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기침을 계속했다. 분명 에어컨이 문제인 것 같다. 약을 먹고 좀 괜찮아졌다 싶다가도 찬물과 에어컨은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기침을 계속하다보니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까지,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긴했는데 괜찮아져서 약을 끊으면 다시 재발한다. 계속되는 기침에 아이들도 불안하게 쳐다보니 민망하다. 다시 병원에 다녀와야할 것 같다. 

며칠째 몸이 좋지 않았다. 어제도 그랬고, 그래서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릴 계획이었는데 남편이 술 마시는 바람에 차를 사무실에 두고왔다고 승용차를 가지고 나갔었다. 주말에 써야하니 찾아다두란다. 남편 사무실은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버스를 타면 30~40분을 그냥 잡아먹는다. 새벽에 나가는 남편의 사정을 아는터라 그냥 아무말없이 알았다고 하고는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사무실에 가서 차를 찾으러 갔다. 나가다보니 25일까지 부가세를 내야하고, 이번엔 현금이 부족한 관계로 카드결제를 하기로 했다. 세무서에 직접가서 결제하면 된다는데 본인이 가야하는지 부인이 가도 되는지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며 계속 물었다. 친구가 세무서에 근무하고 있다.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계속대는 나의 문자에 답신을 보내주었다. 친구덕에 본인이외 사람이 가도 되고 카드도 남편 것이나 내 것이나 아무 거나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세무서에 부가세를 내러 나갔다. 말 그대로 나간 김에 나갔다왔다.  

세무서에 가기 전에 엄마네 집에 들렀다. 아버지 생신 이후 처음이니 한 20여일만에 갔더니 깜짝 놀라신다. 그때도 몸이 좋지 않아 저녁만 먹고 집에 왔으니 걱정이 되긴 하셨었나보다. 올 해 처음 엄마따라 절을 가서 석가탄신일때 등을 달고 왔었다. 앞으로 이사도 해야하니 절에 전화해서 어디가 좋은가 물어보자신다. 스님께 여쭈어보니 남편과 내게 좋은 방향이 서쪽이란다. 우리집에서 서쪽방향이면 엄마네쪽이긴한데 워낙 전세가 비싸서 알아보다가 중도 포기했다. 또 다른 서쪽방향의 아파트는 다른 곳보다 시세가 저렴한 편이라 그쪽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잠정 결정을 내렸다.  

엄마네 집에서 나와 세무서에 가서 부가세를 결제하는데 친구가 납부서를 팩스로 받아주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부가세를 내고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니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벌써 몇번째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었는데 매번 친구는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사겠다고 했는데 친구는 그래도 내가 자기를 찾아왔는데 어떻게 얻어 먹겠냐며 우리 동네로 한번 놀러 오겠다며 밥값을 계산하려는 내 뒤에서 돈을 쑤욱 내고는 식당에서 나가버렸다. 

중학교 1학년, 이 친구와 만났다. 우리반 반장이었고, 우리가 학교에 들어올때 치른 시험에서 수석을 했었던 친구였다. 키는 작고 통통했고, 워낙 털털한 친구라 그 친구가 수석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었다. 그리고 졸업할때까지 내내 1,2등을 했었다. 뭐 그런 등수는 중요하지 않다. 이 친구를 알게 되면서 나의 책 읽기에 대한 애정이 더 커져 갔으니 말이다. 

요새 조카를 위해 고전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집어 든 <데미안>. 

이 책을 읽고 둘은 마구 흥분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그때 우리가 읽었던 그 책의 번역은 지금의 번역과는 차이가 있지만 여하튼 이 구절이었던 건 분명하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 알을 깨야하는 새처럼 우리도 세상에 나가기 위해 이 세상을 깨뜨려야 한다며 우리 자신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자는 말도 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랐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카프카의 <변신> 등등 끊임없이 읽고 끊임없이 이야기했었다.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다른 대학교를 다니고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었지만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최근엔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작가가 좋은지 여전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상처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 사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어도 창피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로 위로를 받고 위안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주로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곧 개봉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 그리고 <고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도서를 추천해주고 왔다.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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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미안은 정말 성장 과정에 있던 책이었어요...
수레바퀴 밑에서 를 읽고 얼마나 슬펐던지,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를 읽고 미칠거 같았죠.
맞아요, 그때 정도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도 읽었던거 같아요. 엄청 울었던 기억이...

오랜 친구란, 그렇게 상처를 보여도, 10%만 이야기해도 다 알아주는 편안한 존재같아요.
어젯밤, 요즘 무엇인가 뒤틀린 친구 때문에, 잠을 뒤척였어요.

꿈꾸는섬 2011-07-23 15:06   좋아요 0 | URL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는 읽었는데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는 안 읽어봤어요. 미칠 것 같았다니 어떤 책일까 너무 궁금해져서 꼭 찾아봐야겠어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저도 엄청 울었어요.

어젯밤 친구 생각에 잠을 뒤척이셨군요. 그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11-07-23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중1때 친구. 너무 좋으시겠어요. 게다가 마음씀씀이도 너무 예쁘네요. 저는 책 얘기할 친구는 한 명도 없어요--;; 제가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랍니다. 다 책이랑은 담을 쌓고. 그래서 제가 외로운 걸까요?

꿈꾸는섬 2011-07-24 11:27   좋아요 0 | URL
중학교때부터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어요.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힘들때 도움을 주는 그런 친구죠. 게다가 책 읽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녔었어요.^^

마노아 2011-07-2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든든한 친구분이 처방약이 되어주었어요. 주말 동안에 몸 회복하시고 거뜬해지셔요!!

꿈꾸는섬 2011-07-24 11:27   좋아요 0 | URL
네, 친구가 힘이 되네요. 오늘 복이라는데 마노아님도 힘나는 음식 드세요.^^

하늘바람 2011-07-2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어컨 많이 쐬면 힘들더라고요 몸이 여름에 힘이 나야하는데 말이에요^^
좋은 친구분이네요

꿈꾸는섬 2011-07-25 12:08   좋아요 0 | URL
제가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래도 속 깊은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라 참 좋지요.^^

2011-07-24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7-2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리도 독서모임에서 고전의 힘에 모두 동의했어요.
데미안 이야기도 나왔고, 8월엔 논어를 읽고 9월엔 적과흑을 읽기로 했답니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로워지는 고전의 힘~ 책이야기를 같이 할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이지요.^^

꿈꾸는섬 2011-07-25 16:46   좋아요 0 | URL
8월엔 논어, 9월엔 적과흑....오, 너무 멋진 독서모임이에요.^^