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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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일상을 의심하는 순간은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거드는 한 마디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싹튼다. 과거와 달리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라면 파급력은 크다. 반대로 지금보다 과학이 발전된 미래라면 의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관리할지도 모른다. 조지오웰의 『1984』 속 빅 브라더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거대한 시스템이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면 어떨까? 


한요나의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세상이 그렇다. 그러니까 인구 부족으로 국가가 인구 출생을 계획하고 관리한다. 1월에 임신해 10월에 태어난 아이는 국가가 부모인 셈이다. 일반적인 가정이 아닌 기관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다. 기상관측소 분석실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김도브도 10월의 아이들 2세대다. 도브는 자신이 10월의 아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자신의 임종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아버지라는 존재,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는 파트너, 가족이 아니지만 존재의 시작인 그들이 등장하며 도브의 일상은 예전과 다르게 흘러간다. 도브에게 아버지는 의심이자 궁금증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숫자와 알파벳을 여러 방법으로 추리를 시작하다 찾은 곳이 술집 ‘NO-LITER’였다. 도브와 다르게 그곳을 단골 술집으로 여긴 이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파트너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노리터에 갔지만 도브는 그곳에서 점점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연인이 떠나고 혼자 아들을 키웠지만 아들마저 떠나버린 사장, 정상 가족을 원했던 엄마의 인형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 가출한 소미,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방랑자, 맥주를 마시러 온 노년의 부부 파와 엠, 기계처럼 대화하는 지지를 통해 도브는 인간이 무엇이며 가족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한다. 


도브는 특히 방랑자에게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는다. 기억을 잃은 방랑자도 도브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방랑자가 10월의 아이들 1세대였기 때문이다. 도브는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사장과 한 번도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는 소미를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무엇이며 자신과 다른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 거기다 지지와 방랑자의 대화를 통해 10월의 아이들인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항상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하던 방랑자가 김이고 박사라는 걸 알려주면서 잃어버렸던 기억을 하나씩 되찾을 때 사장의 아들 노원이 돌아온다. 노원이 돌아오고 소미는 사라진다. 노원은 아버지가 소미를 자신을 대신해 돌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국가의 유전자 공학으로 태어난 10월의 아이들, 국가가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배치하여 살아간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족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고 박사의 외침처럼 DNA 같은 건 이제 인간에게 정복당한 나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어떨까? DNA를 통해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이루려는 노력은 결국 허사가 되는 것일까.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마음이다.


인간은 너무 멍청해요. 왜 자신이 태어났는지 알 수 없잖아요. 누가 알려 준다고 해도,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요. 믿을 수 있을까요?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묻기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조금만 더 일찍 찾거나 아예 날 찾지 말았어야 했어요. (124쪽)


도브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만 지금껏 잘 살아왔기에 가족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이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브는 노리터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가족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연락이 끊긴 소미에게 소식을 전하고 세상을 떠난 파를 애도하고 남겨진 엠을 걱정한다. 어쩌면 노리터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미래의 가족상은 아닐는지. 


노리터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줄어든다. 사람들과 엮일수록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파트너를 찾을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노리터 사람들과 친해질수록 아버지도, 아버지의 파트너 찾기도 점점 잊게 된다. 가족. 가족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127쪽)


이런 상황속에서 10월의 아이들 1세대인 이고는 자신이 찾으려는 게 무엇인지 도브에게 설명한다. 국가나 정부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했던 것이다. 도브는 이고를 돕기로 결정한다. 신분증을 복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고가 일했던 곳으로 향한다. 돌아온 이고의 기억이 찾아낸 곳에는 사람이 아닌 거대한 시스템만이 존재했다. 국가 권력은 결국 시스템에 불과했던 것일까.


나는 시스템 오보에.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악기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제 나는 파괴합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인간 같은 것은 없습니다. (246쪽)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사과해야 할 대상도 없고, 사과해야 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걸까. 시스템은 누구에게 미안해하고, 또 왜 미안한 걸까. (246쪽)


이고가 그토록 밝히고 싶었던 10월의 아이들 1세대의 진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피해를 당한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시스템 오보에. 어쩌면 미래엔 시스템의 일부로 인간은 사라지고 인간과 같은 존재들만 남는 건 아닐까. 유전자 덩어리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면 가족의 돌봄이나 사랑은 배제된 채 양육되는 사회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는 얼핏 기상 이변에 대한 두려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멋진 트릭으로 시작해 정상가족이라는 범주에서 탈피한 미래의 다양한 가족 구성원과 형태를 제시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요나가 그려낸 소설은 허구가 아닌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유전 공학 기술이 우리 앞에 도래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단호함이 위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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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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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사용하는 무용수였던 유안은 유독성 화학물질의 대규모 유출과 화재로 페쇄가 된 이르슐의 한 도시 므레모사 투어에 참가한다. 세상과 단절된 므레모사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첫번째 방문객으로 투어에 당첨된 것이다. 유안을 제외한 다섯 명은 저마다의 이유로 므레모사에 기대가 가득하다. 관광학을 연구원생 이시카와, 다크 투어리스트 헬렌, 여행기자 탄, 여행 유튜브 운영자 유진, 펍을 운영했다 망한 레오. 


므레모사에 대해 알려진 게 없었지만 귀환자들이 유령과 좀비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많았다. 엄격한 검문으로 통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투어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유안의 의족을 한 사람이라는 게 일행에게 알려진다. 유안은 사고 후 재활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다리가 있다고 믿는 환지통에 시달렸다. 무용을 그만 두기 전에도 세 개의 다리로 춤을 추는 고통을 느꼈다. 므레모사 탐방 하루 전 숙소에서 유안은 레오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레오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소문과 다르게 므레모사 귀환자들은 유령이나 좀비처럼 보이지 않았고 투어에 참가한 일행을 반겼다. 므레모사 전체를 감싸는 향과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귀환자들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젊었다. 폐쇄된 시간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유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므레모사에 매혹되었고 그곳에 남겠다고 말했다. 어젯밤 레오가 들려준 그대로 였다. 므레모사는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기둥으로 남은 귀환자들의 조종이든 아니든 말이다.


레오는 그런 진실을 세상에 밝혀야 한다고 말했지만 유안은 조금 달랐다. 므레모사에 본 풍경은 유안에게 있는 그대로의 삶이었다. 유안의 재활을 도와주며 연인이 된 한나는 유안의 다리를 향해 상실을 딛고 나가야 한다고 말할 뿐 환지통을 인정하지 않았다. 므레모사에서 유안은 오히려 평온해질 수 있었다. 누군가 므레모사를 죽음의 땅이라 부를지라도 그곳이 디스토피아의 모습일지라도 그 안에도 존재하는 삶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하나의 방식이 아닌 유안의 그것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필요했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175쪽)


김초엽의 첫 단편집 『우리가 빛으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을 기억한다. 나에게 SF는 어렵고 난해한 분야였는데 김초엽의 소설은 SF나 판타지가 인간의 이야기라는 걸 말해주었다. 어떤 미래가 와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결국엔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작고 희미할지라도 말이다. 두 권의 단편집과 장편소설과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므레모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 소설에서 기존에 만난 김초엽의 단편과 장편의 일부를 녹아냈다는 점이다. 그 모든 게 김초엽이라는 소설가의 일부이니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살짝 아쉽다는 말이다.


『므레모사』는 SF 소설, 재난 소설, 공포소설이라 불릴 수 있다. 전쟁과 재난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안겨주는 소설로도 충분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떠올리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없이 외롭고 쓸쓸한 존재가 자신과 같은 존재를 인식하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유안이 느끼는 환지통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었을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현재 우리가 겪는 불안과 전쟁은 어떤 형식으로 기록되고 보존될까. 언제부턴가 SF나 판타지를 통해서도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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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폴리스맨
베선 로버츠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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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사랑하는 걸 숨겨야 한다면 그 사랑은 빛이 없는 그림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림자여도 상관없다면 둘 사이의 사랑은 빛으로 충만하다. 누가 뭐라든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도 하루하루 기쁘고 떨리는 삶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내 사랑을 자랑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기 이 아름다운 사람이 나의 연인이라고 말이다. 그 숨 막히는 떨림을 감추고 심지어 연인을 누군가와 공유해야 어떨까. 성인이 된 자식을 떼어놓지 못하는 홀어머니와의 삼각관계가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연인과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면 그게 가능할까.


베선 로버츠의 장편소설 『마이 폴리스맨』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세 사람의 이야기다. 톰을 사랑하는 아내 매리언과 톰의 연인 패트릭의 묘하고도 위태로운 사랑과 파국에 관한 소설이라고 하면 맞을까. 어쩌다 그들은 그리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소설은 1999년 현재 피스헤이븐에 살고 있는 매리언이 패트릭 한 사람을 특정한 일종의 고백이라는 글로 시작된다. 패트릭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두 번의 뇌졸중으로 생의 끝자락에 있는 남자다.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무시하고 방치하는 톰의 태도로 메리언의 시아버지일까 짐작했다. 그러나 매리언이 친구 실비의 오빠인 톰과 만나고 사귀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천천히 묘사하면서 패트릭은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패트릭은 톰의 연인이었다. 톰과 사귀면서 소개받은 학예사, 음악과 미술뿐 아니라 예술적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매리언이 서술하는 톰에 대한 부분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첫사랑에 빠졌던 어린 소녀가 스무 살 선생님이 되어 만난 경찰관 톰. 수영을 배우는 걸 계기로 주말마다 톰과 시간을 보내는 매리언은 달콤하고도 은밀하다. 톰의 사랑을 수 확신할 수 없지만 톰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말하고 나누는 것으로 사랑이라 느꼈다. 패트릭을 친구가 소개하는 톰의 눈빛은 거짓이 없어 보였다.


패트릭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1957년 해변도시 브라이턴의 패트릭 일기로 이어진다. 경찰인 톰과 패트릭이 처음 만난 날, 패트릭도 첫눈에 톰에게 반했다. 톰을 향한 끌림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와 연결되기를 원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자연스럽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톰은 흔쾌히 수락했다. 패트릭의 아파트에서 톰은 자신도 패트릭과 같은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195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는 죄로 분류되었다.


소설은 1999년과 1957년을 오가며 매리언과 패트릭의 시선으로 사랑하는 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회적인 위치나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패트릭에 비해 톰은 그들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렵다. 매리언에게 패트릭을 소개한 후 셋은 자주 시간을 보내지만 그가 사랑하는 건 패트릭이었다. 패트릭과의 사랑을 위해 톰은 매리언과 결혼을 선택한다. 일종의 사회적 위장인 셈이다. 바라고 바라던 톰과의 결혼, 매리언은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결혼식에서 둘이 맞춤양복을 입고 신혼여행 중 일부는 패트릭과 함께 보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패트릭은 좋은 친구였고 톰과 매리언보다 어른이었으니까. 사랑에 서툴다는 톰의 고백도 감미로웠다. 톰을 사랑하는 일에 패트릭도 포함된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기류를 매리언이 포착하고 말았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앞에 매리언은 무너졌다. 그가 바라보고 마주한 건 톰의 외부에 불과했다. 끝내 열리지 않을 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패트릭의 베네치아 출장에 톰이 동행하면서 매리언의 배신과 절망은 폭발했다. 패트릭의 상사에게 익명의 고발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저 패트릭만 톰에게서 멀어지면 괜찮아질 거라 여겼다. 패트릭의 성향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걸 계산하지 못했다. 패트릭만 없다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매리언은 몰랐던 것이다.


패트릭은 모든 걸 인정할 수 있었지만 톰은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두려웠다. 경찰관을 사직하고 경비 일을 택했다. 그 일로 패트릭은 감옥에 가고 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톰은 매리언에게 벽과 같은 존재였다. 공식적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했지만 톰과 매리언의 시간은 고통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현재 매리언이 패트릭을 찾은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패트릭을 집으로 데려와 돌보는 매리언의 마음은 무엇일까. 톰의 곁에 있는 건 자신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서로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 사랑이 서로에게 비수가 되었다. 톰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었던 매리언의 잘못일까,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톰에게 직진한 패트릭의 잘못일까.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친 톰의 잘못일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안다. 


패트릭, 이 모든 얘기를 털어놓는 건 나와 톰 사이가 어땠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이에 고통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있었다는 걸 당신이 알도록. 우리 둘 다 실패했지만 우리 둘 다 노력했다는 걸 알도록. (321쪽)


어쩌면 매리언이 패트릭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 그가 모르는 둘 사이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매리언과 톰이 함께 보낸 작고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즐거움. 완벽할 거라 믿었던 기대가 무너져 내린 순간까지, 오직 매리언만이 볼 수 있었던 톰의 몸짓과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매리언의 글과 패트릭의 일기에 등장하는 톰은 눈부시고 아름다운 존재다. 순수하면서도 지적이고 탄탄하고 매끄러운 몸매를 지닌 매력적인 사람이다. 톰으로 인해 매리언과 패트릭의 삶은 환희와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톰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기에 매리언이 데려온 패트릭을 보고 그가 느꼈을 감정이 무엇인지 그의 내면을 채운 사랑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터무니없고 맹목적이고 순진하고 용감하고 낭만적인 갈망이 우리를 하나로 묶은 것 같다. 우리 둘 다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텔레비전에서 맨날 나오는 그 말이 뭐였더라?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둘 다 그걸 해내지 못했다. (485쪽)


여전히 패트릭과 매리언 사이에 그가 있을 뿐이다. 톰을 향한 자신과 패트릭의 사랑과 실패를 인정하는 매리언의 글에서 쓸쓸함과 서글픔이 묻어난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평생 동안 그 사랑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매리언과 패트릭.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노랫말 따위는 들이댈 수 없는 사랑이다. 쓰라린 상처와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하고야 마는 그런 사랑이다. 


*베선 로버츠는 영국 소설가 E.M. 포스터(1879~1970)의 연인이었던 경찰관 밥 버킹엄과 그의 아내 메이 버킹엄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곧 영화로 개봉된다고 하니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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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8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2-10-18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궁금했어요. 모델이 포스터였군요. 그가 동성애자인 건 알고 있었는데 결혼했었다는 건 몰랐어요. 잘 읽고 갑니다. 영화 꼭 봐야겠어요.

자목련 2022-10-18 14:17   좋아요 1 | URL
소설도 아름답지만 영화로 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 E.M. 포스터가 결혼 한 건 아니고요. 결혼은 그의 애인이 했다고 합니다. 소설 속 톰이 매리언과 결혼한 것처럼요.

서니데이 2022-11-0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1-10 09: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 이어가세요^^

거리의화가 2022-11-09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상 축하드려요^^
제가 직접 고르지 못할 작품들을 항상 자목련님 덕분에 대리만족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자목련 2022-11-10 09:35   좋아요 0 | URL
거리의화가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편협한 책읽기에 대리만족이라니요. 덕분에 신나는 아침입니다. ㅎ

thkang1001 2022-11-0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2-11-10 09:35   좋아요 0 | URL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평온한 하루 이어가세요^^

강나루 2022-11-10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서정을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1-10 09:35   좋아요 1 | URL
강나루 님, 저도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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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시대,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이별은 준비 없이 진행된다.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어렵고,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 생은 유한하고 모두 죽음을 맞는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기다리며 막연하게 후회와 슬픔에 잠겨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영원 스승 이어령이 김지수 기자와 나눈 대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과 삶에 알려준다. 


무엇보다 스승은 내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그는 음습하고 쾨쾨한 죽음을 한여름의 태양 아래로 가져와 빛으로 일광욕을 시켜주었다. (9쪽)


이미 김지수는 이어령과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시, 라스트 인터뷰라는 말처럼 정말 마지막 인터뷰인 것이다. 암을 선고받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스승이 들려주는 사유는 일상 대화처럼 편안하게 시작되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풍부한 철학 수업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매주 화요일의 대화로 총 16번 이어졌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어둠의 팔목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23쪽)


죽음과 팔씨름을 하는 하루하루를 짐작할 수 있을까. 이어령처럼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겐 있을까.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저자를 맞이하며 풀어놓는 삶의 지혜와 사유는 한 분야에 속하지 않고 전방위적 대화로 확장된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대화가 하나도 어렵지 않고 쏙쏙 들어오는 강의 같다고 할까. 인문, 철학, 문학, 다방면에 정통한 이어령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한 우물이 아닌 여러 우물을 파는 일, 그는 호기심이고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여러 우물을 팠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계속 쓰는 것이라고. 그러니 책도 정독하거나 차례로 읽지 않고 재미있는 부분만 읽고 재미없으면 던져버린다고. 끈질기고 지독하게 무언가에 열중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메이비maybe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 말이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인식하고 존재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일까. 죽음과 존재에 대한 사유가 유독 많고 성경 구절이나 신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해설이 무척 놀랍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마음이나, 돌아온 탕자에 대해 이젠에는 한 번도 듣지 못한 해석이라고 할까. 아흔아홉 마리도 결국은 각각 양 한 마리라는 것, 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경험하고 돌아왔을 때 더 값진 삶을 안다는 사실.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말고 방황하고 길 잃은 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조건 성공만 바라는 모두를 뜨끔하게 만든다. 


팬데믹에 접어들면서 마스크 한 장에 생명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 집에서 태어난 집에서 죽었던 우리네 삶이 어쩌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가. 일상의 가까운 곳에 무덤이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었고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마지막 의식도 직접 하지 않았냐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했는데 언제부터 죽음을 다루는 방법이나 태도가 변했을까 싶다. 간편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정녕 죽음을 알 수 있을까.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 가만히 안아줄 수 있을까. 딸인 이민아 목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책 서두에서 죽기 살기로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는 글이 떠올랐다. 죽음이란 끝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모른다는 그의 설명에는 뭔가 울컥하면서도 서글퍼졌다. 비슷한 고통을 경험했더라도 그 고통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기에. 저마다의 존재 사이에 드리운 얇은 막. 


“우리은 영원히 타인의 아픔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얇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처진 얇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 일 수 있는 것’처럼.” (122쪽)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어른으로, 스승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자신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라는 말처럼 하루하루의 생이 나만의 것이며 나만의 무늬로 채워진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마,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179쪽)”


“죽음은 고통이야. 그런데 고통이 죽음은 아니야. 고통이 끝나는 공백, 시끄러움이 끝나는 정적…… 그러니까 고통까지도 죽음 밖에 있는 거라네. 숨이 넘어가서 무로 돌아가는 그 순간은 우리가 체험할 수도 느낄 수도 없어.” (247쪽)


책 전체가 하나의 강의이자 거대한 울림이며 어른의 위로라고 해도 맞을 것이다. 생의 끝에서 맞이한 진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도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게 감사였고 사랑이라고 말이다. 가장 최근에 곁을 떠난 아버지와 큰 언니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집이 아닌 병원에서의 마지막.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큰 언니. 마치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이 겹쳐지는 책, 그 안에서 나의 마지막도 생각하게 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 우리의 생이 모두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받은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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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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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이 가장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보통으로 산다는 건 특별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게 더 쉬워졌다. 평범과 보통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그 기준은 내가 세운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기를 바라고 남들처럼 내 집을 갖기를 바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이란 이런 것이다. 정해진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자꾸만 모른 척한다. 그러니 보통이나 평범 따위에 붙잡힐 필요 없다. 


이희영의 『보통의 노을』 속 노을은 그런 삶을 지향한다. 그런데도 한 번씩 보통의 삶에 대해 자꾸 돌아본다. 고등학생 때 자신을 낳은 엄마는 가족이 아닌 노을을 선택했다. 여덟 살 노을은 그런 엄마가 대단하다. 서른넷의 엄마 자혜는 미혼모 시절에서 액세서리 만드는 법을 배운 기술로 노을을 키우고 현재 공방을 운영 중이다. 사람들은 노을과 자혜를 남매나 친구로 착각한다. 그럴 때마다 자혜는 자신이 엄마라고 아무렇지 않게 밝힌다.


엄마는 늘 우리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우리란 말속에는 내가 너를 위해서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함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협력이었고, 한 명이 앞서 걷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보폭을 맞춘다는 뜻이었다. (75~76쪽)


그런 엄마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노을은 그냥 무시했으면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질문이 싫어서다. 노을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엄마에게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좋은 사람이 나타나자 생각이 많아졌다. 그 상대가 바로 친구 성하의 열 살 많은 오빠 성빈이기 때문이다. 노을이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국집 큰 아들이다. 엄마에게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보다 나이가 어리고 노을과는 열 살 차이라는 게 자꾸 걸린다. 세상의 시선에 엄마가 상처 받을까 걱정이다. 


성하의 부모님 반대와 그 사이에서 아파하는 노을과 엄마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보통의 노을』은 보통의 삶에 대해 주목한다. 삶이란 지인과 이웃, 나아가 모두에게 반드시 이해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노을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하네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중국집은 으레 배달을 할 거라는 손님들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응대를 할 때 배달을 안 하는 중국집이 어디 있냐고 화를 낸다. 배달을 해야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은 데 말이다.


노을은 자신의 출생이 남들이 말하는 보통이 아니기에 보통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데도 성빈과 엄마의 관계에서는 주춤한다. 자신도 모르게 둘 사이가 보통의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꾸 사장님의 눈치를 살핀다. 분명 반대할 거라 여겨서다. 하지만 사장님은 배달을 하지 않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며 성빈과 자혜의 관계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는다.


소설은 묻는다. 보통의 삶 어떤 거냐고? 그게 보통의 삶이라 확신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노을을 좋아하는 친구 성우를 통해 동성애를, 성하와 노을의 관계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우정을, 성빈과 자혜의 만남으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비혼모, 미혼부, 연상연하의 커플, 동성애를 특별함이 아닌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말이다. 


“보통의 삶 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아.”

“각자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게 전부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고속도로 위에 올라서려 분투하는 대신 뭐, 좀 울퉁불퉁하더라도 각자 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144쪽)


성하와 노을이 보통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보통이라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안달복달하는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똑같은 속도로 주변의 풍경도 보지 않고 달리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그러니 남들처럼 말고 내가 원하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 노을처럼 나만의 보통과 나만의 평범을 찾으면 그만이다. 


세상에 기준이 어디 있고 표준이 어디 있을까? 엄마가 나를 고등학생 때 낳은 게 어때서. 덕분에 친구처럼 세대 차이 나질 않는데. 살다 보면 나보다 열 살 많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날도 오지 않겠어? 나를 좋아하는 남자 녀석과 친구가 될 수 있잖아.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평범하고 보통인 일상이다. (213쪽)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 진로를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다양한 삶에 대해 알려주는 소설이다. 부모나 어른이 제시하고 이끄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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