아요 2 | URL
햇살과함께님 댓글 보고, 다시 제목에 도장 꾹 찍고 왔어요. 글이 좋아서 두 번 읽었는데 제목은 뒤늦게 들어오네요^^ 햇살과함께님 덕분

햇살과함께 2022-02-15 13:08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얄라알라님 댓글 보니 본문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2-02-16 09:16   좋아요 1 | URL
글쓰기는 어렵지만 쓰는 동안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 좋아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ㅎ

공쟝쟝 2022-02-15 09: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애정하는 정지우 작가님이 또 에세이를 내셨네. 그런데 변호사셨군요. (갑자기 멀어진다...) 소개해주신 문장들이 너무 정지우 같고, 그래서 제가 정지우님 글을 좋아한다죠. 삶과 글쓰기가 어울려져야 한다는 식의 글을 이렇게도 단단히 되풀이해서말하는 또래의 저자가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자극받는 좋은 일이예요.
저는 남들 몰래 글을 쓰면서 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남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아닌 것 같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도 좋은 글을 써야겠군요.
자목련님의 쓰는 삶도 독려합니다. 공들여 쓴 독후의 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0   좋아요 2 | URL
정말 열심히 쓰는 작가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처음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는 글의 분위기나 감성이 여성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아내에 대한 글이 나와서 남성이라고 알았어요. 변호사, 저도 이 부분에서는 멀어집니다. ㅎ
몰래 글쓰기, 저도 처음에는 모두 비밀글이었는데, ㅎㅎ 나에게 좋은 삶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게 시작이 아닐까 해요. 오늘도 쟝쟝 님께 좋은 쟝쟝 님이기 바라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요!

거리의화가 2022-02-15 09: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글은 삶을 쓰는 일이라는 것 정말 공감되네요. 어떤 글을 쓰든 그 글엔 그 사람의 삶이 녹아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남기는 감상이든 일상을 쓴 글이든 자신만의 경험과 해석이 담길 테니까요. 글쓰는게 항상 어렵고 두렵지만 제 삶을 위해 열심히 써나가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2-02-16 09:21   좋아요 2 | URL
네, 어떤 글이든 자신의 일부가 담기는 것 같아요. 픽션인 소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글에 내가 있다는 걸 아니까요.
거리의 화가 님, 충만한 하루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2-02-15 10: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왜 심각해질까요? ;;
삶이 글을 쓰다!
삶이 누추하면 글도 그렇겠죠!
이 댓글 쓰면서 반성중입니다.

자목련 2022-02-16 09:23   좋아요 2 | URL
심각해지지 마세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저마다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그러니 오늘도 아름다운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2-15 12: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앱으로 오전에 읽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뭔가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자목련님의 페이퍼였습니다. 저는 정지우 작가님을 모르는데 공쟝쟝님, 자목련님의 애정을 받고 계시니 그 또한 찾아봐야겠고요^^
자목련님께서 품으신 가슴의 불덩어리가 어떤 열기인지, 다뤄질 불이었는지 상상하며 지나갑니다.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2-02-16 09:27   좋아요 3 | URL
다시 들어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최근 활발하게 글을 쓰시는 것 같아요.
당시의 불덩어리는 총체적인 미움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어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독한 말, 나쁜 말을 마구 썼어요. 키보드에 그런 말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지요. 의외로 스트레스가 풀려서 저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정한 마음 건네주신 얄라 님도 따듯한 하루 이어가세요^^

희선 2022-02-16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도 그렇지만 글도 안 써도 괜찮지만, 쓰기 시작하면 안 쓰지 못할지도 모르죠 사람마다 이야기가 있겠네요 글을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22-02-16 09:28   좋아요 2 | URL
읽고 쓰는 일, 말씀처럼 안 쓸 수 없는 삶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게는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품는 게 우리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드네요.
희선 님,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2022-02-1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