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오늘이 9월 1일인 것 같다. 8월은 힘들고 긴 시간이었다. 더위에 약한 나는 올여름을 조금 다르게 기억할 것 같다. 먹고사는 일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 내가 먹자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끓이고 데치고 볶는 일이 정말 귀찮았다. 움직이지 않고 멈춘 채 모든 게 내 앞으로 이동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2024년 여름, 정확하게는 8월은 유독 나를 지치고 힘들게 했다. 응급실에 다녀온 8월이기도 했다.
지난번 꺼냈던 삼계탕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실패한 삼계탕, 열심히 먹었지만 끝내 다 먹지 못한 삼계탕 이야기. 복날에는 삼계탕을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한몫했다. 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삼계탕은 닭죽의 개념이 컸다. 할머니, 아버지, 오빠를 위주로 식단이 꾸려졌다. 이효리가 엄마와 여행에서 오징어 찌개 먹으면서 자신의 그릇에는 오징어도 몇 개 없었다는 말처럼 언니들과 나의 국그릇에는 닭고기는 없었다.
삼계탕으로 돌아오면 삼계탕을 끓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인삼을 비롯한 약재를 넣은 게 아니라 닭, 찹쌀, 마늘만 넣어도 충분했으니까. 냄비가 아닌 전기압력밭솥이 만들어줄 삼계탕이었으니까. 그냥 닭만 잘 손질하고 찹쌀을 품은 닭을 만들면 그만이라고 나는 착각했다. 우선 재료부터 실패의 전운이 돌았다. 작은언니가 사다 준 닭은 너무 컸다. 진짜 컸다. 10용 밥솥에 안착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닭 다리는 예쁘게 포갤 수 없었고 힘을 주어 잘라내야 했다. 급환 마음에 찹쌀을 불리는 것도 잊었다. 어떻게든 밥솥에 넣고 삼계탕 메뉴를 선택했다. 기다리면 되는구나 여겼다.
갈비찜을 해 본 경험을 믿었다. 물론 갈비찜은 훌륭했다. 나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삼계탕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압력 추가 흔들렸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내가 맞이할 주방의 최후를 말이다. 삼계탕이 완성되었다고 친절한 목소리가 말려주었다. 밥솥을 열기 전 나에게 닥친 시련을 보았다. 밥솥 주변이 기름이 가득했다. 김이 빠지면서 상부장에도 기름의 흔적이 남았다. 처리는 뒤로하고 밥솥을 열었다. 아니, 젓가락으로 닭은 찔러보니 깊숙이 들어갔다. 문제는 찹쌀이었다. 찹쌀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 밥솥 뚜껑을 닫고 대충 정리 후 삼계탕 메뉴를 선택했다. 사진은 교훈을 삼으려 남겼다. 잘 보면 찹쌀이 익지 않은 게 보인다.
2시간을 들여 만든 삼계탕은 맛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뒷정리는 힘겨웠다. 기름을 닦아내는 일, 밥솥 청소는 덤이었다. 그리고 삼계탕을 먹는 일이 남았다. 문제는 양이 많다는 것. 나는 끼니 때마다 삼계탕을 먹었고 결국엔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 것도 있다. 나는 닭으로 만든 요리를 좋아한다. 치킨, 닭찜, 닭볶음탕, 모두 잘 먹는다. 달걀도 좋아해서 삶은 달걀, 장조림, 달걀 프라이도 좋아한다. 하지만 당분간 삼계탕은 먹을 자신이 없다. 내년에는 삼계탕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냥 배달시켜 먹을 것이다.
재미없는 삼계탕 말고 책 이야기를 해 보자. 김애란과 조해진의 신간이 나왔다. 둘 다 장편이다. 이승우의 산문도 나았다. 궁금한데 선뜻 구매는 안 했다. 이상하다. 잘 모르겠다. 조금 천천히 읽어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이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겠다.
길고 길었던 8월이 가고 9월이다. 9월에는 조금 더 신나게 조금 더 명랑하게 지내고 싶다. 책도 좀 열심히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