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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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일상을 의심하는 순간은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거드는 한 마디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싹튼다. 과거와 달리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라면 파급력은 크다. 반대로 지금보다 과학이 발전된 미래라면 의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관리할지도 모른다. 조지오웰의 『1984』 속 빅 브라더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거대한 시스템이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면 어떨까? 


한요나의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세상이 그렇다. 그러니까 인구 부족으로 국가가 인구 출생을 계획하고 관리한다. 1월에 임신해 10월에 태어난 아이는 국가가 부모인 셈이다. 일반적인 가정이 아닌 기관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다. 기상관측소 분석실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김도브도 10월의 아이들 2세대다. 도브는 자신이 10월의 아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자신의 임종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아버지라는 존재, 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는 파트너, 가족이 아니지만 존재의 시작인 그들이 등장하며 도브의 일상은 예전과 다르게 흘러간다. 도브에게 아버지는 의심이자 궁금증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숫자와 알파벳을 여러 방법으로 추리를 시작하다 찾은 곳이 술집 ‘NO-LITER’였다. 도브와 다르게 그곳을 단골 술집으로 여긴 이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파트너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노리터에 갔지만 도브는 그곳에서 점점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연인이 떠나고 혼자 아들을 키웠지만 아들마저 떠나버린 사장, 정상 가족을 원했던 엄마의 인형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 가출한 소미,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방랑자, 맥주를 마시러 온 노년의 부부 파와 엠, 기계처럼 대화하는 지지를 통해 도브는 인간이 무엇이며 가족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한다. 


도브는 특히 방랑자에게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는다. 기억을 잃은 방랑자도 도브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방랑자가 10월의 아이들 1세대였기 때문이다. 도브는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사장과 한 번도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는 소미를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무엇이며 자신과 다른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 거기다 지지와 방랑자의 대화를 통해 10월의 아이들인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항상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하던 방랑자가 김이고 박사라는 걸 알려주면서 잃어버렸던 기억을 하나씩 되찾을 때 사장의 아들 노원이 돌아온다. 노원이 돌아오고 소미는 사라진다. 노원은 아버지가 소미를 자신을 대신해 돌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국가의 유전자 공학으로 태어난 10월의 아이들, 국가가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배치하여 살아간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족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이고 박사의 외침처럼 DNA 같은 건 이제 인간에게 정복당한 나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어떨까? DNA를 통해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이루려는 노력은 결국 허사가 되는 것일까.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마음이다.


인간은 너무 멍청해요. 왜 자신이 태어났는지 알 수 없잖아요. 누가 알려 준다고 해도,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요. 믿을 수 있을까요?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묻기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조금만 더 일찍 찾거나 아예 날 찾지 말았어야 했어요. (124쪽)


도브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만 지금껏 잘 살아왔기에 가족이 무슨 의미일까 싶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이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브는 노리터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가족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연락이 끊긴 소미에게 소식을 전하고 세상을 떠난 파를 애도하고 남겨진 엠을 걱정한다. 어쩌면 노리터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미래의 가족상은 아닐는지. 


노리터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줄어든다. 사람들과 엮일수록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파트너를 찾을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노리터 사람들과 친해질수록 아버지도, 아버지의 파트너 찾기도 점점 잊게 된다. 가족. 가족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127쪽)


이런 상황속에서 10월의 아이들 1세대인 이고는 자신이 찾으려는 게 무엇인지 도브에게 설명한다. 국가나 정부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했던 것이다. 도브는 이고를 돕기로 결정한다. 신분증을 복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고가 일했던 곳으로 향한다. 돌아온 이고의 기억이 찾아낸 곳에는 사람이 아닌 거대한 시스템만이 존재했다. 국가 권력은 결국 시스템에 불과했던 것일까.


나는 시스템 오보에.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악기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제 나는 파괴합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인간 같은 것은 없습니다. (246쪽)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사과해야 할 대상도 없고, 사과해야 할 사람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걸까. 시스템은 누구에게 미안해하고, 또 왜 미안한 걸까. (246쪽)


이고가 그토록 밝히고 싶었던 10월의 아이들 1세대의 진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피해를 당한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시스템 오보에. 어쩌면 미래엔 시스템의 일부로 인간은 사라지고 인간과 같은 존재들만 남는 건 아닐까. 유전자 덩어리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면 가족의 돌봄이나 사랑은 배제된 채 양육되는 사회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오보는 사과하지 않는다』는 얼핏 기상 이변에 대한 두려운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멋진 트릭으로 시작해 정상가족이라는 범주에서 탈피한 미래의 다양한 가족 구성원과 형태를 제시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요나가 그려낸 소설은 허구가 아닌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유전 공학 기술이 우리 앞에 도래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단호함이 위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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