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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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사용하는 무용수였던 유안은 유독성 화학물질의 대규모 유출과 화재로 페쇄가 된 이르슐의 한 도시 므레모사 투어에 참가한다. 세상과 단절된 므레모사를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첫번째 방문객으로 투어에 당첨된 것이다. 유안을 제외한 다섯 명은 저마다의 이유로 므레모사에 기대가 가득하다. 관광학을 연구원생 이시카와, 다크 투어리스트 헬렌, 여행기자 탄, 여행 유튜브 운영자 유진, 펍을 운영했다 망한 레오. 


므레모사에 대해 알려진 게 없었지만 귀환자들이 유령과 좀비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많았다. 엄격한 검문으로 통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투어가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유안의 의족을 한 사람이라는 게 일행에게 알려진다. 유안은 사고 후 재활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다리가 있다고 믿는 환지통에 시달렸다. 무용을 그만 두기 전에도 세 개의 다리로 춤을 추는 고통을 느꼈다. 므레모사 탐방 하루 전 숙소에서 유안은 레오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레오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소문과 다르게 므레모사 귀환자들은 유령이나 좀비처럼 보이지 않았고 투어에 참가한 일행을 반겼다. 므레모사 전체를 감싸는 향과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귀환자들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젊었다. 폐쇄된 시간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유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므레모사에 매혹되었고 그곳에 남겠다고 말했다. 어젯밤 레오가 들려준 그대로 였다. 므레모사는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기둥으로 남은 귀환자들의 조종이든 아니든 말이다.


레오는 그런 진실을 세상에 밝혀야 한다고 말했지만 유안은 조금 달랐다. 므레모사에 본 풍경은 유안에게 있는 그대로의 삶이었다. 유안의 재활을 도와주며 연인이 된 한나는 유안의 다리를 향해 상실을 딛고 나가야 한다고 말할 뿐 환지통을 인정하지 않았다. 므레모사에서 유안은 오히려 평온해질 수 있었다. 누군가 므레모사를 죽음의 땅이라 부를지라도 그곳이 디스토피아의 모습일지라도 그 안에도 존재하는 삶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하나의 방식이 아닌 유안의 그것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필요했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175쪽)


김초엽의 첫 단편집 『우리가 빛으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을 기억한다. 나에게 SF는 어렵고 난해한 분야였는데 김초엽의 소설은 SF나 판타지가 인간의 이야기라는 걸 말해주었다. 어떤 미래가 와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결국엔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작고 희미할지라도 말이다. 두 권의 단편집과 장편소설과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므레모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 소설에서 기존에 만난 김초엽의 단편과 장편의 일부를 녹아냈다는 점이다. 그 모든 게 김초엽이라는 소설가의 일부이니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살짝 아쉽다는 말이다.


『므레모사』는 SF 소설, 재난 소설, 공포소설이라 불릴 수 있다. 전쟁과 재난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안겨주는 소설로도 충분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떠올리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한없이 외롭고 쓸쓸한 존재가 자신과 같은 존재를 인식하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유안이 느끼는 환지통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었을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현재 우리가 겪는 불안과 전쟁은 어떤 형식으로 기록되고 보존될까. 언제부턴가 SF나 판타지를 통해서도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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