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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ㅣ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만져 주었다
나를 어루만지듯
(p.91 그래도 괜찮아 중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때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아"하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때가 있다. 전셋돈은 무섭게 오르고 집을 보러 다니지만 썩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이때 말이다. 통장은 바닥을 드러내고 공과금 등 자동이체로 무섭게 나가는 것들을 막아보려고 이 은행 저 은행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벤치에 앉아 아픈 발을 내려다 보았다. 전세 구할 큰돈도 필요하고, 생활비에 쓸 자잘한 돈도 필요한데 남편이 받아야할 돈의 20%를 받지 못해서 갑자기 궁핍에 시달리게 되었다. 8월 15일즈음이면 나머지 20%도 넣어주겠다던 업체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나머지 돈을 입금하지 않고 있다. 매일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새벽이슬 맞으며 번 돈인데, 돈을 입금해야할 당사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언제쯤 입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만 한다. 결국 아이들 정기예금통장을 헐어서 생활비의 일부로 대체했다.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사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게 "그래도 괜찮아"하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 자신에게 아무리 '괜찮아'라고 되새겨도 그건 나의 자조일뿐이니 말이다.
안오일 시인의 청소년 시집을 읽으며 위로를 받은 셈이다.
미술 숙제가 아버지 발 그려오기다
술 마시고 곯아떨어진
아버지의 발을 그렸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을 자세히 봤다
새끼발가락 발톱이 깨진 거
굳은살 박인 발뒤꿈치
무좀으로 갈라진 발바닥
조금씩 휘어진 발가락들
지독한 고랑내
아버지가 숨 가쁘게 뛰어다녔을
세월이 느껴졌다
이 발로 지탱해야 했을 가족의 무게가
쿵! 느껴졌다
(p.11 아버지의 발 전문)
가끔 밤마다 남편은 발을 만져달라고 한다. 신혼때 보고 처음 본 듯 생경한 남편의 발을 보다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느낄때가 있다. 곱상한 듯 예쁘게 보였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굳은 살이 박인 뒤꿈치며 꾹꾹 눌러줘야 그제야 잠이 스르르 들어버리는 모습을 볼때면 그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숨 가쁘게 뛰어다니고 있을지가 보인다.
책을 읽다가
쏙 들어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누군가 밑줄 그어 줄
내 마음도 있었을까?
(p.27 밑줄 전문)
누군가 내마음을 알아준다는 일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는가. 누군가 나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은 어디가서 자잘한 이야기로 밤새 수다를 하고 싶은 날이다. 이래 저래 마음이 뒤숭숭한 날이다. 해는 내리쬐고 땀은 줄줄 흘러 내리고, 어디로 가야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이 오전내내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 시집 한권 손에 들었는데 그게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위로를 건넨다.
"그래도 괜찮아"
하고 말이다.
그래, 정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